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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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됐다.
벌써 새해의 첫 달이 지나간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토로한다.
1월까지는 이제 시작이라는 기분이 남아 있다.
하지만 2월부터는 잠깐 망설이면 금방 여름이 올 거라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 2월은 사람들이 새해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대충 결판이 나는 달이다.
1월에는 헬스클럽이 신규 등록자로 가득 찬다.
그러나 2월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헬스장이 텅텅 비는 경우가 많다.
1월의 결심을 2월까지 지속하는 사람은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2월은 한 해 농사를 예측할 수 있는 고비인 셈이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차분한 마음으로 2월을 보내고 있었다.
6월에는 광명의 소울 스톤 발전소가 준공되고, 7월에는 제우스 S 초기 물량 1,000대가 제주도에 풀린다.
두 가지 굵직한 타임라인을 지키기 위해 직원들은 벌써부터 전투 모드였다.
하지만 최치우 개인적으로는 2월부터 직접적인 성과를 보고 있었다.
그는 올림픽에 출전할 100m 달리기 국가 대표로 선발이 됐다.
선수촌에 입소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해도 되는 사상 초유의 특혜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다.
사업적인 이유,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로 제거하려 마음먹은 현기 자동차 홍문기 부회장의 1심 판결이 나왔다.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구형보다 선고 형량이 낮아진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거의 모든 재판에서 구형은 기준점이 될 뿐, 실제 형량은 그보다 낮다.
재판부가 예상보다 빨리 1심 판결을 내렸고,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했다는 게 키포인트다.
재벌 2세, 실질적인 대기업 오너에게 내려진 형량치고는 무척 엄한 편이었다.
최치우는 쾌재를 부르며 속으로 박수를 쳤다.
문종인 검찰총장은 줄을 확실하게 잡았다.
누가 미래의 권력이 될지 눈치를 보지 않고, 최치우라는 튼튼한 동아줄을 꽉 잡은 것이다.
홍문기의 구속과 실형 선고로 현기 자동차 주식이 하한가를 쳤다.
물론 홍문기 부회장은 항소를 통해 집행유예를 받아내려 총력을 다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2심 판결이 나려면 최소 몇 개월은 더 걸린다.
2심에서 집행유예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동안 현기 자동차는 후계 주도권 다툼이 재발해 뒤숭숭해질 것이다.
신사업 동력도 상실되고, 퓨처 모터스의 한국 진출을 견제할 겨를도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남은 타깃은 유경민이다.
압수 수색 등 절차를 거친 검찰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장고 끝에 구속을 승인했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는 게 주요한 구속 사유였다.
유경민이 구속되면서 정계가 크게 술렁거렸다.
대선을 1년도 안 남겨둔 시점에서 여당의 유력 후보가 포승줄에 묶였기 때문이다.
구속이 됐다고 해서 무조건 유죄 판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구속적 부심도 시도할 수 있고, 1심에서 무죄나 100만 원 이하 벌금형이 나올 경우 대선 출마가 가능하다.
하지만 구속이 된 순간, 아니 압수 수색을 받은 시점부터 유경민의 지지율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졌다.
극적으로 완전 무죄를 받지 않는 이상 두 번 다시 여론조사 1위 후보로 올라서긴 힘들 것 같았다.
대선 후보를 잃어버린 여당에서는 부랴부랴 다른 선수를 찾느라 분주해졌다.
반면 야당의 정제국은 느긋했다.
신중한 논평을 내놓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치는 예측할 수 없는 생물이지만, 정제국이 당선되어 정권 교체를 이룰 확률이 어느 때보다 높아 보였다.
홍문기의 실형과 유경민의 구속.
최치우는 재계와 정계를 충격에 빠트린 두 사건을 조종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서로를 깊이 존중하는 유영조 대통령과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까지 내린 결단이 먹혔다.
결과적으로 25살 청년 최치우가 대한민국을 크게 움직인 것이다.
