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심판의 날>
라이프치히에서 협약식을 마친 최치우는 메르켈과 식사를 하며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비공개 만찬에는 임동혁과 브라이언도 참석했다.
독일 정부에서도 경제 에너지 장관과 교통부 장관이 함께했다.
베를린 티어가르텐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이 다시 모인 것이다.
하지만 대화 주제는 두 개로 나눠졌다.
브라이언과 임동혁, 그리고 독일 정부의 두 장관은 현안(懸案)을 논의했다.
핵심 주제는 퓨처 모터스의 독일 진출이었다.
전기차 보조금 50%를 받게 된 퓨처 모터스가 어떻게 독일 시장으로 진출할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브라이언은 퓨처 모터스의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쾰른 등 주요 도시에 체험관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다음 온라인 전시장을 열고,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
여러모로 독일 교통부와 협의해야 될 부분이 많았다.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벤츠와 BMW는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퓨처 모터스가 독일 자동차 시장을 흐리는 악당은 아니다.
모든 일은 경쟁이 있어야 발전 속도가 빨라지는 법이다.
독일 교통부는 퓨처 모터스 덕분에 전기차 충전소 정책을 앞당겨 실시하게 됐다.
엉겁결에 독일이 유럽의 전기차 중심국으로 발돋움하게 될지도 모른다.
퓨처 모터스라는 외부 충격은 독일 정부와 자동차 기업들에게 강한 자극제가 되고 있었다.
교통부 장관은 브라이언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점점 설득당하는 눈치였다.
임동혁과 경제 에너지 장관도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들며 복잡한 현안을 푸는 데 일조했다.
반면 독립된 테이블에 떨어져 앉은 최치우와 메르켈의 대화 주제는 전혀 달랐다.
두 사람은 네오메이슨에 대해 심도 깊은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이 라이프치히의 발전소를 공격 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까?”
“한국보다는 독일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총리님.”
“그건…….”
냉철한 메르켈이 말을 잇지 못했다.
독일은 한국이 롤 모델로 삼을 만큼 뛰어난 선진국이다.
그렇지만 치안(治安)에서는 한국을 능가할 나라가 전 세계에 몇 없다.
최치우는 메르켈에게 확실히 경각심을 심어줬다.
“한국에서 총기를 쓰려면 엄청나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반면 독일과 유럽은 어떻습니까? 미국보단 낫겠지만, 총기와 폭탄을 이용한 테러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와 터키, 영국에 비하면 우리 독일의 치안과 총기 규제는 무척 준수한 편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총리님. 저는 독일의 치안을 비판하기 위해 말을 꺼낸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치히의 소울 스톤 발전소가 네오메이슨의 타깃이 될 확률이 높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최치우는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올림푸스와 독일 정부는 전 세계 기자들 앞에서 파트너십을 천명했다.
앞으로 퓨처 모터스의 원활한 진출과 소울 스톤 발전소 설립을 위해 손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미리 지적할 필요가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최치우는 메르켈 총리를 바라보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자고 말했다.
“경찰 병력으로는 부족합니다. 발전소가 지어지면 독일군이 상주하며 경호해야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군부대를 배치하는 것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대표님.”
“사고가 생기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네오메이슨이 소울 스톤을 탈취하기라도 한다면…….”
최치우는 불길한 말을 끝까지 맺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태의 심각성은 제대로 전달됐다.
메르켈 총리는 신개념 대체 에너지인 소울 스톤 발전소 유치로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만약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 한껏 올라간 지지율은 역풍이 되어 메르켈을 덮칠 것이다.
이윽고 메르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 대표님이 언급한 부분은 정부에서 중요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도 발전소 설계 과정에서 보안 부분을 특별히 강화하겠습니다.”
최치우의 걱정은 괜한 게 아니었다.
소울 스톤 발전소의 해외 건립을 추진할 때부터 올림푸스 내부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점이다.
‘발전소가 습격을 당해도 소울 스톤을 빼낼 수 없도록… 특수한 장치를 마련해야겠군.’
최치우도 메르켈과 대화를 나누며 새삼 보안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한국과 독일은 다르다.
단순한 치안의 문제만은 아니다.
