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55화 (155/243)

# 155

<인증>

계절은 빠르게 변했다.

언제 찬바람이 쌩쌩 불었냐는 듯 봄기운이 살랑살랑 고개를 들고 있었다.

봄을 맞이한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 직원들은 연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냈다.

하지만 다들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소울 스톤 발전소 준공과 전기차 출시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도로 주행을 마친 퓨처 모터스는 양산형 제작에 돌입했다.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판매 될 제우스 S를 제작하고, 한 달에 최소 1,000대를 생산할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양산에 앞서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었다.

바로 각 국 정부의 인증이다.

퓨처 모터스는 제주도에 먼저 제우스 S 1,000대를 배정하기로 MOU를 체결하고 선금을 받았었다.

그렇기에 한국 정부의 인증을 받는 게 첫 번째 순서다.

최치우를 비롯해 임동혁과 브라이언은 이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기차는 배기가스 배출 등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에서 자유롭다.

환경부 인증 절차가 아무리 까다로워도 제우스 S가 걸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전기차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특징이 바로 친환경이다.

기름을 아예 쓰지 않기 때문에 환경부에서 트집을 잡을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전기차 인증을 막는 것.

그 어려운 일을 우리나라 환경부가 해낸 셈이다.

최치우는 환경부에서 날아온 통지문을 읽고 어이가 없었다.

황당함을 느낀 건 최치우 혼자만이 아니었다.

인증 관련 실무를 진행하던 퓨처 모터스와 올림푸스 직원들도 환경부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급하게 모인 임동혁과 백승수, 그리고 실리콘밸리에서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한 브라이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인증을 거부한 이유가…….”

최치우는 환경부에서 보낸 서류를 다시 읽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사유였다.

“좀 많이 황당합니다.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공해에 대한 대책 미비를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차에 시비를 걸 수 없으니 충전기를 걸고 넘어졌는데, 누가 봐도 억지입니다.”

임동혁과 백승수의 목소리에는 강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환경부가 의도적으로 훼방을 놓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시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나요?”

큼지막한 모니터 너머로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울렸다.

화상 회의지만, 그의 음성은 마치 여의도 본사 회의실에 앉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최치우는 화면 속 브라이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양산은 계획대로 진행합니다. 아직 7월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 전에 해결을 봐야죠.”

“최악의 경우 미국에 먼저 출시하는 것은…….”

“그건 곤란합니다. 제주도와 MOU를 체결하며 선금으로 1,000억 원을 받은 조건은 1차 물량 우선 배정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초도물량 1,000대는 반드시 제주도에 먼저 풀어야 됩니다.”

최치우의 말투는 단호했다.

장애물이 등장했다고 해서 대충 피해가려 요령을 피우면 더 큰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환경부가 왜 딴지를 거는지 파악하고,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비슷한 문제가 터져 발목을 잡을 것이다.

“임 이사님, 환경부 쪽 고위 인사와 접촉할 수 있습니까?”

“시도는 하고 있는데 올림푸스라고 하면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는 건 당연하지만, 무조건 전화를 끊을 정도로 민감하게 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그 정도면 장관이 직접 내부 단속을 한 것 같군요.”

“아마도… 생각 이상으로 내막이 복잡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계속 조심스레 접촉을 시도해 주세요. 그리고 백 팀장님.”

최치우가 이번에는 백승수를 불렀다.

정부를 상대로 중요한 일을 추진할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임동혁에게 집중된 업무는 한계선을 넘고 있고, 이시환은 남아공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백승수가 잠재력을 발휘하며 진가를 드러내야만 하는 시기였다.

더 이상 올림푸스의 안살림만 챙기는 역할에 만족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최치우의 최측근으로서 백승수의 존재감과 역량을 표출해야 한다.

“네, 대표님.”

최치우가 중요한 지시를 내릴 것을 예측했는지 백승수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수록 제주도청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네! 제가 오늘이라도 제주도로 내려가서……!”

“좋아요. 원성룡 지사를 만나서 내 뜻을 전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니, 알겠습니다.”

백승수는 막중한 책임과 기회를 부여받았다.

혼자 제주도로 내려가 원성룡 도지사라는 거물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최치우가 백승수를 믿고 힘을 실어준 셈이었다.

“환경부가 인증을 미루는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것, 아니면 제주도에 시비를 거는 것. 원성룡 지사를 만나면 둘 중 뭐가 정답인지 알 수 있겠죠.”

최치우는 이미 환경부의 속내를 비교적 정확히 유추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인증 거부 사태에도 그는 담담했다.

패닉에 빠지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리더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침착해야 하는 법이다.

속은 타들어가도 밖으로 드러내면 안 된다.

리더가 불안해하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어쩌면……. 아니다, 일단 지켜보자.’

최치우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제주도청을 다독이고, 누가 환경부를 움직이는지 알아내는 게 급하다.

막힘없이 술술 흘러가던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 앞에 까다로운 장애물이 툭 튀어나왔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최치우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역시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끝까지 땀을 흘려야 하는 것 같았다.

***

최치우는 환경부 장관과 직접 만나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쉽게 생각하다간 크게 낭패를 볼지 모른다.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장관을 만나 담판을 짓는 게 최선이다.

