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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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끝나기 전, 환경부에서는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 제우스 S를 인증해 줬다.
이제 정식으로 제우스 S를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인증 역시 무난히 통과되고 있었고, 양산 계획도 차근차근 진행되는 중이다.
예정대로 7월이면 제우스 S의 세계 최초 물량 1,000대가 제주도에 풀리게 된다.
온라인 전시장으로 판매 방식을 확정한 퓨처 모터스는 4월부터 사전 예약을 시작한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한국 소비자들이 제우스 S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최치우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국은 아이폰 등 최신형 제품이 출시될 때 2순위 국가로 밀려왔다.
실제로 아이폰을 빨리 사용하기 위해 미국이나 일본으로 여행을 가서 구매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는 빈정이 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제우스 S는 달랐다.
반대로 미국과 유럽, 일본의 소비자들이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전기차와는 완전히 다른, 럭셔리 스포츠카 형태의 제우스 S를 하루라도 빨리 타보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사실 수요만 따지면 미국과 유럽에서 훨씬 더 많이 팔릴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는 제주도와 맺은 약속을 지켰다.
막상 제우스 S를 구입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전 세계 최초 출시 국가가 대한민국이란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대표님, 반응이 아주 뜨거워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에요.”
홍보팀장이 상기 된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올림푸스가 한영 그룹의 인력을 빌려서 쓸 때부터 함께 고생해온 초창기 멤버다.
대리로 입사했지만 어느덧 올림푸스라는 글로벌 기업의 홍보팀을 이끄는 팀장이 됐다.
상당히 어린 나이에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최치우는 김지연 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체감하는 반응 말고, 수치가 중요합니다.”
“지난 1주일 동안 국내 포털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에서 제우스 S의 검색 빈도가 78% 증가했어요. 온라인 전시장 오픈 날짜와 사전 예약 날짜를 묻는 게시물도 26% 늘었습니다, 대표님.”
최치우는 데이터를 중시했다.
그가 경험했던 다른 차원에 비해 현대의 지구가 가장 앞서는 부분이 바로 데이터다.
두루뭉술한 감이 아닌 정확한 숫자를 믿어야 비즈니스를 발전시킬 수 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는 직감을 믿고 도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영역에서는 데이터를 중시하는 회사가 오래 살아남는다.
최치우는 CEO로서의 능력도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경영학과는 고사하고, 대학 학부도 졸업하지 않았지만 실전에서 깨달은 노하우가 더 무서운 법이다.
“환경부와 인증 싸움을 벌였던 게 홍보 효과를 일으킨 것 같군요.”
“저도 그렇게 보고 있어요, 대표님. 환경부 덕분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고, 수백억 원의 광고 효과를 유발한 것 같습니다.”
김지연 팀장이 싹싹하게 대답했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약간은 어리버리하던 그녀가 든든한 팀장이 된 것도, 환경부와의 싸움이 결과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준 것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보도자료 준비는 끝났고, 청담동과 서귀포 체험관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죠?”
“네!”
“좋아요. 내가 미국 출장 마치고 돌아오면 체험관부터 체크할게요.”
최치우가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제우스 S의 판매는 100% 온라인 전시장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신개념 전기차를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공간은 꼭 필요하다.
아직까지 전기차를 낯설게 생각하는 고객들과 접점을 늘려야 한다.
최치우는 제주도 서귀포와 서울 청담동에 체험관을 열기로 결정했다.
제주도는 퓨처 모터스와 MOU를 체결한 주요 지역이다.
게다가 서울의 부자들이 제주도 국제학교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트렌드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체험관을 열어야 했다.
서울 청담동은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이끄는 중심지다.
청담동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 몇 개월 뒤 대한민국 전체에서 유행하게 된다.
상위 1% 부자들을 비롯해 트렌드에 민감한 셀럽들은 청담동에 새로 오픈하는 샵을 놓치지 않는다.
벌써부터 화제인 퓨처 모터스의 체험관이 들어서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최치우는 마치 알파고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바둑을 두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수가 빛을 발하며 바둑판을 장악한다.
