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
두다다다다다-!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파리 19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다.
그렇지만 불법체류자와 이민자 갱스터들도 총격전 앞에서는 몸을 사린다.
낯선 동양인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더니 총을 난사하는 소리가 울렸다.
19구의 거친 청년들도 총성이 울린 건물에서 멀리 떨어졌다.
괜한 호기심 때문에 잘못 튕긴 총알에 맞아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빠각!
그 순간, 최치우의 다리가 또 한 명의 관자놀이에 꽂혔다.
원심력을 이용한 선풍각(旋風脚)은 무림에서 알아주는 절기다.
내공이 실린 선풍각을 맞은 사내는 그대로 두개골이 찌그러졌다.
군더더기 없는 즉사.
강철만큼 단단한 두개골을 함몰시킨 최치우가 몸을 돌렸다.
남은 인원은 둘.
최치우는 문을 부수고 난입하자마자 총을 들고 있는 셋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살아남은 두 사람은 총이 없는지 기다란 나이프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Where is your boss?”
최치우는 살기를 흩뿌리며 차갑게 질문을 던졌다.
두 번의 기회는 주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I.S의 비밀 지부에 소속된 핵심 요원들이다.
런던, 파리, 라이프치히 등 유럽 전역에서 수차례의 테러 사고를 직접 일으킨 국제적 전범들이다.
쐐애액-
최치우가 궁신탄영을 펼쳤다.
활처럼 휘어진 몸이 눈 깜짝할 사이에 튀어나갔다.
그는 속도의 힘으로 나이프를 가볍게 쳐내고, 넋이 나간 남자의 목을 후려쳤다.
“커억!”
비명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목이 부러진 남자가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이제 1층의 생존자는 한 명밖에 없다.
최치우는 그를 노려보고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Where is your boss?”
똑같은 질문이다.
180cm가 넘는 거구의 사내가 칼을 떨어트리고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지, 지, 지하에…….”
사내의 손가락이 1층 부엌 뒤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 지하실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는 뜻이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대답을 얻었지만 테러리스트 조직원을 살려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피슉-!
그의 손에서 미스릴 단검이 날아가 사내의 목을 꿰뚫었다.
모든 차원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금속으로 죽였으니 I.S의 조직원에겐 과분한 영광인 셈이다.
슈우욱-
최치우가 힘을 주자 미스릴 단검이 다시 손으로 돌아왔다.
“몰살이다. 빌어먹을 테러리스트들아.”
그는 아프리카에서 레드 엑스를 섬멸할 때와 같은 원칙을 세웠다.
올림푸스를 건드리면 타협 없이 모두 죽인다.
어차피 목격자도 없다.
건물 안에서 벌어진 일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파리 19구에는 변변찮은 CCTV도 없다.
경찰도 한참 지나서야 마지못해 도착할 가능성이 높다.
남들에게는 무조건 피해야 할 우범지대지만, 최치우를 위해 마련된 완벽한 무대였다.
벌컥-
최치우는 부엌에서 비밀 통로를 찾았다.
생각보다 통로 입구는 어설프게 숨겨져 있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조명이 없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도 이럴 때는 함부로 진입하지 않는다.
조명으로 시야를 확보하고, 선발대와 호위조를 엄격하게 나눠서 천천히 들어간다.
그러나 최치우는 달랐다.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계단을 밟아 지하로 내려갔다.
1층에서 총성이 울리고, 다섯 명을 모두 죽일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분 30초 남짓.
그사이에 지하실의 인원이 도망갔을 확률은 낮다.
무엇보다 자존심 높기로는 세계 제일인 I.S의 전사들이 금방 꽁무니를 뺐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최치우가 계단을 거슬러 내려오자마자 연막탄이 터졌다.
펑- 쉬이이이익!
지하실의 인원은 아직 몇 명이 침입했는지 모른다.
설마 최치우 혼자서 1층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거란 상상은 못 할 것이다.
그렇기에 연막탄을 터트려 침입자의 인원을 파악하려는 것 같았다.
“%#&@*(@-!”
곧이어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가 울렸다.
연막 너머에서 단 한 사람의 그림자만 일렁거리는 걸 보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처척- 처처척-
순식간에 지하실 여기저기에서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최치우는 한껏 예민해진 감각으로 적들을 간추렸다.
