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위대한 발견>
소일거리가 늘었다.
최치우는 박우식이라는 원석을 다듬기로 결심했다.
알면 알수록 박우식은 진국이었다.
어려서부터 최악의 상황을 연달아 맞이했지만, 성품이 올곧고 맑았다.
너무 순수한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사람을 잘 믿어서 사기를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지지 않았다.
최치우는 박우식에게 엄청난 과제를 내줬다.
낮에는 올림푸스에서 인턴이 되어 잡일을 돕고, 밤에는 죽도록 공부를 해야 한다.
말이 쉽지 주경야독(晝耕夜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박우식은 묵묵히 맡은 바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올림푸스 직원이 되고 싶어 8만 명이 넘게 지원했다는 사실을 그도 알게 됐다.
정직원은 아니지만, 인턴이 된 것도 어마어마한 특혜다.
고시원 월세나 생활비 걱정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 해보는 사무직 업무가 힘들 수밖에 없지만, 기대 이상으로 자질구레한 잡일을 잘하는 편이었다.
소위 일 머리가 있는 것이다.
퇴근하고 밤에 하는 공부도 박우식에겐 즐거운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공부를 싫어하고, 또 어려워한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박우식도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학원은 사치고, 참고서 한 권 사기 힘든 처지였다.
학교 선생님들도 고아인 박우식을 무시하고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치우는 인턴 월급을 가불해서 참고서를 구입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게 만들었다.
“나도 고3 초반까지 성적이 나빴어. 근데 1년 동안 죽을 각오로 공부해서 S대에 들어갔지. 한강에서 뛰어내릴 각오면 수능은 별거 아니다.”
최치우의 말은 실제 경험담이었다.
그렇기에 박우식에게 더 큰 용기를 줬다.
물론 평범한 사람과 최치우를 비교하면 안 된다.
타고난 재능과 과거의 경험 등 여러 부분에서 최치우는 치트키를 쓴 셈이다.
그러나 롤 모델이 있고 없고는 많은 차이를 자아낸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뒤늦게 정신 차려 공부한 최치우의 이야기는 박우식을 비롯해 많은 학생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있었다.
박우식은 공부를 할 수 있고, 미래를 꿈꾸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했다.
“2년 줄게. 앞으로 1년 동안 인턴으로 일하면서 공부에 적응하고, 다음 1년은 오직 공부만. 생활비는 이번 1년 치 인턴 월급에서 모은 걸로 충당하면 되고. 그렇게 2년 뒤에 수능 쳐서 한의대 들어가는 거다. 일단 한의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넌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어.”
최치우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1년은 주경야독, 그 뒤 1년은 공부에 올인이다.
틈틈이 최치우가 공부를 도와주고, 혈도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전수해 줄 생각이었다.
박우식이 인생을 걸고 따라온다면 2년 안에 충분히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치우는 두뇌를 맑게 해주는 점혈법과 추궁과혈로 박우식에게도 치트키를 선물해 줄 계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그는 1년 동안 인턴 일을 시키면서 직접 번 돈으로 생활을 하라고 못을 박았다.
올림푸스는 인턴에게도 웬만한 정규직 월급보다 많은 돈을 준다.
그렇기에 1년만 일해도 다음 1년 생활비까지 걱정이 없을 것이다.
최치우가 박우식에게 굳이 일을 시키는 이유는 분명했다.
이 세상에 행운은 있어도 절대 공짜는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또 하나, 박우식이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부족한 사회성을 기르길 바랐다.
박우식은 세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기껏 한의사가 돼도 이용만 당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올림푸스 직원들과 부대끼며 일을 하면 자연스레 사회를 알게 될 것이다.
최치우는 여러 각도에서 깊이 고민해 최선의 길을 열어줬다.
박우식의 인생에 개입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가볍게 장난을 칠 수는 없다.
“대표님이 주신 기회… 목숨 걸고 보답하겠습니다.”
“믿는다. 2년 뒤 한의대 입학 성공하면 그땐 형님이라고 불러.”
“네? 아… 네! 반드시 형님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대표님.”