환경부와 대대적으로 전쟁을 벌인 것도 결국 신의 한 수가 됐다.
최치우를 건드리면 장관의 모가지도 날아간다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줬고, 동시에 제우스 S는 공짜로 수백억 원 가치의 광고를 한 셈이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판을 씹어 먹은 것처럼 최치우는 비즈니스 세계를 씹어 먹을 태세였다.
그는 이번 미국 출장에서도 몇 수 앞을 내다 본 신의 한 수를 보여줄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며 올림푸스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당분간 시사 경제 뉴스에서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 소식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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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개월, 아니 3개월 정도 남았군요.”
“네, 정말… 이런 날이 오기도 하네요.”
“기분이 어때요?”
최치우가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의 옆자리에는 퓨처 모터스의 브라이언이 앉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최치우는 반나절 동안 휴식을 취하고 브라이언과 함께 길을 나섰다.
리무진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브라이언은 떨리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3개월만 지나면 우리가 만든 첫 번째 전기차가 출시된다고 생각하니… 매일 밤 기분 좋은 꿈을 꾸느라 잠들기 힘들 정도입니다.”
“푹 자야 되는데, 브라이언은 할 일이 많아서. 바쁠수록 건강부터 챙겨요.”
“알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최치우는 진심으로 브라이언의 건강을 걱정했다.
퓨처 모터스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브라이언 머스크다.
그가 진심으로 최치우를 인정하고 따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완벽한 팀워크를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브라이언의 건강이 나빠져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 퓨처 모터스 주가도 폭락할지 모른다.
“브라이언의 건강에 10억 달러, 어쩌면 그 이상이 걸려 있다는 걸 잊지 마요.”
“명심하겠습니다.”
몸값이 1조 원 이상이라는데 기분 나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브라이언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를 넘기고 인수한 사람들이 이렇게 사이가 좋은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최치우와 브라이언 둘 다 당장의 이익보다 훨씬 더 큰 목표를 바라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양산 일정은 무리 없겠죠?”
“네, 현재 공장에서 한 달에 1,000대 정도는 무난할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 최고의 경호 에이전시를 고용하라고 했었는데, 계약은 끝났나요?”
“이틀 전에 사인을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터프한 경호원들이 우리 공장을 지키게 됐습니다.”
브라이언의 보고를 받은 최치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오메이슨은 집요한 세력이다.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최치우는 그들에게 연달아 어퍼컷을 날렸고, 덕분에 에릭 한센과 네오메이슨은 제법 잠잠해졌다.
그러나 어디서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
다시 한 공장에 불을 지를 수도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같은 수법에 또 당해줄 수는 없다.
한 번 속는 것은 속인 놈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그때부터는 속은 사람 잘못이 된다.
최치우는 캘리포니아 최고의 경호 에이전시만으로 안심하지 못했다.
“조만간 남아공에서 몇 명이 올 겁니다.”
“네?”
“비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경호원들을 통솔하고, 누가 쳐들어와도 우리 공장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죠.”
“하지만… 경호원들이 생판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할까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브라이언. 내가 부른 사람은 경호원보다 몇 배는 더 거친 아프리카 용병들을 휘어잡았으니까.”
최치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남아공에서 리키와 헤라클래스 대원 몇 명을 부를 작정이었다.
많이 부를 필요도 없다.
10명 안팎이면 충분하다.
일단 리키 혼자서 웬만한 침투 부대는 박살을 낼 수 있다.
200명 넘게 늘어난 헤라클래스는 아프리카 남부의 새로운 전설로 떠오르고 있었다.
레드 엑스를 섬멸시킨 이후 게릴라 반군 집단은 감히 올림푸스의 광산을 노릴 엄두를 못 냈다.
올림푸스를 건드리면 헤라클래스가 출동한다.
헤라클래스는 한번 출동하면 말이 안 통하는 무장단체다.
무조건 섬멸과 몰살만을 목표로 한다.
