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
제주도는 중국인들이 대거로 유입되며 버블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땅 값이 오르고, 지역 경제가 살아났지만 단점도 없지 않았다.
제주도가 지니는 원래의 이미지가 훼손 되면서 점점 특별할 것 없는 유명 관광지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버블은 한 순간에 꺼질 수 있다.
제주도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혁신이 필요한 시기였다.
원성룡 도지사는 친환경 전기차에서 답을 찾았다.
매연 냄새 없는 천혜의 섬.
관광객이 아무리 많아져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섬.
제주도에게 딱 어울리는 이미지를 친환경 전기차가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기차는 단순히 친환경만 상징하지 않는다.
미래와 혁신을 상징하는 최첨단 문물이다.
아직 세계 어느 도시도 전기차 인프라를 확충하지 못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오늘날 제주도 신드롬을 만든 건 젊은 2030세대다.
전기차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였다.
제주도에 오면 아름다운 자연 환경도 즐기고, 전기차를 렌트해 미래를 경험할 수도 있다.
이만한 홍보 효과를 지닌 캠페인이 또 뭐가 있겠는가.
결단을 내린 원성룡은 퓨처 모터스와 MOU를 체결했다.
그는 도지사 자격으로 최치우가 내건 조건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수용했다.
사실 도의회의 반발이 예상되는 사안이었다.
전기차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다.
그만큼 불투명한 사업에 엄청난 예산을 쓰는 걸 도의회에서 곱게 볼 리 없다.
하지만 최치우의 인기와 원성룡 도지사의 뚝심이 방패막이 됐다.
퓨처 모터스는 최치우가 인수했다.
그 순간부터 국민들은 실리콘밸리의 퓨처 모터스를 대한민국 기업이라 여겼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한국이 전기차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도약하기 위해 제주도와 손을 잡겠다는 것이다.
도의회 의원들이 마냥 반발하기에는 국민 여론이 무서웠다.
원성룡 도지사와 싸우는 거라면 부담이 적다.
그런데 마치 최치우와 대립하는 것처럼 구도가 짜이면 누구 하나 선뜻 나서기 어렵다.
최치우는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국회의원도 아닌 도의원들이 맞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퓨처 모터스, 제주도와 전기차 1만대 우선 공급 MOU 체결>
<제주도, 친환경 혁신 도시로 승부수를 던지다!>
삼다도(三多島)에서 전해진 깜짝 뉴스가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사람들은 제주도와 퓨처 모터스의 협약 자체만 주목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MOU의 디테일을 눈여겨봤다.
특히 제주도에서 전기차 천 대의 대금을 먼저 지급하는 대목이 핵심이었다.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는 대당 1억 원 정도의 고가 모델이다.
브라이언은 T 모터스 시절부터 고성능 모델을 먼저 출시하고, 이후 라인업을 확대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렇기에 천 대의 대금이면 무려 1,000억 원이다.
당장 한 푼이라도 자금이 급한 퓨처 모터스에게는 큰돈이다.
올림푸스의 지원과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전기차 회사는 돈 먹는 하마다.
연구 개발 비용과 생산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다시금 완성된 전기차를 세상에 내보이려면 얼마가 더 들지 모른다.
제주도의 계약금 1,000억은 단비와 같았다.
가치를 따지면 수천 억, 아니 1조와 맞먹는 효과를 지닌 돈이다.
제주도가 퓨처 모터스의 신용보증을 서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투자자들은 여전히 퓨처 모터스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최악의 위기를 넘겼지만, 과연 무사히 전기차를 출시해서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하지만 제주도가 무려 만 대를 사겠다고 보증을 섰고, 시장의 불안을 대신 해소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MOU 체결이 발표된 이후 퓨처 모터스 주식은 급등세로 돌아섰다.
최치우는 올해를 넘기기 전 퓨처 모터스의 시가총액을 30조 원으로 회복시킬 작정이었다.
3분의 1로 쪼그라든 회사를 인수해 1년도 안 지나서 주가를 원상 복귀 시키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날고 기는 경영의 신들도 최치우 앞에서는 한 수 접어주게 생겼다.
전금녀도 최치우를 믿은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최치우는 폼이나 잡으려고 전기차 회사를 인수한 게 아니었다.
