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51화 (151/243)

# 151

***

무림에는 호사가(好事家)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강호를 유랑하며 온갖 소문을 전해 듣고, 객잔을 떠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팔아 돈을 벌었다.

호북성 무당파에서 일어난 사건이 금방 섬서성 화산파에 퍼지는 것은 호사가들 때문이었다.

아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아는 호사가들은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의 식객 대접을 받기도 했다.

최치우는 마치 무림의 호사가로 변신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이지용 부회장과의 미팅 이야기를 천천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임동혁과 백승수는 때로 손뼉을 치고, 때로는 탄성을 토하며 이야기에 무섭게 집중했다.

청중은 두 명밖에 없지만 호사가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현대로 치면 개그맨들도 이런 맛에 취해 공개 코미디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지용 부회장에게 무엇을 알려줬습니까?”

“저도, 저도 궁금합니다. 어떤 신사업을 말씀하셨는지…….”

최치우가 숨을 고르는 사이, 두 사람은 참지 못하고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커피로 목을 축인 최치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보군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말 한 마디로 오성그룹을 움직이게 만드는 일인데, 안 궁금하면 비정상입니다.”

“이사님은 비정상 아니었습니까?”

“아니, 그게…….”

예기치 못한 곳에서 한 방 먹은 임동혁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최치우는 한 번 더 소리 내 웃고 다음 이야기를 해줬다.

“하하, 사실 별 거 아닙니다. 오성코인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오성코인이요?”

백승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오성코인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러나 임동혁은 달랐다.

망나니처럼 보이지만 임동혁은 세계의 최신 트렌드를 공부하는데 시간을 쏟고 있다.

최치우를 만나고 제대로 각성하며 완전히 달라졌다.

성질머리는 그대로지만, 실력은 일취월장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역시 빠르네요. 이사님 플러스 1점.”

최치우가 장난스레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백승수가 반론을 펼쳤다.

팀장이 대표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올림푸스의 저력이다.

“가상화폐 열풍이 지금보다 더 뜨거워질까요? 오성그룹도 충분히 검토를 했을 텐데…….”

“버블이 아니냐는 말이죠.”

“네, 맞습니다.”

“비트코인과 리플을 비롯한 가상화폐 가치가 큰 폭으로 오르내렸죠. 멍청한 정부 당국에서는 규제를 하니 마니 난리를 치고 있고. 이지용 부회장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지금 뛰어들기에는 너무 늦은 것 아니냐, 그리고 오성이 가상화폐를 개발하면 기업 이미지가 나빠질 것 같다.”

임동혁과 백승수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지용 부회장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치우가 얌전히 물러섰을 리 없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지용을 납득시켰고, 오성그룹이 전통을 깨고 유경민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버블은 모두가 의심하지 않을 때 터집니다. 이게 버블이 아닐까, 의심하는 구간은… 진짜 버블이 시작도 안 됐을 때입니다.”

최치우의 통찰력이 임동혁, 백승수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비트코인 가치가 폭등하며 언론과 정부는 물론이고, 평범한 사람들도 버블을 언급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버블은 모두 성공에 취해 의심조차 하지 않을 때 터졌다.

최치우는 버블의 역설을 정확히 간파했다.

“지금은 가상화폐 버블의 극초기일 겁니다. 미약한 버블의 맛을 보고, 다들 의심하는 상태. 여기서 조만간 대기업과 몇몇 국가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하겠죠. 그때부터 가상화폐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겁니다. 그리고 감히 누구도 버블이란 말을 꺼내지 못할 때, 그때가 바로 진짜 버블이 터지기 직전의 상태겠죠.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틈틈이 가상화폐에 대한 공부를 해온 임동혁은 반론을 덧붙이지 못했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최치우보다 임동혁이 높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현상과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에서는 게임이 안 된다.

최치우는 두 사람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며 말을 계속했다.

“이지용 부회장의 두 번째 질문, 오성이 가상화폐를 만들면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겠냐는 물음은 그야말로 식상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규제를 가하려 들겠죠. 그러나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어디서도 가상화폐를 전면 금지 시킬 수는 없습니다. 일본과 독일은 가상화폐 결제 시스템을 국가에서 승인했고, 미국은 선물 시장의 거래 품목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만 시대 흐름을 역행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때 백승수가 할 말이 생각난 것 같았다.

