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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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당당하게 세계 3위를 차지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신화를 뛰어넘은 것이다.
당초 최치우가 노렸던 종합 4위를 상회하는 준수한 결과였다.
축구 대표팀이 연장전 골든골로 영국을 꺾고 기적적인 금메달을 따면서 아슬아슬하게 3위를 탈환했다.
현재 시점에서 올림픽 종합 3위는 2002년 월드컵 4강보다, 88년 서울 올림픽 4위보다 훨씬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2000년대 이후 올림픽 5강은 틀에 박힌 듯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압도적 인구를 자랑하는 미국과 중국이 1위, 2위를 독식한다.
이후 독일과 러시아, 영국이 엎치락뒤치락 나머지 순위를 차지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올림픽 5강은 출전 선수단 규모부터 다른 국가들과 다르다.
그렇기에 나머지 국가들은 6위만 차지해도 엄청나게 선전한 셈이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에서는 5강 공식이 깨졌다.
미국과 중국 바로 다음으로 대한민국 태극기가 올라간 것이다.
대한민국 뒤로 독일이 4위, 러시아가 5위, 영국이 6위를 차지했다.
전통적인 라이벌 일본은 11위에 머무르며 자존심을 구겼다.
한국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됐고, 대통령이 직접 선수단을 포상할 계획이었다.
퇴임을 앞둔 유영조 대통령은 올림픽 덕분에 함박웃음을 짓게 됐다.
국가 분위기가 활짝 피면서 내수 경제도 살아나고,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최치우는 여당 후보인 유경민을 몰락시키며 유영조 대통령을 궁지에 몰았었다.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갈라선 사이가 됐고, 퇴임 이후 만나서 술 한 잔을 나누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올림픽을 통해 유영조 대통령에게 크나큰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최치우가 딴 금메달은 1개지만, 축구 대표팀의 금메달과 함께 가장 임팩트가 컸다.
100m 달리기에서 동양인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과다.
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금메달리스트들이 수상 소감에서 최치우를 언급했다.
축구 대표팀의 주장 기천수도 최치우의 조언 덕분에 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유도의 마형석이 금메달을 따고 최치우에게 큰절을 한 것은 외신들도 특종으로 다뤘다.
국민 비호감에서 탈피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수영선수 박지한도 최치우를 재기의 1등 공신으로 꼽았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종합 3위라는 업적, 그 중심에 최치우가 있음을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는 선수단보다 하루 일찍 귀국했다.
인천공항에서 성대하게 펼쳐질 선수단 환영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 위해서다.
만약 최치우가 선수단과 함께 귀국하면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올림픽에서 고생한 선수들에게 관심이 돌아가도록 먼저 배려를 해준 것이다.
환영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최치우를 향한 찬사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또 그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축제는 끝났어.’
올림픽이라는 청춘의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했으니 본업을 챙겨야 한다.
다행히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최치우의 공백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올림픽에서 최치우의 인기가 높아지며 주가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원래 주식은 상식적인 근거로만 오르거나 내리지 않는다.
기업의 매출과 시장성도 중요하지만, 오너 개인의 인기가 주가에 끼치는 영향도 막대하다.
더구나 최치우는 올림픽을 통해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그의 병역은 올림푸스의 가장 큰 오너 리스크였다.
만약 최치우가 2년 가까이 자리를 비우면 올림푸스는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퓨처 모터스는 브라이언이 수습할 수 있지만, 올림푸스 본사의 오너 의존도는 어느 회사보다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최치우의 장기 부재를 걱정할 필요가 사라졌다.
축제의 끝자락에서 최치우는 다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울 스톤 발전소 준공식과 함께 올림푸스의 8월은 뜨겁게 마무리될 것이다.
남몰래 하루 일찍 귀국한 최치우는 올림픽 성과에 취하지 않았다.
스포츠 역사를 바꿨지만, 그 정도로 희희낙락하기에는 최치우의 꿈은 훨씬 더 크다.