최치우는 순박한 박우식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박우식도 감동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자신을 향해 믿는다고 말해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4살에 한국 10대 기업을 이룩한 최치우가 믿는다는 말을 해줬다.
심장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널 만난 게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라.’
최치우는 박우식을 천천히 지켜보며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기연을 베풀기로 했지만, 어디까지 도와줄지는 박우식의 태도에 따라 달려 있다.
잘못하면 최치우에게 전수받은 능력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거나 거만해질 수도 있다.
괜찮은 싹수를 가졌어도 사람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이게 제자를 키우는 사부의 마음인가?’
최치우는 다른 차원에서 자신을 키웠던 사부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박우식을 가르치며 최치우도 깨닫는 게 많을지 모른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의 수련이기 때문이다.
최치우와 박우식의 만남이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최치우는 부디 자신의 기대가 어긋나지 않기를 바랐다.
***
팟-!
순간적으로 넘치는 마나가 모였다.
대자연에 흐르는 마나를 몸 안에 모으고, 주문 배열까지 마친 최치우는 가볍게 캐스팅을 했다.
“플래쉬(Flash).”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치우의 몸이 번쩍 하며 사라졌다.
그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부엌에 있는 식탁 앞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거실 소파 앞으로 이동한 것이다.
순간 이동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무공과는 또 다른 효과다.
경공을 펼치면 이형환위처럼 잔상을 남길 수 있고, 장거리를 자동차보다 빠르게 주파할 수도 있다.
당연히 짧은 거리를 도약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하지만 방금처럼 0.1초도 흐르기 전에 부엌에서 거실까지 공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플래시는 7서클의 벽을 넘어서며 펼칠 수 있게 된 새로운 마법이다.
원리는 복잡하지만, 아주 짧은 거리에서 유효한 순간 이동과 비슷하다.
마법을 펼친 자기 자신이 아닌 사물도 이동시킬 수 있다.
최치우는 곧바로 시험에 들어갔다.
“플래쉬.”
캐스팅은 같지만, 주문 배열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이번에 순간 이동을 시킬 대상은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이었다.
파팟!
쨍그르르-
소파 앞 탁자에 놓여 있던 물컵이 부엌 입구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물컵을 이동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쉽지 않군. 확실히 사물을 옮기는 건 복잡해.”
100% 성공이 아니었다.
플래쉬가 제대로 펼쳐졌으면 물컵이 부엌 식탁 위로 갔어야 한다.
멀쩡한 물컵이 거실 탁자에서 부엌 입구까지 순간 이동을 한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최치우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연습만이 생명이다.”
최치우는 피로감을 느꼈지만 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플래쉬와 그래비티 모두 다양한 변수를 만들 수 있는 마법이다.
최치우는 정면으로 우직하게 부딪쳐서는 정령왕을 상대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도 이형환위라는 변칙에 당했다.
무공과 마법의 조화, 더 나아가 7서클 마법 플래쉬나 그래비티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예상을 깨야 한다.
그래야만 샐러맨더나 아도니스보다 강한 존재를 만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
“플래쉬-!”
바닥을 구르던 물컵이 부엌 식탁 위로 올라갔다.
한 번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연습을 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
사실 최치우는 무리를 하고 있었다.
7서클 마법을 연달아 펼치면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급격한 마나 소모로 체력이 고갈되는 것은 기본이다.
언뜻 보면 가만히 서서 주문이나 외우는 것 같지만, 최치우의 수련은 국가 대표 운동선수들 이상으로 치열했다.
“잠시 쉬어야겠다.”
최치우는 머리가 핑 도는 걸 느끼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는 푹신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심호흡을 했다.
힘들긴 하지만 아슬란 대륙에서 마법을 배울 때보다는 훨씬 낫다.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9서클, 현자 클래스까지 도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공과 마법을 한 몸에 익혀서 생긴 이점도 적지 않다.
내공과 외공은 최치우의 체력을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이다.
마법적 능력은 탁월하지만 몸은 허약했던 제로딘 시절보다 나은 게 많다.
아슬란 대륙에서는 마법을 처음 배우느라 무공을 익힐 겨를이 없었다.
