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37화 (137/243)

# 137

***

홍문기.

현기 자동차의 후계자.

대한민국 재계 서열 2위 대기업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총수.

그렇기에 홍문기는 뛰어난 인물이어야 했다.

비록 퓨처 모터스가 현기 자동차와 경쟁을 하지만, 홍문기의 능력에 수십만 명의 앞날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뜸 반말을 지껄이는 모습은 기대 이하였다.

물론 가끔 인성은 쓰레기라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인성이 쓰레기면 능력도 바닥이다.

최치우는 홍문기가 개망나니란 사실을 바로 파악했다.

임동혁은 능력은 출중한데 동기를 찾지 못해 방황했던 것뿐이다.

진짜 재계의 망나니는 따로 있었다.

홍문기를 임동혁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할 지경이었다.

“보자마자 반말에 욕이라……. 너무 기대 이하입니다, 홍문기 부회장님.”

최치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가 없어 화도 나지 않았다.

홍문기는 태어날 때부터 40년 넘게 황태자처럼 살아왔을 것이다.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임원이나 계열사 사장들도 어린 홍문기에게 쩔쩔맸을 게 뻔하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주위 사람이 기분을 맞춰주는 삶을 살다 보면 성격이 망가지게 마련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홍문기가 성질을 부려도 다 받아줬다.

현기라는 이름의 무게감이 그를 지켜주는 방패였다.

하지만 오늘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최치우는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현기 자동차의 영향력 아래에 있지도 않다.

홍문기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는 경쟁 기업의 대표다.

최치우는 홍문기가 억지로라도 가면을 쓰고 정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상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하무인이었다.

상황 파악을 못 하거나 자기감정을 못 이기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홍문기의 그릇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기대 이하? 터진 입이라고 막 씨부리네. 요즘 좀 잘나간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지?”

홍문기는 커다란 덩치를 과시하듯 계속 선 채로 막말을 내뱉었다.

보통 이렇게 강하게 나가면 누구든 위축시킬 수 있었다.

재벌 2세라는 배경, 운동선수 못지않은 체구, 저돌적인 공격성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최치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문이 잘 닫혔는지 확인했다.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VIP 룸이 약속 장소여서 다행이었다.

쏴아아아아-

갑자기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최치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주위를 무겁게 짓눌렀다.

홍문기도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눈을 희번덕거렸다.

처억.

최치우는 그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자 홍문기는 어깨 위로 쇳덩이가 올려진 느낌을 받았다.

“크헉?”

영문을 모르는 이상한 현상에 홍문기가 식은땀을 흘렸다.

방금 전까지 초면인 최치우에게 패악질을 부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처억-

최치우가 한 걸음 더 움직였다.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홍문기가 느끼는 압력도 커졌다.

아무리 바보라도 최치우와 압력의 연관성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홍문기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반항할 엄두도 내기 힘들었다.

최치우가 내공을 발산해 작은 공간을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금강나한권을 대성한 그는 훨씬 패도적인 권왕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모든 초식이 살초로 이뤄진 권왕의 아랑권은 무림에서도 포악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만약 최치우가 작정하고 아랑권의 기운을 폭발시키면 홍문기는 금방 오줌을 지릴지 모른다.

그나마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도 최치우의 배려 덕분이다.

꽈아악-!

최치우는 오른손을 뻗어 홍문기의 멱살을 잡았다.

손에 힘을 주지는 않았다.

가볍게 멱살을 쥐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걸로 충분했다.

아랑권의 기운에 짓눌린 홍문기는 난생 처음 느끼는 공포를 마주하고 있었다.

최치우는 홍문기를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

“내가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고, 먼저 미팅을 제의했으면서 동네 양아치처럼 나오다니…….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홍문기 부회장?”

최치우도 더는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수준 낮은 인간들에겐 비슷한 눈높이에서 대접을 해줘야 한다.

괜히 잘해줘 봤자 고마운 줄도 모를 게 분명하다.

홍문기는 다급하게 입을 놀렸다.

“혀, 협정! 우리 현기와 퓨처 모터스의 협정을 제안하려고…….”

“무슨 협정? 내가 지금 기분이 나쁘니까, 짧고 간단하게 말해.”

최치우의 하대는 자연스러웠고, 홍문기는 궁지에 몰린 쥐 신세가 됐다.

괜히 성질을 부리며 주도권을 잡으려다 본전도 못 건진 셈이다.

“전기차 기술을 공유하는 조건으로… 우리 생산 공장을 넘겨주는……. 케켁!”

홍문기는 숨이 턱턱 막히는지 말을 끝맺지 못하고 헛기침을 터트렸다.

최치우가 내공을 조절해서 발산했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이 견디기 힘든 위압감이다.

턱!

멱살을 놓은 최치우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퓨처 모터스는 T 모터스 시절부터 생산 설비를 갖추는 게 문제였다.

전기차 기술이 출중해도 수천, 수만 대를 양산할 수 있는 공장과 노하우가 없으면 자동차 시장을 바꾸기 어렵다.

기껏해야 소수의 매니아만 만족시키는 회사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량생산 노하우를 가진 현기의 공장을 받는 것은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 대가로 전기차 기술을 알려줘도 손해는 아니다.

어차피 후발 주자가 기술을 소화해 따라오는 동안 퓨처 모터스는 저만치 앞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홍문기가 정중한 태도로 협상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최치우도 진지하게 고민하며 현기와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홍문기의 태도가 글러먹었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오너인 최치우에게도 이렇게 막장으로 굴면 다른 사람들에겐 오죽하겠는가.

