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64화 (164/243)

#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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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올림픽에서 한국은 8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순위 9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전통적인 하계 올림픽 강국으로 입지를 굳혔다.

출전 선수단 규모는 작지만, 매번 종합 순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하계 올림픽 5대 강국은 역시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독일이다.

5개 나라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인구다.

인구가 많으면 출전 선수와 종목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메달을 획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중국 선수단이 100명이고, 한국 선수단이 10명인데 메달 수로 공정한 경쟁을 펼치긴 힘들다.

한국 선수 10명 모두 금메달을 따도 중국의 100명 선수단 중 11%인 11명만 금메달을 따면 순위에서 밀린다.

그렇기에 몇몇 언론은 올림픽을 두고 인구 경쟁 또는 국력 경쟁이라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룰을 바꿀 수는 없다.

인구가 많고, 출전 선수가 많은 강대국이 올림픽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이변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최대 돌풍은 대한민국 선수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까지 단 한 명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던 100m 달리기 최종전에 2명이 올라갔다.

유도와 레슬링 역시 4년 전 아픔을 씻어내고 간판스타인 마형석과 심지호가 결승전에 진출했다.

퇴물로 불리던 수영선수 박지한은 무려 4개 종목 결선에 오르며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싸늘하던 국민 여론도 박지한을 다시 보게 됐다.

자유형 400m와 800m, 1,500m, 그리고 개인혼영 400m 모두 결선에 오른 박지한은 다시금 국민 영웅으로 우뚝 섰다.

결선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도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는 꿈은 이룬 셈이다.

축구 역시 기적을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 축구 국가 대표의 올림픽 목표는 언제나 동메달이었다.

올림픽에서 동메달만 따면 병역 면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대 올림픽 최고 기록도 동메달인데, 이번에는 결승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최소 은메달이 확보됐고, 만약 결승 상대인 영국을 이기면 최초로 금메달을 딴다.

한국 현지에서는 2002 월드컵 신화를 재현하듯 거리 응원 열풍이 번지고 있었다.

비단 축구뿐 아니라 올림픽팀 전체가 영웅 대접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목표, 세계 4위라는 대기록을 다시 한번 수립할지 모른다.

연일 안 좋은 뉴스에만 시달리던 국민들에게 올림픽 대표단이 희망을 주고 있었다.

아직 결과가 다 나오지 않았지만, 최치우는 최강 전력을 자랑한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가 대표의 기수(旗手)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 같았다.

딩동-

“문 열렸어, 들어와.”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직 잠 들기엔 이른 시각.

최치우와 우성용이 같이 쓰는 선수촌 숙소에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방금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온 사람은 유도 국가 대표 마형석이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출신으로 자존심이 센 마형석은 최치우를 보자마자 허리를 꾸벅 숙였다.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형석이 이렇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없다.

그는 국가 대표 코치 말도 제대로 듣지 않아 문제를 일으킬 만큼 콧대가 높은 선수다.

그런데 최치우 앞에서는 달랐다.

마치 까마득한 대선배를 대하는 막내처럼 말투와 몸가짐이 극진했다.

“어서 와.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최치우는 웃으며 마형석을 반겼다.

선수촌의 2인용 숙소는 꽤 넓은 편이지만, 모여든 사람들로 꽉 차버렸다.

최치우와 우성용의 침대 사이에 거실 같은 공간이 있었고, 무려 7명이 둘러앉았다.

7명 모두 보통 사람보다 체격이 크다.

그래서 비좁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누구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육상팀의 최치우와 우성용, 레슬링팀의 심지호, 수영의 박지한, 축구팀의 손영민과 기천수, 마지막으로 도착한 유도팀의 마형석까지.

대한민국과 바르셀로나를 뜨겁게 달군 올림픽의 주역들이 모인 것이다.

국가 대표 선수단에서도 가장 큰 화제를 몰고 다니는 7명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게 알려지기만 해도 특종 뉴스가 될 것이다.

실시간 검색어 1위도 따 놓은 당상이다.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올림픽 기간 중에는 따로 모이지 않는다.

각자의 경기를 준비하며 정신을 집중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치우를 중심으로 모인 7명은 기존의 관례를 깨버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마인드 컨트롤 방법은 따로 있었다.

최치우를 만나 조언을 듣는 것.

그게 충분한 휴식만큼이나 더 소중했다.

