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48화 (148/243)

# 148

<피도 눈물도 없이>

복수라는 단어는 어느덧 현대 사회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 됐다.

아침 드라마에서나 헤어진 연인들이 복수를 언급할 뿐, 이제는 복수를 테마로 한 영화도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회가 발전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복수라는 행위는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여전히 복수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대놓고 드러나지 않을 뿐, 사람들은 크고 작은 복수에 매일 노출돼 있다.

얄미운 직장 상사의 커피에 침을 뱉는 것도 복수의 일환이다.

최치우는 현대에서 환생해 몇 번의 복수를 성공시켰다.

자신을 빵셔틀로 부려먹던 일진들을 완전히 박살 냈고, 헤라클래스를 건드린 아프리카 반군 레드 엑스를 소탕했다.

레드 엑스를 사주한 에릭 한센의 여동생을 감방에 넣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최치우는 복수의 화신 같았다.

그나마 현대에서는 많이 성숙해진 편이다.

무력이 지배하는 다른 차원에서 최치우의 복수는 화끈하고 잔인했었다.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바로 목을 따버리는 게 최고의 복수라고 믿었다.

물론 현대에서 같은 원칙을 고수할 수는 없다.

이곳은 재력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무력이 아닌 재력으로 상대를 찍어 눌러야 진정한 복수가 완성된다.

복수 전문가인 최치우는 자신만의 원칙을 갖고 있었다.

“가장 원하는 걸 뺏는 게 최고의 복수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혼잣말이 서늘하게 들렸다.

올림푸스 대표실로 출근한 최치우는 책상에 두 다리를 올리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자세로 어떻게 복수를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권력과 명예의 노예라면… 모두의 멸시를 받게 해야지. 유경민을 본보기로 삼아 어떤 정치인도 내게 덤빌 수 없도록.”

최치우는 유경민을 파멸시키겠다고 결정했다.

야당의 대선 후보인 정제국과 현직 대통령인 유영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경민이 몰락하면 최치우가 손을 썼다는 사실은 알음알음 퍼져 나갈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 늘 정치권력이 시장을 압도했었다.

그러나 밀레니엄 이후 시장의 힘이 점점 커지고, 급기야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이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갔다는 선언을 할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여전히 재벌 대기업 총수들을 비롯해 전도유망한 창업자들도 정부의 권력 앞에서 벌벌 떤다.

세무조사 한 번이면 기업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떳떳하지 못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잘못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의 권력이 과도하게 크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최치우는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권력을 이기는 기업인이 되고자 했다.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면서는 절대 세계적인 경쟁에서 실력을 발휘 할 수 없다.

강력한 대선 후보인 유경민은 본보기로 삼기에 최적의 상대였다.

유경민은 하필이면 최치우라는 괴물을 잘못 건드려 모든 것을 잃게 생겼다.

“세무조사가 들어와도… 우린 버틸 수 있어.”

올림푸스의 경영은 투명하기로 유명하다.

최치우의 엄격한 지시 때문에 임동혁도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한영그룹이나 오성그룹 같은 재벌 대기업의 재무 회계는 지저분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올림푸스는 지배 구조부터 세금 납부 내역까지 꿇릴 게 없었다.

오너인 최치우가 수백억, 수천억 원의 이익에 크게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천억 원은 푼돈일 뿐이었다.

굳이 편법으로 그만한 돈을 만들지 않아도 회사를 세계 최고로 키우면 주식이 몇 배는 뛰어 오른다.

스케일이 다른 야망이 올림푸스를 깨끗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임 이사님, 잠깐 내 방으로 와주세요. 백승수 팀장님도 같이.”

최치우가 임동혁과 백승수를 호출했다.

여의도 본사에 상주하는 최측근을 모두 부른 것이다.

새로 뽑은 직원들이 늘어나며 팀장급도 많이 보충됐다.

하지만 올림푸스를 움직이는 실세는 임동혁과 백승수다.

여기에 남아공의 이시환과 리키, S대의 김도현 교수, 그리고 퓨처 모터스의 브라이언이 모이면 올림푸스의 앞날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똑똑-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백승수가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한참 위 기수인 대학원생 안경 선배였던 백승수는 올림푸스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든든한 일꾼이 됐다.

팀장을 비롯해 대다수의 직원들은 임동혁을 어려워한다.

