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우연 같은 인연>
죽고 싶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라는데, 그 따위 농담을 지어낸 사람 면상이 궁금하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된 사람이 설마 그런 저질 말장난에 마음을 돌릴까.
21살 박우식은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박우식이 5살 때 그를 고아원에 남겨뒀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머니의 얼굴과 목소리는 박우식에게 악몽이 됐다.
돈 벌어서 돌아온다는 말만 믿고 버텼는데, 20살이 되어 고아원에서 나갈 때까지 연락 한 번 없었다.
성인이 되면 법적으로 고아원에서 머무를 수 없게 된다.
무조건 짐을 싸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박우식도 의욕이 충만했었다.
약간의 보조금으로 고시원을 얻고, 막노동이든 뭐든 해서 돈을 벌면 될 것 같았다.
고아의 경우 병역 면제이기에 군대 걱정도 없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회 경험이 아예 없는, 그리고 사춘기 내내 고아원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벽을 치고 살았던 박우식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는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이자를 붙여 주겠다는 말을 믿고 1년 동안 공사장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고시원 월세와 밥값, 교통비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돈을 큰형님 같은 직업소개소 사장에게 맡겼다.
그 사람 덕분에 일당이 높은 일자리를 구했다고 은인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1년이 지나고, 박우식이 자신의 월급을 확인해 보기도 전에 직업소개소가 문을 닫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사무실 간판이 내려가 있었고, 사장은 전화번호를 바꾼 채 잠적했다.
그를 찾을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박우식에게 남은 건 다음 달 고시원 월세와 약간의 생활비, 그리고 공사장에서 얼굴을 익힌 아재들뿐이다.
노가다 아재들 중에서도 사장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박우식의 사정을 딱하게 여겼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방법이 없었다.
박우식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성인이 되자 법에 의해 시설에서 쫓겨나고, 사회로 나와 믿었던 큰형님에게 사기를 당했다.
1년을 공사판에서 죽어라 일해 번 돈이 모두 얼마인지도 모른다.
그 돈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진리가 박우식을 더욱 뼈아프게 만들었다.
친구 하나 없는 21살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아픔이다.
과연 누가 박우식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허무함이 박우식을 휩쓸었다.
마포대교 난간 위에 선 박우식은 눈을 감지 않았다.
시꺼먼 한강과 살벌한 높이가 주는 공포보다 세상이 더 무서웠다.
갈등은 짧았다.
이를 꽉 깨문 박우식이 다리 아래로 몸을 던졌다.
고통의 순간이 지나면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해방될 것 같았다.
“빌어먹을 세상아!”
슈우우우우-
몸이 급격히 추락하는 느낌이 들자 박우식도 눈을 감았다.
마지막 말을 절규하듯 토해내고 뛰어내린 그는 금방 차가운 물에 빠질 줄 알았다.
원래라면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물길에 휩쓸려 정신을 잃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마포대교에서 한강으로 뛰어내렸는데, 공중에서 시공간이 정지하는 느낌이 든 것이다.
“어?”
눈을 뜬 박우식은 이질적인 감각을 느꼈다.
자신의 몸은 한강의 수면 바로 위에 멈춰 있었다.
눈으로 보고, 직접 몸으로 생생하게 느끼고 있기에 이것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놀라 탄성을 내뱉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수면에 닿을 듯 말 듯 몸이 떠 있었다.
1초, 2초, 3초.
짧지만 영원처럼 느껴진 시간이 흐르고, 박우식이 한강에 빠졌다.
촤악-
그리 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높은 다리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수면 바로 위에서 멈췄다가 빠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충격도 없었고, 정신도 멀쩡했다.
박우식의 몸은 본능적으로 부력을 받아 동동 떠올랐다.
“이, 이게 뭐야!”
한강에 빠져 머리를 내놓은 박우식이 소리를 질렀다.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 한단 말인가.
도대체 물 위에서 잠깐 멈췄던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머릿속이 뒤죽박죽 정신이 없었다.
