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레전드 메이커>
4초.
누군가에게는 깊은 숨을 한 번 쉬면 끝나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경쟁하는 100m 달리기에서 4초의 가치는 엄청나다.
총성이 울리고, 4초가 지날 무렵 근소하게 선두로 치고 나간 사람은 제레미 요크였다.
웨스 라이언과 최치우는 제레미 요크보다 반 발짝 뒤에서 선두권을 형성했다.
100m는 초단거리 경주이기에 스퍼트라는 개념이 없다.
선수들은 스타트부터 젖 먹던 힘까지 100% 전력을 짜낸다.
한번 거리를 벌리면 역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제레미 요크가 앞선 찰나의 순간, 대다수 육상 전문가와 해설가들은 미국이 금메달을 하나 추가할 거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우사인 볼트의 후계자는 제레미 요크로 결정되는 듯했다.
지난 8년 내내 자메이카에 눌려 있던 원조 육상 강국 미국이 다시 한번 올림픽 왕관을 차지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모두 섣부른 추측이었다.
100m 기록은 9초대에서 결정이 난다.
4초가 지났지만, 아직 5초라는 단거리 육상에서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왓 더 헬-!”
“오우! 마이! 가아앗!”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해설자들이 저도 모르게 비속어를 내뱉을 만큼 깜짝 놀랐다.
최치우가 성큼 튀어나오며 제레미 요크 옆 라인에 딱 붙었다.
겨우 1초도 지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제레미 요크와 최치우가 나란히 섰고, 웨스 라이언만 뒤처졌다.
그것도 잠시 뿐.
해설자들의 눈알이 튀어나올 장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호흡, 아주 약간의 내공!’
최치우는 제레미 요크가 선두를 차지한 순간, 극소량의 내공을 두 다리로 보냈다.
기운이 넘치면 인간의 한계를 깨고 8초, 7초대 기록을 세울지 모른다.
그렇기에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내력만 발휘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에너지가 두 다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팍! 파팍! 파파팍!
최치우의 발바닥이 경기장 트랙을 움푹 파이게 만들 것 같았다.
휘이이이익-!
그는 거센 맞바람을 느끼며 제레미 요크를 제쳤다.
하지만 페이스를 조절했다.
너무 앞서가면 안 된다.
바로 뒤에서 제레미 요크의 호흡이 느껴지는 거리를 유지하는 게 포인트다.
‘됐다!’
최치우는 짧지만 길게 느껴진 레이스가 끝났음을 직감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아직 달리는 중이지만, 전성기 시절의 우사인 볼트처럼 먼저 세레모니를 한 것이다.
삐이이-
최치우의 몸이 결승선을 통과했고, 곧바로 부저음이 울렸다.
그는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든 역전극으로 당당히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동양인의 피부, 가슴에 달린 태극기, 어느 것 하나 올림픽 100m 달리기 금메달과 어울리는 게 없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치우우우-!”
최치우는 어느 때보다 격한 환호성을 들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전광판에는 9초 48이라는 숫자와 함께 세계 신기록을 알리는 WR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최치우는 월드 레코드이자 올림픽 레코드를 수립했다.
우사인 볼트가 기록했던 종전의 세계 신기록 9초 58을 무려 0.1초나 단축시킨 것이다.
100m 달리기에서 0.1초는 마라톤에서 10분을 단축시킨 것 이상이다.
전세계 해설진은 난리가 났고, 경기장의 관중들과 TV 시청자들은 열광했으며, 최치우와 함께 달린 선수들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치우 형님!”
그때 우성용이 최치우를 불렀다.
메달은 못 땄지만, 그 역시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결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우성용은 최치우가 세운 기록과 금메달이라는 결과에 감동한 것 같았다.
“형님……!”
우성용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최치우를 한 번 더 불렀다.
최치우는 우성용을 와락 안아줬다.
이 순간의 기쁨을 같이 나눌 상대가 있어 고마웠다.
예견된 결과였지만, 막상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의 주인공이 되니 기분이 남달랐다.
이제 누구든 동양인의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함부로 못 할 것이다.
최치우가 올림픽에서 한계와 편견을 박살 냈기 때문이다.
“금메달! 우리가 금메달! 그리고 세계신기록!”
육상 팀의 이상태 감독이 커다란 태극기를 들고 뛰어오며 괴성을 질렀다.
최치우 덕분에 그는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단거리 육상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감독이 됐다.
이상태 감독에게도, 한국과 아시아 육상계에도 역대급 경사였다.
휘리릭-
최치우는 이상태 감독이 건네준 대형 태극기를 등에 휘감았다.
그가 태극기를 두르고 천천히 올림픽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자 모든 관중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세계 신기록이 깨지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게 해준 최치우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 옛날 황영조의 전설이 몇 배 더 큰 감동으로 다시 부활했다.
최치우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신화가 되어 지워지지 않을 발자국을 남겼다.
그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움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황영조 선수의 마라톤 신화를 뛰어넘는 전설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최치우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를 쳐다봤다.
거듭 된 환생으로 주어진 삶, 처음부터 대한민국에 애정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삶은 어느 때보다 더 특별하다.
처음으로 가족이 생겼고, 지키고픈 사람들과 함께 싸우는 법을 배우게 됐다.
최치우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터전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는 경기장 꼭대기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며 다짐했다.
올림푸스로 인해 대한민국은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고.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들이 평생 자부심을 느끼게 될 거라고.
최치우의 다짐은 이미 많이 실현되고 있었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로 대한민국의 위상은 전례 없이 높아졌다.
오성 그룹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데 최치우만큼 기여하진 못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오성을 일본 브랜드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오성은 굳이 한국 기업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래봐야 기업 이미지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푸스는 달랐다.
