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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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속보입니다. 시리아 동부 유전 지대에서 IS 서열 6위 흰 수염이 사망했습니다. IS는 이를 서방 세력의 암살이라 규정하고 복수를 다짐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모두 흰 수염 사망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미군의 지원을 받는 국제동맹군은 흰 수염 사망을 계기로 동부 유전 지대 탈환 작전을 벌일 예정입니다. 이 영향으로 국제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세에 접어들 전망입니다. 자세한 소식, MBS 김기환 기자가 전하겠습니다.”
공중파 방송국 9시 뉴스의 앵커가 진지한 얼굴로 소식을 전했다.
흰 수염이 죽었다는 뉴스는 곧바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치우가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IS의 성명을 통해 사망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최치우와 헤라클래스는 미군의 지원을 톡톡히 받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미군에서 직접 시리아 동부로 병력을 보내진 않았다.
만약 작전이 실패했다면, 헤라클래스는 미군과의 연관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버려졌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촉수를 세웠지만 별다른 증거를 발견하긴 어려웠다.
펜타곤은 흰 수염의 죽음을 IS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교묘히 포장했다.
러시아 정보원들은 미심쩍어 했지만, 진실을 파헤칠 수 없었다.
최치우와 헤라클래스는 어떤 흔적도 남겨놓지 않았다.
더구나 흰 수염이 죽으면서 시리아 동부의 IS는 오합지졸처럼 흩어졌다.
국제동맹군은 기다렸다는 듯 그 틈을 노려 유전 지대 탈환 작전을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미국과 시리아 내부의 친미파다.
IS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고,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 또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최치우와 리키, 그리고 고작 20명의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국제적인 분쟁 지역의 정세를 바꾼 셈이다.
중동의 분위기는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최치우는 컴퓨터 모니터로 굵직한 오일 뱅크의 주식을 확인했다.
에릭 한센이 투자한 오일 뱅크의 주가도 하락했다.
시리아 동부 유전 지대가 안정을 찾으면 하락폭은 더욱 커질 것이다.
사실 중동 정세를 변화시켜서 석유 회사의 주식을 떨어트리겠다는 생각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다.
상식이라는 이름의 한계를 따르지 않는 게 그의 무기다.
삐빅-!
최치우는 TV와 모니터 화면을 동시에 껐다.
기분 좋은 뉴스는 충분히 봤다.
조만간 미국에서 더 기쁜 소식이 날아올지 모른다.
브라이언의 퓨처 모터스 정상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고, 미국 정부의 구제 금융 심사도 결과 발표만 남겨두고 있었다.
“게임이 점점 재밌어지는데…….”
최치우가 혼잣말을 읊조리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석유 패권의 목을 조르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네오메이슨은 석유 말고도 다른 패권을 추구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최치우는 그들의 실체를 파악해 하나하나 남김없이 부숴 버릴 것이다.
T 모터스의 화재가 오히려 최치우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덕분에 세계 최고의 전기회사를 인수했고, 네오메이슨의 실체를 알아냈다.
전기차 시대를 막기 위한 불길은 최치우 안의 투신을 일깨웠다.
24살의 가을을 맞이한 최치우는 마르지 않는 열정과 에너지로 세계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
광명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시 재개발 지역에는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었고, 노후 건물을 철거하는 작업도 계속 이어졌다.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다.
수도권의 뉴타운 사업이 제대로 성공해야 서울도 살고, 나라가 산다.
광명 뉴타운은 수도권 개발 사업의 선봉이다.
그렇기에 각계각층에서 거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올림푸스도 광명 뉴타운 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으로 뉴타운의 에너지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최치우는 부지와 비용을 정부에서 보전 받고, 향후 20년의 운영권을 따냈다.
발전소가 무사히 돌아가면 매 년 7,000억 원 가량의 이익을 무려 20년 동안 얻을 수 있다.
소울 스톤 하나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든 셈이었다.
“공사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기한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치우는 발전소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환경부 1급 공무원이 따라붙어 실시간 브리핑을 했다.
소울 스톤 발전소는 유영조 대통령의 친환경 대체에너지 공약을 상징하는 결실이다.
그렇기에 환경부에서도 고위 공무원을 보내 신경을 쓰고 있었다.
1급 공무원이면 관료 사회에서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최치우 앞에서는 온순한 양이 따로 없었다.
장관을 비롯해 환경부 전체의 최대 관심 사업이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이다.
발전소가 세워져 에너지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환경부 내부에서는 승진 잔치가 벌어질 수 있다.
1급 공무원도 차관으로 발탁 될지 모른다.
당연히 이 모든 프로젝트의 주관자인 최치우에게 잘 보이려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데드라인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구진에서 요구한 내구성을 갖추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최치우는 현장 구석구석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말했다.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은 어마어마한 열기를 발산한다.
보통의 열병합발전소 내구력으로는 버티기 힘든 에너지다.
그래서 부자재 선정부터 설계까지 몇 배 꼼꼼하게 공을 들였다.
최치우의 우려를 환경부에서도 잘 알고 있었다.
세계의 이목이 소울 스톤 발전소에 집중될 것이다.
만약 설립 이후 가동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 정부의 신뢰도는 타격을 입는다.
대통령과 환경부 장관까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그러나 다행인 점도 있었다.
보통 정부에서 주도하는 공사는 관련 부처와 정치인들의 입김이 거세다.
정작 현장에서 실무를 하는 공무원들이 이리저리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관심을 끌기 위해 이슈라도 하나 터트리면 골치가 아파진다.
공사 기한도 무조건 원안대로 맞추라고 윽박지를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실 공사나 날림 공사 문제가 종종 터지는 것이다.