“성용이는 지금까지 했던 대로, 다른 선수들이 아니라 너 혼자서 뛴다고 생각해. 욕심 내면 어렵게 잡은 균형이 망가진다. 알지? 니가 주인공이 될 시간은 4년, 그리고 8년 뒤에 찾아온다.”

“네, 형님. 혼자만의 레이스를 한다고 생각할게요.”

우성용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치우를 포함해 우성용도 한국 최초로 올림픽 100m 달리기 결승에 올랐다.

누구라도 부담과 욕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우성용이 메달권 후보가 아님을 냉정하게 지적했다.

괜한 욕심으로 균형이 깨지면 어렵게 잡은 기회마저 놓칠 수 있다.

최선을 다하되 4년, 8년 뒤를 바라보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우성용이 최치우의 조언만 잘 따른다면 장차 한국 육상의 대들보로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다.

나머지 선수들도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최치우에게 결정적인 한마디를 듣기 원했다.

사실 필요한 조언은 선수촌에서 다 해줬다.

그렇기에 다들 징크스를 떨쳐내고 결승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

어쩌면 박지한과 마형석, 심지호, 그리고 축구 국대를 이끄는 손영민과 기천수는 심리적 안정을 위해 최치우를 찾아왔는지 모른다.

결승을 앞두고 모든 선수들이 초조한 기분을 느낀다.

자칫 불안한 마음이 커지면 컨디션을 망칠 수도 있다.

그런데 최치우에게 조언을 들으면 멘탈이 잡힐 것 같았다.

최치우는 선수촌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했었다.

선수들의 꽉 막힌 고민을 해결하며 자연스레 멘탈까지 강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메달 색이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국가 대표의 간판선수들이 최치우 방으로 모인 건 알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민아, 천수야. 너네 4강 경기 보니까 왼쪽이나 오른쪽 공간이 비었을 때도 자꾸 한 방향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었어.”

“저희도 감독님한테 지적을 듣는데… 막상 경기를 뛰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요.”

“특히 천수 너는 플레이메이커니까, 중앙에서 공을 잡으면 심호흡 한 번만 해.”

“심호흡이요?”

“그래, 심호흡. 깊은 숨을 마시면 뇌가 활성화되면서 시야가 넓어져. 겨우 호흡 한 번 더 한다고 경기 템포가 느려지는 건 아니니까, 내 말 믿고 중앙에서 공이 오면 심호흡 한 번만 하고 패스 루트를 만들어봐.”

“네, 형님! 결승에서 무조건 그렇게 하겠습니다.”

올림픽 대표팀의 에이스 기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은 조언도 다른 사람이 했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최치우는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다.

만약 결승전에서 한국의 공격 루트가 넓어진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최치우가 조언을 해준 덕분일 것이다.

“영민이 너는 너무 완벽한 찬스만 노리지 말고, 공간이 보이면 과감하게 중거리 슛도 때리고.”

“옙!”

독일 무대에서 뛰고 있는 손영민이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최치우는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니다.

그러나 궁극의 경지에 오르면 모든 깨달음이 통하는 법이다.

최치우가 익힌 싸움의 기술을 운동에 적용하면 모두 비법이 된다.

그는 마형석과 심지호, 박지한에게도 차례대로 조언을 해줬다.

국가 대표 에이스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잡아준 최치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4년 동안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까 부담 느끼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할게. 어차피 마음고생하고 몸 고생 똑같이 했으니 무조건 금메달로 보상을 받자!”

“네, 형님.”

“치우 형님만 믿고 가즈아아-!”

성격이 밝은 우성용이 장난기를 담아 분위기를 띄웠다.

최치우는 마음을 비우라는 뻔한 조언을 하지 않았다.

대신 금메달로 보상을 받자며 확실하게 동기를 부여했다.

유망주인 우성용을 제외하면 다들 금메달을 따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다.

쉽게 마음이 비워질 리 없다.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것보단 대놓고 동기를 부여하는 게 낫다.

목표를 감추면 부담이 되지만, 드러내면 더 이상 부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척!

최치우가 손을 내밀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선수들이 그 아래로 손을 겹쳤다.

서열에 민감한 운동선수들답게 전부 최치우의 손바닥 아래로 자기 손을 깔았다.

최치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알지? 금!”

“메달!”

“금!”

“메달!”

