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44화 (144/243)

# 144

<시험>

세상은 최치우의 100m 달리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동안 모든 뉴스와 방송에서 최치우가 수립한 한국 신기록을 언급했다.

해외 방송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전에도 최치우는 세계적인 유명 인사였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 애플을 만들고 일찍 떠나간 스티브 잡스 등 기라성 같은 경쟁자들 틈에서 도전하는 루키였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무려 40조 원가량이다.

한국에서는 재계 2위에 오를 수 있는 액수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주목받는 루키에 해당한다.

시총 100조 원 이상의 기업들이 싸우는 메이저리그는 따로 있다.

그런데 100m 달리기 시합 이후 최치우의 유명세는 기준점을 넘어섰다.

지난 1주일 동안 전 세계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이 바로 최치우였다.

빌보드 1위를 하는 가수도, 헐리웃 영화배우도, 미국 대통령도 아닌 한국의 최치우가 세계 최고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벌써부터 그가 과연 세계신기록을 깰 수 있을지 점치는 기사도 나왔다.

우사인 볼트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달리기 머신으로 불린다.

볼트의 세계신기록은 향후 10년 이상 깨지지 않을 금자탑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최치우라는 괴물이 등장한 것이다.

육상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은 글로벌 기업의 CEO가 친선 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수립했다.

만약 최치우가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다면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이 더 이상 허황된 소리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최치우에게 훈련은 필요 없다.

그러나 열심히 훈련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조금이라도 납득시킬 수 있다.

손기정 기념 육상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치우는 국가 대표 선발전에 나가겠다고 공표했다.

본업은 올림푸스의 CEO지만, 한시적으로 대한민국 육상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연히 국민들은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단거리 육상 메달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경제부터 외교 안보까지 답답한 뉴스만 가득한데 최치우는 비현실적인 슈퍼스타로 우뚝 섰다.

해외에서도 그를 아이언맨, 슈퍼맨 등의 호칭으로 부르며 실리콘밸리 CEO들과 차별화했다.

마크 주커버그로 대표되는 실리콘밸리의 슈퍼 CEO들은 대부분 너드(Nerd) 스타일이다.

공부를 엄청 잘하고, 한 가지에 무섭게 집중하는 천재지만 사회생활에는 서툰 사람을 너드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조금 엉뚱하고 답답한 천재들을 범생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최치우는 너드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젊고 건강한 육체를 자랑하며 대외적으로 활발한 모습을 보여왔다.

패션을 포함해 자신을 꾸미는 데 소홀하지 않았고, 100m 달리기 경기로 영화 속 만능 주인공다운 이미지를 획득했다.

그동안 동양인, 특히 아시아 남성은 미국과 유럽에서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연구원이나 직원으로는 환영을 받았지만, 남자다운 매력을 어필하기 가장 힘든 인종이었다.

그런데 최치우는 동양 남자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깨부쉈다.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백인 여성들이 선망하는 아시아 남자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문화적 시대적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최치우 자신도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10초도 안 걸리는 100m 달리기 한 번이 최치우라는 사람의 브랜드 이미지를 어마어마하게 바꿔놓았다.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이만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최치우는 나비효과를 실감하며 다시 본업에 집중했다.

가끔 이상태 감독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내년 초 국가 대표 선발전을 가볍게 통과하면 된다.

그가 공식적으로 국가 대표가 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다.

한국 신기록을 수립한 이상, 선발전 자체가 절차상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최치우는 처음부터 올림픽만 노리고 있었다.

내년 여름, 뜨거운 함성이 올림픽 스타디움을 뒤덮을 것 같았다.

***

“치우 군을 향한 함성이 점점 더 커지는 거 같아요.”

김도현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치우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S대 공학관에서 소울 스톤 연구를 지속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모교인 S대에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

원래 S대 후배들은 최치우를 봐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었다.