‘무장 병력 8명, 그리고 맨 끝방에 혼자 남은 1명. 찾았다!’
레이더가 따로 필요 없었다.
최치우는 I.S의 프랑스 비밀 지부를 이끄는 보스를 찾아냈다.
지하실 안쪽에서 보고를 기다리는 남자.
그가 바로 독일의 행동대원을 움직여 라이프치히 테러를 일으킨 주범이다.
철컥!
그사이 차가운 금속성이 최치우의 귓가를 자극했다.
8명의 무장 병력이 발포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윈드 스피어-!”
이번에는 최치우가 먼저 선공을 퍼부었다.
적들이 간을 보는 동안 5서클 마법 윈드 스피어를 캐스팅해 버린 것이다.
피슈우웅- 퍼퍼펑!
바람의 창이 쏘아져 폭탄처럼 터졌다.
좁은 지하실 안에서 사격을 준비하던 I.S 조직원들은 엄청난 에너지 폭발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한 발 더 남았다.’
최치우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그가 마나로 만든 또 다른 바람의 창이 미사일처럼 발사됐다.
“윈드 스피어!”
콰콰콰쾅!
자비는 없었다.
최치우는 5서클의 공격 마법을 두 번이나 펼쳤다.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윈드 스피어 덕분에 연막탄의 장막도 걷혔다.
최치우는 확 트인 시야로 줄줄이 쓰러져 있는 I.S 조직원들을 쳐다봤다.
1층을 합하면 무장 병력 14명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사실 이만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진압을 위해서는 특수부대 30명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최치우는 혼자서 5분 만에 보스를 제외한 전원을 쓸어버린 것이다.
“돈 굳었다.”
그는 지하실 복도를 가로지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만약 I.S 비밀 지부의 저항이 더 격렬했다면 미쓰릴 필드를 쓰려 했었다.
미쓰릴 필드를 사용하면 총을 비롯해 모든 무기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펜타곤에서 개발한 미쓰릴 필드를 던질 필요도 없었다.
하나에 10억이 넘는 미쓰릴 필드를 아꼈으니 흡족할 법도 했다.
저벅저벅.
최치우의 발자국 소리는 I.S 조직원들과 다르게 요란스럽지 않았다.
무게중심이 낮게 깔려 있는 사람의 특징이다.
그러나 지하실 구석방에서 혼자 남은 사람, I.S 비밀 지부의 보스에게는 발자국 소리가 무척 크게 들릴 것이다.
사신(死神)의 걸음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
타타타타!
문이 열리자 즉시 총알 세례가 쏟아졌다.
하지만 미리 예상하고 있던 최치우의 몸은 바닥에 딱 붙어 있었다.
스으윽-
그가 마치 뱀처럼 바닥을 기었다.
애꿎은 총알은 허공을 관통했고, 무섭도록 빠르게 움직인 최치우가 몸을 일으켰다.
콰득!
최치우의 손아귀가 콧수염이 무성한 중년인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엄청난 위압감이 뿜어졌다.
공포와 내공에 질식한 중년인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축 늘어졌다.
“이 정도로 기절하면 곤란한데. 우린 아주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해.”
최치우는 중년인을 짐짝처럼 한쪽 어깨에 짊어졌다.
13명의 I.S 조직원을 죽인 최치우는 인터폴 수배 명단에 오른 거물급 테러리스트를 데리고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경찰은 감감무소식이었고, 생존에 민감한 19구의 주민들은 총성이 울린 건물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정부의 앓는 이를 최치우가 대신 빼준 셈이다.
파리 19구에 나타난 사신은 그렇게 이름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다.
***
프랑스 정부가 대형 뉴스를 터트렸다.
은밀하게 특수부대를 투입해 I.S의 비밀 지부를 일망타진했다고 밝힌 것이다.
진압 과정에서 13명의 조직원을 사살했고, 모두 인터폴에 지명수배 중인 테러리스트였다.
파리 시내에 I.S 조직원들의 지부가 있었다는 사실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그렇지만 성공적으로 비밀 지부를 박살 낸 프랑스 정부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강도 높은 개혁으로 프랑스 국정을 이끌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도 상승했다.
물론 진실은 수면 아래 잠들어 있었다.