그는 올림푸스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장애물 두 개를 치웠다.
미래까지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일찍 제거하며 존재감도 과시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최치우의 입김이 이토록 강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흉흉한 소식이 전국을 강타한 2월, 최치우는 남몰래 축제를 열어도 될 것 같았다.
***
매주 한 번, 최치우는 올림푸스 직원들과 티타임을 가진다.
여의도 본사의 규모가 커지고, 직원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만든 문화다.
이제 여의도에만 200명 가까운 인원이 상주하고 있다.
자칫하면 직장 생활 내내 최치우와 말 한 마디 못 해보는 직원도 생길 수 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로켓이기 때문이다.
최치우가 소수 정예를 추구한다고 해도 꾸준히 규모가 커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가능한 많은 직원들과 소통하며 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직원이 2,000명이 되면 개별 티타임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매주 10명씩 새로운 직원들과 티타임 간담회를 나누면서 얻는 유익이 적지 않았다.
직원들 관점에서 바라보는 회사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격의 없는 소통으로 팀워크를 다질 수 있다.
올림푸스 직원들은 거의, 아니 전부가 최치우의 열렬한 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치우라는 슈퍼스타를 바라보고 함께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밤샘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직원들이니 최치우와의 티타임은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됐다.
선망의 대상인 최치우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일이었다.
“사이트는 어땠어요?”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최치우가 올림푸스의 현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가장 어려 보이는 여직원이 먼저 대답했다.
“다른 판매 사이트와 달리 디자인이 직관적이라서 쓰기 편했어요. 대신 너무 심심해 보이기도 했어요.”
“PC로 접속했죠?”
“네? 네, 대표님.”
“모바일 페이지로 보면 화면이 비어보이진 않을 겁니다. 일부러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한 건 이용자의 80% 이상이 모바일로 접속할 것이기 때문이죠.”
최치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여직원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막내급 직원과 올림푸스를 수십조 가치로 키워낸 창업주.
다른 회사 같으면 두 사람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올림푸스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10명의 직원들은 최치우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를 동경하고, 또 존경하지만 수평적인 기업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올림푸스는 상명하달 의사소통과 효율성이 중요한 제조업 회사가 아니다.
창의성을 기반으로 세상에 없던 가치를 찾아내는 회사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창업 초창기부터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도입하려 애썼다.
실리콘밸리를 다녀오고, 퓨처 모터스의 문화를 경험한 이후 확신은 더 강해졌다.
최대한의 자유와 최대한의 책임을 동시에 주는 게 정답인 것 같았다.
자유는 적게 주고 책임을 무겁게 하거나 반대로 책임 없는 자유를 주면 회사가 망가진다.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직원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되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과감하게 해고한다.
올림푸스도 그만한 역량을 갖춘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표님, 사람들이 집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재산이 차인데 정말 온라인 구매를 할까요?”
이번에는 다른 직원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주제는 똑같았다.
올림푸스에서 만든 온라인 전시장이었다.
퓨처 모터스는 다른 자동차 회사처럼 오프라인 전시장을 무작정 늘리지 않을 것이다.
세계 각 국의 주요 도시에 최소한의 센터만 지을 계획이었다.
대신 고객들은 온라인 전시장을 통해 차량을 확인하고, 원하는 옵션을 넣어 제우스 S를 구매할 수 있다.
퓨처 모터스의 온라인 전시장인 웹 사이트와 모바일 페이지, 어플리케이션은 다름 아닌 올림푸스에서 개발했다.
최근 올림푸스 내부에서 1차 개발을 마치고 베타 테스트를 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티타임 시간에도 온라인 전시장이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들도 온라인 전시장이 있지만, 대부분 오프라인에서 딜러를 만나 상담을 받고 차를 구매하죠.”
“저도 차를 살 때 어떤 딜러를 만나느냐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맞아요. 우리의 온라인 전시장은 딜러라는 연결 고리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최치우는 순순히 단점을 인정했다.