최치우는 태극기를 가슴에 얹고 국가 대표로 올림픽 메달을 땄다.
경제 뉴스를 아예 안 보는 사람도 올림푸스의 CEO 최치우가 코리아 메달리스트라는 건 알게 됐다.
원래부터 올림푸스는 대한민국 기업임을 적극 알렸다.
세계 최초의 소울 스톤 발전소도 한국에 건립했고, 각종 글로벌 기자회견도 여의도에서 열어왔다.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 제우스 S의 세계 최초 출시 지역도 제주도로 정했다.
그렇기에 오성 그룹보다 규모는 작아도 국가 브랜드에 끼친 영향력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는 한국이 결코 부끄러운 브랜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방과 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가 고작 50년만에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그동안 국가적 홍보 대책이 부실했을 뿐, 대한민국의 스토리는 훌륭한 자산이다.
최치우와 올림푸스는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선봉장이 된 것 같았다.
“치우 형! 축하해요.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이라니……. 형은 진짜 특별한 사람 같아요.”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오니 우성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우성용에게 축하를 받은 최치우는 금메달을 풀었다.
처억!
우성용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준 최치우가 말했다.
“기운 잘 받아둬. 너도 앞으로 금메달 많이 따야지.”
“혀, 형님… 이걸…….”
막상 금메달을 건네받은 우성용은 석상처럼 얼어붙었다.
너무 놀라 혀도 꼬이는 것 같았다.
최치우는 밝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부러워만 하지 말고, 죽어라 노력하면 언젠가 너의 시대가 온다. 샴페인은 다른 애들 결승전 다 끝나면 같이 터트리자.”
“네, 형님! 명심하고 또 명심할게요!”
우성용이 크게 감명을 받은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최치우는 그를 데리고 선수촌으로 걸어갔다.
육상 팀에서 단체 회식을 제안했지만 뒤로 미뤘다.
유도와 레슬링, 수영과 축구 결승을 보고 나서 다 함께 파티를 즐기고 싶었다.
최치우는 혼자만 전설을 쓰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도 제각각 전설을 쓰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성용도 이미 나름의 전설을 쓴 셈이었다.
최치우 덕분에 올림픽 결승에서 전력으로 질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 더 많은 전설이 태어날 수 있기를.
최치우는 숙소로 돌아가며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 좋은 징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
“뒤집기 한판! 한판승! 국민 여러분, 마형석 선수가 해냈습니다! 4년 전 은메달의 아쉬움을 이겨내고 금빛 한판승을 통쾌하게 내리 꽂았습니다-!”
해설자의 외침이 중계 박스 너머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마형석이 극적인 한판 뒤집기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관중석에 유도 결승전을 지켜보던 최치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옆자리의 우성용과 심지호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마형석의 금메달을 축하했다.
“와- 형석이 형님도 해내셨네요!”
“고생 많았는데, 진짜 다행이다.”
마형석은 유도복을 추스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원래 속마음이 여린 사람일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다.
마형석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주체 못 하고 눈물을 흘리는 마형석을 보며 다들 찡한 감정을 느꼈다.
“두고두고 놀려줘야겠다. 센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마형석을 쳐다봤다.
하루 앞서 금메달을 딴 레슬링 국가 대표 심지호도 마음 편히 박수를 쳤다.
심판으로부터 승리를 확인받은 마형석 유도 코치와 얼싸안았다.
이윽고 그는 최치우가 앉아 있는 관중석을 향해 넙죽 큰절을 했다.
최치우가 올림픽 선수단의 리더 역할을 한다는 건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거수 경례를 했던 심지호에 이어 마형석은 큰절로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고생했다, 형석아!”
최치우는 소리 높여 마형석을 축하하며 큰절을 받았다.
원래는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많이 얻었다.
든든하고 대견한 동생들이 생겼고, 올림픽에서 보여준 리더십으로 최치우의 인기와 지명도는 하늘을 뚫을 지경이 됐다.
벌써부터 올림푸스 홍보실을 통해 CF 광고 문의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국 재계 서열 2위의 기업 CEO에게 광고 모델 제의를 할 정도이니, 최치우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놀랍기 그지없었다.
역사에 획을 그은 최치우는 물론이고, 올림픽 최치우 사단이라 불리는 선수들이 모두 엄청난 성적을 남겼다.
그러니 광고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지는 게 당연했다.
“이제 축구 국대만 남았네.”
“영민이 형님이랑 천수 형님이 잘하겠죠?”
“영국이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목숨 걸고 덤비면 못 이길 상대도 아니지.”
최치우의 말대로 결승에 오른 축구 대표팀만 남았다.
수영 선수 박지한도 결선에 오른 4개 종목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추가했다.
명예로운 은퇴 수준이 아니라 올림픽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최치우 사단의 열풍 덕분에 대한민국은 이미 금메달 17개를 획득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갱신했다.
축구 국대와 다른 종목에서 금메달을 몇 개만 더 추가하면 20개를 넘기는 대기록도 세울 수 있다.
서울 올림픽 이후 다시는 도전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종합 4위도 눈앞에 있었다.
이 모든 게 최치우의 공로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4년 넘게 피땀을 흘린 선수단 전체의 공이 제일 크다.
그러나 최치우가 없었으면 절대 이루지 못 했을 기대 이상의 결과인 것은 분명했다.
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최치우의 이름은 점점 강렬하게 각인되고 있었다.
사실 최치우는 곧 한국으로 돌아가 소울 스톤 발전소 준공식을 열면서 CEO로 복귀해야 한다.
그에게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특별한 경험이다.
최치우는 청춘의 한 페이지를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