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52화 (152/243)

# 152

<제우스>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날아가는 내내 최치우는 설렘을 느꼈다.

마치 장거리 연애를 하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비행기를 탄 기분이었다.

물론 미국에 숨겨둔 여자 같은 건 없다.

그럼에도 최치우가 설렘을 느낀 이유는 따로 있었다.

퓨처 모터스에서 개발한 첫 번째 전기차의 테스트 드라이브를 하러 날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프로토 타입이지만, 몇 번의 실제 도로 주행과 보완 작업을 거치면 테스트가 끝난다.

머지않아 제주도를 비롯해 전세계에 팔려나갈 전기차가 완성되는 것이다.

최치우는 몇몇 엔지니어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보다 먼저 실제 도로 주행을 하게 됐다.

전기차 산업을 지키기 위해 네오메이슨과 맞서 싸우며 노력했던 결실을 맺은 셈이다.

“일반 자동차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겠지?”

최치우는 전기차의 특성에 대해 제법 공부를 했다.

T 모터스를 인수해 퓨처 모터스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세계 최고의 전기차 기술자로 손꼽히는 브라이언과 대화를 나누려면 기본 지식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옛말은 어느 분야에나 진리로 통한다.

최치우는 그동안 퓨처 모터스로부터 1호 전기차의 내외장 디자인, 성능, 주행질감 등 모든 부분이 꼼꼼히 기록 된 보고서를 받았다.

이제 머릿속 지식을 몸으로 체화시키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이윽고 그는 널찍한 퍼스트클래스 좌석에서 편안한 비행을 끝내고 공항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는 브라이언이 직접 나와 있었다.

최치우는 퓨처 모터스의 최대주주이자 모기업 오너다.

곧 공식적인 CEO 직위도 승계하게 될 예정이고, 브라이언은 CTO이자 대주주로 기술 개발에 집중 할 계획이었다.

이 정도 사이면 공항으로 퓨처 모터스의 임원을 보내는 게 관례다.

그런데 브라이언이 직접 나왔다는 건 그만큼 최치우를 예우한다는 뜻이다.

최치우는 퓨처 모터스에서 단순한 투자자로 여겨지지 않았다.

퓨처 모터스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구세주로 인정받았다.

제주도를 다녀오며 브라이언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 운명 공동체가 됐음을 확인했다.

회사를 인수하는 것보다 그들의 마음을 사는 게 훨씬 힘든 일이다.

최치우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렇기에 공항 입국 카운터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브라이언이 손을 번쩍 들고 환영을 하는 것이다.

“대표님, 치우!”

브라이언은 공식적인 호칭과 최치우의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신입 직원도 대표의 이름을 자유롭게 부른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오늘 당장 해고 통보를 받지만, 평상시 직장 문화는 상당히 수평적이다.

철저한 책임제를 전제로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웰컴 백 투 샌프란시스코!”

“하하, 많이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아니에요. 비행기가 제시간에 도착해서 얼마 안 기다렸습니다.”

최치우와 브라이언이 가볍게 포옹을 했다.

제주도지사를 만나고 돌아오며 부쩍 친해진 두 사람은 밀린 이야기를 쏟아냈다.

평소에도 매일 전화와 메신저로 의견을 주고받지만, 역시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 못하다.

최치우는 브라이언과 함께 리무진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는 호텔에 경유하지 않고 곧장 퓨처 모터스 공장으로 갈 예정이었다.

한국에서 들고 온 캐리어는 다른 직원이 챙겨 호텔에 가져다 놓을 것이다.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며 편하게 날아왔기에 비행 후유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뿐한 몸 상태로 일정을 시작하는데 무리가 전혀 없다.

사실 피곤함을 느껴도 30분 정도 조용한 곳에서 운기조식을 하면 멀쩡해진다.

최치우의 체력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브라이언과 다른 직원들은 최치우를 한층 더 대단하게 생각했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왔어도 곧바로 공장으로 향하는 열정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주 놀라게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글쎄요.”

최치우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는 브라이언을 놀려주고 싶었다.

분명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최치우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냉정하고 깐깐하게 평가해야 한다.

전기차가 도로를 주행한다는 사실에 감동하면 곤란하다.

소비자들은 기술 발전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기존의 자동차보다 더 나은 점이 있어야만 돈을 쓰고 전기차를 살 것이다.

