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77화 (177/243)

# 177

<악마의 거래>

최치우의 개인 자산은 이제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늘어났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100조 원을 노리고 있다.

파죽지세로 90조 원을 뛰어넘었지만, 라이프치히 테러 사건으로 잠시 주춤거리는 중이다.

그러나 메르켈과 독일 정부의 사고 수습이 훌륭했고, 소울 스톤 발전소도 공사를 재개하기로 발표했기 때문에 100조 원 돌파는 시간 문제였다.

당장 최치우가 보유한 지분을 돈으로 환산하면 30조가 넘는다.

그는 이미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부가 됐다.

특히 대한민국 제일의 주식부자다.

회사의 가치는 오성그룹에 이어 2위지만, 개인 자산은 최치우가 월등하다.

오성그룹의 후계자인 이지용 부회장의 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적은 지분으로 그룹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게 우리나라 재벌들의 특성이다.

그에 반해 최치우는 자기 명의의 지분을 중시했다.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하지만, 떳떳하게 소유권을 지닌 자산 규모는 이지용 부회장을 압도하고 남았다.

그렇기에 돈이 얼마가 든다는 것은 최치우에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최치우는 프랑스 파리의 사설 경호업체를 하루 만에 인수했다.

당연히 경호가 필요해서는 아니다.

I.S 비밀 지부의 보스인 압둘라 아흐만을 안전하게 잡아놓기 위해서였다.

압둘라를 인터폴에 넘기면 영영 최치우의 손을 떠나게 된다.

결정적인 순간 압둘라 아흐만의 증언이 다시 필요해질지 모른다.

그래서 최치우는 파리 외곽에 안전 가옥을 사고, 급히 인수한 경호업체를 이용해 압둘라 아흐만을 지키게 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됐다.

최치우가 파리에 도착해 I.S 비밀 지부를 소탕하고, 압둘라 아흐만의 자백을 받아내기까지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MI6의 정보력, 최치우의 자금력과 실행력,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1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파리에서 보낸 최치우는 다시 독일로 움직였다.

그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메르켈 총리는 베를린으로 복귀했다.

대외적으로 테러범 신원과 원인이 밝혀졌고, 사고 수습도 무난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최치우도 라이프치히가 아닌 베를린으로 향했다.

그는 곧장 메르켈 총리를 만나지 않았다.

원한다면 언제든 약속 없이 찾아가도 메르켈을 만날 수 있다.

외국 정상들도 사전 약속이 없으면 메르켈을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치우는 예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 도착한 최치우는 총리 관저를 찾지 않았다.

만약 교통부 장관 보좌관인 마르코 슈테겐이 테러 자금을 지원했다고 알리면 어떻게 될까.

뻔하다.

독일 정부는 진상 조사단을 만들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마르코 슈테겐을 취조 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크리스마스는 물론, 얼마 안 남은 올해 12월이 지나갈 게 확실하다.

마르코 슈테겐이 진실을 말한다는 보장도 없다.

어영부영 시간만 잡아먹고 지나갈 공산이 크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직접 해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파리의 I.S 비밀 지부도 절차를 따랐다면 소탕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법이 만능은 아니다.

때로는 수면 아래에서 과격하고 빠르게 해결해야 할 일도 있다.

철컥-

업무를 마친 마르코가 자동차 문을 열었다.

지하 주차장 구석에 세워진 검은색 벤츠 E클래스가 마르코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우…….”

마르코는 운전석에 앉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루의 피로를 몰아내는 것일까.

교통부 장관 보좌관은 꽤 높은 고위 공무원이다.

대신 처리해야 할 일도 엄청나게 많다.

장관에게 올라온 모든 자료를 일일이 검토하고, 조언을 하는 것도 마르코의 몫이었다.

일이 힘들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고민이 있는지 마르코는 몇 번 더 한숨을 토해냈다.

이윽고 마르코가 시동을 걸려는 찰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스윽-

차가운 금속이 마르코의 목덜미에 닿았다.

순간 마르코 슈테겐은 온몸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위기를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위축되게 마련이다.

마르코는 목에 와 닿은 서늘한 감각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마르코 슈테겐, 한숨을 쉬는 걸 보니 걱정이 있나 보군.”

“누, 누구……?”

“동작 그만. 고개를 돌리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면 바로 죽인다. 농담 같다면 시험해 봐도 좋다.”

마르코는 입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자동차 뒷좌석에 누군가 먼저 타고 있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철저하게 계획하고 자신을 노렸다는 뜻이다.

어설픈 좀도둑이나 강도 따위는 아닌 게 분명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마르코는 독일 억양이 묻어나는 영어를 구사하며 가까스로 질문을 했다.

온몸에 힘이 풀렸지만 최대한 용기를 짜낸 것이다.

마르코의 자동차에서 기회를 잡은 남자, 최치우는 미스릴 단검을 더욱 밀착시키며 입을 열었다.

“진실.”

“네?”

“내가 원하는 것은 진실이다.”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말이었다.

마르코는 식은땀을 흘리며 눈알을 굴렸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거대한 어둠이 마르코를 덮치는 것 같았다.

후우우욱-

최치우가 내공을 개방하며 위압적인 기파를 뿜어냈다.

사람을 많이 죽인 국제적 테러리스트 압둘라 아흐만도 버티지 못한 기운이다.

매일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교통부 장관 보좌관이 최치우의 패도적인 기운을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흐, 흐읍…….”

마르코가 가위에 눌린 것처럼 숨을 급히 집어삼켰다.

최치우는 그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시동을 걸고, 내가 말하는 장소로 이동해. 경로를 벗어나면 죽음뿐.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괜한 협박이 아니라는 걸 체감한 마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치우는 마르코의 목에 미스릴 단검을 바짝 붙인 채 목적지를 알려줬다.