MI6의 정보를 받은 최치우가 혈혈단신으로 I.S 프랑스 비밀 지부를 초토화시킨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프랑스 정부는 참혹한 현장을 보고 냉큼 전리품을 집어삼켰을 뿐이다.
MI6와 메르켈 총리도 설마 최치우 혼자 13명을 죽이고 1명의 거물 테러리스트를 데려갔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지금쯤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최치우가 남아공에 있는 헤라클래스를 불러들여 일을 벌였는지, 아니면 대체 무슨 수로 I.S 지부를 몰살시켰는지 궁금해도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 시각, 최치우는 프랑스 지부의 보스인 압둘라 아흐만을 심문하고 있었다.
인터폴의 1급 테러범 압둘라 아흐만은 파리 외곽의 밀실에서 눈을 떴다.
최치우가 파리에 도착해 미리 빌려둔 은밀한 장소다.
“천천히 말해봐. 또박또박, 영어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어두운 밀실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압둘라 아흐만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날고 기는 테러리스트도 인간이다.
상식을 초월한 존재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게 당연하다.
맨몸으로 13명의 조직원을 처단한 사람이 눈앞에 서 있다.
다시 기절하지 않고 정신을 붙잡는 게 용할 지경이었다.
“보, 본부의 지령은 아니었습니다.”
압둘라 아흐만의 발음은 부정확했다.
아랍어와 프랑스어는 유창하지만 영어는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그래도 겁을 잔뜩 먹고 발음을 제대로 내려고 애썼다.
그는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바로 죽는다는 걸 깨달았다.
눈앞에 선 최치우가 자비와는 거리가 먼 인간임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최치우는 수준 낮게 고문 따위를 하지 않았다.
몸에서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운으로 압둘라 아흐만의 정신을 굴복시켰다.
상대가 여러 사람을 죽여본 테러리스트라 더 쉬웠다.
압둘라 아흐만은 죽음의 냄새를 맡을 줄 안다.
그렇기에 최치우의 눈빛만 봐도 심연의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I.S 본부에게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프랑스 지부에서 단독으로 범행을 계획했다고?”
압둘라 아흐만이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남 탓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압둘라 아흐만은 정신 지배를 단단히 당했다.
게다가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거짓말을 금기로 여긴다.
테러를 하다 죽으면 천국에 가지만, 거짓말을 하면 알라의 부름을 받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손을 뻗어 압둘라 아흐만의 목을 잡았다.
더욱 흉폭해진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무림에서 사납기로 악명이 자자한 권왕의 아랑권을 펼치기 직전이다.
이대로 조금만 힘을 주면 압둘라 아흐만의 목을 부러트릴 수 있다.
“으… 으으…….”
겁에 질린 압둘라 아흐만이 게거품을 물었다.
그의 입술 양 옆으로 침 대신 하얀 거품이 올라왔다.
최치우는 압둘라 아흐만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무슨 돈으로 폭탄을 사고 독일까지 운반했지? 유럽 내부의 모든 계좌가 막혔을 텐데, 누가 돈을 줬나!”
“마, 마르코… 슈테겐…….”
드디어 확실한 이름이 나왔다.
최치우가 눈을 번뜩였다.
I.S의 비밀 지부에 자금을 지원한 사람은 중요한 연결 고리다.
그를 잡으면 라이프치히 테러를 지원한 배후 세력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마르코 슈테겐? 그가 누구인지 말해라!”
최치우의 외침은 지상명령처럼 압둘라 아흐만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그는 아랑권의 내공을 절정까지 끌어 올렸다.
쏴아아아아아-!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압둘라 아흐만은 회복하지 못할 내상을 입게 된다.
그만큼 강력한 기운이 그를 사방에서 조였다.
고문을 대비한 훈련을 받는 특수부대 요원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도, 독일… 교통부 장관… 보, 보좌관. 끄흐윽-!”
진실을 밝힌 압둘라 아흐만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 움큼 핏덩이를 토해냈다.
최치우는 그의 목을 잡은 손을 거뒀다.
아랑권의 기운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그보다 짙은 분노가 최치우의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고 있었다.
독일 교통부 장관의 보좌관, 마르코 슈테겐.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라이프치히 테러의 배후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