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72화 (172/243)

# 172

***

최치우가 보낸 메일은 일종의 친서(親書)였다.

메르켈도 그에 맞춰 직접 답신을 보내왔다.

비록 암호화된 이메일이지만, 서로 예를 갖춰 친서를 주고받은 셈이다.

베를린에서의 협상 이후 올림푸스와 독일 정부를 이끄는 두 사람은 조금씩 신뢰를 쌓고 있었다.

물론 최치우와 메르켈의 목표는 다르다.

최치우는 올림푸스를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세상의 중심을 서양이 아닌 동양과 제3세계로 옮기려 한다.

그야말로 역사의 축을 바꾸는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메르켈은 독일 중심의 EU 체제를 공고히 다지고, 국제사회에서 오래오래 지도력을 인정받는 것이 목표다.

목표가 다르기에 손을 잡는 게 수월했다.

만약 하나뿐인 왕좌를 같이 노린다면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치우가 앉으려는 왕좌와 메르킬의 왕좌는 서로 다른 것이었다.

대신 두 사람은 공통의 적을 두고 있다.

메르켈은 네오메이슨에게 조카를 잃었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다.

유럽의 네오메이슨은 원전 마피아, 난민들을 거부하는 인종주의자 등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 메르켈의 독일을 위협한다.

최치우도 네오메이슨과 여러 번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단순한 표현법이 아니라 실제로 피가 튀었다.

헤라클래스 대원의 희생 됐고, 그 대가로 네오메이슨의 사주를 받은 게릴라 반군 레드 엑스를 몰살시켰다.

공통의 적을 가지면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독일 정부와의 프로젝트가 소울 스톤 발전소 하나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라이프치히는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메르켈도 답장을 보내 직접 협약식에 참석하겠다고 밝힌 것 같았다.

독일 정부와 올림푸스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장기적 파트너십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최치우도, 메르켈도 각자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약속의 장소, 라이프치히.

그곳에서 올림푸스는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한다.

최치우는 11월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

최치우와 임동혁이 독일로 가는 전용기에 탑승했다.

실리콘밸리를 지키고 있는 퓨처 모터스의 브라이언도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두 기업의 오너이자 CEO인 최치우, 그리고 올림푸스의 최고 재무 책임자인 CFO 임동혁, 퓨처 모터스의 최고 기술 책임자인 CTO 브라이언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그 자체로 기자들의 관심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림푸스 홍보팀에서는 일주일 전, 폭탄 같은 보도 자료를 전 세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두 번째 소울 스톤 발전소를 독일 라이프치히에 건설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세계 최초의 소울 스톤 발전소가 광명에서 어마어마한 효율성과 친환경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기에 올림푸스가 과연 어디에 두 번째 발전소를 지을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많은 기자들은 미국이나 중국을 점쳤었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초강대국이자 G2인 미중(美中)이 소울 스톤 발전소를 유치하리라 예상 됐었다.

그러나 두 번째 소울 스톤의 행선지는 독일이었다.

보도자료가 나간 직후 각 국 언론사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취재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부랴부랴 출장 신청서를 접수했고, 독일 특파원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어떻게든 라이프치히 현장에서 역사적 순간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기사도 나왔다.

이왕이면 한국에 발전소를 더 지어주길 바라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여론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미미한 소수의견이었다.

올림푸스가 독일 정부로부터 받아낸 협상 조건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IMF 이후로 외화를 벌어오는 걸 무척 중시한다.

1년에 1조 5천억 원, 10년 동안 무려 15조 원의 외화를 벌어오게 된 올림푸스를 안 좋게 볼 리 없다.

그러고 보면 광명의 첫 번째 소울 스톤 발전소는 거저 지어준 셈이다.

20년의 운영권과 이권을 보장받았지만, 독일 정부가 내세운 조건이 워낙 파격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내 유치를 아쉬워하기보다 올림푸스가 외화를 벌어들이고, 국위선양 하는 것을 칭찬하는 분위기였다.

