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여름을 향해>
퓨처 모터스가 GM의 공장을 인수한다.
공장 인수와 함께 생산직 직원들의 고용도 승계하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퍼져나간 뉴스는 하루 만에 미국 전역을 강타했다.
첫 번째 차량 출시를 앞둔 전기차 회사가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회사 공장을 인수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산업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GM뿐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그룹 등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기차 시대를 대비하지 못하면 그들도 공장을 넘겨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다른 소식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바로 퓨처 모터스가 GM의 공장 직원들까지 받아들였다는 뉴스다.
미국 국민들은 실직이라는 단어에 유독 민감하다.
국제 경기가 불황에 접어들었을 때, 수많은 기업과 공장이 미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탈출했다.
특히 자동차 등 제조업의 몰락이 치명적이었다.
늘어나는 불법 이민과 외국인 노동자, 폐업을 하거나 해외로 이전하는 공장,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 가장들.
세계를 이끄는 초강대국 미국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기업들도 미국 중부, 남부의 국민들에게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기술 혁신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전통적 기업을 붕괴시켜 직장을 빼앗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퓨처 모터스가 반전의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특히 대승적 결단을 내린 장본인은 한국인 CEO 최치우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은 예상 밖의 선택을 내린 최치우를 취재하기 위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실리콘밸리의 퓨처 모터스 본사 입구에 CNN, FOX NEWS 등 미국 방송국 카메라가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왜 GM 공장의 직원들까지 승계하기로 결정하셨습니까?”
“그들은 숙련된 기술자이기 때문입니다. GM에서 평생 차를 만든 노하우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최치우는 카메라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았다.
언론의 뜨거운 관심은 한국에서 이미 여러 번 체험하며 적응을 마쳤다.
그는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질문을 능숙하게 받아쳤다.
CEO가 아닌 헐리우드 스타처럼 여유로운 최치우의 모습에 카메라 감독들이 혀를 내둘렀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주로 중국이나 남미 같은 3세계에 공장을 짓습니다. 그런데 퓨처 모터스가 미국 내 공장을 인수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미국은 오랜 기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독일과 일본에 주도권을 내줬지만, 전기차 시대는 미국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겁니다. 전통적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펼치는 게 퓨처 모터스의 철학입니다.”
마치 준비한 것처럼 완벽한 대답이었다.
최치우는 지적할 구석이 없는 영어로 방송을 지켜보는 미국 국민들을 사로잡았다.
단순히 영어만 잘한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실리콘밸리를 얄밉게 바라보던 미국인들의 마음도 녹여 버렸다.
최치우는 어떤 정치인도 제시하지 못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미국이 다시 한번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는 말이기도 했다.
중국과 함께 미국은 자동차 브랜드의 격전지로 꼽힌다.
미국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자동차는 세계 시장에서도 잘 팔린다.
최치우의 발언으로 퓨처 모터스 이미지가 좋아지면 향후 미국에서 제우스 시리즈를 판매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습니다. 여름에 열릴 올림픽에 국가 대표로 출전하는데요, 어떤 성적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취재 주제와는 상관이 없지만 올림픽 질문이 나왔다.
그만큼 최치우가 100m 달리기 국가 대표로 출전하는 게 세계적인 화제였다.
최치우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금메달. 다른 건 관심 없습니다.”
“오오오-!”
순간 기자들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너무 당당하게 금메달을 말하는 최치우의 태도는 확실히 미국 스타일이었다.
겸손하고 내성적인 보통의 동양인들과는 다른 면모다.
“그럼 회의가 있어서 이만. 다음에 또 봐요.”
최치우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퓨처 모터스 사옥으로 들어갔다.
여러 대의 카메라는 끝까지 그의 뒷모습을 촬영했다.
방금 인터뷰는 주요 방송사들을 통해 미국 대륙 전역에 생중계됐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최치우 이름 세 글자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검색 순위 1위를 잡아먹었다.
