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23화 (123/243)

# 123

***

날이 밝았다.

최치우는 평소처럼 하루를 보낼 작정이었다.

괜히 초조해하며 김도현 교수에게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 실험을 잘 마치고, 누구보다 먼저 최치우에게 연락을 할 것이다.

궁금증을 꾹 참고 기다려 주는 것, 그게 지금 최치우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아침 일찍 눈을 뜬 최치우는 태양의 정기를 받으며 운기조식을 했다.

현대에서 환생해 처음 익힌 금강나한권은 절정을 찍은 지 오래다.

마법이 7서클에 도달한 이상, 더 파괴적인 무공을 수련할 때가 됐다.

원래라면 금강나한권으로도 충분했다.

현대에서 무공을 펼치며 싸울 상대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비록 음지이긴 해도 UFC보다 강력한 파이터들이 모이는 파이트 클럽도 시시하긴 마찬가지였다.

최치우는 상급 무공 중에서 패도(覇道)와 거리가 먼 소림사의 금강나한권을 일부러 선택했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 지구의 정령들과 척을 지게 됐다.

이미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최치우가 계속해서 정령들을 사냥하면 정령왕이 좌시하지 않고 찾아올 거라는 유언을 들은 것이다.

계속해서 정령들과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다른 차원에서 환생했을 때처럼 극강의 무력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다.

“후우우우-”

운기조식을 마친 최치우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대주천을 했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소주천으로 운기조식을 짧게 마친다.

하지만 여유가 있으면 단전의 내공을 정수리의 백회혈부터 발끝까지 한 바퀴 돌리는 대주천 운기조식을 하는 게 정도(正道)다.

제대로 운기조식을 마치니 온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자는 동안 몸 안에 쌓인 탁기가 땀방울로 배출되는 것이다.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과로와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는 남의 이야기가 됐다.

당장 금강나한권의 최종 비기인 천보일권을 몇 번이나 펼쳐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부족해.”

최치우는 천보일권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백보신권을 뛰어넘는 소림사의 진신 절기로 최상급 정령까지 쓰러트릴 수 있었다.

금강나한권은 파괴가 아닌 수호를 위한 무공이다.

그래도 천보일권을 비롯해 몇몇 최종 비기의 파괴력은 마교의 무공 못지않았다.

하지만 태생 자체가 소림을 지키는 호위 무공이다.

최상급 정령, 나아가 정령왕 레벨의 존재와 싸우게 되면 여러모로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서 검을 쓰긴 힘들고.”

최치우는 무림에서 천하제일검이었다.

절세신룡 이태민의 검법은 천마의 침공을 홀로 막아낼 정도였다.

그러나 현대에서 검을 들고 다닐 수 없다.

신검의 경지에 오르면 나뭇가지만 잡아도 검처럼 쓸 수 있다고 한다.

누가 최치우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콧방귀를 껴줄 것이다.

천하제일검 문턱에도 못 가본 것들이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이다.

검(劍), 도(刀), 창(槍) 등 특성이 다른 무기는 물론이고, 똑같이 맨손을 쓰는 권(拳)과 장(掌)도 천지차이다.

각각의 무공에 따라 어울리는 병장기와 고유한 성질을 존중해야 한다.

최치우는 깔끔하게 검법을 포기했다.

원래의 무공을 회복하려고 미친놈처럼 허리춤에 검을 차고 다닐 순 없다.

이미 충분히 미친 CEO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권왕의 무공밖에 답이 없군.”

최치우는 권왕을 떠올렸다.

성질머리가 사납기로 무림 제일이었던 남자.

그러나 화통하고 의리가 있어 정파와 사파 모두의 지지를 받았던 영웅이다.

최치우는 현대에서 환생을 하자마자 이제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일진과 싸웠었다.

그때 날렸던 회심의 일격이 바로 권왕의 무공 초식 맹아일격이었다.

권왕의 무공은 너무 포악해서 현대와 어울리지 않지만, 정령들과 싸우게 된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다.

평소에는 금강나한권의 중후한 기운으로 권왕의 들끓는 투기를 다스리면 될 것 같았다.