한여름의 태양이 기승을 부리는 계절, 최치우는 또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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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스톤 발전소는 국가 공인 특급 기밀 시설이다.
소울 스톤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소유한 기업은 전 세계에서 올림푸스밖에 없다.
당연히 소울 스톤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방법도 극비였다.
김도현 교수가 이끄는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연구원들은 비밀 서약 각서를 썼고, 만약 이를 어길 시 천문학적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
어차피 기밀을 유출해도 최치우가 아니면 그 누구도 소울 스톤을 구할 수 없기에 무용지물이다.
어쨌든 광명에 지어진 발전소가 성공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면 세계 각국에서 러브콜을 보낼 것이다.
그 어떤 대체 에너지보다 더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소울 스톤은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물질이다.
효력이 증명되기만 하면 지구 곳곳에서 억만금을 싸들고 발전소 유치 경쟁에 나설 게 분명했다.
그만큼 한국 정부와 올림푸스는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최치우가 유영조 대통령과 다른 길을 걷게 됐지만, 개인적 감정이 개입될 문제가 아니었다.
최치우는 발전소 보안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남아공 무법 지대의 패권을 장악한 헤라클래스 대원들을 부른 것이다.
헤라클래스는 최치우가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다.
현대에서는 다른 차원과 달리 무력보다 경제력이 훨씬 중요하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는 무력의 가치가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최치우가 지속적으로 헤라클래스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건 단순히 남아공 본부의 광산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언제든 편하게 쓸 수 있는 정예 부대가 필요하다.
미국 특수부대 출신들을 대거 받아들이며 몸집을 키운 헤라클래스는 아프리카 남부의 전설로 우뚝 섰다.
이미 리키와 몇몇 대원들은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최치우의 지시를 받고, 퓨처 모터스 공장을 지키기 위해 임시로 차출된 것이다.
광명의 소울 스톤 발전소도 안정적으로 가동될 때까지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지켜주면 된다.
비록 리키는 없지만 헤라클래스 대원 10명이면 웬만한 특수부대가 부럽지 않다.
한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군과 경찰 병력, 그리고 사설 경호업체도 충분하다.
하지만 최치우는 네오메이슨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들이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퓨처 모터스 공장에 불을 지른 것처럼 미친 짓을 다시 안 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에 초창기에는 만반의 준비 태세로 물 샐 틈조차 없게 하려는 것이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계속 보충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요즘 이 동네도 분위기가 흉흉해서. 헤라클래스가 워낙 든든하긴 하지만……. 부담을 주는 거 같아서 미안하다, 치우야.”
“부담은 무슨. 남아공 본부와 광산이 우리에게 엄청 중요하다는 거 잘 알잖아. 그만큼 투자를 해야지.”
“그래, 조만간 남아공에도 올 거지?”
“가을쯤 잠시 들어갈 거 같아. 형도 겨울에 휴가 써서 서울에 와야지.”
“일정 조율해서 보고서 올릴게. 곧 보자.”
“건강해.”
최치우는 올림푸스 남아공 본부장으로 파견을 나간 이시환과 통화를 마쳤다.
헤라클래스의 1차 목표는 남아공 본부와 광산 경호다.
그렇기에 헤라클래스 대원들을 차출하며 본부장인 이시환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이시환은 남아공에서 국제적인 거물로 훌쩍 성장했다.
최치우도 어리지만 이시환도 여전히 20대다.
다른 경력도 없는 이시환에게 남아공 본부를 통째로 맡기는 건 도박이었다.
그러나 이시환은 특유의 친화력과 적응력으로 베테랑 직원들을 장악했고, 남아공의 광산을 순조롭게 개발하며 막대한 현금을 뽑아내고 있다.
이제 남아공 본부는 올림푸스에 없어서는 안 될 캐시 카우가 됐다.
이시환도 아프리카의 큰손으로 꼽히며 인생이 바뀌었다.
자원해서 남아공으로 날아간 용기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이제부터 소울 스톤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겠군.”
전화를 끊은 최치우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하급 물의 정령 운딘을 소멸시키고 얻은 소울 스톤은 실험 과정에서 파괴됐다.
