#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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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빼들기로 작심한 메르켈은 단호했다.
그녀는 10년 넘게 독일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절대 권력에 가까운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
철의 여인 메르켈 총리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징벌의 채찍을 휘두르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원리 원칙을 중시하는 독일의 공무원들도 벌벌 떨었다.
교통부 장관 보좌관 마르코 슈테겐이 정부 자금 횡령 및 국가 기밀 유출로 긴급 재판에 회부 됐고, 징역 25년을 구형받았다.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던 마르코 슈테겐의 몰락은 서막에 불과했다.
각 부처에서 난다긴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에이스 공무원들이 줄줄이 체포됐다.
죄목은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중형을 선고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정부 자금 횡령, 뇌물 수수, 국가 기밀 유출, 해외 자산 은닉 등 공무원으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가 줄줄이 나왔다.
메르켈의 분노는 정부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독일의 주요 기업, 특히 금융권 관계자들이 줄줄이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그들은 구속된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국가 기밀을 빼돌리거나 이익을 본 죄, 또는 거액의 세금을 탈루한 죄로 엮였다.
메르켈 총리의 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도 높은 수사와 숙청이었다.
오죽하면 독일 언론에서도 정부의 칼날이 너무 날카로운 것 아니냐고 경계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동안 독일 사회를 좀먹고 있던 바이러스를 한방에 털어낸 메르켈의 지지율은 끝을 모르고 높아졌다.
라이프치히 테러 사고로 까먹은 지지율을 회복하고도 남았다.
사실 메르켈 정부에서 숙청한 공무원과 기업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네오메이슨의 조직원이었다.
물론 마르코 슈테겐의 리스트에 있다고 무조건 잡아넣진 않았다.
다만 리스트의 인물들을 조사해서 네오메이슨과 손을 잡은 게 확실하면 가차 없이 숙청했다.
죄목도 있는 대로 갖다 붙였다.
마르코 슈테겐의 가장 큰 죄는 테러 자금 지원이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공식적으로 라이프치히 테러의 원인을 이미 밝혔다.
뒤늦게 네오메이슨과 결탁한 자국 공무원이 테러를 사주했다고 알릴 수는 없다.
다른 공무원과 기업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저지른 죄도 있지만, 형량이 부족하면 얼마든지 가공의 혐의를 덧씌웠다.
당연히 법적으로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메르켈은 최치우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도 지옥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메르켈 총리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효과는 확실했다.
독일은 네오메이슨의 전신인 일루미나티가 발생한 근거지다.
그런데 최치우와 메르켈의 합동 작전으로 본거지인 독일에서 네오메이슨 조직이 탈탈 털렸다.
아직도 숨을 죽이고 호시탐탐 기호를 엿보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정부와 금융계 요직의 네오메이슨은 대부분 힘을 잃거나 감옥에 갇혔다.
유럽의 맹주 독일에서 네오메이슨의 영향력이 완전히 약화된 것이다.
비록 라이프치히 테러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지만, 최치우는 희생자들을 위해 최선의 복수를 한 셈이었다.
테러를 직접 실행한 I.S 비밀 지부를 소탕했고, 뒤에서 사주한 네오메이슨 조직을 와해시켰기 때문이다.
휘이- 휘이이이-
최치우는 바람이 부는 공터에 혼자 서있었다.
그의 앞에는 작은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라이프치히 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였다.
8명의 희생자 모두 생전에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올림푸스를 위해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유족들에게 보상을 하고, 복수까지 마무리 지었지만 최치우가 느끼는 책임감은 여전했다.
그는 추모 기념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희생을.’
소울 스톤 발전소가 완공되면 라이프치히뿐 아니라 독일의 자랑이 될 게 분명하다.
아울러 유럽 전체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로 자리 잡을 것이다.
관광객들은 발전소 외관뿐 아니라 바로 옆 추모비도 같이 볼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공사 현장 가까이 추모비를 세웠다.
유족들도 보상금 액수보다 추모비를 세운 것에 더 큰 고마움을 표현했다.
복수는 철저하게, 책임은 확실하게.
그것이 최치우의 원칙이다.
유럽에서도 최치우는 원칙을 지키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올림푸스와 독일은 라이프치히 테러를 발판 삼아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
특히 최치우는 네오메이슨의 천적이라 불려도 될 것 같았다.
“가을에 다시 만나자.”
최치우는 추모비 옆 공사가 한창인 현장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남겼다.
가을이면 두 번째 소울 스톤 발전소가 문을 열 것이다.
그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펑-!
퍼퍼펑-!
축포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샴페인이 터졌다.
수십만 원짜리 돔페리뇽과 수백만 원이 넘는 아르망디 거품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누구 하나 흐르는 샴페인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사치를 부려도 된다.
아주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강남의 특급 호텔 클럽을 통째로 빌려서 파티를 열었다.
파티장과 샴페인, 음식만 화려한 게 아니었다.
올림푸스 직원들이 투표를 통해 뽑은 연예인들을 축하 가수로 섭외했다.
하룻밤 파티에 몇억, 아니 10억은 더 쓰게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새해가 밝았고,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합산 시총은 100조 원을 돌파했다.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파티였다.
다른 회사의 새해 시무식과는 레벨이 달랐다.
이렇게 온 직원이 모여 미친 듯이 노는 파티로 시무식을 하는 회사는 없다.
최치우의 기조는 한결같았다.
일할 때는 미친놈처럼, 대신 놀 때도 미친 듯이.
수많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을 강요한다.
하지만 정작 열매를 나눌 때는 인색하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다르다.
업무 강도는 무척 높은 편이지만, 성과급 체계가 다른 대기업 뺨을 후려칠 정도로 독특하다.
