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30화 (130/243)

# 130

<퓨처 모터스>

전격 발표가 세상을 뒤집었다.

한국의 기업 올림푸스가 실리콘밸리 T 모터스를 인수한다.

이미 CEO이자 최대 주주인 최치우와 브라이언 머스크가 양해 각서를 체결했고, 공식적인 인수 절차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다.

세계 최고의 전기차 기업으로 각광받았지만 공장 화재로 위기에 몰렸던 T 모터스는 퓨처 모터스로 이름을 바꾼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세계의 어느 전문가도 언급한 적 없는 사상 초유의 빅딜이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언론은 앞 다퉈 기사를 쏟아내며 늦게나마 다양한 분석을 시작했다.

T 모터스, 아니 브라이언이 이끄는 퓨처 모터스의 기술력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사들이 섣불리 인수를 생각하지 못한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 전기차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불안감이다.

4,500대의 완성된 전기차가 도로를 돌아다닌 이후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네오메이슨은 출고 직전에 불을 냈고, 결국 전기차는 소문만 무성한 신기루가 됐다.

규모가 큰 기업들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주식이 매일 하한가를 치고, 직원들은 대부분 휴직 상태에 들어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전기차 회사를 인수하는 건 모험 중의 모험이다.

CEO든 누구든 자기 목숨을 걸고 인수를 시도해야 한다.

그만한 배짱과 담력을 가지고 배팅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더구나 브라이언 머스크에 대한 평판도 썩 좋지 않았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괴짜로 불린다.

실력과 열정은 인정하지만, 남의 말을 안 듣는 고집불통으로 알려져 있었다.

브라이언이라는 괴짜를 컨트롤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결정적으로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승인하지 않을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악재와 악재가 겹친 상황, 그렇기에 올림푸스보다 훨씬 규모가 큰 기업과 금융 자본도 T 모터스 인수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최치우는 전기차를 신기루가 아닌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확신했다.

역설적으로 네오메이슨이 최치우의 확신을 증명시켜 줬다.

만약 전기차 기술이 위협적이지 않다면, 그들이 무리수를 두며 불을 질렀을 리 없다.

세계를 지배하는 석유 패권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T 모터스의 전기차 기술은 대단한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인 오너 리스크도 최치우 앞에서는 별게 아니었다.

그는 브라이언과 직접 만나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했고,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최치우가 마음먹고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

게다가 합법적 인수를 통해 1대 주주이자 오너로 올라섰다.

기술 개발에 대한 책임을 브라이언에게 남겨줬을 뿐, 회사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최치우는 브라이언을 통제하며 장점만 이끌어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마지막 악재인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은 이제부터 돌파해야 할 장벽이다.

네오메이슨은 돈다발을 싸들고 무차별적 로비를 시작할 게 뻔하다.

똑같은 방법으로는 로비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미국 정부의 요인과 자금줄을 네오메이슨이 단단히 잡고 있을 게 확실하다.

최치우와 퓨처 모터스는 여론을 등에 업고 싸워야 한다.

사상 초유의 전격 발표에 미국 국민들과 언론이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희망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 된다.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거절할 경우,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는다면 정치인들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이 들고 일어나는 것도 무시하기 힘들다.

로비 VS 여론.

정치인 VS 국민.

최치우는 브라이언과 손잡고 2차전을 시작했다.

첫 번째 전투에서는 네오메이슨이 이겼다.

하지만 그로 인해 최치우가 네오메이슨의 실체를 정확히 알게 됐다.

어쩌면 전기차 4,500대를 불태운 것보다 최치우와 브라이언을 한 팀으로 만든 게 더 뼈아플지 모른다.

최치우의 전장은 미국과 실리콘밸리로 확장됐다.

세계의 중심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

-홀홀홀, 하여튼 걸물이야. 어떻게 사흘 안에 이런 일을……. 내게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나.

전화기 너머로 전금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최치우는 리무진 뒷좌석에 앉아 그녀와 국제전화를 하는 중이었다.

차 안이지만 외부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통화를 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미리 설레발을 치는 성격이 아닙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여사님.”

-아무렴, 이해하고말고. 내 그래서 자네를 알아보고 투자를 결정했던 것 아닌가.

“3일만 기다려 주시면 반전을 보여 드리겠다는 약속은 지켰습니다.”

-내 이제부터 온 세상 증인이 되겠네. 올림푸스 최치우는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고 말일세.

전금녀는 단순히 기분 좋으라고 아무 말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대기업 회장들에게 현금을 빌려주는 큰손이다.

전금녀의 입에서 나오는 평가는 한국 사회에서 무시 못 할 평판이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치우의 신용도는 수직 상승하게 됐다.

-구제금융은 어찌 될 것 같나? 그것만 해결되면 주가도 원점을 회복하지 싶은데 말이야.

전금녀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T 모터스가 올림푸스 산하 퓨처 모터스로 편입되며 바닥을 치던 주식이 오름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3분의 1로 토막이 났던 걸 완전히 회복하기엔 무리였다.

구제금융을 기점으로 몇 개의 산을 더 넘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오호라? 이번엔 예전처럼 확언을 하지 않는구만.

전금녀가 의외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최치우는 불가능한 도전에 뛰어들면서도 100% 자신을 믿어왔다.

1,0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본 전금녀더러 당당하게 3일을 기다리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구제금융을 이야기할 때는 달랐다.

무조건 된다는 최치우 특유의 결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전금녀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답게 미묘한 차이를 캐치한 것이다.

“구제금융을 받으면 일이 빨리 풀릴 겁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 모든 것을 맡기지는 않을 거란 뜻입니다.”