최치우가 비행기를 타기 전 일주일 동안 무수히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세상의 시선이 라이프치히를 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치우는 자신이 가는 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더구나 라이프치히에서 올림푸스와 독일 정부는 보도자료에 담지 않은 추가 조약을 발표 할 예정이다.

“그 소식까지 알려지고 나면… 정말 올해 안에 우리 시총이 100조가 넘을지 모르겠습니다.”

임동혁이 전용기에 앉아 입을 열었다.

최치우는 승무원이 따라준 위스키를 마시며 대답했다.

“내가 말했잖아요. 해가 바뀌기 전에 100조 원을 이룰 거라고.”

“독일에서 제안이 올 걸 예상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예언자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예상해요.”

“그럼 무슨 수로…….”

“독일 정부와 계약을 안 했으면 다른 길이 열렸겠죠.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표를 세우면 무조건, 반드시 이룹니다. 내가 언제 실패한 적 있어요?”

최치우는 당연하다는 듯 자신있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결코 쉽게 하기 힘든 말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

올림푸스를 세운 이후 최치우의 행보가 모든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임동혁은 혀를 내두르며 그의 배포를 인정했다.

“하긴, 대표님이라면 무슨 수를 써도 목표를 이룰 사람입니다. 공항에 오기 전 우리 시총이 85조 선을 뚫은 것 같던데, 1달이면 100조는 넘고도 남겠습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그냥 믿으면 됩니다.”

최치우는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말했다.

하지만 사이비 교주와는 다르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이사님, 안전벨트 잘 잡아요. 앞으로 더 빠르고 높이 날 테니까.”

최치우가 피식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임동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농담을 진지하게 받았다.

“로켓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습니다.”

한때 재계의 망나니로 불렸던 임동혁의 진심이 느껴졌다.

짧지만 굵은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 위로 높이 떠오른 전용기처럼 올림푸스도 계속해서 고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

라이프치히는 구동독 지역의 중심지이고, 여전히 다양한 제조업 공장이 들어선 대도시다.

그렇지만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쾰른, 뮌헨처럼 독일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는 아니다.

관광지로서 명성도 여타의 도시들에 비해 밀리는 감이 있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득시글거릴 일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라이프치히 시내 호텔에 빈방이 없을 정도로 외지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다.

그들은 정작 시내 관광을 하지도 않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라이프치히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근교로 이동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조업 공장이 밀집된 지역 근처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시내 호텔을 가득 채운 인파는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기자들이었다.

올림푸스와 독일 정부의 협약식 덕분에 라이프치히는 국제 행사를 유치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었다.

호텔 주인들은 신이 났고, 식당과 카페도 때 아닌 특수를 누렸다.

외지인들이 많이 몰리면 도시에 새로운 활기가 감돌기 마련이다.

라이프치히라는 다소 낯선 도시 이름도 구글 검색 순위 상위권에 노출됐다.

최치우 한 사람이 일으킨 경제 효과가 도시의 분위기를 바꾼 셈이다.

독일 동부의 도시까지 영향을 끼치는 국제적 거물로 자리매김한 최치우는 메르켈 총리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메르켈은 독일의 총리이자 유럽 연합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맹주다.

최치우는 공식행사에서 그런 메르켈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동등한 대우를 받을 정도로 높아진 위상을 체감했다.

찰칵- 파팟!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찍기 위해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따금 귓속말을 주고받는 최치우와 메르켈의 모습은 내일 신문 1면을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올림푸스의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슈다.

독일과 한국 신문 1면은 당연하고,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의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할 게 분명했다.

짝짝짝짝짝-!

그때 청중들의 박수 소리가 유독 커졌다.

메르켈 총리가 단상에 올라 소감을 밝힐 차례가 된 것이다.

메르켈은 협약식을 보기 위해 모인 라이프치히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끊이지 않는 박수 소리를 레드 카펫 삼아 단상에 오른 메르켈이 입을 열었다.

“우리 독일은 오늘 위대한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자랑스러운 국민 여러분은 원자력 없이도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울 스톤 발전소를 유치하며 더욱 힘을 낼 수 있게 됐습니다. 후손들을 생각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독일, 그런 독일을 위해서 변화하고 혁신하겠습니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함께 갑시다. 감사합니다.”

