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투신(鬪神)>
‘저격수다!’
어둠이 내려앉은 이들리브는 공포 영화 배경처럼 캄캄하고 조용했다.
낯선 골목을 빠르게 질주하는 헤라클래스 대원들의 발자국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빛이 번쩍이기 전, 저격수의 기운을 감지했다.
흰 수염의 은신처 주위로 24시간 경계를 서는 저격수들이 포진돼 있는 것 같았다.
피슛-!
첫 번째 총알이 허공을 갈랐다.
최치우는 대원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지 않았다.
어차피 간발의 차이였고, 괜히 신경을 분산시켜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다당!
다행히 저격수의 총격은 바닥을 때렸다.
아무리 훈련 된 스나이퍼라고 해도 야간 사격은 어렵다.
게다가 IS 대원이 적외선 감지기 같은 비싼 장비를 착용했을 리 없다.
저격이 빗나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파바바박-
반면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달랐다.
야간 전투에 필요한 적외선 고글을 착용했고, 첫 번째 총격 소리가 울리자마자 좌우로 퍼졌다.
어떤 방식으로 저격을 피하며 돌진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원들은 모두 중동에 뒤지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밥 먹듯이 목숨을 걸어본 베테랑들이다.
후미에서 따라붙은 최치우는 미소를 지었다.
헤라클래스의 전투력은 지나치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많이들 늘었어. 리키의 움직임도 좋군.’
최치우는 선봉장처럼 돌격하는 리키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평소에는 주의력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산만하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게 리키의 특징이다.
파이트 클럽에서도, 그리고 총격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의 리키는 확실히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다.
하지만 헤라클래스를 이끄는 리더가 되면서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대원들의 목숨을 책임지는 부담감이 리키에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셈이다.
피핏! 슈슈슉-!
연이어 총성이 울렸다.
소음기가 부착된 스나이핑 샷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좌우로 흩어진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저격 포인트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그사이 흰 수염이 은신한 저택과의 거리는 50M로 좁아졌다.
척박한 시리아 동부에서 보기 드문 저택이다.
척- 처척-!
선두의 리키가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무전을 할 필요도 없었다.
수신호를 받은 헤라클래스 대원 5명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택 외부의 저격수를 비롯해 추가 병력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철저한 훈련과 임기응변이 조화 되어 헤라클래스가 현장을 지배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그때 저택 내부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이들리브의 고요가 깨지고, 건물 안에서 여러 명의 무장 병력이 뛰쳐나왔다.
헤라클래스의 침공이 외부 저격수를 넘어 저택 내부의 병력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
최치우는 입술을 깨물고 자세를 낮췄다.
30분이 지나면 동부 유전 접경 지역에서 대규모 지원 병력이 다다를 수 있다.
그 전에 흰 수염을 사살하고 이들리브에서 빠져나가는 게 중동 침투작전의 미션이다.
‘3… 2…….’
최치우는 속도를 내며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저택 안에서 나온 IS의 무장 병력이 소총과 기관총을 발사하기 직전,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1, 바로 지금-!’
마음 속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앞서 달려가던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뭔가를 투척했다.
휘이잉- 투둑!
소형 폭탄 같은 게 저택 입구에 떨어졌다.
하지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수류탄이나 연막탄일까 봐 잠시 움찔했던 IS 병력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총을 난사했다.
두다다다다다!
지이이잉-!
그 순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IS가 쏜 총알은 헤라클래스 대원들 쪽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총기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IS 병력을 집어삼켰다.
퍼엉-! 퍼퍼펑!
총을 쏜 IS 병력은 갑작스러운 폭발로 손목과 팔이 날아갔다.
다들 처참한 몰골로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순식간에 10명 가까운 무장 병력이 전투불능 상태로 전락한 것이다.
“3분!”
뒤에서 최치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저택 가까이 바짝 붙었다.
대원들은 장착한 총을 꺼내지 않았다.
하나같이 허벅지에서 근접 전투용 단검을 잡았다.
앞으로 3분 동안 흰 수염의 저택에서는 총을 사용할 수 없다.
방아쇠를 당기면 방금 전처럼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멋모르고 총을 쏜 사람만 처참한 골로 간다.