-정부의 금융 지원 말고도 다른 해법이 있는 겐가?

“두고 보시면 알게 되겠죠.”

-그놈의 배짱은 당해낼 수가 없구만! 홀홀, 어디 한번 잘 해보게. 뒷방 늙은이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올해가 끝나기 전, 만만찮은 수익을 보실 겁니다.”

곧 여름의 무더위가 한국과 미국을 펄펄 끓게 만들 것이다.

올해라고 해봐야 7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최치우는 7개월 안에 전금녀의 주식 가치가 3천억 원 이상이 될 거라고 장담한 셈이다.

이제 막 회복세로 돌아선 퓨처 모터스 주식이 원래의 시가총액을 뛰어넘는 순간, 최치우의 자산도 폭증하게 된다.

그는 주식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지분을 대량 매수했다.

브라이언이 보유한 지분의 절반도 넘겨받으며 1대 주주로 올라섰다.

퓨터 모터스의 전신인 T 모터스 시총이 10조일 때 인수를 한 것이다.

만약 시총이 30조 수준으로 회복만 되어도 최치우는 수익률은 300%라는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물론 최치우가 그저 주식 대박만을 노리고 인수라는 모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전기차를 생산하고, 세계의 자동차 패러다임을 바꾸면 퓨처 모터스의 가치는 100조 이상으로 뛰어오를 거란 계산이 있었다.

인류의 미래를 열어주는 동시에 지구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가 되는 것.

최치우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조준하고 있었다.

그는 올림푸스뿐 아니라 퓨처 모터스라는 새로운 날개를 장착했다.

한 쌍의 날개로 태풍을 일으킬 일만 남았다.

지이잉-

그때 리무진 뒷좌석과 운전석을 막아 놓은 가림막이 자동으로 내려갔다.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에 다 왔음 알린 운전기사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재빨리 움직인 그가 최치우 대신 뒷좌석 문을 열어줬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리무진 기사의 당연한 서비스다.

불편하다고 말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최치우는 차에서 내린 후 기사에게 목례를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세기의 인수 협상을 타결시킨 최치우는 곧장 뉴욕으로 날아왔다.

뉴욕에선 매일 여러 개의 미팅을 소화하기 때문에 전용 리무진과 운전기사가 필수였다.

“이제는 서울보다 뉴욕이 더 편하다고 하면 허세겠지?”

최치우는 자신의 혼잣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뉴욕의 마천루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는 약속이 잡힌 빌딩 안으로 들어가며 유명인 대우를 톡톡히 받았다.

까다로운 보안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최치우의 얼굴은 뉴욕에서도 통하는 보증 수표다.

보안 검색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최치우에게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청했다.

며칠 전 T 모터스를 인수해 퓨처 모터스로 재설립한다는 뉴스가 나간 이후 미국 내 최치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T 모터스가 전기차 시대를 이끄는 주역이 될 거라 믿었다.

그동안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독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미국이 독일의 명품 자동차 제조 업체를 추월하게 될 거라 기대했다.

그렇게 뜨거운 기대감이 무르익는 와중에 화재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다.

미국인들의 실망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바로 그래서 최치우의 등장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평소 같았으면 실리콘밸리 기업이 한국 기업에 인수되는 것은 반가운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쓰러져 가는 미국 전기차 회사를 되살린 주인공이 최치우였다.

미국인들의 자존심과 기대를 절벽 끄트머리에서 구해낸 셈이다.

오죽하면 깐깐한 보안 검색도 그냥 통과할 정도다.

최치우는 국내용 스타가 아닌 진짜 월드 스타로 떠오르고 있었다.

똑똑!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 빌딩 꼭대기까지 올라간 최치우가 별실 문을 두드렸다.

초현대식 빌딩이지만, 아무나 못 올라오는 꼭대기 층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었다.

끼이익-

곧이어 나무 소리를 내며 커다란 문이 열렸다.

방 안에는 원탁이 놓여 있었고, 창문으로 맨해튼 빌딩 숲이 내려다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장관님.”

최치우는 반백발의 노신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이답지 않게 우람한 풍채를 자랑하는 미군의 전설, 국방부 장관 루이스 고어가 최치우를 맞이했다.

“못 본 사이 너무 거물이 되었군. 나를 뉴욕까지 오게 만들고. 이 동네는 공기가 좋지 않아.”

루이스 고어는 짐짓 투덜거렸지만,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방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미국 국방부 장관과의 독대다.

두 사람은 어디에도 새어 나가면 안 되는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그렇기에 루이스 고어는 자신의 최측근 수행원도 배제시켰다.

“펜타곤에서 미쓰릴을 테스트할 때 뵙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시간은 고작 2년이나 3년밖에 흐르지 않았지. 그사이 자네의 위치가 엄청나게 달라졌을 뿐이고. 나는 부끄럽게도 계속 같은 자리나 지키고 있군.”

루이스 고어가 농담을 했다.

최치우의 입지가 놀랍도록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수년째 미국 국방부 장관직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한 성과다.

압도적 국방비를 지출하는 세계 최강의 무력 집단을 지휘하는 것이다.

조직 장악력부터 정치력 등 요구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루이스 고어는 역대 최고의 국방부 장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오랜만이지만, 바로 본론을 꺼내는 게 어떤가.”

“좋죠.”

“자네가 제의한 중동 침투 작전, 정말 현실성이 있다고 보나?”

루이스 고어의 입에서 심상치 않은 말이 나왔다.

최치우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의 이면에서 또 다른 역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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