최치우는 백승수의 눈을 바라봤다.

편하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여유를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단련이 되면 백승수도 언젠가 올림푸스를 대표하는 얼굴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최치우의 눈빛에 담긴 격려를 알아차렸을까.

백승수가 심호흡을 마치고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오성그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입니다. 가상화폐를 비판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데, 브랜드 이미지 손상이 우려 될 것 같습니다.”

“뜨거운 이슈가 되겠죠. 이미지는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버블이 아니라 했지만, 언젠가 버블이 터지면 모든 게 원점 이하로 돌아올 수 있고.”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오성그룹의 미래까지 책임 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지용 부회장도 그런 걸 원하지 않고. 문제는 당장의 기업 가치입니다. 오성의 시가총액은 350조 원이죠. 그러나 JP모건이 390조, 존슨 엔 존슨이 400조가 넘습니다. 오성이 그들보다 못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이해로 깊어지고 있었다.

최치우는 경제학 전공자도 아니고, 대학 학부를 마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실물 경제에 대한 이해도는 세계적인 석학보다 높았다.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하는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가치에 비해 시가총액이 낮은 것이 이지용 부회장의 최대 고민입니다. 얼마 전, 다 쓰러져가는 카메라 회사 코닥이 가상화폐 제작을 발표하자 주식이 무려 12% 올랐습니다. 만약 오성이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지 손상과 비난 여론을 덮고도 남을 주식 상승 효과를 누릴 겁니다. 특히 오성그룹은 자체 스마트폰을 이용한 오성페이 등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에 비해 가상화폐 연동성이 높을 수밖에 없죠.”

“오성페이 결제를 현금이 아니라 오성그룹이 개발하는 가상화폐로도 가능하게 만들면… 와아!”

백승수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간단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발상의 전환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최치우는 이지용 부회장에게 어마어마한 힌트를 준 셈이었다.

“오성그룹이 보증하는 가상화폐. 그 가치는 리플이나 이더리움, 비트코인을 추월할 수도 있습니다.”

진지하게 경청하던 임동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말 한 마디로 오성그룹을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최치우가 알려준 비밀이 너무 탐스러웠기 때문이다.

“대표님, 그럼 우리도 가상화폐를 개발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올림푸스가 보증하는 가상화폐도 인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오성에게 너무 좋은 기회를 열어준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경쟁을 하게 될 상대입니다.”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아요. 자체 결제 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들어가기에 적당한 아이템입니다.”

“그래도…….”

“배 아파 할 필요 없습니다. 덕분에 오성의 주가가 뛰겠지만, 내가 말한 것처럼 당장이 아닐 뿐 언젠가는 터질 버블이니까.”

최치우는 자신 있게 보증했다.

이지용 부회장이 조언을 받아들여 가상화폐 개발을 시작한다면 주식이 뛰어오를 것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본질적 가치에 연구비를 쏟아 붓지 않는 이상, 넘치고 넘쳐 언젠가는 터질 버블이다.

“우리는 가상화폐에 눈독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소울 스톤 발전소와 전기차 출시만으로 시가총액 100조를 뚫을 겁니다.”

100조.

최치우의 말을 들으면 누구든 가슴이 뛸 수밖에 없다.

1년 사이 주식을 3배 가까이 올리겠다는 선언이지만, 현실성이 느껴졌다.

이제껏 최치우가 입 밖으로 내뱉어서 실현이 안 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오성은 언제부터 움직이기로 했습니까?”

“유경민 캠프에 대해 지원을 끊는 건 1주일 안에 정리 될 겁니다. 소식이 전해지면 대검 중수부의 검찰들이 미친개처럼 달려들겠죠. 오성에게 버려진 대선 후보를 지켜줄 이유가 없으니.”

“유경민 의원…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는데 하루아침에…….”

“그러니까 평소에 잘 하고 살아야죠. 사람 보는 눈도 길러야 하고.”

최치우는 일말의 동정심도 품지 않았다.

밟을 때는 두 번 다시 새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초토화 시켜야 한다.

