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26화 (126/243)

# 126

<빙산의 일각>

펑-! 퍼퍼펑-!

폭죽이 파란 하늘을 수놓았다.

겨울의 한파가 물러가고, 완연한 봄의 기운이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최치우는 환경부 장관과 함께 테이프를 커팅했다.

동시에 쏘아진 축포는 소울 스톤 발전소의 건립을 기리는 것이었다.

약 1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광명 뉴타운의 전력을 책임질 발전소가 들어서게 된다.

정부의 공식 발표와 함께 올림푸스의 주가는 다시 한번 폭등했다.

소울 스톤을 공개한 것만으로 시가총액은 단기간에 30억 달러에서 120억 달러로 4배나 뛰었었다.

그런데 이제 소울 스톤에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소울 스톤이라는 특별한 물질의 효용 가치가 공인을 받은 셈이다.

덕분에 주가 상승세는 가파르게 이어져 끝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올림푸스 시총은 150억 달러를 돌파했고, 올해 안에 200억 달러는 넘길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렇게 되면 시총 20조가 되는 것이다.

국내 2위 기업인 현기 자동차의 시가총액이 30조 부근이다.

회사의 규모나 매출로 따지면 올림푸스는 현기 자동차의 10분의 1도 안 된다.

하지만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현기 그룹의 목 밑까지 추격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페이스북의 시가총액은 5천억 달러가 넘는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500조 원 이상이다.

이제는 세계를 이끄는 공룡 기업이 됐지만, 그들 역시 처음 기업 공개를 하며 상장했을 때는 실적보다 가능성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전통적인 제조업 강자보다 미래 지향적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높아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그동안 한국만 유독 세계의 흐름에서 비껴나 있었다.

창의적인 기업이 성장할 발판과 토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림푸스의 등장으로 한국도 세계적인 트렌드에 꿇리지 않는 기업을 내세울 수 있게 됐다.

단순히 올림푸스 하나만 잘나가고 마는 문제가 아니다.

선두주자의 분발은 후발주자에게 다양한 기회를 열어준다.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서 수많은 김연아 키즈들이 전국 피겨 연습장을 채웠다.

그로 인해 한국의 피겨 스케이트 인프라가 달라질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최치우를 롤 모델로 삼는 학생들이 늘어나며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분위기가 변했다.

대기업과 공무원 일색이던 학생들의 장래 희망 리스트를 창업이나 스타트 업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한국도 말로만 창의력을 떠드는 게 아닌, 진정한 창의 국가로 부상할 수 있다.

역사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시대정신을 여는 거인이 나타나야 역사의 물결이 바뀌는 법이다.

최치우는 과거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타입의 인물이다.

그는 올림푸스와 함께 한국의 토양과 문화를 개선시키고 있었다.

“축하드리오, 최 대표.”

기공식이 끝나갈 무렵, 환경부 장관이 최치우에게 따로 인사를 건넸다.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장관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사실 환경부 장관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세계 최초의 친환경 소울 스톤 발전소를 짓는 역사적 현장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지와 건립 비용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20년의 운영권을 넘겼지만, 그것을 문제 삼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몇몇 언론들이 악의적 기사를 써도 올림푸스 홍보팀에서는 묵살하고 넘어갔다.

올림푸스는 광고비를 노리고 무조건 비판적 기사를 쓰는 언론의 행태에 놀아나는 회사가 아니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관님.”

“내가 최 대표님에게 잘 부탁을 드려야지요. 광명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소울 스톤 발전소가 들어서는 날을 함께 그려보십시다. 물론 내 임기는 그 전에 끝나겠지만, 하하하하!”

환경부 장관이 농담을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최치우는 미소로 화답했다.

에너지 추출이 가능한 소울 스톤이 현재로선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굳이 알려줄 이유는 없다.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은 당분간 실험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다.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을 이용한 발전소 건립이 끝나고, 다른 소울 스톤을 확보한 다음 2차 실험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

그사이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실험 성공률을 높여야 한다.

언제까지 25%의 확률에 도박을 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속에 있는 많은 말을 꾹 삼킨 채 화제를 돌렸다.

“요즘 환경부에서 관심을 두는 이슈는 어떤 게 있을까요?”

“그거야 뭐 전기차 아니겠소. 그런데 생각보다 국내 인프라 구축이 늦어질 것 같다오. T 모터스도 불이 나는 바람에 국내 시장 진출에 차질이 생겼고…….”

환경부 장관이 얼마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를 언급했다.

최치우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T 모터스의 공장에 불이 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여러 나라의 전기차 인프라 구축에 영향을 끼치는 대형 사건이었다.

“장관님, 대표님. 마지막 사진 촬영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때 행사 안내 요원이 두 사람을 불렀다.

최치우는 생각을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포토 라인에 섰다.

어쨌거나 오늘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끝까지 밝은 얼굴로 기공식을 잘 마무리 지어야 한다.

최초의 소울 스톤 발전소는 향후 20년 동안 올림푸스에게 수십조의 매출을 안겨줄 것이다.

찰칵- 찰칵-!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최치우는 환경부 장관과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었다.

한국과 외국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여심을 사로잡은 그의 미소가 내일 신문 1면에 실릴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의 속내는 복잡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위험한 게임이 시작됐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석연치 않은 T 모터스의 화재 사건이 최치우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운명의 시계추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

사람들은 최치우가 매일 파티를 벌이며 하늘 위에 둥둥 뜬 기분으로 살 거라 생각한다.

