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56화 (156/243)

# 156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루에 오직 한 테이블만 받는, 프라이버시를 완벽히 보장하는 비밀스러운 식당에서 최치우가 질문을 던졌다.

버튼을 눌러 부르지 않으면 서빙을 하는 직원들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한다.

이곳에서는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든 편하게 음식과 술을 즐기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넓은 대리석 테이블을 차지한 최치우의 표정은 심각했다.

맞은편에 앉은 문종인 검찰총장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졌지만, 최치우와 문종인 모두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럴듯한 자리가 필요했을 뿐, 편안한 마음으로 먹고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오래 침묵을 지키던 문종인 검찰총장이 입을 열었다.

최치우는 재촉하지 않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환경부를 위시한 현 정부 고위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문종인 총장이다.

“대통령이 직접 움직이는 것 같소.”

짐작은 했지만 문종인을 통해 확인하니 묵직하게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청와대군요. 그게 아니면 환경부가 저렇게 막 나갈 수는 없었겠죠.”

“1년도 안 남은 시한부 권력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아있는 권력 아니오. 게다가 청와대와 정부에서 유 대통령의 신망이 워낙 두터운 편이니 환경부 장관도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 같소.”

“유영조 대통령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직접 움직인다면 꽤 골치 아픈 싸움이 되겠군요.”

최치우는 유영조 대통령을 싫어하지 않았다.

환경부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는 게 확인 됐지만, 원망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서로를 존중하지만 가는 길이 달라졌을 뿐이다.

최치우가 여당 후보 유경민을 탈탈 털어버리면서 시작 된 싸움이다.

임기가 남은 대통령이 가만히 있길 바라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대통령이 나섰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퍼지고 있소.”

문종인도 다소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는 유경민과 정제국의 차기 대선 구도에서 최치우를 선택했다.

최치우가 원하는 대로 유경민을 작정하고 털었고, 자연스레 유영조 대통령과 갈라서게 됐다.

하지만 막상 자신을 임명한 현직 대통령이 움직이자 감정이 요동 칠 수밖에 없었다.

“우선 한 잔 하시죠. 음식도 술도 다 식겠습니다.”

“크흐음.”

문종인 검찰총장은 내키지 않았지만 최치우가 따르는 술을 받았다.

그도 최치우의 잔에 미지근하게 데워진 사케를 가득 따랐다.

최치우는 잔을 들고 차분하게 말했다.

“총장님, 우리는 이미 한 배를 탔습니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종인은 적극적으로 검찰을 움직였다.

대검 중수부 캐비넷을 활짝 열었고, 유경민과 홍문기의 모든 자료를 탈탈 털어 구속이라는 성과를 냈다.

물론 중수부 검찰들이 사냥개처럼 뛰어다닌 게 전적으로 문종인 총장 때문은 아니었다.

최치우가 유경민을 노린다는 소문이 돌았고, 오성그룹이 지원을 끊은 게 결정적이었다.

그래도 문종인 검찰총장은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최치우 때문이든, 아니면 정제국 때문이든 문종인이 청와대와 척을 지기로 결심했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최 대표를 믿고 주사위를 던졌으니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소. 그러니 대책을 마련해야지 않겠냐는 말이오.”

“건배부터 하는 건 어떻습니까.”

최치우는 여유롭게 행동했다.

문종인은 여우다.

서로 거래를 했을 뿐, 100%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렇기에 위기에 처했어도 완벽한 카리스마와 여유를 과시 할 필요가 있다.

최치우가 빈틈을 보이면 문종인 한 사람만 흔들리지 않고, 그의 휘하에 있는 검찰 조직이 불안에 빠질 것이다.

후욱-

최치우는 잔을 부딪치고, 사케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술이 들어가니 체온이 조금씩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준비한 게 있습니다.”

최치우가 품에서 USB 하나를 꺼냈다.

문종인 총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식탁 위에 놓인 USB를 쳐다봤다.

“뭐가 담겨있는 것이오?”

“환경부의 실세라고 불리는 국장, 실장들의 인사기록과 친인척 관계입니다.”

“아니, 그런 걸 어떻게 구했소?”

“방법이야 찾기 나름이죠.”

최치우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문종인 총장은 최치우의 웃음을 보며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나이와 지위, 경력을 떠나 최치우가 자신을 리드하는 윗사람이란 걸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다시피 장관과 차관은 언제든 잘릴 사람들입니다. 정권이 1년도 안 남은 지금, 부처의 핵심 공무원들이 장차관 눈치를 보겠습니까? 그들은 앞으로 오랫동안 같이 일해야 하는, 그리고 다음 정권에서 장관이나 차관이 될 가능성이 높은 실세들의 눈치를 살필 겁니다.”

“그래서 국장과 실장들의 기록을 정리하다니… 최 대표는 정말 젊은 사람 같지 않소. 평생을 검찰에서 보내며 정치권의 암투를 지켜본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역발상. 제가 늘 올림푸스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역발상?”

“환경부 장관을 움직이기 위해 윗선을 잡는다, 이게 누구나 다 하는 생각이겠죠. 하지만 청와대와 틀어진 이상 장관의 윗선을 낚아채긴 힘듭니다.”

“정확하오.”

“그럼 아래를 움직여야죠. 어차피 부처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건 공무원들입니다. 실세인 국장과 실장들의 멱살을 잡으면 공무원 조직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부 장관은 허수아비가 될 겁니다.”

최치우는 공무원 조직의 생리까지 꿰뚫고 작전을 준비했다.

임동혁을 통해 환경부 실세들의 리스트를 만들었고, 문종인 총장에게 자료를 건네며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가끔씩 장관이 힘을 못 쓰는 경우가 발생했다.