메르켈의 축사는 강렬했다.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청중들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짝짝짝짝짝-!

다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축사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소울 스톤 발전소를 유치하면서 구동독 지역의 메르켈 지지율이 급등했다.

단순히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는 언제나 정치와 연결 돼 있다.

구동독 지역 사람들에게 소울 스톤 발전소는 엄청난 선물이다.

메르켈 정부가 자신들을 신경 쓰고 배려한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여겨졌다.

곧이어 최치우가 메르켈 다음으로 단상에 섰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가 느껴졌다.

협약식에 참석한 기자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기자들은 메르켈보다 최치우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이 낳은 슈퍼스타 CEO 최치우는 종종 깜짝 발언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다.

메르켈은 국가 지도자답게 잘 정리된 축사를 마쳤다.

하지만 최치우는 훨씬 재밌는 내용을 말해줄 가능성이 높다.

“먼저 위대한 결단을 내린 메르켈 총리님께 한 번 더 박수를 드립니다.”

최치우는 능숙하게 좌중을 휘어잡았다.

듣는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가 작고한 이후 최치우는 세계에서 PT를 제일 잘하는 CEO로 손꼽히고 있다.

그렇기에 오랜 정치 경력을 자랑하는 메르켈보다 더 여유로워 보였다.

“두 번째 소울 스톤 발전소를 독일에 짓게 돼서 영광입니다. 원전 제로라는 엄청난 도전에 힘이 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아시는 것처럼 올림푸스는 독일 정부로부터 많은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부지와 건설비, 그리고 유지비와 보안 책임까지. 그런데도 10년 동안 100억 유로를 받는 조건을 불편하게 생각 할 독일 국민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확실히 공언하겠습니다. 라이프치히 발전소에 투입될 소울 스톤은 대한민국 광명의 소울 스톤보다 더 강력합니다. 광명보다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치우가 자기 입으로 새로운 소울 스톤의 강력함을 밝혔기 때문이다.

소울 스톤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는 신비한 물질이다.

그래서 최치우의 한마디, 한마디가 새로운 정보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우리 올림푸스는 소울 스톤 발전소만 짓고 빠지는 게 아닙니다. 독일 정부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맺기로 했습니다. 내년부터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 제우스 S는 독일에서 보조금 50% 혜택을 받습니다. 외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독일의 전기차 보조금을 받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라이프치히 주민들의 눈도 커졌다.

독일이 자랑하는 벤츠와 BMW의 전기차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들이 내놓는 멋진 일반 차에 비하면 전기차의 퀄리티는 상당히 떨어진다.

하지만 제우스 S는 다르다.

놀라운 성능과 럭셔리한 디자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바로 그 제우스 S를 사면 독일 정부의 보조금을 받게 된 것이다.

한층 많은 독일 국민들이 제우스 S를 구입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이 결정의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벤츠와 BMW, 아우디 폭스바겐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까딱하면 퓨처 모터스에게 유럽의 전기차 패권을 모조리 빼앗기게 생겼다.

독일 정부의 결단으로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기술 개발에 기존 계획보다 많은 돈을 투자하게 될 것 같았다.

최치우는 그저 퓨처 모터스의 독일 진출만 성사시킨 게 아니다.

시대의 패러다임을 자연스레 바꾸고 있었다.

훗날 역사는 최치우가 전기차 시대의 개막을 앞당겼다고 기록 할 것이다.

그의 행보는 이제 인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최치우는 환호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올림푸스가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진군한다고 선언했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세상을 바꾸는 회사입니다. 우리는 독일이 더 혁신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보수적인 제조업의 나라, 독일.

유럽의 중심을 자처하는 그곳에 최치우가 일으킨 파도가 치고 있었다.

독일이 바뀌면 유럽이 바뀐다.

최치우는 독일을 감동시키고, 그것을 발판삼아 유럽을 통째로 집어삼킬 작정이었다.

11월의 어느 날, 올림푸스는 드디어 유럽 중심부에 깃발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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