그때 박우식의 귓가, 아니 마음속으로 강렬한 메시지가 울렸다.
[주접떨지 말고, 얼른 밖으로 나와라.]
마치 하늘에서 울리는 목소리 같았다.
박우식은 사방으로 고개를 휘저었지만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강 건너편에 누군가 서서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저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건 것 같았다.
귀신에 홀린다면 이런 느낌일지 모른다.
어차피 오늘 죽기는 글렀다.
박우식은 축축해진 파카를 물속에서 벗어버리고 양팔을 내저었다.
자신이 뛰어내린 걸 본 유일한 목격자에게 가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포대교 아래에서 손을 흔든 사람에게 간다.
단순한 일념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한 박우식은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잊어버린 채였다.
바닥까지 내려갔던 생의 의지가 조금씩조금씩 반등하고 있었다.
***
“그래비티-!”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요동치며 뻗어나갔다.
7서클 마법이기에 마나의 소모량 또한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집중이 흐트러지거나 컨디션이 나쁘면 캐스팅이 실패하기 쉽다.
쏴아아아-!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게 느껴졌다.
다행히 현대에서의 첫 번째 7서클 마법은 완벽하게 펼쳐졌다.
무형의 기운이 마포대교에서 한강으로 추락한 남학생을 휘어잡았다.
수면 바로 위, 그 일대의 작은 공간에 형성된 중력은 최치우의 지배를 받는다.
‘딱 3초만.’
너무 길게 남학생을 붙들면 사진에 찍힐지 모른다.
최치우는 정확히 3초를 카운트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나가 급속도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손끝으로 중력을 조절하는 기분은 짜릿했다.
사실 오랜만에 느끼는 7서클의 권능이 최치우를 한껏 업시켰다.
‘됐다.’
촤아악-!
최치우가 마나를 거둬 들였다.
그 즉시 남학생이 한강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본의 아니게 죽는 걸 살렸는데… 사연이나 들어볼까?’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간섭이다.
그러나 그래비티를 실전에서 펼치기 위해 죽으려는 사람을 억지로 살렸다.
약간의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7서클 마법에 성공해서 기분이 좋아진 영향도 있었다.
‘일단 가보자.’
결정을 내리면 행동은 즉시 뒤따르기 마련이다.
마포대교 하단으로 내려가는데 보통 사람은 5분 넘게 걸릴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보법을 펼쳐 매우 빠르게, 동시에 너무 튀지는 않게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려가니 허우적거리고 있는 남학생이 보였다.
다행히 수영은 제법 잘할 줄 아는 것 같았다.
최치우는 내공을 끌어 올려 남학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주접떨지 말고, 얼른 밖으로 나와라.]
그리곤 남학생이 위치를 알 수 있게끔 손을 들어줬다.
전음은 내공에 뜻을 실어 보내는 고급 무공이다.
최치우는 호령독삼을 복용하고 임동양맥을 타통한 뒤 전음을 쓸 수 있게 됐다.
순수한 의지를 전하는 정령들의 의사소통 방법과는 결이 다르다.
정령들은 언어의 구애조차 받지 않는다.
하지만 전음은 의지가 아닌 언어를 음성 대신 내공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쓰는 언어가 다르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전음을 들은 남학생은 두꺼운 파카를 벗고 열심히 헤엄쳐 다가왔다.
얼음장 같은 한강에서 수영을 하는 모습이 약간 애잔해 보였다.
“허억- 허억-!”
마포대교 하단에 도착한 남학생은 대(大) 자로 뻗었다.
2월의 끄트머리지만 여전히 밤 기온은 영하다.
한강에서 수영을 하기엔 너무 추운 날씨다.
게다가 죽으려고 작심했었기에 몸도 정상이 아닐 것이다.
최치우는 발치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남학생, 박우식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기껏 살려놨더니 쇼크로 잘못되면… 곤란하군.”
어차피 주위에 보는 시선은 없다.
겨울이 가시지 않은 밤, 관광명소도 아닌 마포대교 하단에 사람이 나와 있을 일은 드물다.
