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71화 (171/243)

# 171

<동맹>

메르켈 총리가 장관 두 명에게 양해를 구했다.

최치우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독일의 경제 에너지 장관과 교통부 장관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국제 사회의 거물이다.

단순히 유럽에서만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입안하는 정책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켈은 독대를 원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최치우가 꺼낸 네오메이슨이라는 단어가 메르켈을 자극한 것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철의 여인이 동요하고 있었다.

메르켈의 냉정함은 에릭 한센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에릭 한센은 마치 벰파이어처럼 생기(生氣)가 없는 낯빛을 띄고 있다.

그는 남이 어떤 피해를 입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길 수 있는 잔혹한 심성을 지녔다.

반면 메르켈의 냉정함은 일종의 방어막이다.

거칠고 난잡한 국제정치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독일과 유럽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딱딱한 표정과 말투로 무장하는 것이다.

만약 메르켈이 에릭 한센처럼 소시오패스에 가깝다면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메르켈은 목숨을 걸고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도망쳐 온 난민들을 정착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로인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정치적 위상이 흔들렸지만 난민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만 봐도 메르켈이 얼마나 속 깊은 휴머니스트인지 알 수 있다.

“최 대표님은 네오메이슨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일루미나티가 프리메이슨을 흡수하며 생긴 단체라고 들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세계 질서를 조종하는 것, 그리고 노르웨이 출신의 스타 금융인 에릭 한센을 앞세우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최 대표님 정도의 위치라면 당연한 일인지도.”

최치우는 메리켈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니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적어도 독일 총리가 네오메이슨과 같은 편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크게 안도 할 일이다.

“독일에도 네오메이슨이 암약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누구인지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그들은 내 조카를 죽였습니다.”

메르켈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최치우는 그녀가 왜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네오메이슨과 메르켈은 단순한 정적 관계가 아니었다.

정말 메르켈의 조카가 네오메이슨 때문에 죽었다면, 그들은 불구대천의 원수인 셈이다.

최치우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총리님.”

“이왕 말이 나왔으니. 독일의 네오메이슨은 원자력 발전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원자력 마피아.”

“네?”

“아, 한국에서 원자력 이권을 꽉 잡고 있는 특정 세력을 부르는 말입니다.”

“한국 원자력도 네오메이슨의 손에 넘어갔습니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네오메이슨은 주로 서양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그러나 원자력 발전이 엄청난 이권임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협상할 때 나눴던 이야기처럼 발전소 1기를 짓는 데 들어가는 돈, 그리고 유지비까지 엄청난 액수가 집행됩니다. 그래서 내 조카는, 최 대표님도 알 것 같군요. 시몬 대사의 아들입니다.”

“이런…….”

최치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 만난 시몬 대사는 메르켈의 사촌동생이다.

바로 그 시몬 대사의 아들이 네오메이슨에 의해 살해됐다는 메르켈의 조카인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인연의 실타래가 느껴졌다.

그러나 메르켈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조카아이는 기자였습니다. 원자력 이권을 둘러싼 뒷거래를 취재하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평범한 교통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계획된 사고였고, 그렇게 조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늦었지만 조의를 표합니다, 총리님.”

“그 아이도 하늘에서 보고 있을 겁니다. 이후 난 원자력 제로 정책을 실시했고, 지금까지 어렵게 국민들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그렇기에 소울 스톤 발전소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단순히 라이프치히의 전력을 공급하는 문제가 아니군요.”

“맞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원자력을 대체하는 에너지자원이 있다는 걸 알린다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계속해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최치우는 독일 정부와 메르켈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독일의 실험적인 탈원전 정책 뒤에 숨은 사연도 잊기 힘들 것 같았다.

메르켈은 조카를 죽인 네오메이슨과 원자력 에너지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중이었다.

“어쩌면 올림푸스와 독일은 한배를 탄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치우가 분위기를 바꿨다.

그는 메르켈 총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네오메이슨이라는 세력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생각입니다. 전기차, 소울 스톤 모두 그들의 기득권과 대척점에 있는 사업이죠.”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올림푸스가 독일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받은 만큼 값어치를 하는 게 비즈니스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총리님의 탈원전 정책은 한층 더 굳건해질 겁니다. 라이프치히에 들어설 소울 스톤 발전소 덕분에.”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다.

메르켈은 끝내 웃지 않았지만, 최치우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분명했다.

이로써 올림푸스는 무려 100억 유로에 해당하는 계약을 따냈다.

뿐만 아니라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퓨처 모터스의 독일 진출도 수월하게 됐다.

‘독일 정부, 메르켈 총리와 함께 싸울 수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지.’

미팅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최치우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지만, 세계 곳곳에 반(反)네오메이슨 전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올림푸스.

전통적 제조업 강국이자 유럽의 맹주인 독일.

이렇게만 손을 잡아도 네오메이슨의 팔다리를 자르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최치우는 꾸준히,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진군하고 있었다.

네오메이슨이든 누구든 세계의 패권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잇속을 챙기는 일은 용납 할 수 없다.

25살의 대한민국 청년은 벌써 세계의 질서에 도전하는 중심축이 된 것 같았다.

***

한국에 돌아온 최치우는 독일 정부와의 실무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중요한 쟁점은 하나였다.

전기차 보조금을 얼마나 받느냐는 것이다.

