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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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 기자! 너 일 똑바로 안 할래? 니가 스포츠 기자 몇 년 차인데 이런 오타를 내고 앉아있어! 어!
전화기 너머로 편집국장의 호통이 울렸다.
하지만 당사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국장님, 오타가 아닙니다. 제대로 쓴 기사 맞아요!”
-뭐? 이 새끼가 약을 했나……. 너 혹시 낮술하고 경기장 간 거 아냐?
“아니라니까요! 진짜 이걸 보여줄 수도 없고.”
-임마! 그럼 올림푸스 최치우가 9초대로 한국 신기록 깼다는 게 오타가 아니라고? 김동영도 아니고?
“진짜예요, 진짜! 9초 98! 예선 1조 3번 레인! 못 믿겠으면 유튜브 보세요. 지금 사람들이 동영상 올리고 난리 났을 테니까!”
참다못한 기자가 화를 냈다.
도무지 믿어주지 않는 편집국장의 다그침을 계속 들으면 화가 날 만도 했다.
그제야 국장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는 전화기를 켜 놓은 채 유튜브를 켰다.
기자의 귓가로 국장이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어……? 이, 이게… 3번 레인이 최치우라고? 우리가 아는 그 최치우 대표?
“맞다니까요!”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 김 기자?
“말도 안 되죠. 근데 눈앞에서 벌어진 일인데 어떻게 해요. 기사 써야지.”
-그, 그래. 알았다! 얼른 속보, 특종! 일단 내보내고 생각하자!
국장이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당최 믿지 못하는 편집국장과 현장 기자의 언쟁은 유튜브 동영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끝났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특종 기사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엄밀히 말하면 단독 보도가 아니기에 특종은 아니다.
그러나 기사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다들 메인으로 걸기 바빴다.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기사를 처음 본 사람들은 가짜 뉴스로 착각했다.
<올림푸스 최치우 대표, 100m 달리기 한국 신기록 경신!>
<9초의 벽을 깨트린 올림푸스 최치우 대표!>
<최치우, 이벤트성 출전에서 한국 신기록과 9초의 벽 동시 돌파!>
헤드라인을 보면 가짜 뉴스나 만우절 농담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사 내용과 첨부된 현장 영상을 보면 모두 사실이다.
3번 레인에서 다른 선수들을 여유롭게 따돌린 장본인은 분명 최치우였다.
최치우는 달리기 한 번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전문 육상 선수가 아닌 일반인, 그것도 세계적인 기업을 창립한 CEO가 9초의 벽을 깨트린 전무후무한 사건은 머지않아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
외신들도 소식을 받는 대로 대서특필할 게 분명했다.
발 빠른 CNN 월드 와이드 채널에서는 벌써 유튜브 영상을 입수해 속보로 내보냈다.
단순히 한국 선수가 9초대 기록을 세웠다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가 기록의 주인공이기에 글로벌 핫 토픽으로 꼽히는 게 당연했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그가 100m 달리기 미국 신기록을 세운 셈이다.
그만한 뉴스에 환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최치우의 달리기 기록 뉴스도 전 세계를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10초도 안 되는 시간, 한 번의 질주로 지구를 뜨겁게 만든 당사자인 최치우는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한국 신기록을 가볍게 뛰어넘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너무 빨리 달릴 뻔했다. 딱 이 정도가 좋으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어.’
그는 선수 대기실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9초 98은 딱 적당한 기록이었다.
조금만 더 빨리 뛰면 세계신기록까지 깨버릴 뻔했다.
물론 우사인 볼트가 세운 세계신기록을 계속 남겨둘 수는 없다.
최치우는 동양인 최초로 100m 세계 기록의 꼭대기에 이름을 올려둘 작정이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위해 올림픽 결승전까지 기록 경신을 참아야 했다.
너무 일찍 김을 빼버리면 열기가 식는다.
남들은 0.01초라도 기록을 당기기 위해 노력할 때, 최치우는 한 편의 영화를 쓰기 위해 이것저것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귀찮은 일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최치우는 전 세계가 자신을 영웅 또는 괴물로 바라보리란 걸 알면서도 달리기를 선택했다.
당장 여러 번의 까다로운 도핑테스트부터 받아야 한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족적을 인류의 역사에 남기는 것.
그 길을 선택한 사람은 최치우 자신이기 때문이다.
문무쌍전의 신화, 살아있는 전설.
최치우는 100m 달리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주목을 받게 됐다.
유영조 대통령이 경고했듯이 네오메이슨도 최치우를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최치우에게 가해질 압박과 위협의 수위는 예전과 사뭇 다를지 모른다.
최치우는 가시밭길마저도 모조리 짓밟아 꽃길로 바꾸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대기실의 다른 선수들은 말도 못 걸고 경외의 시선으로 최치우를 훔쳐보고 있었다.
이미 익숙해졌지만 새삼 선수들의 눈빛이 와닿았다.
최치우는 임동혁이 말한 것처럼 고독한 왕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는 말없이 스마트폰을 켜고 호들갑을 떠는 언론들의 기사를 읽었다.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해.’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한 기사들이 넘쳐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최치우는 24살의 나이로 이만큼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30대가 되려면 5년이 넘게 남아 있다.
