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49화 (149/243)

# 149

***

올림푸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

진짜 중요한 일은 기자들이 모르게 진행된다.

막강한 취재원을 보유한 베테랑 기자도 진실을 알게 되는 건 일이 팔부능선을 넘은 다음이다.

그때 뒤늦게 기사를 써도 특종이라고 칭찬을 받는다.

아주 가끔,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비밀스러운 일을 기자들이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섣불리 기사를 쓰지 못한다.

뒤따라올 후폭풍을 일개 기자 한 사람이 감당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치우가 유경민과 선을 그었다, 정제국을 밀기로 결정했다는 등 온갖 소문이 재계와 정계를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고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재계 사람들도 워낙 중요한 사안인 만큼 입조심을 단단히 했다.

달그락-

최치우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현대에 환생해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커피였다.

다른 차원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환상의 음료.

생생한 원두를 갈아 한 모금 마시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 든다.

마침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커피를 다 마신 것 같았다.

이제 뜨뜻미지근한 인사 대신 화끈한 본론을 꺼낼 타이밍이 된 것이다.

“총장님,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최치우는 상대를 총장이라 불렀다.

총장이라는 직함은 아무나 쓰지 않는다.

대학교 총장이나 대규모 단체의 사무총장쯤은 되어야 총장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위세 높은 총장 자리는 따로 있다.

바로 검찰총장이다.

UN 사무총장이 와도 한국에서는 검찰총장을 이길 수 없다.

검찰 권력의 최고 정점이 검찰총장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성공 여부는 검찰을 어떻게 길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검찰이 대놓고 항명하면 정권은 곧장 힘을 잃고 표류 할 수밖에 없다.

보통 검찰은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하지만 정권은 5년마다 바뀌어도 검찰은 영원하다는 말을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하고 다닌다.

그만큼 검찰의 위세는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강력하다.

최치우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문종인 검찰총장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트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불안한 모습이었다.

최치우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고,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야 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시간을…….”

“총장님. 벌써 1월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최치우의 말투는 단호했다.

검찰총장을 상대로 겁먹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열 명도 채 안 될 것이다.

협상의 키는 최치우가 잡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문종인 총장의 상황을 환기시켰다.

“이대로 대통령이 바뀌면 총장님은 어디서도 부름을 받지 못합니다. 마냥 은퇴하고 물러나기에는 너무 정정하십니다.”

최치우가 정곡을 찔렀다.

한 번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의 권력욕은 끝이 없다.

특히 문종인처럼 검찰총장으로 대통령 못지않은 위세를 누렸던 사람은 더 심하다.

그만큼 해먹었으면 조용히 은퇴해서 편하게 살면 된다.

그러나 문종인 같은 사람들은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 걸 견디지 못한다.

최치우는 문종인의 근원적인 욕망을 건드리고 있었다.

“이미 거대해진 유경민 캠프에 총장님 자리가 있겠습니까?”

“그거야… 정제국 의원을 도와도 마찬가지인 상황 아니오.”

“맞습니다. 그러니 저를 도와달라는 말씀입니다.”

문종인 총장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까지 최치우와 문종인은 한 다리 건너 의사소통을 해왔다.

올림푸스에서는 임동혁이 나섰고, 검찰에서는 문종인의 심복인 검사장이 나섰다.

두 사람 모두 최치우와 문종인의 뜻을 충실히 대변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따라갈 수는 없다.

“유 의원이 당선 되어도, 또는 정 의원이 당선 되어도 총장님은 아무런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제가 총장님을 국회의원으로 만들겠습니다.”

“허나 이게…. 유경민 의원을 파내면 대통령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라……. 최 대표도 잘 알지 않소?”

문종인을 총장에 임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유영조 대통령이다.

그렇기에 같은 여당 후보인 유경민을 치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최치우는 냉정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도 대통령님과 우호적인 관계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1년 뒤에 닥칠 재앙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최치우는 재앙이란 단어를 썼다.

유경민이 당선되면 재앙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문종인 총장 역시 동의하는 눈치였다.

대외적 이미지와 달리 정치권에서는 유경민의 실체를 잘 알고 있다.

만약 유경민이 대통령이 되면 끔찍한 권위주의 정치가 열릴 게 뻔했다.

“최 대표는 뉴스로 보던 것 보다 훨씬 냉정하신 것 같소.”

“착하고 무능한 사람보다는, 무섭고 유능한 사람이 낫지 않습니까. 일단 힘을 가져야 좋은 일도 마음 편히 할 수 있고.”