최치우와 환경부 장관은 모르는 사이가 아니다.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소울 스톤 발전소의 첫 삽을 뜨는 날, 두 사람은 함께 테이프를 커팅하며 환담을 나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환경부 장관은 올림푸스의 사업에 무척 호의적이었다.

대한민국 광명에 세계 최초로 소울 스톤 발전소를 짓게 된 것은 환경부 장관에게도 크나큰 치적이다.

숟가락만 얹은 셈이지만, 어쨌든 환경부도 업적을 세운 것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일단 장관을 만나기만 하면 문제가 풀릴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왔다.

환경부 장관은 올림푸스의 연락을 피하며 최치우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유력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최치우를 못 만나서 안달이었다.

최치우는 단순히 재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기업 CEO가 아니다.

전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슈퍼스타고,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최치우와 만나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정치인들은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 장관이 피하는 건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올림푸스의 홍보팀장은 장관 비서실에서 매번 부재중이라 밝힌다며 분을 삼키지 못했다.

부재중이 아닌 게 뻔한데 거짓말도 한두 번이지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만약 최치우가 직접 환경부 장관 집무실로 찾아가면 만남이 성사될 수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최치우의 행차를 무시할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억지로 만나봐야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그 와중에 제주도에서는 희소식인지 모를 연락이 올라왔다.

최치우를 대신해 제주도로 내려간 백승수는 원성룡 지사를 비롯한 제주도청 사람들과 우애를 나눴다.

인증이 지연되어도 제주도에 우선 물량을 배정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약속한 것이다.

제주도청도 전기차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환경부에서 태클을 걸었지만, 주요 관광지마다 제우스 S를 위한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려고 입지 선정을 마쳤다.

환경부에서 인증만 해주면 곧바로 충전소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모든 절차가 환경부 하나 때문에 막힌 것이다.

원성룡 지사는 본인이 환경부와 척을 질 일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 소속이지만 정치색이 뚜렷하지 않은 중도적 인물로 유명하다.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정제국 의원과도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유영조 대통령과 여러 현안을 협의하며 좋은 그림을 종종 연출했었다.

환경부가 느닷없이 원성룡 지사를 타겟으로 삼고 인증을 미룰 확률은 낮았다.

결국 올림푸스, 그리고 최치우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장관이 계속해서 연락을 피하는 것만 봐도 의도는 명확하다.

환경부의 속내를 알았으면 그에 걸맞은 대처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직접 전화를 걸어버릴까……. 내 전화까지 안 받을 만큼 세게 나오진 못할 텐데.”

최치우가 손가락으로 대표실 책상을 두드리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장관 집무실까지 찾아가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

그러나 전화라면 한 번쯤 걸어볼 만하다.

최소한 환경부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이유라도 알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래, 해보자.”

최치우가 결심을 굳혔다.

그는 폰을 꺼내 주소록을 뒤졌다.

환경부로 백날 전화를 걸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장관이 압박을 느끼게 하려면 개인 전화로 연락을 해야 한다.

다행히 소울 스톤 발전소 기공식에서 명함을 교환하고 개인 번호를 주고받았다.

“번호가 바뀌진 않았겠지.”

최치우는 어떤 말로 환경부 장관에게 거부할 수 없는 압박을 가할지 고민했다.

보통 거물급 정치인들은 개인 번호를 잘 바꾸지 않는다.

대외적으로 번호를 공개할 일도 거의 없고, 20년 전부터 한 번호만 쓰며 쌓은 네트워크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스윽-

최치우가 손가락을 움직여 통화 버튼을 누르려 했다.

그런데 마치 타이밍을 맞춘 듯 누군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대표님!”

임동혁의 목소리였다.

톤이 올라간 음성은 제법 다급하게 들렸다.

최치우는 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들어오세요.”

“대표님, 공문이 날아왔습니다.”

임동혁의 얼굴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최치우 앞이라서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최치우가 없었다면 손에 든 공문을 갈기갈기 찢었을지 모른다.

“무슨 일입니까?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환경부에서 보낸 새로운 공문입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전기차 인증 문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환경부에서 공문을 또 보낸 것이다.

최치우는 공문을 넘겨받아 빠르게 읽었다.

“이거 환경부가 우리와 전쟁을 하자는 선전포고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그의 얼굴도 임동혁 못지않게 화난 기색으로 물들었다.

임동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완공을 앞둔 소울 스톤 발전소에 대한 실태 조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환경부의 공문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소울 스톤 발전소가 절차대로 지어지고 있는지, 하자는 없는지 이제 와서 실태 조사를 펼치겠다는 것이다.

발전소 완공을 앞두고 환경부가 생떼를 쓰는 거나 다름없다.

전기차에 이어 소울 스톤 발전소까지, 환경부의 권한을 마구잡이 휘두르며 노골적으로 올림푸스를 괴롭힐 모양이다.

최치우는 다 읽은 공문을 한 손으로 구겼다.

“한번 해봅시다. 열흘 안에 환경부 장관이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빌게 할 겁니다.”

올림푸스가 환경부의 선전포고를 받아들였다.

꽃이 만개하는 아름다운 계절 봄, 올림푸스는 또 다시 피비린내 가득한 싸움을 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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