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62화 (162/243)

# 162

***

선수촌 대회의실에서 각 종목 총 감독과 협회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번 올림픽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다.

요즘 사람들은 바르셀로나라고 하면 축구 선수 메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게는 황영조 선수의 마라톤 금메달 기억이 생생한 육상 성지(聖地)다.

그렇기에 올림픽에 임하는 대한체육회의 각오와 다짐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오늘 열리고 있는 회의도 무척 중요하다.

올림픽 선수단 입장을 비롯해 여러 현안을 결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참 난감한 게…… 유도팀, 레슬링팀, 수영팀, 육상팀 그리고 축구팀도 똑같은 의견을 냈습니다.”

사회를 맡은 대한체육회 이사가 새로운 안건을 꺼냈다.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올림픽 입장식의 기수는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인데 말입니다.”

“그러니까요. 이렇게 다양한 종목의 팀에서 공통된 의견을 내는 경우는 없지 않았습니까?”

“이만하면 선수들의 뜻이 모아졌다고 봐야 하는데, 외면해도 뒷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협회장과 감독들이 한 마디씩 생각을 쏟아냈다.

올림픽 입장은 개막식의 꽃이다.

특히 국가 별 입장에서 깃발을 드는 기수(旗手)는 선수단을 대표하는 얼굴로 세계에 각인 된다.

예전에는 대한체육회에서 가장 상징성 있는 선수, 혹은 자신들이 밀어주고 싶은 선수를 지정해 기수 역할을 맡겼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협회 마음대로 기수를 정하기 힘들 것 같았다.

선수단이 자체적으로 기수 후보를 추천하는데 유독 한 사람이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원래 기수는 선수단 추천으로 정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늘 유명무실한 원칙이었다.

보통 자기 팀 주장을 추천하기 때문에 후보가 중구난방이었다.

그렇기에 협회는 부담 없이 자신들 입맛에 맞는 선수를 기수로 선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려 5개 팀에서 한 사람을 후보로 추천한 것이다.

국내 올림픽 선수단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만약 협회 마음대로 기수를 세우면 선수들 의견을 무시해 버린 셈이 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언론이 냄새를 맡으면 골치 아파질 가능성이 크다.

“하필 최치우… 그 사람이라니.”

누군가 속마음을 내뱉었다.

다들 티는 못 내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최치우는 거물이다.

대한체육회 회장도 최치우와 비교하면 한참 작아 보일 수밖에 없다.

여의도 찌라시에 의하면 최치우가 직접 유경민 의원과 홍문기 부회장을 구속시키도록 검찰을 움직였다고 한다.

대선 주자와 대기업 부회장도 날려 버리는 사람이 바로 최치우다.

게다가 선수들의 추천까지 겹쳤다.

스포츠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협회와 연맹에서도 껄끄러움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만약 최치우를 기수로 세우지 않으면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습니다.”

“괜히 다른 문제까지 터질 수 있으니 이번에는 선수단 추천으로 기수를 정합시다.”

“허!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무슨 문제가 있다고!”

“아니, 내 말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만일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것 아닙니까.”

회의 분위기가 난삽해졌다.

올림픽 선수단 기수를 자기들 마음대로 못 정하게 됐기 때문일까.

협회와 연맹의 임원들은 평소보다 날이 서 있었다.

“크흠, 순리대로 갑시다. 이번 기수 자리는 아무래도 육상팀의 최치우에게 가야 될 것 같소.”

급기야 대한체육회장이 나서서 마무리를 지었다.

더 이상 반발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양궁 협회 정도를 제외하면 다들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혹시라도 최치우를 잘못 건드렸다가 불똥이 튀면 큰일 난다.

안 그래도 협회는 세계적인 CEO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는 최치우 때문에 머리가 아팠었다.

가만히 나눠도 사람들은 국가 대표 최치우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그런데 깃발을 들고 선수단의 얼굴 노릇까지 하게 됐다.

