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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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우는 S대를 향해 운전대를 잡고 생각을 정리했다.
소울 스톤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건 그저 그런 리스크가 아니다.
올림푸스는 언제나 리스크를 감수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철저히 신봉했기에 지금처럼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소울 스톤은 극도로 희귀한 자원이다.
다른 도전 같으면 이번에 실패해도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된다.
그러나 소울 스톤은 구하기 힘들뿐 아니라 전체 수량도 한정적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정령의 개체가 무한정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교수님이 쉽게 꺼낸 말은 아닐 텐데…….”
최치우는 김도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디어 자체는 하버드에서 온 마틴 그랜트 교수가 냈다고 한다.
하지만 김도현 교수와 다른 연구진들도 심도 깊은 분석을 해봤을 것이다.
그 결과 가능성이 있는 실험이기에 최치우에게 말을 꺼냈을 터.
김도현 교수가 무턱대고 아이디어를 던지고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최치우에게 전화를 걸어 말을 꺼내기 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 같았다.
“결국 내가 책임지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엑셀을 세게 밟으며 달려가는 최치우의 표정을 읽기 힘들었다.
S대에 도착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김도현 교수와 연구진은 의견을 제시할 뿐이다.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사람도 최치우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연구진이 독자적으로 위험한 실험을 계속할 수는 없다.
반드시 최치우의 결재가 필요하다.
승인을 해줄 경우 어떤 실험 결과가 나와도 연구진을 탓하면 안 된다.
최소 7,000억의 가치, 그리고 회사의 주가를 떠받치는 기둥인 소울 스톤 하나를 걸고 최치우가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누구라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복잡한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며 서울의 도로를 거슬러 갔다.
이윽고 S대에 도착한 최치우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움직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다듬기 위해선 1초라도 빨리 김도현 교수를 만나야 될 것 같았다.
“교수님.”
최치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는 공대 건물 내부에 새롭게 꾸며진 미래 에너지 탐사대 연구실로 들어왔다.
예전에 비해 한참 까다로워진 보안 장치를 거쳐서 들어온 것이다.
소울 스톤을 공개한 이후 미래 에너지 탐사대가 있는 S대 공학관은 특급 보안 시설이 됐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감히 S대 건물을 털려고 하는 정신 나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올림푸스는 최신식 보안 시설은 물론, 365일 24시간 공학관 건물을 지키는 경비 업체도 선정했다.
덕분에 최치우마저 일일이 엄격한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미래 에너지 탐사대 연구실로 진입할 수 있었다.
“치우 군, 바로 와줬군요.”
“중요한 일이라 서둘렀습니다. 어디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여기서 하죠. 내가 마틴 교수를 데려오겠어요.”
최치우는 회의실 겸 응접실로 사용되는 넓은 방의 소파에 앉았다.
급하게 달려온 최치우뿐 아니라 김도현도 평소보다 정신이 없어 보였다.
최치우가 오면 늘 따뜻한 차를 먼저 내주었던 김도현 교수였지만, 오늘은 곧장 마틴 교수를 부르러 연구실 깊숙이 들어갔다.
곧이어 김도현 교수가 처음 보는 백인 남성을 데리고 나왔다.
최치우는 그가 하버드에서 온 마틴 그랜트 교수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반갑습니다, 최치우입니다.”
최치우가 능숙한 영어로 악수를 청했다.
마틴 교수는 살짝 긴장한 듯 최치우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틴 그랜트입니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도 최치우를 연예인 바라보듯 쳐다봤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최치우는 지난 몇 년 동안 콧대 높은 학계에서도 범접하기 힘든 업적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울 스톤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물질을 발견한 것은 노벨상 감이었다.
상당히 젊은 나이에 하버드 교수가 된 마틴은 진심으로 최치우를 존경하는 듯했다.
