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36화 (136/243)

# 136

<유아독존>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 회의는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최치우는 김호태 의원만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든 게 아니었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에게 갖고 있던 불만을 대신 해소해 준 셈이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은 아무리 잘못을 해도 혼이 난 적 없었다.

제도적으로 국회의원을 혼낼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기자들이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것 정도일 뿐, 공개 석상에서 국회의원을 질타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반면 국회의원은 대통령부터 총리, 장관, 고위 공무원, 대기업 경영자 등 사람을 가리지 않고 혼을 낸다.

마치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최정점에 위치한 듯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그런데 국토교통위 회의에서 최치우에게 크게 한 방 맞은 것이다.

최치우는 시종일관 정중한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또박또박 빈틈없는 최치우의 발언은 마치 선생님의 회초리처럼 국회의원들을 때렸다.

기세등등하던 김호태 의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더듬는 장면은 백미였다.

덕분에 국민들도, 정치권도 최치우의 진면목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그는 단순히 운이 좋아 엄청난 성공을 이룩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CEO와도 거리가 멀다.

노회한 국회의원마저 손바닥 위에서 갖고 놀 수 있는 무서운 인물이다.

국회와는 레벨이 다른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남는 장수가 바로 최치우였다.

김호태 같은 의원들 때문에 국회의 신뢰도는 바닥을 쳤고, 최치우와 퓨처 모터스를 바라보는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원래도 대다수 국민들은 퓨처 모터스와 제주도의 계약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었다.

다만 최치우가 국회에서 여론 조성의 클라이막스를 찍은 것이다.

“대표님, 국회가 만만한 곳이 아닌데 정말 큰일 했습니다. 우리도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어요.”

원성룡 도지사는 기운 넘치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최치우의 국회 방문으로 제주도 지역 여론도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도지사의 독단적 판단으로 막대한 예산을 쓰게 됐지만, 도의원들이 반대할 명분이 없어졌다.

지금 상황에서 도의회가 반대를 표하면 제2의 김호태가 될 뿐이다.

지역 여론에 누구보다 민감한 도의회는 제주도의 전기차 사업 계획을 통과시켰다.

이제 법적으로 퓨처 모터스와 제주도의 계약은 100% 보증이 됐다.

제주도청이 파산하지 않는 이상 퓨처 모터스는 3달 안에 1,000억 원을 받는다.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이 한국에서 실리콘밸리로 전해졌다.

최치우는 브라이언과 통화를 하며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장은 좀 어떻습니까?”

“복구 속도가 빠릅니다. 연구를 담당하는 직원들, 그리고 생산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장 배치를 고민하게 됐네요. 이전보다 더 효율적인 생산 공장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라이언도 실리콘밸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축구로 따지면 최치우는 최전방 공격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결정적 한 방으로 팀을 이끄는 슈퍼스타인 것이다.

하지만 팀의 우승을 위해서는 미드필더와 수비수, 골키퍼가 든든히 뒤를 받쳐줘야 한다.

심지어 후보 선수도 제 역할을 해야 진짜 강팀이다.

브라이언 머스크는 원래 실리콘밸리에서도 손꼽히는 공격수였다.

그러나 위기를 겪고, 최치우를 만나며 포지션을 바꿨다.

경영 대신 기술 개발에 전념하는 CTO 자리를 받아들였다.

최전방 공격수에서 미드필더로 내려온 셈이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부담을 덜어낸 브라이언은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하며 업무 효율을 끌어 올렸다.

투자를 비롯해 골치 아픈 일은 최치우가 해결해 준다.

재무 상황 역시 올림푸스의 CFO인 임동혁이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줬다.

공격수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자기에게 딱 맞는 포지션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브라이언은 위기 덕분에 자기 자리를 찾았다.

사실 그는 주가가 떨어졌을 때 지분을 넘기며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후회는 전혀 없었다.

최치우라는 리더를 만나서 전기차 개발이라는 꿈을 마음 편히 꿀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정상화는 언제쯤 가능할까요.”

“내년 여름 전에 프로토 타입을 재생산하겠습니다.”

브라이언이 의욕적으로 목표를 말했다.

최치우는 의외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에는 가을이나 겨울, 그러니까 1년은 더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과 제주도의 계약금이 모두 3개월 이내로 집행될 예정입니다. 상황이 변했으니 저희도 더 빨리 움직이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내년 여름까지 프로토 타입을 생산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1차 물량을 찍어냅시다. 그때쯤 제주도에도 전기차 충전소 공사가 시작될 것 같군요.”

“네, 대표님.”

최치우는 순간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매일 수백 번도 넘게 대표님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천재, T 모터스라는 세계 최고의 전기차 회사를 창업한 브라이언으로부터 대표님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나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아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처음 올림푸스를 만들 때, 실리콘밸리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서 실리콘밸리를 능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치우는 해내고 말았다.

실리콘밸리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회사를 손에 넣었다.

그저 회사만 인수한 게 아니다.

그런 식의 인수 합병은 에릭 한센이 더 잘할지 모른다.

최치우는 브라이언의 마음을 얻었고, 인수 이후에도 시너지 효과를 내며 같은 꿈을 꾸고 있다.

회사를 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천재의 마음을 사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고마워요, 브라이언. 내년 겨울에는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가 제주도를 가득 채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와 뉴욕도, 파리와 런던도.”

“전부 대표님을 만나서 가능한 일입니다. 불에 타 영영 사라지는 줄 알았던 제 꿈을 다시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최치우와 브라이언이 서로의 진심을 전했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 뜨거운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웃으며 폰을 내려놓았다.