“역시…… 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오.”

검찰의 정점까지 올라간 백전노장 문종인은 최치우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문종인은 어느 정도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최치우는 그의 망설임을 제거하기 위해 쐐기를 박았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유경민과 정제국 중 한 명을 선택하는 일이 아닙니다. 바로 저, 올림푸스의 최치우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제가 나서면 총장님을 국회의원, 아니 서울시장인들 못 만들겠습니까?”

25살 청년이 검찰총장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진실이었다.

올림푸스의 국민적 인기와 영향력이라면 서울시장이 대수일까.

최치우가 작정하고 지지 연설을 해주면 무명의 후보도 순식간에 서울시장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최치우는 문종인이 출마를 희망하는 지역구에 대규모 건설 사업 투자를 약속했다.

문종인의 경력과 검찰 내부 조직, 그리고 최치우의 힘이 합쳐지면 두려워 할 게 없다.

설령 실컷 공격한 유경민이 대선에서 이겨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좋소. 늘그막에 마지막 승부수를 한 변 던져 보겠소.”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최 대표만 믿겠소.”

“저도 총장님만, 아니 우리 검찰만 믿겠습니다.”

최치우는 우리 검찰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검찰총장 개인이 아닌, 검찰 조직 전체를 품게 됐다고 은연중 강조 한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돌진하는 최치우는 냉혈한이 따로 없었다.

이제 검찰이 유경민을 노리고 움직일 것이다.

유경민 캠프에서는 꿈에서도 상상 못 할 일이다.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여당 후보를 공격하는 일은 한국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치우는 없는 길을 만들면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검찰은 유경민뿐 아니라 현기 자동차의 정관계 로비 의혹까지 정조준 할 것이다.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누군가 피를 흘릴 일만 남은 것 같았다.

***

“속보입니다. 현기 자동차 홍문기 부회장이 오늘 오전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찰은 특별 수사팀을 꾸리고, 증거를 정리하는 즉시 홍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입니다. 현장에 나가있는 김선형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80인치가 넘는 초대형 TV 화면이 가득 찼다.

잔뜩 굳은 얼굴의 홍문기가 스쳐 지나갔고, 현장 기자가 구체적인 혐의점을 나열하고 있었다.

뉴스를 전하는 앵커들도 평소보다 흥분한 목소리였다.

홍문기는 현기 자동차의 후계자다.

몇 년 전부터 회장 대신 경영 전반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그룹 차원의 상속 작업도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구속이라도 당하면, 그리고 유죄 판결로 징역을 살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현기 자동차의 후계 구도가 불안정해지면서 홍문기의 동생들이 이빨을 드러낼 수 있다.

안 그래도 해외 시장 실적이 어려운 상황에서 현기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셈이다.

세계 5위, 국내 부동의 1위 자동차 회사가 느닷없는 위기를 맞이한 것 같았다.

“그러게 평소에 좀 잘 하지.”

최치우는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시청했다.

요즘 그는 세계 곳곳의 좋은 원두를 구입해 직접 내려마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손님에게 차를 달여 주는 유영조 대통령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향이 좋군.”

지금 마시는 커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 전세계를 강타한 블루보틀의 시그니처 원두로 만들었다.

최치우는 무심코 블루보틀의 기업 가치가 궁금해졌다.

첫 번째 소울 스톤 발전소가 무사히 준공되면, 또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가 제주도에 쫙 풀리면 블루보틀을 통째로 인수해도 된다.

이게 바로 기업을 경영하는 재미, 세상을 움직이는 재미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재미에 빠지면 도박이나 여자는 시시해 질 수밖에 없다.

“그건 그렇고, 횡령과 배임은 기본에 해외 불법 도박 혐의까지……. 참 골고루 털렸군. 멍청한 놈.”

최치우는 홍문기의 얼굴을 떠올렸다.

홍문기는 감히 다른 사람도 아닌 최치우 앞에서 한껏 시건방을 떨다가 죽기 직전까지 두드려 맞고 개박살이 났었다.

그때부터 그릇이 작은 인물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를 물려받기엔 덩치만 큰 소인배였다.

그런데 사단이 터졌다.

사실 횡령과 배임 혐의는 검찰에서 예전부터 증거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대검 중수부 캐비넷에는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비리 목록이 비밀스레 보관 돼 있다.