최치우는 보수적인 소비자 입장으로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를 테스트 할 생각이었다.

“브라이언, 내가 서울에서 타는 차가 뭔지 알고 있습니까?”

“람보르기니? 페라리?”

“아닙니다.”

“그럼 벤틀리 아니세요?”

“영국차는 맞는데…….”

“아하, 롤스로이스를 타시네요.”

최치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슈퍼카로 언급되는 여러 브랜드가 있지만, 롤스로이스는 모두 한 수 위로 인정하는 브랜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고객 한 명을 위해 맞춤형으로 설계하는 커스텀 메이드가 롤스로이스의 진수다.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비단결 위를 흐르는 듯 럭셔리한 승차감도 다른 브랜드에서는 흉내 낼 수 없다.

“롤스로이스 오너도 만족시킬 수 있는 차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치우의 말은 사뭇 의미심장했다.

자신만만하던 브라이언도 긴장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는 전기차로 도로 주행에 성공했다며 칭찬 해줄 위인이 아니다.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제주도와 체결한 MOU마저 파기 할 수 있다.

어설픈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보다 손해를 감수해도 완벽한 제품을 출시하는 게 낫다.

그래야만 퓨처 모터스라는 브랜드가 벤츠나 BMW, 나아가서 페라리와 롤스로이스도 이길 수 있다.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와는 특성이 다르지만… 어디에 내놔도 감탄을 받게끔 준비했습니다.”

침을 꿀꺽 삼킨 브라이언이 다시 자신감을 내비쳤다.

긴장이 되어도 이제 와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의문의 화재 사고에도 불구하고 전 직원이 힘을 합쳐 완성차를 다시 개발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인생이 녹아있는 전기차로 반드시 최치우를 만족시킬 각오였다.

“좋아요. 더 기다리기 힘드네요.”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빠져나온 리무진은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팔로알토를 지나 외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한국과는 확연하게 다른 풍경이 묘한 감상을 불러 일으켰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은 서울 못지않게 복잡한 도심이다.

하지만 교외로 빠져나오면 시골 마을이나 다름없다.

세계 혁신의 최첨단을 달리는 실리콘밸리도 깔끔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같다.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싸고 교육 수준이 높은 시골 마을이지만, 대도시와는 다른 풍경과 여유로운 정서가 느껴졌다.

‘이런 도시를 만들고 싶다.’

최치우는 자주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새로운 꿈이 싹트는 것 같았다.

평화롭지만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혁신이 일어나는 스마트 도시 건설.

아직은 꿈으로 남겨둬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도시 생태계를 직접 조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남들은 10조 원이 넘는 자산을 이뤘으면 더 이상 꿈이 없을 거라 말한다.

하지만 최치우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의 꿈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최치우의 꿈이 커지는 만큼, 세상은 더 빨리 바뀌게 될 것이다.

***

스르르륵-

퓨처 모터스 직원들이 검은색 베일을 벗겼다.

보통 언베일링 행사는 신차를 처음 공개할 때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실리콘밸리로 날아온 최치우를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짝짝짝짝짝!

브라이언과 임원들, 그리고 개발 각 파트를 책임진 직원들이 박수를 쳤다.

최치우도 함께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네오메이슨의 조직적인 음모, 그리고 공장 화재까지 온갖 역경을 딛고 재탄생한 1호 전기차다.

양산형에 가장 근접한 모델을 처음 보게 됐으니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치우는 억지로 감동을 눌렀다.

아직은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니다.

그는 1호 전기차에 다가가 구석구석을 천천히 살폈다.

“디자인은… 아주 좋군요.”

최치우의 입에서 칭찬이 나왔다.

그러자 디자인 파트를 책임진 직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만하면 람보르기니나 페라리처럼 너무 튀지 않고, 또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스포츠카처럼 너무 밋밋하지도 않고. 전기차만의 고유한 개성을 잘 살린 것 같습니다.”

최치우는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직접 돈을 써서 차를 살 수 있는 소비자다.

그는 임동혁 때문에 페라리, 람보르기니, 맥라렌, 애스턴 마틴 등 각종 슈퍼카와 스포츠카를 질리도록 봤다.

퓨처 모터스의 첫 번째 전기차는 럭셔리와 스포츠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의 일반 자동차 회사들도 앞 다퉈 보급형 전기차를 출시하고 있다.