그는 최치우에게 매번 구박을 받지만, 보통 사람들이 절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한영 그룹의 후계자라는 배경도 유별나고, 올림푸스에서 유일한 이사이자 CFO라는 직위도 장벽이 된다.

그렇기에 백승수가 임동혁을 대신하여 직원들의 고충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고위급 회의의 참석자 중에서 현장과 실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백승수였다.

특유의 서글서글하고 무난한 성격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신망도 높았다.

처음 백승수를 스카웃할 때는 낙하산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중역으로 성장했다.

최치우는 새삼스런 고마움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앉아요. 오늘 급하게 결정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임 이사님은?”

“전자담배 하나만 태우고 오신다고…….”

백승수가 곤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튼 사람 참 안 변한다니까.”

두 사람은 임동혁을 기다리며 소파에 앉았다.

임동혁 덕분에 둘은 회의에 앞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사실 회사가 커지고, 최치우가 바빠지면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었다.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요?”

“가을쯤 하려고…….”

백승수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오랜만에 대학 선후배로 돌아가 백승수의 근황을 들은 최치우는 깜짝 놀랐다.

“하긴, 선배는 결혼할 나이가 되긴 했지만. 준비 잘해요. 필요한 거 있음 언제든 말하고.”

“호, 혹시 치우 너가 축사를 해줄 수 있으면…….”

백승수가 초조한 표정으로 부탁을 했다.

최치우는 그의 회사 대표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CEO다.

그래서 축사를 부탁하기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하지만 최치우는 당연하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하하, 선배. 축사가 무슨 대수라고. 사회도 봐줄 수 있는데. 뭐든 말만 해요.”

“고맙다! 진짜 고마워!”

백승수는 감격한 듯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사적인 관계가 있지만, 최치우 정도의 유명인은 선뜻 결혼식 같은 행사에 나서주기 어렵다.

그러나 최치우는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임동혁이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가 그렇게 고맙다는 것입니까?”

늦게 왔으면서 미안한 기색은 하나도 없었다.

최치우가 임동혁을 볼 때마다 구박하는 것도 당연한 조치였다.

“궁금하면 일찍 다닙시다. 몸에 안 좋은 담배는 좀 끊고.”

“전자담배는 타르를 제거해서 괜찮습니다.”

“누가 들으면 건강에 좋은 줄 알겠습니다.”

“…….”

할 말이 없어진 임동혁이 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최치우는 곧장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죠. 여당의 유경민 의원, 대통령이 못 되게 막을 겁니다.”

“네?”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이야기였다.

백승수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한껏 커진 동공이 안경알을 가득 채울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유 의원의 당선을 막고,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시킬 겁니다. 그렇다고 정제국 의원을 돕는 건 아니니 오해가 없도록 주의해 주세요.”

“청와대와 조율은 됐습니까?”

확실히 큰 그림을 보는 눈은 임동혁이 백승수보다 몇 수 위였다.

그는 곧바로 청와대를 언급했다.

올림푸스가 정부의 협조를 받아 진행하는 굵직한 사업이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내 의사를 전달했고, 교통정리를 끝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뭐부터 하면 좋겠습니까?”

임동혁은 가타부타 토를 달지 않았다.

최치우가 결정을 내리고, 이미 대통령까지 만나 통보한 내용이다.

뒤늦게 판단이 바뀔 가능성은 눈꼽만큼도 없다.

이왕 유경민을 칠 거라면, 가능한 빠르고 확실하게 밟아야 뒤탈이 적을 것이다.

대기업의 후계자답게 임동혁은 정치인을 마냥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대선 후보를 몰락시킬 기회가 주어져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유경민 캠프에서 내가 자기들을 돕는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우선 올림푸스는 유경민 의원과 완전히 갈라섰다고 재계에 말을 돌려주세요.”

“그건 제 전공입니다.”

임동혁은 재계의 마당발이다.

어릴 때부터 재벌 2세, 3세들과 어울리며 쌓은 네트워크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다른 기업들은 최치우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가 유경민을 지원한다는 소문이 돌면 나머지 기업들도 줄을 설지 모른다.

유경민 캠프는 그런 이점을 노리고 헛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임동혁을 통해 소문을 바로잡고, 반대로 최치우가 유경민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분위기는 싸늘해질 게 분명하다.

어차피 재계 1위인 오성그룹은 여당과 야당에 모두 줄을 대는 게 전통이다.