베를린에서 난색을 표했던 교통부 장관은 50% 지원이라는 올림푸스의 협상안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메르켈 총리가 뒤에서 지시를 내렸는지 모른다.

최치우는 심정적으로 메르켈과 한배를 타게 됐다고 생각했다.

조카를 잃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뚝심 있게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메르켈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았다.

최치우와 메르켈은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거물들이다.

그들은 굳이 긴 말을 하지 않고 서로의 눈빛만 봐도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

‘철의 여인.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르지만 믿을 만한 파트너였어.’

최치우는 메르켈을 높이 평가했다.

독일 국민들이 10년 넘게 총리로 지지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네오메이슨의 손길은 너무 넓게 펼쳐진 것 같았다.

독일의 원자력 산업까지 그들이 꽉 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 네오메이슨과 기나긴 전쟁을 하는 사람이 최치우 혼자가 아니었다.

메르켈은 원전 제로라는 도전까지 감행하며 네오메이슨과 싸우고 있었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같은 편을 만난 느낌이다.

메르켈도 한참 어린 최치우를 보고 똑같은 고마움과 안도감을 느꼈을 게 분명하다.

‘그래, 시도해 보자.’

최치우는 불현듯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닥-

올림푸스와 독일 정부가 계약 관계 이상의 동반자가 됐음을 선포하자는 내용이다.

동반자, 파트너, 동맹, 연합.

어떤 표현이든 상관없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올림푸스와 독일의 파트너십을 알리면 된다.

막상 그렇게 해도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다.

협상을 통해 작성한 계약서 내용이 바뀔 일도 없다.

다만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가깝거나 먼 미래에 올림푸스와 독일이 손을 잡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올림푸스는 독일의 높은 신뢰도를 무형의 자산으로 삼게 되고, 독일 정부는 올림푸스의 혁신적인 이미지를 빌리게 된다.

서로 나쁠 게 하나도 없다.

“총리님, 11월에 라이프치히에서 열릴 협약식에 직접 참석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이 1회성 계약이 아닌, 독일과 올림푸스의 장기적인 파트너십의 시작임을 알린다면 더욱 긍정적인 성과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일의 원자력 제로 정책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에게도 확실한 선전포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최치우는 일필휘지로 타이핑한 메일 내용을 입으로 읽어 내렸다.

간략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이 다 담겨 있다.

그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팀장님.”

“네, 대표님.”

최치우가 내선 전화로 홍보팀 김지연 팀장을 연결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방금 작성한 메일을 김지연 팀장에게 전송했다.

“방금 메일 하나 보냈어요. 독일 총리에게 보낼 메일입니다. 영어로 보내도 되는데, 이왕이면 독일어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성의 있어 보이겠죠.”

“바로 번역 지시할게요. 보안 유지 각서 받고 진행하겠습니다.”

“역시. 여러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치우는 만족한 얼굴로 사무실 내선 전화를 내려놓았다.

올림푸스 설립 초기부터 호흡을 맞춘 사람답게 김지연 팀장은 척하면 척이었다.

메르켈 총리에게 보낼 메일 내용이 유출되면 특종 기사가 쏟아질 것이다.

김지연 팀장은 보안이 생명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00조. 꿈이 아니라니까.”

최치우는 세계 증시 그래프를 살펴봤다.

대표실 책상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그중 하나의 모니터에는 세계 주요국 실시간 증시 그래프가 계속 업데이트된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합산 시총이 70조 원을 넘은 게 9월이었다.

아직도 100조 원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시총이 30조나 더 불어나야 한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 주가는 이때까지 비상식적으로 뛰어올랐다.

두 번째 소울 스톤 발전소를 독일에 짓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또 한 번 폭등 러쉬가 일어날 것이다.

퓨처 모터스도 엄청난 호재를 앞두고 있다.

외국 기업 최초로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며 독일에 진출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올림푸스의 시총이 대략 30조 원, 퓨처 모터스가 40조 원으로 서로를 당겨주고 있다.

한 지붕 두 기업의 시가총액은 언제든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최대주주이자 CEO인 최치우는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

그의 개인 자산만 해도 수십조에 달하고 있다.

덕분에 매년 내는 세금 액수도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보통 한국의 대기업 오너들은 세금을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자산만 소유한다.

온갖 꼼수를 동원해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방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속, 증여,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경영 방식도 달랐다.

낼 세금은 다 낸다.

대신 떳떳하게 자산과 지분을 소유하고, 누구의 터치도 받지 않으며 자기만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대한민국 10대 기업 중에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회사가 바로 올림푸스일 것이다.

만약 최치우가 다른 재벌들처럼 켕기는 구석이 있었다면 대통령과 반대 노선을 걷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21세기 기업인답게 깨끗한 경영은 유력 대선 후보인 유경민을 탈탈 털어버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자, 100조!”

최치우가 각오를 다지며 혼잣말을 세게 내뱉었다.

그는 올해 목표를 어영부영 뒤로 미룰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100조를 이루겠다고 했으면 반드시 이룬다.

그게 최치우 스타일이다.

메르켈이 어떤 답장을 보낼지 모르지만, 11월이면 라이프치히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협약식이 열린다.

징기스칸이 몽골 기마부대를 이끌고 서양을 위협했다면, 최치우는 새로운 기술과 대체 에너지로 서양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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