퓨처 모터스는 미래로 달려갈 일만 남은 것 같았다.

***

잘되는 회사의 분위기는 두 가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첫째,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나가려는 사람은 없다.

올림푸스의 직원 공채는 경이적인 경쟁률을 기록했다.

원래 80명을 뽑을 예정이었지만, 최종적으로 100명이 올림푸스에 합류했다.

60명은 여의도 본사로 출근을 시작했고, 40명은 트레이닝을 거친 후 남아공본부로 출국할 예정이다.

인원이 부쩍 늘어났지만 여의도 본사 사무실은 워낙 넓어 문제가 없었다.

올림푸스에 합격한 사람들은 신입, 경력을 막론하고 로또 당첨자처럼 기뻐했다.

단순히 업계 최고의 연봉과 복지, 스톡옵션을 주기 때문은 아니다.

올림푸스는 미래를 열어가는 회사다.

한국을 대표하는 혁신의 아이콘이 됐고,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회사의 시총이나 사업 영역에 비해 직원은 많이 뽑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올림푸스 사원증의 가치는 더더욱 높을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라는 불세출의 글로벌 스타와 함께 일을 한다는 점도 구직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퇴사하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공채를 마친 올림푸스는 전체 직원 수가 300명 가까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소수 정예 정신이 살아있었다.

한번 회사에 들어온 사람들이 나가지 않고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게다가 대부분 실리콘밸리의 너드들처럼 돈을 뛰어넘는 목표를 추구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

자연스레 올림푸스의 팀웍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잘 되는 회사의 두 번째 특징은 주가 상승이다.

주식을 투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주가는 정직하게 움직이는 편이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 주식은 상승세로 돌아선 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올해가 가기 전 올림푸스 시총 20조 원, 퓨처 모터스 시총 30조 원, 도합 50조의 시가총액이라는 목표가 이뤄질 것 같았다.

미국과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이다.

이렇듯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계속해서 잘되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년이라고 다를까.

최치우가 25살이 되면 본격적으로 열매를 따게 된다.

광명의 소울 스톤 발전소가 완공 되고, 퓨처 모터스에서 새롭게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올해의 기록적인 성장보다 내년의 결과가 더 기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회사가 성장하면서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늘어났다.

국회로 불려가 의원들을 상대한 것도 회사가 크면서 겪은 일이다.

배후에는 역시 현기 자동차가 있었다.

현기는 한국 자동차 시장의 지배자인 동시에 세계에서도 5위권을 지키는 회사다.

산업화 시기부터 대단히 빠른 성장을 했고,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지금도 국내와 세계 곳곳에 현기 자동차의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현기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다.

중국 자동차 회사가 약진하며 저가 시장을 빼앗고, 고가 시장은 독일 브랜드가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기는 미래 시장을 주도 할 전기차 기술에도 뒤늦게 투자를 시작했다.

어쩌면 현기를 떠받치는 내수 시장 점유율이 독이 됐는지도 모른다.

별다른 노력을 안 해도 국내에서 워낙 차를 많이 파니 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기 자동차의 내수 독주도 영원할 것 같진 않았다.

퓨처 모터스가 제주도에 상륙하면 게임의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

하루아침에 전기차가 휘발유와 경유를 전부 대체하긴 힘들다.

그렇지만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가 제주도에서부터 열풍을 일으키면 현기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쪼그라든다.

오죽 다급했으면 김호태 의원을 움직여 최치우를 국회로 불렀겠는가.

비록 최치우에게 반격을 당했지만 현기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임동혁을 통해 비밀스러운 미팅을 제안한 것이다.

한영그룹의 후계자인 임동혁의 재계 인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오성그룹을 물려받은 이지용 부회장을 비롯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현기 자동차의 후계자인 홍문기 부회장도 임동혁과 아는 사이였다.

30대 중후반부터 40대 중후반까지, 10살 터울의 재벌 2세들은 서로가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라도 언제든 개인 번호로 전화는 할 수 있는 관계였다.

“딱히 할 이야기는 없지만… 현기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겠군.”

최치우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혼잣말을 읊조렸다.

홍문기 부회장은 40대 초반의 나이로 현기 자동차를 이끌고 있다.

이지용 부회장과 함께 한국 경제를 책임진 투톱이라 불렸다.

콧대 높은 국회의원도 홍문기 부회장과 1 : 1 미팅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치우는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오성그룹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러나 현기 자동차는 이미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가 추월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공개 미팅을 받아들인 이유는 하나였다.

홍문기 부회장의 그릇을 보면 현기 자동차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

그가 모자란 인물이면 현기는 알아서 망할 것이고,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면 한층 긴장해야 한다.

퓨처 모터스는 제주도로 진출하며 현기의 경쟁자가 됐다.

최치우는 느긋한 자세로 경쟁 기업의 실질적인 오너를 기다렸다.

똑똑똑-

곧이어 노크 소리가 세 번 울렸다.

방문이 열리고, 회색 정장을 입은 덩치 좋은 남자가 혼자 들어왔다.

최치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최치우입니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했다.

홍문기는 악수를 하는 대신 멀뚱히 서서 최치우를 쳐다봤다.

일부러 어깨를 쫙 폈는지 가뜩이나 큰 덩치가 더 우람해 보였다.

“드디어 상판대기를 보네. 건방진 새끼.”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저렴한 멘트였다.

최치우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홍문기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현기 자동차의 미래는 암담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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