대한체육회 회장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주인공이 최치우가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하지만 예감을 느껴봐야 별다른 소용이 없다.

최치우는 대한체육회장이 막아설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빛나는 별이다.

그들의 역할은 최치우와 선수들에게 레드 카펫을 깔아주는 것뿐.

어떻게 보면 최치우 덕분에 올림픽에서 협회의 장난질이 줄어들게 된 셈이었다.

때로는 한 사람이 사회와 문화, 그리고 세상을 바꾼다.

최치우는 짧은 국가 대표 생활을 통해 체육계의 병폐를 짓밟고 있었다.

***

“오늘, 이 역사적인 순간에 설 수 있어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 제주도는 국제적인 친환경 관광 도시로 우뚝 서게 됐습니다. 세계 최초로 럭셔리 전기차가 천혜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달리는 곳! 제주도로 옵서예-!”

제주도지사 원성룡이 마이크 앞에서 사투리를 섞어가며 명연설을 마쳤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그보다 더 뜨거운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최치우와 임동혁, 그리고 브라이언까지.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임원 세 사람이 모두 자리를 빛냈다.

연설을 마친 원성룡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최치우를 쳐다봤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원성룡은 최치우에게 엄청나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행사장에는 제우스 S를 계약한 700명의 고객이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꿈에 그리던 제우스 S를 인도받게 됐다.

나머지 300대는 제주도청과 주요 렌트카 업체에서 구매했다.

제주도 사람이 아닌 관광객들도 퓨처 모터스의 럭셔리 전기차 제우스 S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게 수량을 배정한 것이다.

“서울 방송국과 언론사에서 이렇게 많이 취재를 온 적은 처음이네요. 모두 최 대표님 덕분입니다.”

원성룡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제주도의 젊은 맹주였던 그는 일약 잠재적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12월에 치러질 이번 대선은 몰라도 5년 뒤에는 충분히 유력 후보가 될 것 같았다.

선제적으로 전기차를 도입하며 제주도를 친환경 혁신 도시로 바꿨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세계 각 국의 대도시에서 제주도 정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파견단을 보내려 했다.

“도지사님의 대승적인 결단 덕분입니다. 제가 감사드려야죠.”

“아닙니다. 올림푸스 공이 크다는 사실을 우리 도청 사람들 전부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주도와 올림푸스, 그리고 저와 최 대표님은 쭉 같이 가는 겁니다?”

“하하, 제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최치우가 기분 좋게 웃었다.

두 사람은 서로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원성룡이 1,000억이라는 계약금을 내고 통 큰 MOU를 체결하면서 퓨처 모터스의 숨통이 트였다.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퓨처 모터스가 정상화될 수 있었다.

원성룡도 최치우라는 귀인을 만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이제 중앙 정치인들도 제주도지사 원성룡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전기차라는 미래 이슈를 선점하며 앞으로 얼마든지 전국을 뒤흔들 저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올림픽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기수로 선정이 됐다고 해서 화제였습니다.”

“평생 한 번뿐일 올림픽을 즐기려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수가 되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을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여야죠.”

“기수는 어떻게 맡게 된 것인가요? 최 대표님께서 자원하신 것인지요.”

“아닙니다. 대한체육회에서 선정하는데, 선수단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여러 팀 주장들이 저를 추천하는 바람에…….”

“아, 역시 대표님의 인망은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는가봅니다.”

“선수들이 좋게 봐줘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최치우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가 대한민국 선수단을 대표해 깃발을 들게 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게 일주일 전이다.

1달 앞으로 다가온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향한 국민적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외국의 언론들도 대한민국 선수단을 주목하고 있었다.

마치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가 미국 국가 대표가 되어 깃발을 드는 셈이다.

국적을 떠나 관심 있게 다를 수밖에 없는 뉴스였다.