그는 퓨처 모터스라는 칼을 날카롭게 다듬어 휘두르기 시작했다.
석유 패권을 비롯해 일반 자동차 회사도 긴장해야 할 것이다.
최치우가 꿈꾸는 미래가 현실이 되면 세계는 급격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변화의 바람은 마냥 따스하지 않다.
기존의 질서를 휩쓸어 버린 자리에 미래라는 이름의 새싹이 자라는 법이다.
***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개발하면서 세계의 모든 휴대폰 업체를 적으로 돌렸다.
스마트폰이 당연해진 세상을 만들기까지, 그는 외로운 싸움을 거듭해야만 했다.
과거와 미래는 충돌 할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미래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우뚝 섰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기업이다.
퓨처 모터스가 제주도와 MOU를 체결하자 당장 국내 자동차 회사가 들고일어났다.
현기 자동차는 산업화 이후 줄곧 국내 2위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최치우라는 신성이 등장하며 어이없게 2위 자리를 내줬다.
매출이 어떻고, 직원 숫자가 어떻고 해도 자존심을 제대로 구긴 것이다.
현기 자동차의 오너 가문은 자부심이 대단하기로 유명했다.
그들은 스스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이라 생각한다.
건설과 자동차로 대한민국을 떠받쳤기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고,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으며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최치우가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현기 자동차는 저무는 해다.
가만히 있어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래도 현기는 국내 시장의 장악력을 바탕으로 변화를 도모하려 했다.
그러나 퓨처 모터스가 제주도와 손을 잡으면서 현기의 안방을 침범한 것이다.
전기차 시대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안 된 현기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들의 초조함은 지저분한 대응으로 드러났다.
뜬금없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최치우를 호출했다.
보나마나 현기 자동차의 로비가 작용한 결과였다.
최치우는 기꺼이 국회의 부름에 응하기로 했다.
참석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피할 이유도 없었다.
상대가 치졸하게 나올수록 정도를 걷는 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다.
네오메이슨에 이어 세계 5위의 자동차 회사인 현기도 최치우의 적이 됐다.
최치우는 국회의원들 다수도 적으로 돌릴 각오를 했다.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그의 발걸음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기자들의 질문에도 최치우는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대표님, 오늘 국토교통위 회의에서 어떤 질문들이 나올 것 같으십니까?”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최 대표님-!”
“제주도와 퓨처 모터스의 MOU가 불공정 계약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자들의 질문은 사뭇 날카로웠다.
최치우는 의사당 안으로 들어서기 직전, 잠시 걸음을 멈췄다.
모든 기자들에게 일일이 대답을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한마디 정도는 답변을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국회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을 드릴 생각입니다. 그러나 퓨처 모터스와 제주도는 미래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최치우의 문장은 단순하면서 명료했다.
그는 언론을 상대로 절대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았다.
누구나 한번 들으면 무슨 뜻인지 바로 알 수 있는 문장을 사용했다.
국회가 아무리 방해해도 퓨처 모터스는 제주도를 전기차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저벅저벅-
최치우는 기자단을 뚫고 국회 본청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절차를 거친 그는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이미 국토교통위 회의는 진행 중이었다.
최치우는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받을 예정이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회의장 입구에 도착한 최치우는 밖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상 오늘 열린 국토교통위의 하이라이트는 최치우의 참석이다.
기자들을 비롯해 국회의원들도 최치우가 회의실에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최치우의 유명세 덕분에 국토교통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언론 1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참고인 최치우 씨는 국민의 대표자 앞에서 진실만을 이야기할 것을 선서하십니까?”
“선서합니다.”
청문회가 아닌 국회 상임위 회의지만 나름대로 엄숙한 분위기였다.
간략한 선서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최치우를 향해 관심이 집중됐다.
국회의원들도 여당과 야당 가릴 것 없이 최치우를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최치우는 의원들의 눈빛에서 다양한 감정을 읽었다.
글로벌 스타인 최치우를 마냥 신기하게 쳐다보는 의원도 있었고, 오늘을 발판 삼아 인지도를 올리려는 욕망도 엿보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특권 의식이 높은 사람들은 단연코 국회의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보다 더 콧대가 높다.
최치우는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순순히 국회로 나왔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는 정치권이 감히 올림푸스와 퓨터 모터스를 흔들지 못하게 한 방 먹여줄 작정이었다.