남은 20대 동안 세상을 몇 번이나 더 뒤흔들지 장담하기 어렵다.
더구나 남자 인생은 서른부터라는 말도 있다.
30대 이후의 최치우는 얼마나 무서운 인물이 돼 있을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기업과 100m 달리기 신기록을 동시에 이룬 최치우에게 열광하지만, 이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최치우가 차원이 다른 신인류임을 증명하는 서막이 오늘 열린 셈이었다.
***
“죄송합니다, 대표님.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대한체육회에서 파견 된 검사관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최치우는 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그럼 실례지만…….”
“네.”
다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다.
최치우는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 서 있었다.
중년의 검사관은 고개만 살짝 옆으로 돌린 채 화장실 안에 남았다.
보통 도핑테스트는 소변과 혈액으로 실시한다.
소변을 채취할 때는 검사관이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는 게 관례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에서는 최치우를 특별 테스트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가 육상 선수권 예선에서 세운 기록이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환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온갖 음모론을 늘어놓는 익명의 네티즌들도 적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입장에서는 신경을 써서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소변 샘플을 교체하는 등 편법이 발생하지 못하게 검사관이 화장실 안에서 기다릴 정도였다.
“여기 있습니다.”
최치우는 성실하게 소변을 받아 샘플을 건넸다.
불필요한 오해와 음모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순순히 협조를 해줘야 한다.
올림픽에 출전하면 IOC도 각종 도핑테스트를 실시할 게 뻔하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굳이 짜증을 낼 필요는 없다.
검사관도 상부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것뿐이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럼 잠시 후 혈액검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요. 편하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검사관은 혹시라도 최치우가 불쾌해할까 봐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했다.
최치우는 육상 선수가 아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거물 CEO다.
그가 작정하고 나서면 대한체육회 회장 자리도 위태로워 질 수 있다.
이미 재계와 정관계에서 최치우는 실세로 소문이 나 있었다.
유영조 대통령이 올림푸스의 신사업을 적극 지원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가총액 기준 재계 서열 2위, 그리고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인물.
최치우의 존재감은 보통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물론 그는 권위로 다른 사람을 찍어 누르는 취미 따위는 없다.
카리스마를 발휘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권위를 부리면 볼썽사나운 꼰대일 뿐이다.
최치우는 젊은 꼰대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잠시 대기실에서 쉬고 계시면 혈액검사를 하러 찾아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치우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다.
몇 번을 검사해도 최치우가 도핑테스트에 걸릴 확률은 1%도 없었다.
테스트 결과가 나와도 음모론을 쓰는 사람들은 계속 딴 소리를 할 것이다.
최치우의 정체는 외계인이라는 말까지 나올지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공인된 기관의 테스트 결과를 믿을 것이다.
최치우는 기꺼운 마음으로 혈액검사도 감내했다.
따지고 보면 도핑테스트 검사관들도 최치우 때문에 고생을 하는 중이다.
평소라면 육상 종목에서 도핑테스트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이제는 몇 번에 걸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정밀하게 샘플을 채취해야 된다.
자칫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도핑테스트는 처음이라 검사관들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안 아프게 해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최치우가 농담을 던져 검사관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그의 밝은 모습에 주삿바늘을 든 검사관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세상이 최치우라는 측정 불가능한 영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도핑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인류, 최치우의 신화는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시대를 바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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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우가 1차 예선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이틀이 지났다.
원래 손기정 기념 육상 선수권의 하이라이트는 마라톤 시합이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토너였고, 한국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육상 종목도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수권에서는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인기 종목이던 마라톤에 쏟아지던 관심이 단거리 종목인 100m 달리기로 집중됐다.
100m 결승전이 열리는 날, 경기가 펼쳐지는 실내 운동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육상 선수권에서 표가 다 팔린 일은 처음이었다.
최치우는 한국 육상계의 역사를 다시 써버렸다.
한시적이지만 대한민국 육상의 인기가 축구나 야구를 능가한 것 같았다.
최치우는 100m 달리기 결승전에 나서 몸을 풀었다.
그가 운동장에 등장하자 관중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최치우다아아아-!”
“최치우! 최치우! 최치우!”
월드컵에서 최고의 인기 선수가 등장했을 때, 아니면 WBC에서 4번 타자가 타석에 섰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최치우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환호성을 즐겼다.
열광적인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세계적인 기업을 이룩해도 사람들의 직접적인 응원을 받을 기회는 많지 않다.
뉴스나 댓글, 여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운동선수와 연예인은 경기장과 무대에서 피부로 인기를 느낀다.
‘이 맛도 나쁘지 않군.’
최치우는 씨익 웃으며 출발선에 안착했다.
결승전이지만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스타트 자세를 잡고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육상 선수권 다음은 국가 대표 선발전, 그리고 최종 목표는 내년 여름 올림픽이다.
최치우는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깨고, 금메달을 따는 순간 육상 은퇴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스텝-!”
준비 신호가 울렸고, 고막을 때리는 총성이 터졌다.
타앙!
최치우가 결승선을 향해 금빛 질주를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달리기는 잠깐의 유희다.
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국민들은 IMF 시절 박찬호, 박세리를 볼 때처럼 가슴 뻥 뚫리는 통쾌함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