“정령만 문제가 아니지. 특수부대와 싸우게 될지도 모르니까.”

소울 스톤으로 발전소를 대체하게 되면 온갖 정보기관과 특수부대가 최치우에게 달라붙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호락호락할 리 없다.

최치우는 소울 스톤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특수부대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CIA, 이스라엘의 모사드, 영국의 MI6 등 누구와도 적이 될 수 있다.

정령이 아닌 인간들 때문에라도 더 강해져야 했다.

꽈악-

최치우는 침대 위에서 가부좌를 튼 채 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환생 후 처음으로 펼쳤던 무공을 다시 진지하게 수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권왕의 맹아일격으로 빵셔틀이 일진을 쓰러트렸던 것처럼, 이번에는 정령왕과 특수부대 등 막강한 상대를 이겨내야 한다.

7서클 마법과 금강나한권, 거기에 권왕의 무공이 더해지면 충분히 혼자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다.

째깍, 째깍!

침실에 걸린 시계 바늘은 이제 겨우 7이라는 숫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김도현 교수로부터 실험 결과를 들으려면 한참 남았다.

하지만 최치우는 마냥 기다리는 대신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다음 목표를 정했다.

굶주린 늑대의 포악함이 담긴 권왕의 무공, 아랑권(餓狼拳).

모든 초식 하나하나에 살기가 듬뿍 담긴 무림의 극강 상승 무공이 현대에 재림하게 됐다.

최치우의 시계는 하루가 48시간인 듯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시곗바늘이 숫자 4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 4시.

보통 직장인들의 피로가 절정에 달할 시간이다.

이때부터 슬슬 정시 퇴근을 위해 눈치를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4시가 지나면 금방 해가 떨어지고, 저녁이 찾아온다.

하루의 막이 바뀌는 시간을 꼽으라면 단연 오후 4시인 것이다.

최치우는 아침 일찍 눈을 떠 4시가 될 때까지 바쁘게 움직였다.

오전에는 운기조식을 마치고, 권왕의 아랑권 초식을 복기했다.

권왕은 최치우의 전생, 천하제일검 이태민에게 아랑권을 전수해 줬다.

천마의 속임수에 빠져 큰 부상을 당해 폐인이 된 권왕은 아랑권의 명맥이 이어지길 바랐다.

당시 무림에서 이태민은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무공을 미친 듯 흡수하는 기재(奇才)로 유명했다.

이태민이라면 후계자를 찾아 아랑권을 전승하고도 남을 자질이 있었다.

하지만 이태민도 천마와 함께 죽음을 맞이했고, 몇 번의 환생을 거듭한 후 최치우의 몸으로 아랑권을 익히게 된 것이다.

‘어쨌든 후계자를 찾겠다는 약속은 지켰다고 치자. 아랑권은 소중하게 잘 쓸게, 권왕.’

최치우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권왕의 영혼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돌고 돌아 자신이 권왕의 후계자가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오전 내내 아랑권의 내공 운용법과 초식을 노트에 기록한 최치우는 점심을 간단히 때웠다.

여의도 펜트하우스 1층에 입점한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은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만날 기분이 아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김도현 교수의 연락을 기다리고 싶었다.

집으로 올라온 최치우는 이력서를 검토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올림푸스 공채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지원자는 총 160명이다.

이들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라도 숙지하고 싶었다.

그래야 면접 장소에서 뻔한 질문이 아닌, 보다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력서와 자소서를 하나씩 읽다 보니 금방 오후가 흘러갔다.

“벌써 4시라고?”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본 최치우가 눈을 크게 떴다.

김도현 교수의 연락을 기다릴 겸 다른 일에 더 집중했을 뿐이다.

그런데 시간이 무척 빨리 지나갔다.

최치우는 혹시나 싶어 폰을 눌렀다.

진동이 울리는 걸 듣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재중 전화는 0통이었다.

몇 건의 메시지만 와 있을 뿐, 김도현 교수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지금쯤 애가 타기는 임동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접 실험을 하는 김도현과 마틴 교수를 제외하면, 오직 최치우와 임동혁만 오늘이 D-DAY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들들 볶을 줄 알았는데 잘 참고 있나 보군.”