“새로운 참고인이 착석했으니 질의응답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국토교통위원장이 의사 진행을 시작했다.
최치우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의를 지키지만, 국회의원들 앞이라고 딱히 긴장할 것은 없었다.
그는 대통령과 청와대 안뜰에서 직접 협상을 하는 사람이다.
국회의원 300명이 다 모인 자리에서도 편안하게 앉아 있을 자신이 있었다.
“제가 먼저 질문을 하겠습니다.”
야당 소속 국회의원이 손을 들고 나섰다.
최치우는 그의 얼굴과 이름표를 번갈아 쳐다봤다.
‘김호태. 지역구는 울산. 현기 자동차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정치권에 진출한 대표적인 인물.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군.’
계산은 끝났다.
김호태 의원이 최치우를 국회로 부른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오성그룹과 현기 자동차는 적극적인 로비로 위명이 자자하다.
정치권에서 두 그룹의 돈을 한 번도 안 받아본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 것이다.
그중에서도 김호태는 대놓고 현기 자동차의 서포트를 받는 국회의원이다.
“퓨처 모터스가 제주도와 전기차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것이 다른 자동차 회사의 영업권을 침해하는 독점 계약이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제주도민의 세금으로 특정 기업을 이렇게까지 밀어주는 게 타당한 것인지……. 또 올림푸스는 정부 지원을 받아 광명에 발전소를 짓고 있는데, 이것도 정부가 엄청난 세금을 썼습니다. 정경유착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닐지, 국민들의 의혹에 대해 해명해 주십시오.”
국토교통위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김호태가 처음부터 아주 강하게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는 정치권과 기업에서 금기와도 같다.
절대 함부로 꺼내선 안 되는 말을 김호태 의원이 던진 것이다.
최치우는 둘째 치고, 여당 의원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김호태는 최치우와 현 정부를 묶어서 정경유착이라 비판했다.
언론이 무턱대고 정경유착 의혹이라는 말만 받아써도 골치 아픈 프레임이 형성된다.
“김호태 의원님.”
그때 최치우가 입을 열었다.
모두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시선으로 최치우를 쳐다봤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추궁을 받으면 누구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프리젠테이션의 달인으로 알려졌지만, 과연 국회의원들을 면전에 두고도 자신 있게 의견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의문을 박살내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최치우는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김호태 의원을 역공해 궁지로 몰았다.
“국민들의 의혹이라 하셨는데, 최근 여론조사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주도와 퓨처 모터스의 MOU 체결을 바라보는 도민 여론조사에서 89%의 압도적인 찬성 의견이 나왔습니다. 광명에 세워지고 있는 소울 스톤 발전소는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기대한다는 응답이 90% 이상입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어떤 의혹을 품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그것은…….”
예상 못한 반격이었을까.
김호태 의원이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김호태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결정타를 날렸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대한민국이 미래의 주역이 되도록 힘쓰는 기업입니다. 실리콘밸리 중심부에서 세계 최고의 전기차 기술을 가진 회사를 대한민국이 소유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지자체와 정상적인 계약을 두고 정경유착이라니요. 제주도가 아니라도, 서울이 아니라도 저희는 계속 회사를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인한 국가 경쟁력 손실의 대안을 김호태 의원님께서 갖고 계신지, 정중하게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호태 의원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현기 자동차의 로비를 등에 업고 최치우에게 모욕을 주려던 의원들도 난감한 얼굴이었다.
국회로 불려오면 재벌 총수들도 머리를 숙이고 얌전히 호통을 듣다가 돌아간다.
일단 더러운 꼴 피하고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국회의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치졸하게 보복을 해도 당당히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덤비는 국회의원의 정치 생명을 끝장내 버릴 것이다.
항상 남 위에서 호통을 치고, 꾸짖는 법만 아는 국회의원들이 집단 패닉에 빠졌다.
최치우는 꼿꼿한 자세로 앉아 김호태 의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은 1류, 기업은 2류, 그리고 정치는 3류라는 말이 있다.
최치우는 3류 정치인에게 설설 기며 비즈니스를 편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장애물은 피하지 않고 부숴 버리는 게 최치우 스타일이다.
국회마저도 최치우 앞에서는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