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받으며 기공식이 무사히 끝났고, 최신 설비를 갖춘 소울 스톤 발전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150억 달러를 돌파한 시총 덕분에 최치우의 개인 자산은 7조 원을 넘기게 됐다.

24살 청년이 7조 원이라는, 현실감 없는 금융 자산을 지닌 부자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의 전망대로 올림푸스 시총이 200억 달러를 넘어서면 그의 자산은 10조 가까이 치솟는다.

오성그룹의 회장과 부회장을 제외하면 한국 최고의 부자로 우뚝 서는 게 시간 문제였다.

그렇지만 최치우는 두 가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첫째는 미안함, 둘째는 찜찜함이다.

사람들의 예상처럼 최치우는 샴페인을 터트리며 희희낙락하지 않았다.

자수성가로 적당히 성공한 사람들은 일찍 은퇴를 해서 여생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기준을 넘어가는 성공, 한계를 초월한 성공은 사람을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

최치우는 이미 세상을 바꾸는 재미를 맛봤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서양 위주의 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인류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게 목표가 됐다.

재산이 10조가 아닌 100조가 되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의 삶이다.

자기 손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거인들의 전쟁터에 발을 들인 이상, 결론은 정해져 있다.

살아 있는 신화가 되거나 처절하게 몰락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수십만 명의 제국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보다 더 짜릿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책임감과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최치우는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이라는 역사를 만들고도 마냥 샴페인에 취하지 않았다.

그가 미안함을 느끼는 대상은 다름 아닌 전금녀였다.

최치우를 믿고 3,000억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그녀는 상당한 이익을 봤었다.

전기차 회사인 T 모터스와 드림 모터스 주식이 꽤 올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작스런 화재로 T 모터스의 최신 전기차 4,500대가 소실됐다.

추정되는 손실액은 공장 설비를 합쳐 무려 1조 원이다.

세계 최고의 전기차 회사로 잘나가던 T 모터스는 뿌리부터 휘청거리게 됐다.

당장 미국 정부에 긴급 구호 자금을 요청했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오르던 주식 역시 하한가를 거듭하고 있었다.

전금녀는 아직 T 모터스에서 발을 빼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게 생겼다.

최치우가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 감정인 찜찜함도 T 모터스와 연관이 있었다.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에는 웬만해선 불이 나지 않는다.

가끔 화재가 발생해도 금방 불길이 잡힌다.

자동으로 불을 끄는 화재 대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형 화재는 공장이 아닌 산이나 들에서 발생한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T 모터스의 공장에서 그만한 불이 났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었다.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어. 분명히.”

최치우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여의도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직원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야말로 캄캄한 밤, 사무실에서 한강과 여의도 빌딩 숲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네오메이슨의 짓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손해가 너무 막심할 텐데.”

최치우는 네오메이슨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T 모터스의 화재는 절대 자연스러운 사고가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미친 짓을 벌인 거라면, 네오메이슨 말고는 떠오르는 세력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동기가 약하다.

에릭 한센은 T 모터스 주식을 의도적으로 떨어트린 후 대량 매수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T 모터스는 폭삭 망할 위기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에릭도 제법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T 모터스가 망하면 수천억의 손실을 보게 된다.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은 너무 많다.

아무리 최치우에게 여러 번 당했어도 에릭은 월가의 천재 금융인으로 통한다.

그가 막대한 손실을 감당하며 T 모터스 공장에 화재를 일으켰을까.

만약 네오메이슨이 사건의 배후라면 그만한 동기가 있어야 했다.

수천억의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불을 내야만 하는 동기.

그게 무엇인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상대의 카드를 모르면 게임에서 질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올림푸스를 세운 이후 이렇게 찜찜한 적이 또 있었나 싶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T 모터스를 망하게 만들어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일까.”

모든 동기는 이득과 관련이 있다.

에릭 한센이 의심스럽지만, 그는 T 모터스 화재로 손해를 입게 됐다.

그렇다면 에릭은 화재의 배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에릭이 곧 네오메이슨인 것은 아니다.

그는 네오메이슨의 일원이지만, 어쩌면 얼굴마담일 수도 있다.

에릭의 이득과 네오메이슨의 이득이 언제나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전기차 회사가 망하면… 기존의 자동차 회사들이 반사 이익을 누리겠지. 그리고… 석유. 그래, 석유다!”

최치우는 유레카를 외치듯 혼자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만약 방금 떠오른 가설이 진짜라면, 네오메이슨은 인류를 상대로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미친 집단일 것이다.

“유태인들과 서양의 금융 자본은 석유 회사를 틀어쥐고 있어. 미국이 중동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도 유전을 지배하기 위해서였고. 그런데 전기차의 등장으로 석유 시대의 종말이 다가왔지. 에릭이 전기차 회사와 대체에너지 회사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진행한 게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전기차와 대체에너지를 망쳐서 석유 패권을 연장하기 위한 노림수라면……. 그들에게 수천억의 손실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군.”

혼잣말로 생각을 정리한 최치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오메이슨은 에너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최치우는 얼른 겉옷을 챙겨 입었다.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가는 그의 발걸음이 무척 다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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