최치우는 주위를 살피고 짧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웜(Warm).”
간단한 마법이지만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몸을 데우는 따뜻한 기운이 박우식의 머리끝부터 발끝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1분 정도 지나자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박우식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힘들고 놀랐을 텐데 스스로 일어나는 걸 보니 정신력이 바닥은 아닌 것 같았다.
“누, 누구세요?”
마법의 영향으로 체온이 올라와 몸은 떨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 몇 살이야?”
최치우는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박우식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봤을 때보다 더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저요? 이제 21살… 됐습니다.”
“이름은?”
“박우식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제가 떨어질 때, 갑자기 멈춘 것 같았는데…….”
박우식은 자기가 말을 해놓고도 이상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최치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감추며 대답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람이 공중에서 추락하다 멈추는 게.”
“여, 역시 그렇죠?”
“그럼.”
박우식 입장에선 이상한 것투성이지만 자세히 따질 겨를이 없었다.
죽다 살아난 경험은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들다.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넋이 나간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너 말이야, 박우식이라고 했지.”
“네? 네.”
“왜 죽으려고 했어. 이렇게 추운 날, 나이도 어린놈이.”
최치우의 말이 잊고 있던 감정을 되살렸다.
박우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게…….”
선뜻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문제다.
그간의 구구절절한 사연,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픔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죽하면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겠는가.
점차 감정이 격해지는지 박우식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최치우는 가만히 기다려 줬다.
곧이어 박우식이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좀 긴 이야긴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나 시간 많아.”
“어려서부터…….”
박우식의 입에서 고아원 시절 선생님들에게 차별받았던 이야기, 학교에서 무시받았던 이야기, 1년 일한 돈을 못 받은 이야기 등 별의별 사연이 흘러나왔다.
듣다 보니 최치우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박우식은 모든 게 최악인 환경에서 태어났고, 열심히 발버둥 쳤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고 뒤통수를 때렸다.
최치우는 괜히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환생을 할 때마다 낯선 세상에서 극단적인 위기에 처했었기 때문이다.
이번 삶도 비실비실한 약골 빵셔틀로 환생했었다.
‘나야 전생의 기억과 경험이 있어서 상관없지만, 얘는 참……. 성품이랑 재질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참 안됐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최치우는 그래비티를 수련하기 위해 죽으려는 사람을 살렸고, 그래서 박우식의 기구한 인생사를 듣게 됐다.
이제 여기서 돌아서면 된다.
안타깝지만 박우식의 인생은 그의 것이다.
다시 마포대교로 올라가든, 이 일을 계기로 살아날 의지를 품든 선택은 최치우가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약간의 도움을 주고 싶었다.
최치우는 여러 차원에서 기연의 주인공이었다.
이번에는 남에게 기연을 베풀어 주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네?”
박우식은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자살하려다 실패하고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자기 정체를 밝혔다.
“올림푸스라고 들어봤어?”
“그럼요. 아무리 배운 거 없어도 올림푸스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어……. 어? 어!”
박우식의 동공이 커지며 혼비백산한 얼굴이 됐다.
올림푸스의 CEO,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 최치우.
가끔 TV에서 보던 그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최치우를 알아본 박우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최치우는 그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투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말했다.
“살고 싶어지면… 아니다. 제대로 살고 싶어지면 올림푸스 여의도 사무실로 찾아와. 로비에서 니 이름 말하면 날 만나게 해줄 거다.”
말을 마친 최치우는 몸을 돌렸다.
여기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그는 이미 기연을 베풀었고, 운명을 바꿀지 말지는 박우식의 몫이다.
멍하게 얼이 빠진 박우식을 뒤로하고 성큼성큼 걸어 나온 최치우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그래비티는 생각보다 잘 먹히는데, 다른 데서 연습해야겠어. 남의 인생에 끼어드는 거… 두 번 할 짓은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박우식을 구하며 마음이 바뀌었다.
최치우는 마포대교가 아닌 도시의 또 다른 곳에서 7서클 마법을 수련하게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