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74화 (174/243)

# 174

***

파리 테러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런던 테러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세계의 추모를 받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비극적인 테러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SNS를 통해 라이프치히를 위로했다.

희생자는 모두 8명.

중상자를 포함한 부상자는 무려 13명에 이른다.

테러 지점이 소울 스톤 발전소 공사장이었기에 사상자는 모두 현장 인력이었다.

사고를 당한 독일인 기술자와 인부의 가족들은 라이프치히로 달려왔고,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등 대도시에는 정부에서 설치한 추모 장소가 들어섰다.

모처럼 활기로 가득 찼던 라이프치히는 비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이제는 독일도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게 알려진 셈이다.

메르켈 총리는 사고 발생 이후 외국 순방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라이프치히에 비상 상황실을 만들었다.

국가적 재난 사고를 수습하는 메르켈의 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그녀도 일생일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라이프치히 테러가 메르켈의 약점 두 가지를 동시에 건드렸기 때문이다.

테러 이후 난민들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반감이 치솟았다.

메르켈의 난민 수용 정책을 지지하던 국민들도 마음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자살 트럭 테러를 감행한 범인은 ‘지하드’라는 말을 외쳤다고 한다.

지하드는 이슬람에서 성스러운 전쟁을 뜻하는 아랍어다.

게다가 아직 감식이 끝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사체로 발견된 범인은 누가 봐도 중동 출신이었다.

때맞춰 독일 야당들이 메르켈을 압박했다.

메르켈과 EU가 주도하는 난민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범인은 하필이면 소울 스톤 발전소 공사 현장을 덮쳤다.

보통 테러범들은 주목을 받기 쉬운 장소를 노린다.

그렇기에 대도시의 시가지나 극장, 관광 명소를 공격하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소울 스톤 발전소를 짓는 공사 현장은 라이프치히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정교하게 계획을 세우고 발전소 공사장을 노린 게 분명하다.

독일 언론과 외신들은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메르켈의 원전 제로 정책으로 전기세가 올랐고, 이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저소득층인 이민자들과 난민들이다.

그렇기에 원전 제로 정책의 상징으로 떠오른 소울 스톤 발전소 공사장을 테러했다는 것이다.

제법 그럴듯한 해석이었다.

또 공사장은 불과 1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최치우와 메르켈이 직접 참석한 협약식은 라이프치히의 인지도를 일약 베를린급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베를린에 비해 경찰들의 테러 방지 수준은 낮은 편이다.

주목과 관심을 원하는 테러범이 노리기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비상 상황실을 만들고, 유족들을 위로하느라 애쓰는 메르켈도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했다.

최치우 역시 충격적인 소식을 듣자마자 연말 일정을 취소하고 전용기를 움직였다.

원래는 12월 내내 임원진 후보들의 면접을 보며 올림푸스 조직을 정비하려 했다.

그러나 독일의 사고를 넋 놓고 지켜볼 수 없었다.

현장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후속 대처를 논의해야 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테러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울 스톤 발전소, 나아가 올림푸스 전체의 위기였다.

“만에 하나 네오메이슨이 개입한 일이라면… 박살을 내버린다, 기필코.”

최치우는 전용기 좌석에 앉아 조용히 이를 갈았다.

네오메이슨이 어떤 식으로든 도발을 할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8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테러는 최악의 수단이다.

물론 네오메이슨의 짓이라고 단정 지을 근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드러난 증거만 보면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의 자살 테러다.

그러나 네오메이슨은 교묘한 단체다.

그들은 실체를 거의 노출하지 않고 오랜 세월 세계의 기득권을 움켜쥐었다.

자살 테러의 과정 어딘가 네오메이슨의 손길이 닿았을 여지도 충분하다.

쏴아아아아-

전용기 안에서 최치우가 저도 모르게 살기를 흩뿌렸다.

그의 서늘한 기세에 놀란 승무원은 서비스를 물으러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최치우의 분노를 실은 전용기가 대한민국 영공을 벗어나 유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올해 12월도 얌전히 넘어가기는 글렀다.

활화산처럼 이글거리는 최치우의 분노가 독일에서 분출될 것 같았다.

***

최치우의 독일 입국은 비공개 일정이었다.

전용기를 이용하면 해외 출입국 일정을 손쉽게 숨길 수 있다.

공항에서만 조심하면 일반 승객들과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에 도착한 최치우는 직접 차를 몰고 라이프치히로 달려갔다.

수행 직원을 대동할 수 있지만 혼자 움직이는 게 편했다.