최치우가 특별한 마법을 펼친 건 아니었다.
펜타곤에서 개발한 최신형 비밀 병기, 미쓰릴 필드의 위력이 세계 최초로 발현됐을 뿐이다.
‘세 개중 하나가 오작동이라……. 그래도 엄청난 위력이다.’
최치우는 대원들과 함께 저택 입구로 진입하며 내심 탄성을 터트렸다.
실전에서 처음 사용한 미쓰릴 필드의 위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미쓰릴은 오직 마나로만 제련할 수 있고, 그 외 모든 에너지를 튕겨내는 절대 금속이다.
그 성분을 연구해 개발한 미쓰릴 필드는 반경 100㎡ 이상의 공간에서 3분 동안 인위적 에너지의 작용을 차단시킨다.
미쓰릴 필드가 발동되면 총을 쏘는 건 자살행위다.
수류탄을 비롯한 폭탄도 필드 안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제대로 한 건 했군. 땡큐, 펜타곤.’
육체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무공의 고수 최치우와 미쓰릴 필드의 궁합은 상상 이상이다.
펜타곤은 그들이 최치우에게 어떤 힘을 줬는지 모르고 있었다.
“전원 제압, 흰 수염을 찾으면 즉시 보고!”
최치우 대신 선봉의 리키가 지시를 내렸다.
저택 안에 들어온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대답 없이 또 다른 미쓰릴 필드를 던졌다.
투둑! 지이이이잉-!
2개의 미쓰릴 필드가 제대로 작동했다.
저택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IS 병력은 우물쭈물거리다 총을 쐈다.
미쓰릴 필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극소수다.
두두두두두!
퍼퍼펑! 퍼퍼퍼펑-
총을 쏘면 쏠수록 흰 수염의 호위 병력은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
총 대신 단검을 든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능숙하게 저택을 지배했다.
푸욱-!
단검이 IS 병력의 목덜미를 찌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헤라클래스는 부상을 입은 IS의 숨통을 정확하게 끊었다.
전쟁에서 자비를 베풀 수는 없다.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미쓰릴 필드의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 죽이는 게 최선이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IS 병력을 처리한 헤라클래스는 흰 수염을 찾았다.
“비밀 통로, 후문이다!”
누군가 다급히 외쳤다.
목소리가 너무 커 무전기를 착용한 귀가 울릴 정도였다.
흰 수염을 사살하지 못하면 작전은 실패다.
IS 서열 6위를 건드리고 죽이지도 못했으니 시리아 동부의 방어는 더욱 삼엄해질 것이다.
그 책임은 작전을 제안하고 수행한 최치우와 헤라클래스가 져야 한다.
최치우는 헤라클래스 대원이 발견한 비밀 통로를 찾았다.
저택 외부로 연결된 문이 보였고, 저만치서 힘겹게 뛰어가는 노인과 한 명의 남자가 보였다.
흰 수염과 마지막으로 남은 호위대가 분명하다.
‘흰 수염이 이들레브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찾을 수 없다!’
최치우는 지체하지 않았다.
내공을 터트려 땅을 박찼다.
어차피 보는 눈은 헤라클래스 대원들밖에 없다.
그들은 이미 레드 엑스 섬멸전에서 최치우의 본모습을 약간이나마 지켜봤다.
파아앗-!
경공을 펼친 최치우의 몸이 순식간에 비밀 통로를 지나쳐 쏘아졌다.
궁신탄영(弓身彈影)의 경지가 시리아 동부에서 빛을 발했다.
쐐애애액!
화살처럼 날아간 최치우가 저택 뒤뜰을 가로질러 흰 수염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를 호위하던 젊은 IS 남자의 목덜미에는 이미 단검이 깊게 박혀 있었다.
“ﭽﮋﮏﺹﷲﺱﮕﭻﭽﮋﮏﻡﻖﺱﮕﭻﭽﮋﮏﻡﻖﺊﻱ-!”
흰 수염은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소리를 질렀다.
최치우는 대꾸하지 않고 흰 수염의 얼굴을 확인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 있고, 작전명처럼 하얀 턱수염이 길게 내려와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평범한 중동의 노인이다.