세계 올림픽 위원회 IOC도 기쁜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IOC는 최치우를 기수로 내세워 올림픽 열기를 일으켰다며 대한체육회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한체육회는 가만히 앉아서 IOC에게 생색을 내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수촌에서 최치우의 영향력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에게 조언을 받고 실력이 향상된 유도, 레슬링, 수영, 그리고 축구 선수들은 그를 큰형님처럼 모셨다.

나이가 적고 많고, 운동 경력이 길고 짧고도 따지지 않았다.

운동 선수들은 0.01% 발전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낸다.

그런데 핵심을 짚는 최치우의 조언 한 마디로 당장 체감 효과를 누렸다.

이쯤 되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은인처럼 모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원성룡 도지사가 선수촌 내부의 소문까지 알기는 힘들다.

최치우는 그와 함께 나란히 서서 고객들이 제우스 S를 인도받는 장면을 지켜봤다.

원래 신차를 처음 인도할 때 대규모 행사를 열지 않는다.

기껏해야 1호 구매자에게 선물을 주는 선이다.

그러나 제우스 S는 기존의 자동차와 모든 게 달라야 했다.

전기차 출시를 널리 알리길 원하는 제주도와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결국 700명을 한자리에 모아 초대형 행사를 전 세계에 생중계하게 됐다.

이제 겨우 초도 물량 1,000대가 제주도에 풀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기를 비롯한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은 긴장해야 될 것 같았다.

제우스 S의 완성도가 무척 높았고, 1억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폭주하는 중이다.

게다가 퓨처 모터스는 GM의 공장을 인수하며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권을 공략한다는 전략은 알고도 막기 힘들다.

최치우는 그 첫 걸음을 내딛었다.

제우스 S를 인도 받고 기뻐하는 고객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시동을 걸고 도로를 달리면 더더욱 만족할 것이다.

“대표님, 올림픽을 마치고 제주도에서 또 한 상 거하게 대접하겠습니다.”

“마다 할 수 없죠. 도지사님 댁의 진수성찬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무렴요. 제주일미가 사실 우리 집사람입니다.”

원성룡과 최치우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제주도를 휩쓰는 전기차 열풍이 머지않아 한반도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

대망의 8월이 찾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려 온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린다.

최치우는 국가 대표 선수단과 함께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개막식부터 100m 달리기 결선이 끝나는 대략 일주일 동안은 바르셀로나에 머물러야 한다.

다행히 중요한 일정이 겹치진 않았다.

지난달 성공적으로 제우스 S를 출시한 퓨처 모터스는 온라인 전시장과 체험관을 확대하며 순항 중이다.

국내와 미국에 체험관을 열었고, 내년에는 유럽과 중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절차를 밟아갔다.

아직은 판매 물량이 많지 않지만, 새로 인수한 GM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판도가 바뀔 것이다.

브라이언은 제우스 S의 뒤를 이을 후속 전기차 개발에 몰입했다.

천재 엔지니어답게 밥 먹고 잠 잘 때를 제외하면 하루 종일 도면만 보고 살았다.

소울 스톤 발전소 준공은 예정보다 조금 늦어졌다.

그런데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최치우가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오면 발전소 준공식을 할 수 있게 됐다.

공사 지연마저도 최치우에게 득이 되고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이 최치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차를 맞추고 컨디션을 끌어 올린 최치우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고, 동양인의 한계를 산산조각 내버릴 것이다.

동시에 최치우와 인연을 맺은 다른 종목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도록 힘을 줄 작정이었다.

깃발을 들고 입장하게 된 최치우는 사실상 국가 대표 선수단 전체의 주장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88 서울 올림픽에 버금가는 역대급 성적을 내고 싶었다.

선수촌에서 다양한 종목 선수들에게 비밀스러운 팁을 전수했기에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1주일 동안은 올림픽만 생각하겠어. 금메달이 질릴 때까지… 기적을 만들어 봐야지.’

남들은 모르는 최치우의 다짐이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출렁이게 만들 것이다.

황영조의 전설이 기념비로 세워진 바르셀로나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이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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