어쩌면 스파이처럼 신출귀몰(神出鬼沒)하게 유럽 전역을 누빌지도 모른다.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작정이다.

그때를 대비하면 수행 직원이 없는 게 낫다.

최치우는 테러가 발생한 현장으로 달려가며 입술을 깨물었다.

전용기에서 분노를 삭인다고 애썼는데, 막상 독일에 도착하니 다시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부와아아앙-!

속도 제한이 없는 고속도로 아우토반에서 액셀을 밟자 자동차가 짐승처럼 튀어나갔다.

한국에서 타고 다니는 롤스로이스 레이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레인지로버도 어디 가서 꿀리는 차는 절대 아니다.

최치우의 선택을 받은 레인지로버는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명성답게 아우토반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고속도로가 아닌 오프로드로 진입하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최치우는 산길이나 비포장도로를 달릴 일도 생길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굳이 최상급 SUV인 레인지로버를 골랐다.

과연 그의 예감이 맞을지 두고볼 일이었다.

우웅- 우우웅-

주인을 제대로 만난 레인지로버 계속해서 우렁찬 배기음을 토해냈다.

아우토반을 가로지른 최치우는 시내 도로에 진입해서 속도를 줄였다.

그는 라이프치히 도심을 지나쳐 공사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메르켈 총리의 비상 상황실은 라이프치히 시청에 차려졌다.

그러나 메르켈을 만나기 전에 두 눈으로 사고 현장을 먼저 보고 싶었다.

끼이익!

최치우는 공사장을 저만치 앞둔 곳에 차를 세웠다.

육중한 차체에서 튕겨지듯 재빨리 내린 최치우가 현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당연하게도 독일 경찰이 통제선을 쳐놓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기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하고 현장 사진을 충분히 담아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비상 상황실에서 독일 정부의 대응책을 취재하고 있을 것 같았다.

“Halt-!”

최치우가 통제선 가까이 접근하자 독일 경찰이 손을 뻗었다.

경찰의 굳은 인상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어감 차이인지 Stop을 뜻하는 독일어 Halt(할트)가 유독 딱딱하게 들렸다.

최치우는 얼굴을 들어 경찰을 똑바로 바라봤다.

“흡!”

로봇 같은 독일 경찰이 깜짝 놀라 숨을 급히 들이켰다.

최치우의 얼굴은 전 세계에서 통하는 보증수표다.

서양인들은 보통 동양인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단순히 유명한 CEO일뿐 아니라 올림픽에서 100m 세계신기록을 세운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영어 할 수 있죠?”

“Sicher! 아, 할 수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독일어로 대답한 경찰이 얼른 영어를 썼다.

최치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용건을 말했다.

“메르켈 총리님과 연락을 했습니다. 비상 상황실로 가기 전 현장을 보겠다고.”

“알겠습니다!”

독일 경찰이 큰소리로 대답하고 통제선을 치워줬다.

그의 목소리 때문에 다른 경찰들도 최치우를 쳐다봤다.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난 현장이기에 사람들의 표정도, 분위기도 무거웠다.

“현장 감식반은 다녀갔습니까?”

최치우가 통제선을 열어준 경찰에게 질문을 던졌다.

경찰은 마치 상관을 대하듯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대답했다.

“네. 하지만 현장은 구조 작업 이후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감식반도 DNA 채취를 위한 작업을 제외하면 현장을 크게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치우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했다.

공사장 입구의 광경은 처참했다.

자살 테러에 쓰인 트럭의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바닥을 물들인 검붉은 혈흔도 곳곳에 보였다.

열흘 넘게 기초공사로 다져놓은 시설물은 하나도 못 쓰게 됐다.

사건 조사를 끝내고, 현장을 복구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내년 여름까지 소울 스톤 발전소를 준공하는 일정은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100조 원을 뚫을 기세로 맹렬하게 급등하던 올림푸스 주가도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가가 하락세로 접어들지는 않았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비전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12월 31일까지 합산 시총 100조 원을 넘겠다는 최치우의 목표는 아슬아슬해졌다.

남은 2주 동안 독일 정부가 믿음직스러운 테러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일정과 주가를 떠나서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올림푸스의 일을 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최치우는 속으로 용암보다 뜨거운 노기(怒氣)를 다스리고 있었다.

자살 테러로 희생당한 사람들은 올림푸스를 위해 공사장에서 땀방울을 흘렸다.

직원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올림푸스라는 거대한 성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을 죽이고 다치게 만든 것은 올림푸스를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최치우는 아프리카에서 레드 엑스를 몰살시켰던 때를 떠올렸다.