카메라를 들이밀고 알은척을 하면 최치우가 불편함을 느낄까 봐 학생들이 알아서 자제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100m 달리기 이후 학생들의 자제심도 무너졌다.

그 정도로 최치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게 된 셈이었다.

이미 최치우 차로 소문이 난 롤스로이스 레이스가 캠퍼스에 들어서면 난리가 난다.

차에서 내린 최치우가 공대 건물로 걸어오면 학생들은 S대 최고의 스타를 보기 위해 벌 떼처럼 모여들었다.

이제는 모교에서도 편하게 다니기 힘들어진 것이다.

“감당해야죠. 불편하긴 해도, 학교를 안 올 수도 없고.”

“다들 영화 속 히어로를 보는 기분일 거예요. 한창 호기심도 많을 나이 아니겠어요.”

“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후배들이니까, 귀여워 보입니다. 그보다…….”

최치우는 품에서 작은 조각 하나를 꺼냈다.

크기는 작지만 하늘색 빛이 영롱한 보석은 운딘을 소멸시키며 얻은 소울 스톤이다.

김도현 교수도 한눈에 소울 스톤을 알아봤다.

“새로운 소울 스톤이군요. 언제 이걸……?”

“우연히 기회가 닿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의 소울 스톤과는 다를 겁니다.”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요? 크기가 조금 작은 감은 있네요.”

“여기 담긴 에너지 수치 또한 앞선 두 개의 소울 스톤보다는 현저히 낮을 것 같습니다.”

운딘은 하급 정령이다.

상급 정령인 샐러맨더, 최상급 정령인 아도니스를 소멸시키고 얻은 소울 스톤과 에너지 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최치우가 소멸시킨 운딘에는 정령왕의 권능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평범한 하급 물의 정령답지 않게 꽤나 위험한 파괴력을 발휘했었다.

어쩌면 소울 스톤에도 정령왕의 흔적이 남아 제법 많은 에너지를 담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봤자 상급이나 최상급 정령의 소울 스톤을 따라잡진 못하겠지만, 하급 정령이라고 마냥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수치 분석은 며칠 안으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소울 스톤을 건네받은 김도현 교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경험도 나날이 축적되고 있었다.

처음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을 분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며칠이면 소울 스톤에 담긴 에너지 양을 측정할 수 있다.

최치우가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만큼, 김도현 교수와 연구진도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었다.

“교수님, 보시는 것처럼 이번 소울 스톤은 물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속성이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먼저 드린 소울 스톤이 훨씬 귀한 것입니다.”

최치우는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을 언급했다.

김도현 교수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에 담긴 에너지는 측정 기준치를 뛰어 넘었다.

확실한 것은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 속성의 소울 스톤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같은 방식을 쓰는 게 좋을지 의문스럽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지요. 같은 방식의 실험을 해도 성공률은 25% 수준인데……. 알다시피 그 실험은 화력 발전의 원리를 차용한 것이라 불 속성 소울 스톤에만 효과를 발휘할지도 몰라요.”

김도현 교수는 운 좋게 첫 번째 실험으로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에서 에너지를 추출해 냈다.

그러나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은 어떤 방식으로 실험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계속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검토하며 연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최치우는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마침 손에 넣은 운딘의 소울 스톤은 최적의 재료였다.

“이번에 드린 소울 스톤으로 실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앞서 드린 것에 비해 작은 소울 스톤이니 비교적 편하게 실험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치를 따지자면 수천억 원인데…….”

하급 정령의 소울 스톤이라 해도 시장 가치는 수천억 원 이상이다.

천하의 김도현 교수도 운딘의 소울 스톤을 함부로 다룰 생각을 못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최치우는 달랐다.

그에게 있어 하급 정령의 소울 스톤은 실험 재료일 뿐이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대세에 큰 지장이 없다.

“이 정도 레벨의 소울 스톤은 많이 구할 수 있습니다. 산산조각이 나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실험 데이터가 쌓이면 충분합니다.”

