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한판승>
환경부 장관은 올림푸스 홍보팀장이 그렇게 전화를 해도 피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화를 걸어 최치우를 만나겠다고 사정했다.
약속 시간을 잡아주지 않으면 올림푸스 건물 로비에서 진을 칠 기세였다.
올림푸스 홍보팀장은 그동안 묶은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걸 느끼며 보고를 올렸다.
최치우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다음 환경부 장관을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통 장관 정도 되는 사람들은 늦은 시간에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새벽 3시에 오라고 해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다.
강명원 국장의 기자회견이 전국을 강타하며 수습 불가능한 뉴스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의 외신들도 속보로 강명원 국장의 내부 폭로를 보도했다.
장관의 압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올림푸스가 추진하는 사업에 태클을 걸었다고 밝힌 강명원 국장은 용기 있는 내부 폭로자가 됐다.
화가 난 국민들은 청와대 온라인 청원을 통해 환경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건의를 쏟아냈다.
기자회견을 하고 고작 3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세상이 들끓고 있었다.
“정치인들이 그러면 그렇지. 기업 잘 되는 꼴을 못 보고 뭐라도 뜯어먹으려고 발목이나 잡고 말이야.”
“이참에 싹 갈아엎었으면 좋겠네. 썩은 놈들이 환경부 장관 한 놈뿐이겠는가?”
“25살밖에 안 된 젊은 청년이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우리나라를 알리고 있는데 도와주진 못할망정, 쯧쯧쯧.”
“대통령도 좋게 봤는데 영 실망이야. 어떻게 저런 사람을 환경부 장관 자리에 앉혔을까?”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마다 환경부 장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비난의 화살은 청와대로 뻗어가고 있었다.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정권을 1년도 안 남겨둔 불안한 상황이다.
게다가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유경민이 구치소에 들어가 레임덕이 시작되고 있었다.
흔들리는 청와대는 환경부 스캔들이라는 직격탄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그때 건물 1층 로비에서 올림푸스로 인터폰을 걸어왔다.
24시간 근무하는 경호팀에서 손님이 왔음을 알리려는 것이다.
최치우는 직원들이 퇴근하고 텅 빈 사무실에서 인터폰을 받았다.
“로비입니다. 실례지만…….”
“네, 올림푸스입니다. 우리 손님이니 보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환경부 장관 박병준이 수행원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달려왔다.
최치우는 사무실 불을 켜고 입구로 걸어 나갔다.
빌딩 한 층을 통째로 쓰는 넓은 사무실에 혼자 있지만 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직원들이 늘어나며 사무 기구가 공간을 채웠고, 무엇보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한강의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충만감을 주기 때문이다.
삐비빅-
이윽고 박병준 장관이 올림푸스 사무실 입구에 도착했다.
최치우는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줬다.
“오랜만입니다, 장관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더 무섭게 느껴질 것 같았다.
박병준 장관은 최치우를 보자마자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최 대표! 나 좀 살려주시오!”
“제가 언제 장관님을 죽이기라도 했습니까?”
“강명원 국장……. 최 대표가 움직였다는 거 알고 있소. 제발 좀 살려주시오.”
정말 급하긴 급한 상황 같았다.
장관으로서 체통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최치우는 박병준을 데리고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소파에 앉아서도 박병준 장관은 안절부절 가만있지를 못했다.
최치우는 느릿느릿 커피를 드립해서 놓아줬다.
“케냐 남부에서 소량만 생산되는 스페셜티 원두로 만들었습니다. 얼마 전 올림푸스 남아공 본부에서 보내준 겁니다.”
“최 대표.”
박병준 장관은 커피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공직자로서 생명이 경각에 달린 처지다.
아무리 귀한 커피라도 향이 코로 들어올 리 없었다.
“내 말 돌리지 않고 솔직히 부탁을 드리겠소. 청와대 지시로 전기차 인증과 발전소 조사를 지시한 것은 맞지만… 최 대표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지 않소? 부디 살려주시오.”
“저도 장관님에게 개인적 감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장관님은 선택을 했고, 어른이라면 마땅히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죠.”
“최 대표… 제발!”
박병준 장관이 덜컥 무릎을 꿇었다.
이로서 최치우가 임동혁에게 내뱉은 말이 실현됐다.
그는 열흘 안에 환경부 장관이 무릎 꿇고 싹싹 빌게 하겠다며 호언장담을 했었다.
정부 부처를 움직이는 장관도 최치우가 마음을 먹으면 꼼짝달싹할 수 없다.
박병준 장관은 돌이키기 힘든 선택을 내린 것이다.
최치우는 적에게 자비를 베푸는 성격이 아니다.
“장관님, 이대로 언론과 여론의 폭탄 세례를 맞으며 버티다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자진 사퇴 하며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겠습니까.”
“정말, 정말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너무 늦었습니다.”
최치우의 목소리에서 서릿발 같은 단호함이 느껴졌다.
사실은 박병준 장관도 알고 있었다.
강명원 국장의 폭로를 되돌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치우를 찾아온 것뿐이다.
최치우는 망연자실 넋이 나간 박병준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장관님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면 제가 청와대와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되오, 그것만은 아니 되오!”
박병준이 두 손을 내저었다.