단순한 성과급뿐 아니라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스톡 옵션도 적지 않다.
괜히 꿈의 직장으로 불리며 공채 경쟁률이 어마어마한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이 힘들어도 누구 하나 퇴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파티가 열리는 클럽에서 최치우를 보는 사람들마다 축하 인사를 건넸다.
최치우는 올림푸스 직원들만 초청하지 않았다.
직원의 가족과 친구들도 초대했고, 덕분에 직원들은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다.
최치우에게 축하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원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합산 시가총액 100조 돌파를 축하하는 것이다.
뉴스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기 때문에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시총 100조 돌파는 국민적 상식이 됐다.
“고맙습니다. 재밌게 놀다 가세요.”
최치우는 한 손에 샴페인 병을 들고 여러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줬다.
잘나가는 아이돌 가수와 걸그룹을 불러 축하 무대를 꾸몄지만 파티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사람은 단연 최치우였다.
한류스타도 최치우의 명성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한 차례 파티장을 돌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최치우는 VIP 룸으로 들어왔다.
대리석 테이블 위에는 황금빛 아르망디가 수십 병 깔려 있었다.
돔 페리뇽 정도는 바닥에 나뒹굴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연예인 놀이는 잘 하고 왔어?”
이시환이 장난스레 농담을 던졌다.
그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남아공에서 날아왔다.
최치우는 샴페인 거품을 이시환에게 뿌리며 응수했다.
“남아공에 오래 있더니 군기가 빠졌는데? 하늘 같은 대표님한테.”
“하하하, 옙.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시환이 거수경례를 하며 장난을 쳤다.
두 사람은 올림푸스의 대표와 남아공 본부장 이전에 막역한 대학 선후배다.
특히 최치우가 동해에서 이시환의 목숨을 구해주며 더욱 친해졌다.
그날 이후 이시환은 최치우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사이인 둘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가움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서울 공기에 적응이 되고 있지?”
“그럼, 역시 서울이 좋긴 좋다.”
이시환은 오늘 낮에 도착했다.
그때는 최치우도 업무를 보느라 바빠서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다행히 이시환의 귀국 일정과 파티 날짜가 맞아서 제대로 회포를 풀 수 있게 됐다.
“이러다 남아공 안 가려고 하면 곤란해.”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대표님. 내 꿈과 야망이 모두 남아공에 있는데.”
이시환은 취기에도 불구하고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여줬다.
올림푸스의 남아공 본부는 여러 광산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며 쭉쭉 성장하고 있다.
남아공 본부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시환의 위상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어졌다.
만약 한국에 남았다면 이시환은 올림푸스의 팀장으로 머물렀을 것이다.
물론 올림푸스의 팀장은 준 임원급 대우를 받는다.
게다가 20대 임원으로 발탁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막대한 매출을 내는 해외 법인의 총 책임자는 격이 다른 자리다.
이시환은 도전을 선택했고, 그 과실을 누리는 중이다.
한국에 잡아두려 아무리 애를 써도 휴가가 끝나면 남아공으로 돌아갈 것이다.
최치우도 남아공에서 더 큰 성공을 이루려는 이시환의 각오를 알고 있었다.
툭툭!
“올해는 남아공 밖으로도 진출해야지.”
최치우가 이시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시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된 대답을 내놓았다.
“현지 분위기를 살피고 있어. 봄에는 그럴듯한 보고서를 올릴게.”
“너무 서두르진 말고. 형은 이미 잘 하고 있으니까.”
최치우는 격려를 잊지 않았다.
이시환은 기대 이상으로 남아공 본부를 이끌고 있다.
슬슬 아프리카 남부로 사업을 확장해야 하지만, 아직 조급증을 느낄 단계는 아니다.
“아, 맞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어?”
그때 이시환이 빈 잔에 샴페인을 따르며 물었다.
최치우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식?”
“모르는구나. 은서… 교환학생 끝나고 졸업해서 취직했다고 하더라.”
이시환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언급됐다.
과 대표 출신인 이시환은 남아공에서도 동문들의 소식을 틈틈이 챙기고 있었다.
최치우의 첫 번째 여자친구인 유은서의 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S대에서 만나 풋풋한 연애를 했지만, 최치우는 너무 일찍 거물이 됐다.
그로인해 연애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고, 유은서는 최치우에게 부담을 주는 대신 교환학생으로 떠나가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헤어진 후 거짓말처럼 유은서를 잊고 지냈다.
다른 여자들을 많이 만났고, 수많은 남자들이 선망하는 걸그룹 멤버와 짜릿한 밀회를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순수한 연애 감정을 다시 느낀 적은 없었다.
유은서.
그녀의 이름을 다시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디에 취직했어?”
“UN 본부에서 일하고 있다더라. 원래도 똑똑했잖아.”
“그럼 뉴욕에 있겠네.”
“그렇겠지.”
최치우는 뉴욕의 UN 본부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었다.
그때 같은 공간에 유은서가 있었다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궁금하면 더 알아봐 줘?”
이시환이 넌지시 최치우의 의사를 확인했다.
그러나 최치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 때문에 그녀를 멀리하게 됐는데, 예전보다 더 바빠진 지금 먼저 연락할 면목이 없었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지.”
“그거 완전 아재 같은 소리 아냐?”
“됐어.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술이나 마셔.”
최치우가 샴페인을 병째로 들고 목을 축였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시총 100조 원 돌파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됐다.
그런데 과거를 회상하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올림푸스를 설립하기도 전, 평범한 학부생 시절의 추억도 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끊어진 인연의 고리가 어떻게 이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최치우는 모든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건배!”
“위하여-!”
사방에서 축배를 드는 소리가 최치우를 흐뭇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