무공과 마법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사실은 현대에서 깨달은 것이다.
“설렌다면 라이키-! 라이키-!”
그때 식탁에 올려둔 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보통 진동 모드를 해두지만, 집에서는 벨소리로 바꿔놓을 때도 있다.
최치우는 오랜만에 자기 폰 벨소리를 들으며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만나 로맨스를 나누는 걸그룹 트웬티즈의 나윤이 신곡을 벨소리로 지정해 뒀기 때문이다.
“노래 들으니까 생각이 나는군. 시간 있을 때 오랜만에 얼굴이나 봐야겠다.”
최치우는 청순 미인의 전형인 나윤을 떠올렸다.
그녀는 최치우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서로가 원할 때 연락하고 만나는 것으로 만족했다.
살벌한 경쟁을 뚫고 최고의 아이돌이 된 나윤은 무척 똑똑한 여자였다.
어설프게 구속하려 해봤자 최치우라는 남자를 절대 가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플래쉬!”
최치우는 다시금 7서클 마법 플래쉬를 펼쳤다.
탁!
캐스팅이 끝나자 부엌 식탁에서 벨소리를 내던 폰이 거실 탁자로 올라왔다.
물컵은 실패했지만, 폰으로는 성공한 것이다.
최치우는 기분 좋게 한쪽 주먹을 불끈 쥐며 전화를 받았다.
“네, 교수님.”
전화를 건 사람은 김도현 교수였다.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월이다.
최치우의 투자로 진용을 단단히 갖춘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요즘 부쩍 최치우와 김도현의 통화도 잦아졌다.
“치우 군, 통화 괜찮아요?”
“그럼요.”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만… 가능성을 찾은 것 같아요.”
“가능성이라면, 소울 스톤에 담긴 에너지를 추출할 가능성을 말하시는 거죠?”
최치우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참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김도현 교수가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설령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우선 가능성을 찾아냈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다.
그렇게 하나둘 의미 있는 실험을 반복하다 보면 정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에너지 연구 분야에서 첫 숟갈에 배부르길 바라면 안 된다.
조급증으로 인류의 미래를 바꿀 연구를 그르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최치우도 인간이기에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는 건 당연했다.
“이번에 하버드에서 합류한 마틴 그랜트 교수가 가설을 세웠어요. 그런데 실험해 볼 가치가 충분한 것 같아서 말이지요.”
최치우는 거세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소울 스톤을 공개하며 우수한 해외 인력들이 미래 에너지 탐사대로 유입됐다.
그중 한 사람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우리는 이제까지 소울 스톤을 원자력이나 화력처럼 동일한 특성의 에너지원으로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붉은 소울 스톤은 화력을, 푸른 소울 스톤은 수력을 담고 있다고 발상을 전환해 보았지요.”
“제가 말씀드렸던 소울 스톤의 개별 속성대로 연구를 진행하셨군요.”
“맞아요. 그래서 붉은 소울 스톤에 일반 레이저가 아닌 초고강도 레이저를 쏘게 되면……. 어쩌면 붉은 소울 스톤 안에 담긴 에너지가 열기로 발산되지 않을까, 결국 그 열기와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설을 수립하게 된 것이지요.”
김도현 교수는 화력 발전의 원리를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에 대입시키려 했다.
언뜻 들어도 가능성이 충분한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었다.
“치우 군, 이 실험을 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소울 스톤이 파괴될 지도 몰라요.”
최치우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소울 스톤 하나의 가치는 최소로 추정했을 때 열병합발전소 건설비 7,000억 원 이상이다.
만약 실험 과정에서 소울 스톤이 파괴되면 단순히 7,000억을 잃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소울 스톤의 존재로 한껏 올라간 올림푸스의 주식 역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한번 올라간 주식이 폭락하는 것은 원상 복귀라고 할 수 없다.
보나마나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지금 가겠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최치우는 곧장 S대로 움직일 채비를 했다.
전화로 결정하기엔 너무 중대한 문제였다.
소울 스톤과 올림푸스의 운명이 갈림길에 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