“어때? 이만하면 좋은 조건이라 생각하지 않나?”

홍문기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최치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를 압박하던 아랑권의 기운이 사라졌다.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이다.

“좋은 조건이지만, 좋은 파트너가 아니군. 난 조건을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최치우는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한국 기업은 특히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직접 본 홍문기는 경영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실격이었다.

그가 물려받을 현기 자동차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홍문기는 다시 눈을 부릅떴다.

퓨처 모터스가 넙죽 엎드려 받을 조건이라 생각했는데 깡그리 무시를 당한 것이다.

“아이 씨팔, 거 좀 너무하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홍문기는 불과 30초 전까지 자신을 짓누르던 기운을 잊어버렸다.

조금만 편해지면 금방 본성이 나오는 모양이다.

인내심이 필요 없는 삶을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씨팔?”

최치우는 고개를 살짝 꺾으며 홍문기의 말을 따라했다.

홍문기가 움찔했지만, 이내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래, 씨팔! 대체 뭐가 문제인데?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한국 회사끼리 손잡고 적당히 양보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잖아, 글러먹은 태도가 문제라고.”

최치우는 마음을 굳혔다.

절대로 현기 자동차와 손을 잡을 일은 없다.

퓨처 모터스는 경쟁을 통해 현기의 자리를 뺏을 것이다.

전기차가 대세가 되는 미래 시장에서 현기의 설 자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결심을 마쳤다.

“넌 좀 맞자.”

“뭐? 이 미친 새끼가!”

퍼억-!

최치우의 주먹이 홍문기의 명치를 때렸다.

빛살처럼 곧은 정권 강타.

단 한 방으로 충분했다.

쿵!

두 다리에 힘이 풀린 홍문기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유도 선수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덩치도 소용없었다.

최치우는 내공을 쓰지 않았다.

아주 약간이라도 내공을 담으면 홍문기가 죽을지 모른다.

뒤탈이 없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최대한 고통스럽게 때리는 것이 목표였다.

“자, 잠깐만…….”

홍문기가 다급히 두 손을 저었다.

명치를 한 대 맞으니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최치우는 느릿느릿 여유롭게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었다.

“딱 3분, 라면 끓을 시간 동안만 처맞아봅시다.”

“말로… 말로 합시다! 말로!”

홍문기가 갑자기 존댓말을 썼다.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공짜로 부회장님 사람 만들어 드릴게.”

푸슉-

말을 마친 최치우는 손가락으로 홍문기의 목덜미를 찔렀다.

일시적으로 소리를 못 내게 만드는 아혈을 짚은 것이다.

이제 홍문기는 비명도 지를 수 없다.

점혈법까지 쓴 최치우는 작정하고 홍문기를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퍽! 퍼퍽!

빠각-

상처가 남지 않게 손바닥으로 어깨와 가슴, 복부를 난타했다.

손바닥이지만 한 방, 한 방이 대포 같았다.

홍문기는 내장이 뒤집히는 느낌을 받으며 고꾸라졌다.

소리를 낼 수 없는 입으로 비명 대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퍼어억-!

쓰러진 홍문기를 억지로 일으킨 최치우가 옆구리를 후려쳤다.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아마 금이 가서 몇 주는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갈비는 다쳐도 병원에서 치료할 방법이 없다.

계속 통증을 느끼며 안 움직이는 게 최선이다.

맞은 자리가 욱신거릴 때마다 홍문기는 최치우를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게 될 것 같았다.

“이제 2분 지났네. 아직 1분이나 더 남았군.”

최치우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홍문기의 심장을 후벼 팠다.

고작 3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재벌 2세로 태어난 홍문기가 이렇게 복날 개 잡듯 구타를 당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끽해야 회장인 아버지에게 훈계를 받으며 회초리를 맞는 게 전부였다.

홍문기는 40 평생 최악의 고통과 공포, 수치심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짝!

최치우는 마지막으로 홍문기의 뺨을 날렸다.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때리진 않았다.

육체적 고통은 차고 넘치도록 선사했다.

대신 씻을 수 없는 정신적 타격을 입힌 셈이었다.

꾸욱-

아혈을 눌러 홍문기가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최치우는 두 손을 털었다.

“3분 끝. 홍문기 부회장님, 앞으로 두 가지는 명심하고 살길 바랍니다.”

“으으… 끄흐으으…….”

홍문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듯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최치우는 그가 듣거나 말거나 말을 계속했다.

“첫째, 나이 많다고 아무한테나 반말하지 맙시다. 둘째, 운 좋게 재벌 2세로 태어났다고 깜도 안 되면서 거들먹거리지 맙시다.”

소매 단추를 잠근 최치우는 홍문기를 돌아보지 않았다.

3분 동안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지만, 뼈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며칠 혹은 몇 주 조용히 요양하면 낫는다.

후환은 걱정 없다.

홍문기는 최치우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목숨 걸고 숨기려 할 것이다.

소문이 날수록 본인의 자존심만 상하는 일이다.

물론 그는 최치우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을 동시에 품고 이를 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최치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퓨처 모터스는 현기와 손을 잡지 않고 홀로 성장시키면 된다.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간다.

그것이 바로 최치우의 왕도(王道)였다.

인간 말종 같은 홍문기를 박살 내고 나온 최치우는 다시금 전의를 다졌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강해져야 한다.

네오메이슨을 비롯해 대기업 회장과 재벌 2세들, 과거의 기득권 전체가 최치우를 물어뜯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

험난한 가시밭길이지만, 최치우는 그마저도 꽃길로 바꿀 수 있을까.

그를 시험하는 무대의 스케일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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