네오메이슨은 철저하게 백인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그들은 백인 중심, 서양 중심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인종주의자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아시아나 아프리카, 중동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끝 발이 조금은 떨어진다.
그러나 유럽은 네오메이슨의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이 네오메이슨이 암약하는 주 무대가 됐지만, 원조는 유럽이다.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의 뿌리도 유럽이었다.
심지어 일루미나티는 독일에서 처음 발호했고, 프리메이슨은 영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네오메이슨에게 있어 독일은 자신들의 터전이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안 그래도 그들은 메르켈의 원전 제로 정책을 방해하려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네오메이슨의 숙적으로 급부상한 올림푸스의 소울 스톤 발전소가 지어지고 멀쩡히 돌아가는 모습을 그냥 두고볼 리 없다.
최치우는 메르켈에게도 신신당부를 했지만, 올림푸스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소울 스톤 발전소가 습격을 당하면 모든 책임은 독일 정부가 지게 돼 있다.
기술적 요인으로 인한 사고는 올림푸스의 책임,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사고는 독일 정부의 책임이라고 계약서에 못을 박았다.
하지만 모든 것 독일 정부 탓으로 미루고 뒷짐을 질 수는 없다.
소울 스톤은 인류의 자산이고, 최치우가 책임져야 할 보물이다.
‘차라리 잘됐다. 이참에 독일에서 네오메이슨과 더 화끈하게 붙고, 놈들의 추악한 실체에 접근하면 되니까.’
최치우는 식탁 아래에서 한쪽 주먹을 세게 쥐었다.
이제껏 밝힌 네오메이슨의 실체는 에릭 한센뿐이다.
그러나 에릭 한센으로는 최치우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게 여러 번 증명됐다.
어쩌면 독일에서 올림푸스와 네오메이슨의 전면전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최치우는 메르켈과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더 나누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싸움은 언제나 최치우의 영혼 깊숙이 새겨진 본능을 자극한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불굴의 호승심이 오랜만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
1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기분이었다.
보통 사람도 12월이 되면 내가 1년 동안 뭘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특별히 한 게 없어도 훌쩍 흘러 버린 시간을 아쉬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치우는 1년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빠르게만 느껴졌다.
사실 25살의 나이로 올림픽 100m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딴 것만 해도 역사적인 업적이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최치우에게 있어 여름날의 추억일 뿐이었다.
그는 올해 한 명의 대선 후보 정치인과 또 한 명의 재벌 2세를 감옥에 넣었다.
구속 수감 된 유경민과 홍문기는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고, 법조인들의 전망에 의하면 실형을 받을 확률이 무척 높은 상황이었다.
GM의 공장을 인수하고, 퓨처 모터스의 첫 번째 럭셔리 전기차 제우스 S를 성공적으로 출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
제우스 S는 어느새 제주도를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됐다.
한국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들 중에서 제우스 S를 타보고 싶어 제주도를 방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정도였다.
1차 물량 1000대가 제주도에 풀린 이후 나머지 물량은 한국과 미국에 순차적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주요 도시에 체험관을 두는 대신 계약과 결제는 100% 온라인으로 실시한 퓨처 모터스의 도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대로 가면 기존 자동차 회사의 영업 방식도 싹 바뀌게 될지 모른다.
굳이 지역마다 일일이 대리점을 열고, 수많은 영업사원들을 고용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혁신은 언제나 파괴를 동반한다.
과거의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혁신이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우버의 등장으로 택시 업계가 몰락하고, 에어비엔비는 호텔 업계를 위기에 빠트렸다.
퓨처 모터스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 자동차 업계의 모든 부분을 파괴하며 혁신을 선도하고 있었다.
최치우는 쉴 새 없이 달려온 올해를 돌아보며 결재 서류를 정리했다.
그의 사인을 기다리는 서류는 매달 산더미처럼 쌓인다.
실무 결재의 경우 대부분 임동혁이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의 규모와 사업 영역이 워낙 커지다 보니 반드시 최치우의 사인을 받아야 하는 서류도 점점 늘어났다.
“이제는 직원이 아니라 임원 레벨도 더 늘려야겠어.”
최치우는 꼼꼼히 서류를 읽고 사인을 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퓨처 모터스에는 CTO 브라이언 머스크 휘하에 여러 명의 임원진이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원래 있던 회사를 인수한 것이기에 기존 임원진과 호흡도 잘 맞았다.