환경부가 무리수를 둔 것은 순전히 유영조 대통령을 위해서였다.
박병준 장관의 능력은 보잘 것 없어도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은 진짜였다.
최치우는 박병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어차피 환경부는 여론의 반발 때문에 초토화될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겁을 줄 필요도 없다.
최치우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저도 유영조 대통령님을 존경합니다. 그래서 청와대와 직접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유경민 의원 때문에, 그리고 환경부 때문에 각을 세우게 됐지만… 청와대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이쯤에서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그게… 정말이오?”
“제가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습니까?”
박병준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최치우는 승리자다.
유경민을 추락시켰고, 환경부를 통한 청와대의 반격도 완벽하게 되갚아줬다.
굳이 거짓말로 박병준과 청와대를 방심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알겠소. 내 그리할 테니 여기서 멈춰주시오.”
곧이어 박병준 장관이 목을 떨구며 말했다.
이것으로 환경부를 내세운 청와대와 올림푸스의 전쟁이 끝났다.
잠깐 수세에 몰렸던 최치우는 한판승으로 게임을 뒤집었다.
박병준 장관이 물러나고, 전기차 인증과 발전소 준공은 예정대로 진행 될 것이다.
청와대도 최치우의 진심을 전해 듣고 경거망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면 유영조 대통령도 위험해질지 모른다.
최치우는 자신의 실력을 보이며 대통령을 최대한 배려했다.
여기까지가 마지막 선이다.
이 선을 넘으면 유영조 대통령과도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다.
“그럼 일어나겠소. 내가 최 대표한테 추태를… 보였소.”
“또 뵙겠습니다.”
최치우는 예의를 갖춰 박병준 장관을 배웅했다.
다시 혼자 남은 최치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모르게 입맛이 썼다.
패도(覇道)란 이렇게 외로운 것이다.
고독함을 견디며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는 수밖에 없다.
약한 마음을 먹으면 최치우 혼자만 다치는 게 아니다.
그를 믿고 인생을 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힘들어진다.
최치우는 현대에서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함께 싸우는 법을 배웠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독하고,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오죽하면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유영조 대통령을 상대로도 냉정하게 치명타를 날리겠는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소울 스톤 발전소와 제우스 S의 출시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TV 화면에서 입술이 바싹 마른 박병준 장관의 모습이 보였다.
기자회견을 위해 나온 그는 짤막하게 입장을 밝혔다.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부로 환경부 장관이라는 무거운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그 한 문장이 핵심이다.
나머지 입장은 전부 사족에 불과하다.
뉴스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패널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박병준 장관이 자진사퇴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압력을 행사해 올림푸스의 사업에 태클을 건 사실이 내부 폭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올림푸스가 환경부 장관을 날린 셈이다.
제우스 S 출시를 위한 전기차 인증은 3월 안에 통과될 것 같았다.
준공을 앞둔 소울 스톤 발전소의 실태 조사도 취소됐다.
적법한 절차대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굳이 실태 조사로 시간을 지연시킬 명분이 없었다.
국민들의 불같은 여론이 올림푸스를 떠받쳤다.
장관까지 물러난 마당이다.
동력을 상실한 환경부는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우웅- 우우웅-
TV 뉴스에서 박병준 장관의 사퇴 기자회견이 끝나자 최치우의 폰이 울렸다.
확인할 수 없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최치우는 기묘한 예감을 느끼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최 대표, 오랜만입니다.
“대통령님.”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유영조 대통령이었다.
수족 같은 박병준 장관이 사퇴하는 것을 지켜보고 최치우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박 장관을 통해 최 대표의 뜻은 잘 들었어요.
“그러셨군요.”
-이것으로 사실상 정권 교체가 확정 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지요.
유영조 대통령이 정권 교체를 인정했다.
유경민 의원이 구속됐고, 환경부 스캔들로 정부의 이미지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전세를 역전하기 힘들다.
최치우는 본인 손으로 유영조 대통령의 여당 정권을 끝내 버렸다.
“내년에 찾아뵙고 차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래요. 꼭 그럽시다, 우리.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올림푸스의 건승을 빌지요. 최 대표가 내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아들이니까. 그리 생각하겠어요.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전화를 끊은 최치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상 유영조 대통령이 항복 선언을 한 것이다.
정권 교체까지 인정했고, 최치우가 박병준 장관에게 전달한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는 쾌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여전히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유영조 대통령을 너무 완벽하게 꺾어버렸기 때문일까.
하지만 감상에 오래 빠져 있을 여유는 없다.
유영조 대통령의 당부처럼 최치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성(新星)으로 우뚝 섰다.
그가 흔들리면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이 흔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은 뒤를 돌아볼 때가 아니잖아. 앞만 보고 달리자.”
최치우는 자기 자신을 다독이며 각오를 되새겼다.
올해는 유독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전기차 인증이 통과되면 곧장 실리콘밸리에서 제우스 S 양산을 시작하고, 대규모 공장을 추가로 인수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과 소울 스톤 발전소도 여름에 몰려 있다.
최대의 장애물을 산산조각 박살 내며 넘었으니 탄탄대로를 질주할 일만 남았다.
앞만 보기로 작정한 최치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스피드로 달리며 양손 가득 수확을 할 계절이 도래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