퓨처 모터스와 제우스 S도 연관 검색어로 상위권에 노출됐다.
최치우는 고작 몇 분의 인터뷰로 미국 국민들에게 자신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광고 효과를 일으키며 퓨처 모터스 이미지를 끌어 올렸다.
요즘 말로 혼자서 하드 캐리를 한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퓨처 모터스 사옥 안에서는 브라이언이 최치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파이브를 한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대표님 인터뷰가 지금 난리입니다. 만약 제가 카메라 앞에 섰다면 얼어붙어서 말을 더듬었을 것 같아요.”
브라이언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천재 과학자인 그는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
새삼 최치우에게 CEO 자리를 넘긴 게 다행 같았다.
최치우는 퓨처 모터스의 얼굴 역할을 200% 수행하고 있었다.
사실 GM의 공장 직원들을 받아들이자는 결정도 최치우가 내린 것이다.
브라이언은 우려를 표했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잘한 결정이었다.
고용 승계를 보장 받은 GM 직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정적으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워낙 숙련된 베테랑 직원들이라 전기차 특성도 금방 이해할 것 같았다.
“GM 공장의 생산 목표는 월 10,000대로 잡고, 언론에도 그렇게 발표합시다.”
최치우는 브라이언과 나란히 걸으며 며칠 동안 고민한 내용을 알려줬다.
“대표님, 원래 그 공장에서는 월 50,000대 이상도 양산이 가능합니다.”
“나중에는 우리도 그 레벨까지 가야죠. 하지만 당장은 아닙니다. 10,000대도 충분한 물량이에요. 잔고장 없고 깔끔한 마감으로 제우스 S를 생산하는 게 우선입니다.”
“알겠습니다.”
브라이언은 최치우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는 리더십을 확실하게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간혹 생각이 달라도 최치우가 결정하면 일단 따르고 본다.
회사를 최치우에게 맡긴 이상 믿고 따라가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최치우의 결정은 퓨처 모터스의 고공비행을 이끌고 있었다.
“1년에 120,000대만 꾸준히 생산하면……. 생각보다 빨리 제우스 S의 후속 모델도 출시 할 수 있을 겁니다.”
최치우가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브라이언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만 믿고 달리겠습니다.”
“나도 달려야 되는데. 올림픽 트랙에서.”
“진짜 금메달 따실 생각이세요?”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면 못 쓰죠.”
최치우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미국 전역에 중계되는 뉴스 카메라 앞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선언했다.
지켜야 할 약속이 많지만,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인 계절로 기록될 올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
한국으로 돌아온 최치우는 국가 대표 소집에 응했다.
그는 선수촌에 상주하며 올림픽을 준비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한국 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일종의 특혜를 받는 셈이다.
대신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주기적으로 소집에 응하기로 했다.
국가 대표 소집에서는 기록을 점검하고, 코치들과 의견을 교환한다.
사실 최치우 입장에서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마음만 먹으면 인간의 한계를 훌쩍 초월하고도 남는데 기록 점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상태 감독도 최치우에게 딱히 조언을 하는 게 없었다.
기본적인 육상 자세를 가르쳐 주고 손을 놓았다.
최치우는 국가 대표 감독조차 터치할 수 없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치우는 국가 대표 소집에 성실히 참가했다.
국민들, 그리고 다른 선수들의 시선을 고려 할 필요가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정기적으로 선수촌에 들러 훈련을 받아야 알리바이가 쌓인다.
아무 훈련도 안 하고 갑자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모두 이상하게 생각 할 것이다.
이미 최치우는 온갖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고 있다.
수차례 도핑테스트를 받았지만, 여전히 그가 확인되지 않은 신기술을 쓴다고 음모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괜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종종 선수촌에 들러 훈련 기록을 남기는 게 낫다.
덕분에 다른 육상 선수들과도 어울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최치우를 경계하고 어렵게 생각했다.