그러나 흰 수염의 지시로 죄 없이 죽은 시리아 사람만 9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시리아 동부의 IS가 민간인 희생자 10,000명을 채우기 전에 최치우라는 이름의 사신(死神)이자 투신(鬪神)이 나타난 것이다.
딸칵!
최치우는 적외선 고글에 부착된 소형 카메라를 켰다.
흰 수염 사살 장면을 녹화해 펜타곤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지옥에서 봅시다, 영감.”
그가 짧은 인사를 건네고, 흰 수염의 목덜미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줬다.
우드득-
이윽고 기괴한 소리가 울리며 흰 수염의 목이 완전히 꺾였다.
목뼈가 부러진 흰 수염은 바람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군더더기 없는 즉사.
최치우는 다시 소형 카메라를 끄고 몸을 돌렸다.
IS의 지원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이들리브를 빠져나가야 한다.
최치우는 대원들이 기다리는 저택으로 돌아가며 미소를 지었다.
탈출이라는 고비가 남았지만, 중동 침투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 특수부대도 섣불리 시도하지 못한 작전이었다.
흰 수염의 시체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만큼 최치우의 피는 뜨겁게 데워졌다.
그는 어느 차원에서건 싸우기 위해 태어난, 싸움에 있어서는 패배를 모르는 인간이었다.
***
“투입 인원 22명, 사상자 0명, IS 서열 6위 흰 수염 및 무장 병력 17명 사살……. 이게 말이 되는 전공이라고 생각하나?”
펜타곤을 이끄는 루이스 고어 장관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역대 최장수 국방부 장관 자리를 노리는 전쟁 영웅도 납득하기 힘든 성과였다.
그의 맞은편에는 최치우가 앉아 있었다.
“중동 침투작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관님은 승인을 해주셨고, 헤라클래스는 펜타곤의 믿음에 보답했습니다. 그뿐입니다.”
“미쓰릴 필드의 영향이 있었겠지만, 우리 특수 여단을 투입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작전을……. 올림푸스는 헤라클래스로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가?”
“아프리카에서 어깨에 힘이나 주려는 겁니다. 어차피 미국의 관심 지역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참, 계산이 안 나오는 인물이로군. 우리와 한배를 타고 있지만… 자네의 행보는 워싱턴에서도 주의 깊게 지켜본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루이스 고어는 백악관이 최치우를 주목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최치우가 움직일 때마다 전 세계가 들썩이고,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영향은 더더욱 크기 때문이다.
“미쓰릴 필드는 훌륭했습니다. 5개를 사용해 오작동은 단 1개. 예상했던 50%보다 훨씬 낮은 20%의 불량이어서 작전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번에 소모한 5개는 다시 지급하도록 하지. 헤라클래스가 미쓰릴 필드의 테스터 역할을 하게 됐으니.”
“다른 약속도 지켜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군인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법이 없다네.”
루이스 고어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군인이라는데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자기 입으로 뱉은 말은 어떻게든 책임지려 들 것이다.
언젠가는 올림푸스와 펜타곤도 등을 돌릴 수 있다.
최치우는 그 때가 오면 루이스 고어 같은 인물이 상당히 피곤한 적수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럼 일어나겠습니다.”
“조만간… 소식을 보내지.”
“기대하죠.”
루이스 고어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선 최치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펜타곤의 최신 무기, 그리고 미군 특수부대 출신의 용병 지원자 150명을 얻게 됐다.
헤라클래스는 아프리카 남부 최강의 무장 단체로 압도적 입지를 굳힐 것이다.
뿐만 아니라 루이스 고어는 퓨처 모터스를 위해 막강한 정치력을 발휘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둘러싼 로비 전쟁에서 최치우가 천군만마를 불러온 셈이다.
최치우는 피가 튀는 싸움뿐 아니라 금력과 권력으로 승부하는 싸움에도 완전히 눈을 떴다.
올림푸스의 주인은 계산기만 잘 두드리는 경영인이 아니다.
이제껏 세상이 경험한 적 없는 투신이 올림푸스 군단을 지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