“정말 괜찮겠어요?”

“물론입니다. 샐러맨더, 붉은 소울 스톤으로 실험에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그 성과가 너무 크니까 앞으로 몇 번을 실패해도 됩니다.”

최치우는 절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칭찬을 하고, 격려를 할 때도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는 편이다.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 실험이 성공하면서 발전소를 건립하게 됐다.

그걸로 올림푸스는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 투자한 본전 이상을 뽑았다.

그의 솔직한 말에 김도현 교수도 자신감을 얻었다.

“그럼 치우 군의 지시대로 따라야지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오늘 받은 소울 스톤으로 실험을 해보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최치우는 쓸데없는 당부의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김도현 교수라면 어련히 알아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100%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잔소리가 필요 없다.

수천억 원 가치를 지닌 소울 스톤을 아무렇지 않게 턱턱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만큼 최치우의 배포는 남달랐다.

한번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는다.

이것이 현대에 환생해서 처음으로 가족을 만나고, 자기 사람들을 이끌게 된 최치우 리더십의 정수였다.

김도현 교수도 그의 진심을 알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12월은 1년 중 가장 바쁜 달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연말 분위기에 취해 송년회 약속을 잡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연말 결산에 시달리고, 퇴근해서는 빡빡한 송년회 모임에 시달리는 게 보통 사람들의 12월 풍경이다.

들뜬 분위기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반복되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나마 연말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면 좀 나을 것이다.

최치우는 직장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지만, 직원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렸다.

올림푸스는 직원들에게 두둑한 연말 성과금을 지급했다.

지난 1년 동안 올림푸스의 성장은 눈부실 정도였다.

최치우의 개인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뜨거운 열정을 품고 밤낮을 가리지 않은 직원들의 공로를 무시 할 수 없다.

실리콘밸리의 퓨처 모터스 직원들도 적지 않은 보너스를 챙겼다.

회사가 무너질 위기까지 처했었지만, 제주도와 MOU를 체결하며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사실 퓨처 모터스 직원들은 인수 합병을 떨떠름하게 여겼었다.

세계 최고의 전기차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갑자기 한국 회사에 넘어가는 상황이 반가울 리 없었다.

하지만 최치우는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퓨처 모터스를 장악했다.

이제는 콧대 높은 실리콘밸리의 직원들 대부분이 최치우와 올림푸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최치우는 한국과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두 기업을 이끌며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그를 부르는 행사와 모임은 수도 없이 많지만, 꼭 필요한 약속이 아니면 나가지 않았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굵직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매를 맺을 예정이다.

그렇기에 연말을 차분히 보내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 출시, 광명의 소울 스톤 발전소 준공, 100m 달리기 국가 대표 선발전과 올림픽 출전, 그리고 1년 뒤 이맘때 열릴 대통령 선거까지.

그야말로 빅뱅이 연달아 터지는 새해가 될 것 같았다.

특히 대통령 선거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분수령이다.

물론 올림푸스가 직접적으로 대선에 개입 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나 대선을 옆 동네 싸움 구경처럼 편하게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국가정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을 수 있을지, 아니면 올림푸스가 견제의 대상이 될지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언론에서는 여당과 야당의 주요 대선 주자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여당의 유경민, 야당의 정제국.

둘 중 한 사람이 다음 대권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높았다.

두 사람도 비공식 캠프를 가동시키며 일찌감치 대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그래서일까.

여당의 유경민이 측근을 통해 최치우와 단둘이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웬만한 약속을 다 거절하는 최치우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라면 일찍 부딪치는 게 낫다.

12월의 어느 날, 최치우는 유경민을 만나기 위해 성북동으로 향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세계적인 스타 CEO와 여당의 잠룡이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대화의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 권력의 판도가 뒤바뀔지 모른다.

최치우는 본의와 상관없이 정치권력마저 흔들 수 있는 태풍의 눈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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