하지만 소울 스톤 발전소 공사는 달랐다.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최치우가 공사의 총 책임자다.
광명시장을 비롯해 지역구 국회의원, 타 부처 장관 등 쟁쟁한 참견꾼들도 감히 끼어들 엄두를 못 냈다.
올림푸스와 마찰을 일으키면 국민 여론이 들고 일어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치우는 유영조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로 정계에 소문이 나 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최치우가 주도하는 발전소 공사에 감 놔라 배 놔라 목소리를 높이기 어렵다.
덕분에 현장의 공무원들은 무척 편한 환경에서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규격과 부자재 기준을 준수하는 것을 현장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제가 수시로 들여다보며 챙기겠습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명함 하나 부탁드릴게요.”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최치우가 명함을 요구하자 1급 공무원이 화들짝 놀랐다.
곧이어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명함을 건넸다.
나이와 경력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최치우는 대한민국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인상을 남겨 명함까지 건네줬다는 것은 엄청난 호재였다.
혹시 최치우가 대통령 혹은 장관과 대화를 나눌 때 1급 공무원의 이름을 긍정적으로 언급할 수도 있다.
“잠시 혼자 주변을 돌아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명함을 받은 최치우는 공사 현장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넘치도록 충분한 브리핑을 받아 더 궁금한 점은 없었다.
그저 세계 최초의 소울 스톤 발전소가 건설되는 현장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내년 이맘때면 발전소가 완공 되겠지.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은 조금 천천히 개발해도 늦지 않겠어.’
최치우는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을 떠올렸다.
담고 있는 에너지 자체는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이 샐러맨더보다 윗줄이다.
최상급과 상급 정령의 차이점은 분명하게 나타났다.
차이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에너지를 추출하는 방식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을 놓고 실험할 때는 화력 발전 원리를 따랐다.
그렇다면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은 수력 발전 원리로 실험하는 게 타당한 결론이다.
그러나 김도현 교수와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아직 뚜렷한 방향성을 못 찾고 있었다.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처럼 고강도 레이저로 코어를 자극하는 실험을 할지, 아니면 다른 실험 방식을 찾을지 연구 중이다.
최치우는 소울 스톤 연구에 관해서는 모든 권한을 김도현 교수에게 맡겼다.
최종 결정만 최치우가 내릴 뿐, 최고의 학자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게 R&D의 기본이다.
“해답을 찾겠지, 교수님이라면.”
최치우는 김도현을 마음 깊이 믿었다.
한편으로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정령왕이 찾아갈 거라는 아도니스의 경고가 시시때때로 귓가를 울렸다.
현실에서는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는 네오메이슨과 싸워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초자연적 현상을 일으키는 정령들과도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
현실과 초현실의 지배자들이 모두 최치우의 적이다.
누구에게 속 시원히 터놓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감당하며 고독한 길을 걸어야 한다.
“어차피 이보다 덜 외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여기서 엄살을 떨면 불멸의 전사가 아니지.”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부담을 날려 버렸다.
그는 늘 고독한 싸움을 해왔다.
현대에서는 가족과 동료들이 생겼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게 됐다.
이만하면 아무리 무거운 왕관도 기꺼이 버틸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다른 차원에서 최치우는 파괴의 화신이었다.
더 많이 죽이고, 더 많이 부수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세상을 바꾸고, 인류의 미래를 살리는 싸움을 하고 있다.
물론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싸움의 목적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똑같이 부와 명예를 누리더라도 자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우웅-
최치우가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는 와중에 스마트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낸 최치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모르는 번호, 그것도 국제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헬로.”
최치우는 자연스레 영어로 대답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낯설지만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대표님, 브라이언입니다.
“브라이언? 이 번호는 뭐죠?”
-새롭게 출발하는 의미에서 전화기도, 번호도 바꿨습니다.
T-모터스 오너에서 이제는 퓨처 모터스의 기술 개발을 책임지게 된 브라이언 머스크였다.
최치우는 세계 최고의 전기차 엔지니어를 올림푸스라는 울타리 안으로 품었다.
네오메이슨에 의해 상처를 입고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던 브라이언도 최치우를 만나 두 번째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실리콘밸리는 늦은 밤일 텐데.”
-방금 실사 평가단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치우가 귀를 세웠다.
미국 정부에서 파견한 실사 평가단이 며칠 전 퓨처 모터스 공장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화재 사건 이후 퓨처 모터스의 상태를 점검한 것이다.
올림푸스의 자금을 지원 받은 브라이언은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았다.
최치우의 조언대로 직원들을 먼저 복귀시켰고, 공장 역시 화재의 흔적을 씻어내고 착실히 복구하는 중이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공식 발표는 아니지만… 구제 금융이 정상적으로 집행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실사 평가 점수가 무척 높게 나온 덕분입니다. 대표님께서 연구 인력을 먼저 복귀시키라고 했는데, 그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최치우는 폰을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구제 금융이 집행되면 퓨처 모터스는 한층 빨리 회복할 것이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지켜봅시다.”
-네, 대표님!
최치우는 기쁨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네오메이슨이 결과를 바꾸지 못하게 감시하면 된다.
평가 결과가 나온 이상, 로비의 달인이라 해도 함부로 장난을 치긴 힘들 것이다.
-더 좋은 소식으로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모두 대표님 덕분입니다.
브라이언이 우렁차게 말했다.
최치우는 가만히 서서 미소를 지었다.
퓨처 모터스가 정상화되면 머지않아 벤츠, BMW, 아우디를 이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선 국내 1위이자 세계 5위인 현기 자동차부터 이길 것이다.
올림푸스의 전선은 넓어지겠지만, 새로운 싸움은 최치우를 흥분시키는 자극제다.
소울 스톤 발전소 현장에서 최치우는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