운동선수 출신이 아닌, 세계적인 기업의 CEO라는 신분이 장벽이 됐다.
최치우가 깨트린 한국 신기록과 9초의 벽도 너무 높아 보였다.
국가 대표 육상 선수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최치우는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색해하는 선수들에게 음료수를 건넸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최치우가 굳이 다른 선수들과 친하게 지낼 이유는 없다.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아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는 게 육상선수 최치우의 마지막 여정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낮추며 스스럼없이 선수들에게 다가선 것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1년 내내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무공이라는 능력으로 국가 대표 자리를 차지한 미안함.
물론 최치우 덕분에 육상은 비인기 종목에서 국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관심 종목으로 거듭났다.
올림푸스에서 국내 육상 인프라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도 지속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또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다.
“컨디션은 좀 어때요?”
“날이 아직 덜 풀려서……. 따뜻해질수록 기록은 단축되고 있습니다.”
최치우와 함께 100m 달리기에 출전하게 된 우성용 선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페이스가 좋지 않았다.
최치우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힘을 살짝만 빼도 좋을 것 같은데.”
“네?”
우성용이 눈을 크게 떴다.
최치우는 모든 육상 이론을 파괴한 괴물이다.
이상태 감독도 최치우를 상전 모시듯 조심스럽게 대한다.
그런 사람이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국가 대표 마크를 단 우성용은 귀가 쫑긋해질 수밖에 없었다.
“성용 씨, 달릴 때 무게중심이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요. 본인은 모르겠지만.”
“정말요? 비디오로 분석해 봐도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딱히 말씀은 안 하셔서…….”
“의식적으로 왼발을 내딛을 때 힘을 조금 덜 쓸 수 있겠어요? 그렇게 몇 번만 해보고 기록이 똑같으면 내 말은 잊어버리고, 만약 조금 나아지는 거 같으면 다시 찾아와요.”
최치우는 우성용에게 결정적인 팁을 줬다.
같이 100m 달리기에 출전하지만 둘은 라이벌이 아니다.
9초 98의 기록을 세운 최치우가 올림픽 메달을 노린다면, 우성용은 장차 한국 육상을 이끌기 위해 무럭무럭 자라야 할 루키다.
최치우는 가능한 우성용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야 한국 육상이 최치우 이후로도 무시받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 수 있을 것이다.
우성용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빈 트랙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우성용이 코치를 세워두고 열심히 달렸다.
최치우가 말해준 방법대로 뛰어보는 것이다.
‘훨씬 낫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치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실전에서는 그 차이가 순위를 바꾼다.
1차 예선에서 탈락할지 모르는 우성용을 준결승이나 결승으로 이끌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우와앗-!”
달리기를 마치고, 기록을 확인한 우성용이 소리를 질렀다.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우성용을 쳐다봤다.
최치우는 그가 왜 소리를 질렀는지 알고 있었다.
무게중심을 바로잡아 기록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보법의 원리를 적용하면 내공 없이도 기록을 향상 시킬 수 있어.’
모든 운동의 기본은 균형이다.
올바른 무게중심으로 균형만 잘 잡으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최치우는 무림에서 배운 보법의 원리를 달리기에 적용시켰다.
자신처럼 무지막지한 근력을 폭발시킬 수 없는 보통 선수도 충분히 응용 가능한 원리였다.
“최 대표님! 아니, 최 선수님! 아니, 아니, 형님!”
우성용이 연달아 호칭을 고치며 최치우에게 달려왔다.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 가득 흥분과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형님이 가르쳐 준 대로 뛰었더니 0.2초나 단축했어요. 코치님도 완전 놀라시고!”
“나랑 운동할 때마다 하나씩 가르쳐 줄게요. 올림픽에서 같이 멋진 모습 보여줍시다.”
“네, 형님!”
우성용이 90도로 꾸벅 허리를 숙였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그를 쳐다봤다.
성큼 다가온 올림픽이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