최치우는 어딘가에 있을 임동혁의 얼굴을 상상했다.

실험에 방해가 안 되도록 김도현 교수에게는 절대 먼저 연락을 하지 말라고 일러뒀다.

아마 어디선가 독한 위스키를 마시며 초조함을 잊고 있을 것이다.

우우우우웅-

그때였다.

최치우의 폰이 익숙한 진동을 토해냈다.

그 순간, 최치우는 오후 4시가 영원처럼 고정된 기분을 느꼈다.

다른 날이면 몰라도 오늘 최치우에게 전화를 걸 사람은 많지 않다.

최치우는 홍보팀과 비서팀에도 웬만하면 전화 대신 메시지를 보내라고 미리 당부를 했다.

그렇기에 김도현 교수의 연락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마트 폰 화면 위로 ‘김도현 교수님’이라는 여섯 글자가 보였다.

“네, 교수님.”

최치우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받았다.

너무 기대하는 티를 내면 김도현 교수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소울 스톤을 걸고 실험을 해야 할지 모른다.

당장의 결과보다 김도현 교수를 비롯한 미래 에너지 탐사대 연구진이 용기를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치우 군. 많이 기다렸지요? 실험이 방금 끝났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틴 교수님에게도 수고했다고 전해주세요.”

“그럴게요. 안 그래도 진땀을 흘리고 반쯤 탈진해서 쉬고 있네요.”

김도현 교수의 음성은 평소와 같았다.

목소리만 들어서는 성공인지 실패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교수님.”

“실험 결과는…….”

최치우와 김도현이 동시에 말을 했다.

티를 내지 않아도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완벽하게 알았다.

김도현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치우 군.”

성공이라는 두 글자가 들리자 최치우는 한 시름을 놓았다.

아무튼 최악의 결과를 피한 것이다.

그러나 궁금증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절반의 성공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건가요, 교수님?”

“우선 소울 스톤은 파괴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초고강도 에너지에 반응하여 막대한 열기를 발산했지요. 우리가 바라던 그대로 붉은 소울 스톤에 담긴 열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었어요.”

“말씀을 들으면 100% 성공인 것 같습니다.”

최치우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억눌렀다.

소울 스톤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세를 부를 수 있었다.

그런데 열에너지까지 추출해 낸 것이다.

4분의 1이라는 확률을 뚫고 첫 번째 실험이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가 남아 있었다.

김도현 교수가 왜 완벽한 성공이 아닌 절반의 성공이라 말했는지 모른다.

곧이어 최치우의 궁금증이 풀렸다.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소울 스톤의 열에너지가 너무 강력했어요. 열기로 증기를 발생시켜 터빈을 돌려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데… 평범한 내구성을 가진 시설은 소울 스톤의 열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할 걸로 보이네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화력이 아닌 소울 스톤으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또 다른 난관이 있을 거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해결됐다.

최치우는 더 이상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한층 커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수님! 그건 나중에 같이 고민하면 됩니다. 오늘은 소울 스톤에서 에너지를 추출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런가요? 아니, 역시 그렇지요. 매번 다음 연구 과제를 고민하는 게 습관이어서…….”

김도현 교수는 천생 학자였다.

역사적 실험을 성공시키고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그와 잘 어울렸다.

최치우는 오후의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연구실이죠? 우리끼리 파티라도 해야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교수님. 임 이사님도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요, 그래요. 마틴 교수와 같이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시원한 외침으로 전화를 마무리한 최치우는 팔을 높이 들었다.

“됐다-!”

무슨 일이든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정말 중요하다.

다음 실험에서는 다른 소울 스톤이 파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실험 대상인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은 대체에너지 개발의 역사를 바꾸게 됐다.

어느 도시에 화력발전소 대신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 발전소를 설치할지 모르지만, 두고두고 새로운 시대를 연 상징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최치우는 미래가 자신을 부른다고 느꼈다.

그는 딱히 의식하진 않지만, 세상을 구하라는 신의 미션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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