장관이 됐다고 해서 무조건 조직을 장악하는 게 아니다.

청와대의 개입이 지나치거나 일선 공무원들이 반발하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다.

“이제 좀 입맛이 도는 것 같소.”

“드시죠. 저도 배가 고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 대표와 같은 배를 타서 참 다행이오.”

“절대 침몰하지 않는 함선, 아니 항공모함이 되겠습니다.”

딱딱하던 분위기가 급격히 풀어졌다.

최치우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비로소 마음 놓고 산해진미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

“대체… 왜 이러십니까?”

중년 남성이 손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꿋꿋하게 질문을 하지만, 긴장한 티가 전신에서 풍겨져 나왔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평생 공무원으로 살아온 중년인의 눈앞에 엄청난 거물이 앉아있기 때문이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CEO인 최치우.

그는 대통령과도 종종 독대를 하는 사이라고 소문이 퍼져 있다.

강명원 국장은 환경부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에이스로 정평이 난 사람이다.

하지만 최치우 앞에서는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최치우가 굳이 내공을 뿜어내 무형의 힘으로 굴복시킬 필요도 없었다.

관료 사회의 공무원들은 상명하복에 익숙하다.

자신보다 상급자라고 생각되면 철저하게 고개를 숙인다.

게다가 최치우는 강명원 국장의 생명줄을 잡고 있다.

그동안 강명원 국장이 환경부 관할 업체에서 몰래 받은 리베이트와 접대 내역을 메일로 보냈기 때문이다.

메일을 읽은 강명원 국장은 눈알이 튀어나올 듯 충격을 받았다.

조용히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최치우의 제안을 거절 할 도리가 없었다.

“왜 이러는 것 같습니까?”

최치우가 강명원 국장에게 반문을 했다.

이러는 이유를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뜻이다.

강명원 국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최근 환경부에서 작정하고 올림푸스를 건드렸다.

전기차 인증 문제로 시비를 걸었고, 소울 스톤 발전소의 실태 조사까지 추진하며 시간 끌기에 돌입했다.

환경부의 태클은 다른 정부 부처에서도 화제가 됐다.

“혹시 환경부의 인증 문제 때문이라면 저는…….”

강명원 국장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러나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실무 레벨에서 전기차 인증과 발전소 실태 조사를 결재 한 사람이 바로 강명원이기 때문이다.

장관의 지시를 받고 총대를 멨지만, 실무 책임자는 강명원이었다.

그렇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어설프게 설명을 해봤자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강 국장님, 내가 보낸 메일을 언론사 기자에게 뿌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것만은 절대……!”

“기사가 터지고, 비리 공무원으로 물러나는 게 끝이 아니겠죠. 연금 혜택이 사라지는 건 약과일 겁니다.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 실형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최치우의 말은 괜한 협박이 아니었다.

강명원 역시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목숨줄을 잡힌 셈이다.

“후우우.”

그가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환경부 안에서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 했기에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잘나가는 고위 공무원들이 리베이트를 받는 건 비밀도 아니다.

업체에서도 접대와 리베이트를 제공한 공무원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적발되면 같이 처벌을 받고, 기껏 공들여 키운 공무원까지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정경유착이 심각한데 웬만해서 걸리지 않는 것이다.

검찰도 장관이나 차관급이 아닌 이상 굳이 공무원을 표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진 않는다.

그런데 강명원 국장은 자신이 감당 할 수 없는 게임에 끼어들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딱 맞아 떨어진 상황이다.

하필이면 최치우가 실세 공무원 리스트를 뽑아서 검찰총장에게 건넬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외통수에 걸렸으니 빠져나갈 희망도 없다.

최치우는 한숨만 푹푹 쉬는 강명원 국장에게 원하는 바를 말했다.

“강 국장님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습니다.”

“…….”

강명원은 입을 꾹 다물었지만, 귀를 쫑긋 세우는 기색이 보였다.

최치우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비위 공무원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매장 당하는 게 첫 번째 선택입니다. 그러나 최근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를 대상으로 환경부가 인증 및 실태 조사 방침을 밝힌 게 장관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양심선언을 한다면……. 그럼 접대도, 리베이트도 모두 없던 일이 되겠죠.”

강명원 국장이 고개를 들었다.

사실 선택지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일로 강명원 국장은 최치우에게 완전히 생명줄을 내어줬다.

그래도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비위 공무원으로 온 세상에 알려지는 것보다는 내부 폭로자가 되는 게 훨씬 낫다.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겠지만, 이판사판 가릴 처지가 아니다.

어차피 정권이 바뀌면 장관도 바뀐다.

최치우는 갈등하는 강명원 국장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정권이 바뀌면 강 국장님이 용기 있는 내부 폭로자로 재조명을 받지 않겠습니까? 당장은 환경부에서 따돌림을 당할지 모르지만, 다음 정부에서는 차관까지 승진하는 길이 열릴 수도 있겠죠.”

차관이라는 두 글자가 강명원 국장의 마음을 흔들었다.

장관은 정치적인 자리다.

반면 차관은 공무원이 닿을 수 있는 최고의 자리로 여겨진다.

실제로는 차관이 부처의 업무를 대부분 관할하고 있다.

최치우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강명원 국장은 확실히 넘어왔다.

조만간 기자들을 잔뜩 불러서 대국민 양심선언을 하게 될 것이다.

환경부 장관의 앞날은 정해져 있었다.

최치우는 또 한 번 손에 피를 묻히며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나갔다.

올림푸스를 위해 그는 기꺼이 패도(覇道)를 개척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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