꾸준한 실험을 위해, 그리고 광명이 아닌 다른 지역에도 발전소를 설립하기 위해 작정하고 소울 스톤을 모아야 한다.
최치우는 주먹을 꽉 쥐며 각오를 다졌다.
물의 정령왕으로부터 경고까지 받은 마당이다.
이판사판 가릴 것 없다.
본의는 아니지만, 현대에서 유일한 정령 헌터로 세계를 누비게 됐다.
남들이 보기엔 마냥 화려하지만 최치우는 더더욱 험난한 싸움을 계속하게 될 것 같았다.
***
준공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내일이면 수백 대의 카메라가 몰려들어 소울 스톤 발전소의 모습을 담게 될 것이다.
취재진에게는 발전소 내부도 공개될 예정이다.
하지만 절대 들어설 수 없는, 심지어 환경부 장관조차 못 들어가는 장소도 있다.
지문과 홍채 인식을 비롯해 매일 바뀌는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입장할 수 있는 코어(core).
소울 스톤 발전소의 코어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명이다.
대한민국,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두 명뿐인 인원은 다름 아닌 최치우와 김도현 교수였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다른 연구진과 교수들도 코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치우, 또는 김도현 교수의 허가를 일일이 받아야 한다.
최치우는 준공식을 앞두고 김도현 교수와 함께 발전소를 찾았다.
발전소 내부를 먼저 살펴보고, 소울 스톤이 가동되는 코어를 체크하려는 것이다.
“기대해도 좋아요.”
김도현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는 어지간해선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최치우는 김도현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교수님께서 자신하시니… 얼른 보고 싶습니다.”
“그럼 문을 열게요.”
발전소 내부는 두 사람을 위해 텅 비어 있었다.
복잡한 기계와 열병합 처리 시설이 커다란 발전소를 채웠지만, 핵심은 소울 스톤이 가동되는 코어다.
김도현 교수는 지문과 홍채 인식을 완료하고 비밀번호 코드를 입력했다.
지이이잉- 띠잉!
복잡한 확인 절차가 끝나고, 굳게 닫힌 자동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최치우가 직접 시도해도 똑같은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코어는 발전소 중앙에 불투명한 하얀색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들어가지요.”
“네, 교수님.”
최치우와 김도현 교수는 열린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다시 문이 닫히고, 새하얀 기둥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코어를 감싼 하얀색 벽도 특수물질이다.
폭탄이 터지거나 미사일을 쏘면 발전소 자체는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코어는 흔들리지 않도록 설계가 됐다.
코어에 자리 잡은 소울 스톤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사해야 되기 때문이다.
“와-!”
최치우가 탄성을 터트렸다.
발전소 내부는 다른 열병합 발전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코어는 달랐다.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이 붉은 빛을 내며 투명한 관에 들어가 있었다.
소울 스톤을 품은 관에는 여러 갈래의 호스가 연결돼 있었다.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이 뿜어낸 에너지가 호스를 타고 코어 바깥의 발전소 기구로 전달된다.
사실 코어의 구조 자체는 간소했다.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 그 존재 자체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웅- 우우웅-
투명한 관에 담긴 소울 스톤이 공명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초정밀 레이저로 소울 스톤을 자극하고, 그 반작용으로 열이 발산되는 구조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웠다.
“여기서 광명 뉴타운의 전력을 책임지게 되는 것이군요.”
“그렇지요. 치우 군이, 아니 최 대표가 얼마나 위대한 발견을 한 것인지 모릅니다.”
“교수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남은 소울 스톤도 귀하게 쓸 수 있도록… 꼭 올해 안에 결과를 낼게요.”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김도현 교수는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을 갖고 있다.
에너지 추출에 성공하면 광명 뉴타운을 책임질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보다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다.
“진짜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치우가 웃으며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준공식 전날, 실제로 발전소와 코어를 살펴보니 정말 실감이 났다.
최치우는 드디어 환생 이후 의미 있는 첫 걸음을 내딛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