그렇다면 시가총액 기준 재계 2위에 오른 올림푸스의 선택이 더욱 중요해진다.

유경민을 지원하려던 기업들도 최치우 때문에 망설이게 될 확률이 높다.

경이적인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올림푸스의 선택이라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치우는 적극적인 조치도 병행할 작정이었다.

“지금 유경민 캠프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기업들 리스트 알아보세요.”

“리스트가 나오면…….”

“임 이사님이 접촉해서 내 뜻을 알리면 충분할 겁니다. 유경민 캠프를 돕는 기업은 앞으로 올림푸스와 어떤 사업도 같이하기 힘들 거라고.”

“너무 극단적으로 갈라서는 것은 아닙니까? 만에 하나라도 유 의원이 당선되면 돌이키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임동혁의 우려를 드러냈다.

특정 후보를 밀더라도 선을 넘지 않는 게 재계의 관례다.

오성그룹처럼 유력 후보를 공평하게 지원해 주는 기업도 있다.

혹시 모를 뒷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치우는 유경민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방향타를 틀었다.

절대 상식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싸울 거면 상대가 두 번 다시 덤비지 못하게, 내 얼굴만 봐도 오줌을 지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설픈 각오로 정치인들과 싸울 거라면 시작도 안 하는 게 낫죠.”

“그렇다면…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임동혁은 비로소 최치우의 의사를 100% 알아들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유경민을 짓밟고, 여의도 정치계에 올림푸스를 불가침 영역으로 각인시킨다.

한 번 싸움을 시작한 최치우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레드 엑스를 아예 몰살시켰던 때를 떠올렸다.

실제로 유경민의 목숨을 빼앗진 않겠지만, 레드 엑스 섬멸전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검찰도 움직입시다.”

“검찰은 어떻게……. 아직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 눈치를 보고 여당 후보를 털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백승수가 용기 있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일리 있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몇 수 앞을 더 내다보고 있었다.

“우리나라 검찰은 두 가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권력, 그리고 돈이죠. 권력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돈은 변하지 않죠.”

“그럼 누구에게 돈을…….”

“직접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대검 중수부 쪽 빠릿빠릿한 실무형 검사들, 그리고 검사장 이상 고위직들 현안 파악하고 간접 지원을 약속하면 알아서 움직일 겁니다.”

최치우의 지시는 시원시원 막힘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패권을 놓고 벌이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형태는 달라도 예전 차원에서 수도 없이 경험해 봤다.

특히 아슬란 대륙에서 왕실 마법사로 살았던 기억이 큰 도움이 됐다.

왕실의 정치적 암투를 현대에 대입하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답이 딱 나온다.

“우리가 미끼를 던지면 덥석 물 겁니다. 검찰총장은 유영조 대통령 퇴임 후 노후를 보장받고 싶겠죠.”

“그래서 지금 유 의원과 정 의원 사이에서 열심히 눈알을 굴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유경민과 정제국 사이에서 눈치 보지 말고, 나를 선택하라고 하죠. 그게 백번 나을 테니까.”

최치우의 과감성에 임동혁도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재계에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평가를 듣지만, 최치우의 담력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백 팀장과 함께 실수 없이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유경민을 탈탈 터는 것으로 최치우의 지시가 끝난 게 아니었다.

소파에서 일어서려던 임동혁과 백승수가 다시 자세를 고쳤다.

“현기 자동차도 대가를 치를 때가 됐습니다.”

“현기까지…….”

현기 자동차는 올림푸스가 퓨처 모터스를 인수하자 위기감을 느꼈다.

전기차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물론, 텃밭인 국내 내수 시장 지분을 뺏길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그들은 끈질긴 로비로 국회의원을 움직여 최치우를 귀찮게 했다.

제주도에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가 풀리면 방해 공작은 훨씬 심해질 것이다.

그 전에 싹을 밟고 서열을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기어오르는 걸 그냥 놔두면 자기들을 겁낸다고 착각합니다. 이참에 유경민과 세트로 정리합시다.”

유력한 여당의 대선 후보와 대한민국 넘버2로 손꼽히는 대기업도 최치우에겐 장애물일 뿐이다.

최치우는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을 모조리 치우고 직접 탄탄대로 레드카펫을 깔 계획이었다.

임동혁과 백승수는 닭살이 돋는 걸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최치우를 적으로 돌린 모든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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