배후가 누구든 그 끝은 레드 엑스와 같을 것이다.

‘프로의 솜씨는 아니다. 테러에 쓰인 폭탄 또한 최신 장비와는 거리가 멀고. 네오메이슨이 직접 나섰다면 발전소가 준공되기 직전, 또는 소울 스톤이 라이프치히에 도착한 다음을 노렸겠지.’

최치우는 현장에서 꽤 많은 정보를 얻었다.

테러 또한 전쟁의 일부분이다.

피가 튀기는 진짜 전투, 제국을 멸망시키는 전쟁에 관해선 그 누구도 최치우보다 경험이 많을 수 없다.

‘피해자들의 핏방울이 흐른 흔적을 보면… 폭발로 인한 즉사보다는 잔해에 깔려서 죽은 사람이 더 많겠군. 이곳이 시내였다면 구조가 빨라서 더 많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두 눈으로 현장 구석구석을 살피니 안타까운 마음이 커졌다.

8명의 사망자들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상황 같았다.

만약 공사 현장에 응급 인력이 상주했다면 피해 규모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최치우는 말없이 통제선 밖으로 빠져나왔다.

안면을 익힌 경찰에게 인사를 해주는 것도 잊었다.

당장 비상 상황실로 달려가 독일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조목조목 따질 작정이었다.

메르켈이 만족스러운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 최치우가 나설 수밖에 없다.

파트너인 독일 정부의 체면이 중요한 게 아니다.

최치우는 성난 얼굴로 레인지로버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의 마음을 아는 듯 차에서 유독 거친 엔진음이 올라왔다.

라이프치히 시청으로 이동하는 최치우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뿜어질 것 같았다.

***

저벅저벅-

어느 한 명도 최치우를 막아서지 못했다.

최치우는 굳게 닫혀있던 비상 상황실의 문짝을 부숴 버릴 기세였다.

쾅!

거칠게 문을 연 최치우가 눈을 사납게 떴다.

비상 상황실에서 메르켈 총리와 부처 장관들, 라이프치히 시장과 소방 책임자가 모여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최치우의 갑작스러운, 그리고 무례한 등장이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오직 한 사람, 메르켈 총리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총리님. 지금 당장 독대를 해야겠습니다.”

최치우는 부탁을 하지 않고 다소 강압적으로 말했다.

독일의 총리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최치우가 유일할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장관들과 라이프치히 시장이 대번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메르켈이 한발 빨랐다.

“올림푸스는 이번 테러 사고의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온 최 대표님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총리가 나서자 장관들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곧이어 비상 상황실 안에 최치우와 메르켈만 남게 됐다.

“대표님, 먼저 위로를…….”

“제가 군부대를 동원해서라도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최치우는 메르켈의 말을 잘랐다.

테러가 일어난 게 독일 정부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최치우의 말만 따랐어도 이렇게 큰 사고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메르켈도 고개를 끄덕이며 실책을 인정했다.

“국방부와 논의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일찍 테러가 발생할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방심한 내 탓입니다.”

“배후는 찾았습니까?”

“범인의 DNA 감식 결과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난민은 아니고, 중동의 이민자 2세였습니다. 현재로서는 I.S의 영향을 받은 행동대원으로 추정됩니다.”

I.S는 악명 높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다.

중동 출신의 자살 테러라면 I.S가 배후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최치우는 만족할 수 없었다.

“추정으로는 부족합니다. 3일 드리겠습니다. 독일 정부가 범인의 배후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올림푸스가 움직일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정보력과 행동력으로 I.S든 네오메이슨이든 배후로 의심되는 연결 고리를 찾아내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총리님.”

최치우는 한 글자, 한 글자를 힘주어 말했다.

그의 결연한 의지가 메르켈에게 충분히 전달됐다.

올림푸스의 최치우라면 독일 땅에서도 자기가 뱉은 말을 반드시 지킬 것 같았다.

상식이나 국제법 따위로 최치우를 절대 막을 수 없다.

본능적으로 최치우의 위험성을 깨달은 메르켈 총리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벌떼처럼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도 느끼지 않았던 감정을 최치우가 선사해 줬다.

최치우와 올림푸스는 독일 정부의 동맹이지만, 누구보다 까다로운 강적이기도 하다.

3일의 시간, 메르켈 총리는 분명한 답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제 불가능한 최치우라는 괴물이 독일과 유럽을 헤집고 다닐 것이다.

심판을 부르는 운명의 시곗바늘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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