무법천지 아프리카에서 헤라클래스는 순식간에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로 각인 됐다.
그런 헤라클래스를 이끄는 리키가 퓨처 모터스 공장을 지키면 걱정할 게 없다.
‘첫 번째 물량 1,000대를 생산할 때까지만 리키를 실리콘밸리에 묶어두면 되겠어.’
최치우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하나 하나 따로 떼놓고 생각하면 어려운 문제 투성이다.
그러나 최치우의 인적 네트워크는 한국, 미국, 남아공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미국에서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남아공의 힘을 빌리고, 남아공본부의 문제는 한국에서 도와주면 된다.
앞으로 퓨처 모터스가 유럽 등 새로운 지역에 진출하게 되면 네트워크는 더욱 광범위해질 것이다.
그야말로 최치우의 손바닥 위에 전 세계를 올려놓고 게임을 즐기면 된다.
끼이이익-
그때 리무진이 멈춰섰다.
육중한 차체인 만큼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도 꽤 크게 들렸다.
최치우는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지 않았다.
쓸데없는 허례허식을 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치우는 실리콘밸리 스타일과 잘 맞았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의 눈앞에 엄청난 크기의 공장 건물이 보였다.
“내가 여기를 다 와보게 되다니…….”
브라이언이 입을 벌리고 탄성을 흘렸다.
최치우도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두 사람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회사인 GM의 공장을 찾아왔다.
단순히 견학을 하러 나온 게 아니다.
GM이 내놓은 공장을 인수하려고 온 것이다.
세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GM의 실적도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다.
한때 GM은 세계를 호령하며 미국의 경제 부흥을 이끌었던 주역이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에서는 일본차와 한국차에 밀리고, 럭셔리에서는 독일 차에 밀렸다.
전기차 기술에 대한 투자도 소홀히 했기에 미래 전망도 밝지 않았다.
여전히 판매 대수로는 세계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지금의 GM은 덩치만 큰 늙은 호랑이다.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 언제 쓰러질지 노호(老虎)가 GM이다.
최치우와 브라이언은 흔들리는 GM의 이빨 하나를 뽑으러 왔다.
GM은 당장의 실적 개선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공장을 내놓았다.
샌프란시스코와 LA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 인건비는 미국에서 가장 높다.
가뜩이나 어려운 GM이 굳이 공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동네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미국 정부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디트로이트 등 중부 지역 공장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퓨처 모터스는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곳에 공장이 필요했다.
대량 생산 설비를 갖춘 GM의 공장을 인수하면 서로 윈윈(win-win)이다.
더구나 신생 전기차 회사인 퓨처 모터스가 GM의 공장을 샀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적지 않다.
시대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공장을 인수했다는 뉴스가 터지면 퓨처 모터스의 주가는 또 다시 무섭게 오를 것 같았다.
관건은 가격과 직원 인수인계다.
현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GM의 생산 직원들을 어떻게 할지, 그리고 적정 가격으로 얼마를 제시할지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최치우는 공장을 시찰하며 GM 직원들의 불안한 표정을 눈여겨봤다.
GM은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공장이 매각되면 직원들 또한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생산직 직원들도 최치우가 누구인지, 브라이언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도 유명인사다.
만약 두 명이 공장을 사기로 결정하면 다들 생계가 막막해질지 모른다.
“브라이언.”
최치우가 브라이언에게 귓속말을 했다.
남들이 듣지 못하게 중요한 말을 전하려는 것이다.
“네.”
“여기 직원들을 다 고용합시다.”
“네?”
브라이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되면 인건비 지출이 어마어마하게 늘게 된다.
최치우는 브라이언이 놀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결코 순간의 감정만으로 결정을 내린 게 아니었다.
“고용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공장 가격을 낮추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퓨처 모터스는 희망을 주는 회사여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일반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변화하는 흐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최치우는 몇 수 앞을 내다보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브라이언도 뒤늦게 이해를 한 듯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치우는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국민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슈퍼스타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