벗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진 마르코는 순순히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씩 엮이고 있어.’

최치우는 프랑스 파리에서 얻은 단서로 베를린의 대어를 낚았다.

마르코를 요리하면 대체 누가, 왜 테러 자금을 지원했는지 답이 나올 것이다.

이미 어느 정도 답을 예상하고 있는 최치우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라이프치히 테러에서 시작된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

똑똑-

“총리님, 올림푸스의 최 대표님 오셨습니다.”

베를린 총리 관저의 비서는 외교관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각 잡힌 정장과 자세, 그리고 완벽한 영어 엑센트는 그녀가 엄청난 엘리트임을 보여줬다.

“들어오세요.”

방문 너머에서 메르켈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치우를 안내해 준 총리실 비서는 문을 열어주고 고개를 숙였다.

빼어난 미모를 지닌 재원이지만, 최치우는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눈인사라도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심각한 상황이다.

최치우의 머릿속은 다른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대표님,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메르켈은 최치우를 보자마자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녀는 프랑스 정부의 공식 발표를 믿지 않았다.

I.S의 비밀 지부를 소탕한 주역이 프랑스 정부일 리 없다.

메르켈을 통해 MI6의 정보를 받은 최치우가 벌인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최치우는 일일이 설명해 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설명은 최치우가 메르켈에게 들어야 한다.

“파리에서는 대체 어떻게…….”

“그보다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총리님.”

최치우가 메르켈의 말을 끊었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기 때문일까.

메르켈은 질문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최치우는 갑자기 사라졌다가 I.S 비밀 지부를 박살 내고 돌아왔다.

그가 빈손으로 총리실에 찾아왔을 것 같진 않았다.

“마르코 슈테겐. 누구인지 아십니까?”

“음…….”

메르켈이 인상을 찌푸렸다.

총리라고 해서 모든 고위 공무원을 기억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장관 보좌관의 이름을 일일이 알지 못할 것이다.

최치우는 메르켈에게 정답을 알려줬다.

“교통부 장관 보좌관입니다.”

“아, 기억이 납니다. 매우 유능한 인재라고 교통부 장관이 여러 번 칭찬했었습니다.”

“총리님을 믿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르코 슈테겐이 I.S의 비밀 지부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메르켈이 눈을 크게 떴다.

도저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더더욱 충격적인 발언을 계속했다.

“마르코 슈테겐의 자백, 차명 계좌에서 테러 자금을 지원한 내역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I.S의 비밀 지부를 이끌었던 압둘라 아흐만의 진술도 일치합니다.”

“설마…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은 I.S 비밀 지부의 지도자를?”

“네, 제가 잡아두고 있습니다. 마르코 슈테겐의 신병도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최치우는 당당하게 말했다.

불법적으로 독일 고위 공무원을 납치한 셈이다.

그렇지만 거리낄 게 하나도 없었다.

마르코의 자백을 받아냈고, 구체적인 증거까지 확보했기 때문이다.

“마르코 슈테겐은 네오메이슨입니다. 라이프치히 테러는 네오메이슨이 I.S를 이용해 일으킨 사건입니다.”

최치우의 폭탄 발언이 이어졌다.

철의 여인 메르켈도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네오메이슨의 존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조카를 잃었을 정도이니 네오메이슨을 증오하는 마음도 최치우 못지않다.

하지만 독일 정부에, 그것도 장관 보좌관이라는 고위직에 네오메이슨이 침투해 있을 줄은 몰랐다.

“여기 있습니다.”

최치우는 메르켈의 탁자 위로 USB 하나를 건넸다.

메르켈은 흔들리는 시선으로 최치우를 쳐다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마르코 슈테겐이 직접 작성한 리스트입니다. 네오메이슨 소속의 독일 공무원, 그리고 기업인들입니다.”

“이것은…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메르켈이 최치우에게 답을 구했다.

유럽을 하나로 묶으며 지도력을 발휘해 온 메르켈에게도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최치우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공식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문제라면, 법과 절차에 얽매이는 건 미련한 일입니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공무원들은 직위 해제, 기업인들은 강도 높은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로 구속. 명분과 이유는 만들기 나름입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공권력을 휘두르면…….”

“가만히 놔두면 저들은 암으로 자라날 겁니다. 독일과 유럽 전체를 죽이는 암 덩어리. 라이프치히의 비극이 또 일어난다면, 그때도 법과 절차를 따질 겁니까?”

최치우의 말투는 사뭇 공격적이었다.

메르켈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일이 복잡해진다.

반면 메르켈만 독한 마음을 먹으면 독일에서 네오메이슨 조직 상당수를 도려낼 수 있다.

네오메이슨과의 싸움이 시작된 후 가장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게 되는 것이다.

“성공, 출세, 인종, 신념, 그 이유가 무엇이든 리스트 속 사람들은 네오메이슨이라는 악마와 거래를 했습니다. 그 악마를 물리치려면 우리도 지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최치우의 말이 메르켈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사실 그는 무림에서 소림사 무승(武僧)들이 하던 말을 약간 변형시켰을 뿐이다.

소림사의 고수들은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리오’라고 외치며 무림 공적을 때려잡았다.

선한 마음과 방법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소림사의 무승들이 불가의 가르침을 뒤로하고 살생을 범한 것처럼, 메르켈 총리도 독일을 좀먹는 종양을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최치우가 전부 다 차려준 밥상이다.

이것마저 받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스윽-

메르켈이 USB를 집어 들었다.

혼란을 지운 그녀의 표정이 다시 강단 있는 철의 여인답게 변했다.

“강한 독일, 하나 된 독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습니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비로소 모든 게 원점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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