몇 번 해본 듯 능숙하게 구호를 맞춘 7명이 손을 위로 뻗었다.

금메달을 염원하는 파이팅이 끝나고, 다들 일찍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중요한 일정을 남겨둔 만큼 컨디션 관리는 필수다.

최치우는 방에서 나가는 동생들의 등을 두드려줬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국가 대표라는 무거운 왕관을 쓴 동생들이 새삼 대견했다.

“나중에 은퇴하고 갈 데 없으면 올림푸스로 와라. 밥은 먹여줄게.”

“우와-! 이거 빈말 아니지요?”

“내가 언제 빈말 하는 거 봤어?”

“알겠습니다. S대 나와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올림푸스, 우리는 무조건 받아주는 겁니다?”

“금메달 특별 전형이라도 만들게. 경기나 잘 해.”

최치우는 농담에 진심을 섞어 동생들을 배웅했다.

약속 된 승리를 쟁취하고 함께 샴페인을 터트릴 수 있기를.

그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최치우가 방문을 닫았다.

다가온 100m 달리기 마지막 경주를 위해 최치우도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

“후우- 후우-!”

긴장을 다스리기 위한 선수들의 숨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3번 레인에 선 최치우만 평소처럼 차분하게 호흡하고 있었다.

1번 레인에는 우사인 볼트의 후계자, 자메이카의 웨스 라이언이 서 있었다.

2번 레인은 역시 미국의 스타 제레미 요크의 차지였다.

최치우는 3번 레인에서 그들과 경쟁하게 됐다.

사실상 가장 유력한 금, 은, 동메달 후보들이 나란히 서게 된 것이다.

올림픽을 지켜보는 관중들에겐 더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언제 또 이런 레이스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웨스 라이언과 제레미 요크는 서로를 강하게 의식했다.

단거리 육상의 황제로 군림했던 우사인 볼트가 은퇴하고, 둘 중 한 사람이 왕좌를 계승하는 게 기정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공식적으로 우사인 볼트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뜬금없이 한국에서 최치우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하지만 웨스 라이언과 제레미 요크는 최치우를 크게 견제하지는 않았다.

흑인이 아닌 동양인이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는 건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최치우를 어쩌다 튀어 나온 다크호스 정도로만 여겼다.

물론 뚜껑이 열리면 큰 코 다칠 생각이었다.

오히려 최치우가 웨스 라이언, 제레미 요크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너희는 우사인 볼트의 후계자가 되려고 나왔지만, 난 우사인 볼트를 깨려고 나왔다.’

마음가짐이 다르니 목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6번 레인에 선 우성용을 바라보고 자세를 잡았다.

우성용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오늘의 경험이 그에게 돈 주고도 못 사는 보약이 되어줄 것이다.

스으윽-

선수들이 일제히 스타트 자세를 잡았다.

올림픽 스타디움을 채운 관중들의 함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곧이어 기계음이 울리면 전쟁이 시작된다.

10초 안에 모든 게 결정 나는 전쟁이다.

“스텝-!”

신호에 맞춰 선수들이 뛰어나갈 준비를 했다.

총성이 울리면 최치우도 금빛 질주를, 아니 세계의 편견을 깨트릴 역사적인 달리기를 보여줄 것이다.

타아앙!

선수들이 전광석화처럼 스타트 라인을 박찼다.

최치우도 예선과 달리 출발에서 머뭇거리지 않았다.

레이스 초반부터 웨스 라이언, 제레미 요크, 그리고 최치우가 치고 나갔다.

1번, 2번, 3번 레인의 세 명이 나란히 선두권을 형성한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오오오오!”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질주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중계 방송을 맡은 세계 각 국의 해설자들도 소리를 지르기 바빴다.

겨우 4초 정도 지났을까.

그러나 레이스는 이미 중반부에 다다랐다.

제레미 요크의 두껍고 새까만 팔꿈치가 최치우의 시야에 잡혔다.

미국의 희망으로 떠오른 2번 레인의 제레미 요크가 살짝 앞서 나간 것이다.

1번 레인의 웨스 라이언은 최치우와 비슷한 위치에서 제레미 요크에 반 발짝 뒤처져 있었다.

‘바로 지금!’

최치우는 승부를 걸 타이밍이 왔음을 직감했다.

영원히 역사에 남을 바르셀로나 올림픽 100m 달리기.

그 전설적인 레이스가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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