그러나 올림푸스의 임원은 CFO 임동혁과 남아공본부장 이시환 둘밖에 없다.
이시환은 남아공 사업을 총괄하고 있기에 국내 업무에는 힘을 보태지 못한다.
결국 최치우와 임동혁, 두 사람이 올림푸스 본사의 업무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김도현 교수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지만 회사 내부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최치우는 새로운 임원진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승수 선배랑 김지연 팀장을 임원 레벨로 올리고, 외부에서 조직 전문가도 스카웃해야겠다.”
올림푸스에서 임원을 뽑는다는 소식이 퍼지면 세계적인 스페셜리스트들이 줄을 설 것이다.
원래 진짜 전문가들은 임원 레벨에 포진해 있다.
지난 공채에서는 신입사원과 경력직 사원을 뽑았기에 외국인이 지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임원급 채용에서는 외국인들이 대거 등장할지 모른다.
올림푸스의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국내용이 아닌 국제적 인재여야만 했다.
“그건 그렇고, 광명의 에너지 생산은 안정적이군. 독일에서도 공사를 시작했고……. 내년 여름이면 준공이 되겠다.”
라이프치히의 발전소 공사는 광명보다 기간이 단축될 전망이었다.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은 초고강도 레이저 없이 계속 순수한 전력을 뿜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발전소 내부 설비가 간소화된다.
그만큼 보안 시스템에 투자를 더 해도 공사 기간은 줄 수밖에 없었다.
스슥- 스스슥-
최치우는 친필 사인을 거듭하며 독일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외국에 발전소를 짓는 것이라 광명 때보다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내년 여름까지 공사가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
12월의 독일 날씨는 매섭도록 차갑다.
비와 눈도 자주 내리고, 때로는 우박이 떨어지기도 한다.
특히 구 동독 지역의 경우 궂은 겨울 날씨로 악명이 높다.
오후 4시를 넘기면 곧장 해가 지면서 사방이 캄캄해지는 것은 덤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독일의 겨울은 공사를 하기에 좋은 계절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소울 스톤 발전소를 짓고 싶은 게 독일 정부와 국민들의 마음이었다.
경제 에너지 장관은 여름까지 발전소를 준공하겠다고 공언했다.
발전소 내부의 구체적 설계는 올림푸스 몫이지만, 기초 공사와 현장 컨트롤은 독일 정부의 소관이다.
그렇기에 비수기인 겨울에도 라이프치히 근교의 공터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휴-! 곧 끝나겠구만.”
“끝나고 소시지에 맥주 한잔?”
“당연하지!”
작업에 열중하던 인부들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어디나 공사장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고된 일을 마치고 술 한잔으로 피로를 푸는 법이다.
라이프치히 현장에 고용된 독일 기술자들도 퇴근만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철에는 오후 4시 이후로 공사를 할 수 없기에 작업 강도가 더 높다.
여름보다 2시간 일찍 현장에서 철수하는 만큼 작업이 힘겨울 수밖에 없다.
두두두- 두두두두-
그때였다.
슬며시 찾아온 어슴푸레한 공기 너머로 소형 트럭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낡아 보이는 트럭의 달달거리는 소리가 몇몇 기술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저거 뭐지? 우리 현장에 저런 차도 있었나?”
“아닌 거 같은데……. 길을 잘못 든 건… 어?”
“속도를 안 줄이는데? 어어어!”
공사장 입구 쪽 기술자들이 소리를 질렀다.
언덕 너머에서 달려온 트럭이 한층 빠른 속도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지하드!”
운전석에 앉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 아랍어로 절규하듯 외침을 터트렸다.
곧이어 트럭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사장 입구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콰아아앙-!
불꽃이 터지며 폭발의 여파가 입구의 시설물을 폭삭 무너트렸다.
단순한 자동차 사고가 아니다.
트럭 뒤쪽에 실린 폭탄이 터지면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쾅! 콰콰쾅!
퇴근 후 맥주 한잔을 기다리던 공사장 인부와 기술자들도 굉음에 휩쓸렸다.
소울 스톤 발전소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도시, 라이프치히에 테러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