실용성에 주안을 둔, 경차와 비슷한 디자인의 전기차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퓨처 모터스는 달라야 했다.

나중에는 보급형 모델을 확대하겠지만, 우선 눈길을 잡아끄는 럭셔리 스포츠 전기차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최치우는 마진을 포기하더라도 매끈한 디자인과 럭셔리한 소재를 주문했다.

세련된 사람들, 부자들, 우리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이 전기차를 타야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뀐다.

보통 사람들이 전기차를 타고 싶은 것으로 인식하면 그때부터 본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벤츠 S클래스를 꿈꾸는 사람들이 C클래스와 A클래스를 구매하며 판매 볼륨을 떠받친다.

전기차도 마찬가지 원리를 적용 할 수 있다.

럭셔리 스포츠 전기차가 이미지를 선도하면 점차 보급형 전기차로 시장이 확대 될 것 같았다.

“대표님처럼 롤스로이스를 타는 고객도, 또 벤츠와 BMW에 익숙한 고객도 거부감 없이 전기차를 탈 수 있도록 외부 디자인과 인테리어 소재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브라이언이 상기 된 표정으로 말했다.

최치우에게 디자인 칭찬을 듣고 한껏 고무 된 눈치였다.

“핵심 기능과 옵션들도 설명해주세요.”

“네, 운전석에 앉아주세요!”

최치우는 운전석에 탔고, 브라이언은 조수석에 자리를 잡았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고급스럽지만, 버튼과 내부 화면은 약간 달랐다.

특히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커다란 태블릿 PC를 통째로 박아 넣은 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게 브라이언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는 대형 모니터군요.”

“그렇습니다. 운전자들은 차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확실히 차별화 되는, 그러면서 더 스마트하고 편리한 기능을 제공하려 했습니다.”

“버튼에 익숙해진 운전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까요?”

“처음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로 구동되는 것 외에 다른 차별점이 없다면, 고객들이 굳이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대형 화면을 이용하면 열선을 키고, 에어컨을 트는 것뿐 아니라 사무실 컴퓨터를 차 안에서도 쓸 수 있게 됩니다. 나중에는 자율주행 기술과도 접목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편리성을 다소 포기하는 대신 차별화와 스마트함을, 그리고 미래 기술과의 연결 고리까지…….”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던 최치우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분야는 다르지만, 브라이언과 내가 비슷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란 걸 다시 확인하게 됐습니다.”

“네!”

이번에는 인테리어, 특히 대형 화면의 인터페이스를 개발한 직원들이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질렀다.

최치우는 돌아가며 하나씩 전기차의 기능을 점검했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주행 성능만 괜찮으면 1억이라는 가격을 붙여도 부끄럽지 않은 자동차다.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디자인과 럭셔리한 인테리어, 최첨단 기술에 전기 엔진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1억이 저렴하게 느껴졌다.

“도로에서 달려봅시다.”

“다시 시동을 걸면 됩니다.”

최치우는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계기판과 내부 모니터 화면에 불이 들어올 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엔진 소음과 진동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전기차의 특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체험하니 놀라웠다.

“전기차는 소음과 진동에서 운전자들을 해방시켜 줄 수 있습니다, 대표님.”

“스포츠카 배기음보다 이렇게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게 훨씬 더 짜릿하군요.”

“시대를 앞서가는 느낌이니까요.”

최치우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으며 말했다.

퓨처 모터스는 그동안 브랜드 전문가들을 섭외해서 전기차 모델의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다.

실제로 전기차를 느껴본 최치우는 손쉽게 고민을 정리했다.

“브라이언, 제우스로 결정했습니다.”

“네? 그럼 모델 이름을……?”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들은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겁니다. 제우스는 그리스 신들의 왕이자 올림푸스의 지배자였죠.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신화를 써나갑시다.”

“제우스, 제우스. 저도 가슴이 뛰는 것 같습니다!”

“이건 스포츠 모델이니 제우스 S로 부르죠.”

말을 마친 최치우가 엑셀을 밟았다.

양산을 앞둔 제우스 S가 움직였다.

제우스 S는 단순히 실리콘밸리의 도로가 아닌, 미래로 달려가는 첫 번째 주자다.

최치우는 제우스 S를 타고 미래를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