직원들이라고 해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아니다.
모두 어느 회사에서도 탐내는 훌륭한 인재들이었다.
그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올림푸스는 계속 발전하기 힘들다.
하지만 선택을 내리는 것은 최치우의 몫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를 바꿀 새로운 발명품입니다. 그렇다면 전기차를 구매하는 방식도 예전과는 달라져야죠. 다들 알다시피 우리도 샌프란시스코, LA, 뉴욕, 그리고 서울에 오프라인 전시장을 열 계획입니다. 그런데 판매는 무조건 온라인 전시장에서만 가능하도록 만든 이유가 뭘까요?”
“퓨처 모터스와 제우스의 특별한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서인가요?”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만, 본질적으로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소비자를 따라가는 회사가 아닌, 소비자를 따라오게 만드는 회사가 돼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치우의 말이 직원들 사이에 파문을 일으켰다.
오늘 티타임에 나온 10명은 대부분 홍보와 마케팅 부서 소속이다.
그들은 언제나 고객 중심적 사고를 해왔다.
그게 현대 마케팅의 기본 철학이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소비자를 따라오게 만든다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신 한번 따라온 소비자는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애플이 아무리 불편하고 비싸도 팬덤은 흔들리지 않고 더 강해집니다. 애플은 소비자에게 맞춰주지 않습니다. 소비자를 애플에게 적응시킵니다. 퓨처 모터스의 제우스가 가야 할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낯설고 어려운, 그리고 충전 등 불편한 요소가 많은 전기차는 아직까지 불친절한 자동차입니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고객을 따라가면 망할 겁니다. 차라리 판매부터 100%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자를 이끌어야 합니다.”
“새로운 자동차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고객들에게…….”
막내 여직원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최치우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캐치했다.
그야말로 자신이 딱 하고 싶던 말이었다.
“바로 그거죠! 제우스 S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겁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자동차를 샀으니까, 고객 자신도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겠죠. 그 자부심이 제우스에 대한 열광적 팬심이 되고, 애플빠처럼 제우스빠가 생기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여러분의 역할입니다.”
“와아…….”
잔잔한 파문이 직원들의 마음을 거세게 흔들었다.
최치우는 마케팅을 전공한 직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역발상.
말은 쉽지만 아무나 못 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생각을 깨고, 고정관념을 허무는 감각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부단히 노력하며 센스를 갈고 닦아야 한다.
최치우는 티타임을 이용해 온라인 전시장에 대한 의견을 듣고, 홍보팀 직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오늘 받은 자극을 잊지 않고 노력하는 직원들은 한 단계 성장 할 것이다.
최치우는 단순히 수십 조 가치의 회사를 이뤘다고 존경 받는 게 아니었다.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럴 때마다 매번 비전과 영감을 주기에 절대적 지지를 받는 것이다.
“그럼 우리 다음에 또 차 한잔합시다. 궁금한 거, 또는 말할 거 있는 사람은 언제든 대표실 문 두드리세요.”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티타임이 끝났다.
최치우는 대표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방금 전까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온라인 전시장 메인 화면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서인지 예전에 보이지 않던 자잘한 단점이 눈에 띄었다.
“전체 디자인은 미니멀하게 유지하면서… 조금 더 재미난 장치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을 필요가 있어. 당장 제우스 S를 사지 않는 사람들도 온라인 전시장에서 놀 수 있도록.”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혼자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다.
최치우는 직원들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온라인 전시장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었다.
온라인 전시장이 완성되면 곧장 예약 판매를 시작한다.
100% 온라인 판매라는 혁명이 또 한 번 세상을 강타하게 될 것이다.
2월이 지나고, 3월이 오면 언제 추웠냐는 듯 날씨는 금방 풀리게 마련이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올림푸스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게 될 것 같았다.
가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봄과 여름의 결실로 시가총액 100조를 돌파한다.
최치우는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