소울 스톤에 대한 궁금증도 있지만, 프로젝트의 리더이자 창립자인 최치우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하버드 교수 자리를 던지고 한국까지 날아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처음으로 최치우를 직접 만난 마틴은 이미 어느 정도 감격한 기색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최치우의 국제적인 명성은 더욱 엄청났다.
“마틴, 소울 스톤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을 해주겠어요?”
서로 인사가 끝나자 김도현 교수는 사회자 역할을 자임했다.
전화로 간단히 설명을 마쳤지만, 아이디어를 제시한 마틴이 이야기하면 더 와닿을 것 같았다.
마틴은 침을 꼴깍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아시는 것처럼 전력 발전은 대부분 터빈을 돌리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렇죠. 원자력, 화력, 수력 모두 어떤 힘을 이용하느냐가 다를 뿐.”
최치우는 꽤 오래 휴학 중이지만 S대 에너지자원공학과가 배출한 최고의 학생이다.
기본적인 전력 발전의 원리 정도는 꿰뚫고 있었다.
마틴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화력 발전의 경우 강력한 열이 증기를 발생시키고, 그 증기가 터빈을 돌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만한 화력을 내기 위해서는 대기오염 등 여러 문제가 뒤따릅니다만…….”
“핵심만 짧게 부탁해요.”
최치우는 이론 수업을 듣는 학생이 아닌 수천억 원, 아니 수조 원 짜리 프로젝트의 리더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CEO이자 오너로서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그의 포스는 하버드 교수 출신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마틴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다잡았다.
하버드를 포기하고 왔지만,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외국 연구진에게 세계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고 있다.
그만큼 돈이 많이 들고, 그 돈은 최치우와 올림푸스에서 나온다.
냉정하게 봤을 때 최치우는 마틴의 고용주이자 학계에서 손에 꼽히는 후원자인 셈이다.
마틴은 최치우에게 강렬하고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소울 스톤에 고유의 속성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측정 과정에서 붉은 소울 스톤은 화력과 유사한 에너지를 담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직 두 개의 소울 스톤밖에 찾지 못했지만, 고유한 특성은 내 예측이 맞을 겁니다. 붉은색은 화력, 푸른색은 수력과 비슷하겠군요.”
최치우는 소울 스톤이 정령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학계 최고의 과학자들에게 결정적 힌트를 줄 수 있었다.
“네, 붉은 소울 스톤 안에 담긴 에너지가 화력과 유사하다면……. 초고강도 레이저로 소울 스톤을 자극했을 때 엄청난 열기가 배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열기로 증기를 만들고,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구동 방식을 설계하면 새로운 형태의 발전소가 될 것입니다.”
“화력 발전소인데 인위적으로 불을 태우지 않고, 소울 스톤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발전소가 그려지네요. 건설비와 유지비 모두 훨씬 적게 들고, 환경성도 비교 불가능한.”
“결정적으로 초고강도 레이저가 에너지원 자체를 소모시키는 게 아닌 경우 지속적인 열기 배출과 전기 발전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마틴은 말을 마치며 들고 온 랩탑 컴퓨터에서 이런저런 화면을 보여줬다.
전문 용어와 복잡한 수식이 가득 찬 화면이 슥슥 넘어갔고, 조목조목 알기 쉬운 설명을 곁들이는 마틴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최치우는 추가적인 분석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마틴과 김도현 교수가 초고강도 레이저 실험을 언급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방식이 아니면 소울 스톤 내부의 에너지를 밖으로 끌어내기 힘들다.
게다가 성공할 경우 소울 스톤의 에너지는 반영구적으로 보존하면서 화력 발전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레이저 시스템과 정밀 측정기, 증기 터빈 등의 시설이 갖춰진 발전소를 건립하고 유지해야 한다.
대신 화력을 만드느라 쓰이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 대신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 하나만 있으면 발전소를 계속 돌리는 게 가능하다.
분명히 해볼 만한,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실험이었다.
“실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깊은 이야기를 나눈 후 최치우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마틴의 아이디어는 매력적이었고, 기반이 되는 이론과 자료 또한 구체적이었다.