어설프게 인정을 남겨두면 후환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는 개인이 아닌 올림푸스 차원에서 유경민과 현기 자동차를 짓밟기로 결정했다.

뒤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간다.

다윗과 골리앗, 올림푸스와 오성그룹이 손을 잡았으니 브레이크는 없다.

폭풍이 몰아칠 시간이 임박했다.

***

“충격적인 뉴스입니다. 검찰이 오늘 유경민 의원실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점쳐지던 유경민 의원이 기업들로부터 불법 선거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점이 발견 됐기 때문입니다. 유경민 의원은 보좌관의 일탈이라고 밝힌 채 연락이 두절 된 상태입니다.”

9시 뉴스에서는 한동안 유경민 의원의 뇌물 이야기만 주구장창 반복했다.

시청률이 잘 나올 수밖에 없는 뉴스였다.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가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게 생겼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줬다는 것은 혐의 입증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홍문기 부회장에 이어 유경민 의원까지, 재계와 정계를 주름잡는 거물들이 연초부터 줄줄이 서초동 검찰 신세를 지게 됐다.

국민들은 저놈들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정계와 재계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 유경민 의원이 검찰 타겟이 될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홍문기 부회장도 마찬가지였다.

대선 시즌 직전 검찰들은 함부로 거물을 건드리지 않는다.

주요 기업의 경우 대선 후보와 직간접적 커넥션으로 연결 돼 있다.

괜히 나섰다가 미움 받을 짓은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올해는 검찰이 몸을 사릴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1월부터 연달아 홍문기, 유경민이 걸려들었다.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수면 아래 가려진 소문이 퍼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들 대놓고 말은 못해도 올림푸스 최치우가 작정하고 유경민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계 5위의 자동차 회사인 현기의 홍문기는 디저트일 뿐이었다.

그동안 최치우는 재계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쓸데없는 포럼과 세미나에 참석해 폼을 잡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신 최치우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실하게 인지시켰다.

정계와 재계의 어느 누구도 최치우를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오성그룹 이지용을 움직이고, 유경민과 홍문기를 벼랑 끝까지 모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치우가 마음만 먹으면 거물 정치인이나 재벌 회장을 날려버릴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그는 이지용 부회장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인식 됐다.

25살의 청년이 대한민국 최상위 거물들을 벌벌 떨게 만든 것이다.

“최 대표님, 고맙습니다.”

유경민 의원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며칠 후, 정제국 의원이 전화를 걸었다.

최치우는 야당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대선 후보의 전화를 반기지 않았다.

오히려 짜증을 냈다.

“정 의원님. 이렇게 사적으로 전화를 걸면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록에 남지 않는 전화기입니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가급적 사람을 쓰시죠. 전화보다 그게 편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감사 인사도 제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에 말한 것처럼 정 의원님을 돕기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그 역시 명심하겠습니다. 다만 사람의 도리는 잊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최치우는 차갑게 전화를 종료했다.

유경민이 뇌물 수사로 지지율이 뚝 떨어졌다.

이대로 다른 변수가 없으면 정제국이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정제국에게 잘 보이려 전전긍긍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최치우는 달랐다.

차기 대통령 1순위인 정제국이 오히려 40살 가까이 더 어린 최치우에게 깍듯한 태도를 지켰다.

“귀찮은 게임은 끝났군.”

한바탕 폭풍을 몰아치게 만든 최치우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홍문기와 유경민.

두 명을 클리어하며 정치 게임을 일단락 시킬 수 있었다.

나머지는 검찰이 알아서 요리 할 것이다.

“현기 자동차가 홍문기를 빼내느라 정신이 없을 동안, 퓨처 모터스를 내수 시장에 단단히 각인시켜야겠다.”

최치우는 기업인이다.

정치는 기업을 잘 하기 위해 이용하는 카드에 불과하다.

완벽한 승리자가 된 그는 벌써 다음 수를 내다보고 있었다.

전기차의 제주도 상륙은 출발선일 따름이다.

올해가 지나기 전,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가 서울 도심을 쌩쌩 달리게 만들 것이다.

수년 내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는 현기가 아닌 퓨처 모터스가 될지도 모른다.

최치우는 이미 시동을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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