검찰이 위기에 몰리면 하나씩 리스트를 꺼내 협상을 시도한다는 건 너무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해외 불법 도박은 다르다.

검찰이 재벌 2세의 사생활까지 미리 수사하지는 않는다.

잘못하면 사찰 의혹 등 골치 아픈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종인 검찰총장의 지시로 새롭게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홍문기의 다양한 행적이 탈탈 털린 것 같다.

홍문기가 어떤 인간인지 경험한 최치우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현기라는 간판의 위세만 믿고 자기관리를 등한시 했을 게 뻔하다.

사고가 터지면 검찰과 미리 접촉해서 거래를 하는 게 재벌가의 관행이다.

행실을 똑바로 못한 홍문기의 잘못이 절반, 검찰이 작정하고 수사 할 것을 눈치 채지 못한 현기 자동차 법무팀의 잘못이 절반이다.

반반의 잘못이 모여 홍문기는 쇠고랑을 차게 생겼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구속 수사는 피하기 힘들 것이다.

설령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상당 기간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한다.

그동안 현기의 후계자 경쟁은 다시 심화되고, 경영을 책임질 사람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당연히 주가도 하락 할 수밖에 없다.

홍문기와 현기는 아주 큰 대가를 치르게 됐다.

이제 와서 뒤늦게 검찰과 협상을 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검찰총장 문종인은 최치우가 내민 손을 잡았다.

최치우의 인기와 명성은 대체불가능이다.

현기에서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문종인이 마음을 바꿀 확률은 낮다.

“남은 건 유경민인가. 서서히 숨이 막히고 있겠지.”

검찰의 수사망은 유경민을 목표로 점점 좁아질 것이다.

애초에 최치우와 문종인은 유경민을 메인 타겟으로 거래를 맺었다.

현기 자동차의 홍문기는 애피타이저나 디저트다.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스테이크는 유경민 하나뿐이다.

우웅- 우웅-

그때 최치우의 폰이 울렸다.

최치우는 식탁 위에 놓인 폰을 가지러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이 비해 많이 익숙해진 7서클 마법, 플래시를 쓰면 된다.

“플래시-!”

캐스팅과 동시에 폰이 손 안으로 들어왔다.

무려 7서클 마법을 고작 전화 받는데 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연습을 해둬야 결정적인 순간 실수 없이 마법을 펼칠 수 있다.

짧은 거리지만 자신과 사물을 순간이동 시킬 수 있는 플래시는 언젠가 결정적인 신의 한 수로 쓰일 것 같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대표님,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도 예전부터 대표님을 만나고 싶었답니다. 립 서비스를 하는 성격은 아닌데, 진심인 것 같습니다.”

임동혁의 음성이 평소보다 다소 높았다.

그가 최치우를 대신해 약속을 잡은 사람의 무게감 때문이다.

어쩌면 대통령이나 검찰총장보다 더 만나기 어려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시가총액 350조 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동의 1등 기업, 그리고 세계 최고의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생산자.

오성그룹의 후계자인 이지용 부회장이 드디어 최치우와 만나게 됐다.

몇 년 전 이지용 부회장은 임동혁을 통해 올림푸스 주식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었다.

겨우 그 이야기만 듣고도 임동혁은 한동안 우쭐했었다.

남부럽지 않은 재벌 2세인 임동혁조차 레벨이 다른 존재로 생각하는 인물이 이지용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약속 시간과 장소를 곱씹었다.

한국을, 아니 아시아를 대표하는 공룡 오성그룹도 언젠가는 반드시 뛰어넘을 상대다.

하지만 지금은 오성의 힘을 이용 할 타이밍이다.

올림푸스는 규모 면에서 오성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오성을 위협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시가총액을 합쳐도 오성그룹의 10% 수준이다.

최치우는 그 간극을 올해 안에 엄청나게 줄일 계획이었다.

“오성을 움직여서 유경민의 목줄을 끊고, 우리가 현기 자동차를 밟을 때 개입하지 못하게 묶어놓으면 된다. 대신 이지용 부회장이 원하는 걸 적당히 들어주고. 무조건 남는 장사를 해야지.”

최치우의 머릿속에는 시나리오가 전부 그려져 있었다.

오성그룹의 이지용도 최치우에게는 장기판의 말일 뿐이다.

새해가 밝아오며 본격적으로 대한민국과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최치우의 행보에 불이 붙었다.

최치우가 일으킨 불길이 어디까지 번질지, 누구도 예측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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