그렇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
마틴은 잠시 주저하다 대답했다.
“정확한 확률을 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소울 스톤의 코어가 파괴 될 가능성이 70%입니다.”
“7 대 3이면 도박을 하기도 힘든 확률인데……. 그렇게 계산이 나온 근거는 무엇입니까?”
“소울 스톤의 외피 강도와 재질 특성을 분석한 결과, 초고강도 레이저의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될 것이 확실합니다. 다만 내부의 에너지는 중대형발전소를 뛰어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한데, 강도가 약한 외피가 그만한 내부 에너지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를 미루어 초고강도 레이저의 자극으로 내부 에너지가 외부로 발산되는 현상까지 견딜 확률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계산했습니다. 총 1만 3,720회의 가상 실험에서 3,815회 성공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뮬레이션 오차 정도는?”
“오차 범위 4% 이내였습니다.”
“음.”
최치우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마틴과 김도현 교수는 가만히 앉아 최치우를 기다렸다.
오늘 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끝났다.
더 이상 질문을 하거나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무의미하다.
이제는 온전히 최치우가 선택을 내려야 할 영역이다.
탁- 탁-
최치우는 손가락으로 소파의 팔걸이 부분을 두드렸다.
사실 대략적인 결정은 S대로 달려오면서 이미 내렸지만, 자세한 설명을 듣고 한 번 더 검토를 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30%도 안 되는 확률, 시뮬레이션 오차를 고려하면 25%의 확률에 소울 스톤 하나를 걸어야 한다…….”
그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마틴과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입으로 곱씹은 것이기 때문이다.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을 잃는 것 자체가 두렵진 않아. 목숨 걸고 상급 불의 정령을 소멸시켜 얻었지만, 또 다시 찾아내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소울 스톤이 파괴됐을 때 시장과 주주들의 반응이다. 폭등했던 주가가 급락하고, 소울 스톤을 통한 대체에너지 개발이 불가능하다며 온갖 악의적인 뉴스가 세상을 뒤덮으면… 그 타격은 올림푸스의 뿌리를 흔들겠지.’
작은 회사는 한번 넘어져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오히려 큰 회사들은 한 번의 결정적인 실수로 완전히 몰락하는 경우가 잦다.
덩치가 커지면 넘어졌을 때 입는 상처도 그만큼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영자라면 25%의 확률에 도박을 하진 않는다.
이대로 현상을 유지만 해도 주식은 쭉쭉 오르고, 회사의 전 영역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굳이 회사의 운명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상식과 거리가 먼 CEO다.
상식을 따라왔다면 단기간에 올림푸스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이 일로 올림푸스가 쓰러지면… 다시 바닥부터 일으켜야지. 소울 스톤을 더 많이 찾으면서. 내가 언제부터 잃을 게 두려워서 도전을 겁냈다고.’
가진 게 늘어나고, 지켜야 할 사람이 많아지면 누구나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킬 게 생겨야 더욱 강해지는 사람도 있다.
최치우는 현대에서 가족과 동료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더욱 강해졌다.
동시에 그들 때문에 약해지는 길은 과감히 거부했다.
“합시다.”
“네?”
마틴은 ‘Do it’이라는 너무도 짧고 간단한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말은 알아들었지만, 최치우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설마 이토록 간단하게 엄청난 결정을 내렸을 거라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김도현 교수는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치우를 오래 지켜본 그는 ‘Do it’이란 말을 듣자마자 의미를 깨달았다.
“성공 확률이 25%… 아니, 2%라고 해도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올림푸스는 위험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성장했습니다. 4분의 1의 가능성을 도박이 아닌 축복으로 생각해야죠.”
“그, 그럼…….”
“붉은 소울 스톤으로 실험을 하겠습니다. 마틴 그랜트 교수님, 그리고 김도현 교수님. 올림푸스의 운명을 잠시 두 분의 손에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