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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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에서 공채를 실시한다는 소식이 전국을 강타했다.
여느 대기업 공채처럼 몇백 명에서 몇천 명 이상을 한꺼번에 뽑는 게 아니다.
사실 공채라 부르기도 어려울 규모다.
여의도 본사에 근무할 인력 50명과 남아공본부 파견 인력 30명까지. 도합 80명의 직원을 새로 뽑을 예정이었다.
물론 헤라클래스는 예외다.
아직까지 헤라클래스의 존재 자체가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리키는 비공개 테스트를 실시해 헤라클래스 대원을 20명 정도 더 뽑을 거라 보고했다.
그렇기에 국내 지원자들은 총 80개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됐다.
그런데 올림푸스 공채가 대한민국 취업 시장을 들썩이게 만들어 버렸다.
8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무려 1,000 대 1이라는 기록적인 경쟁률이 나왔다.
취업 시장을 관리하는 정부 당국에서도 깜짝 놀라 당황할 정도였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올림푸스 인사팀에게 직접 전화를 해 채용 인원을 늘리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물론 여력은 충분했다.
대부분의 기업은 정부의 요청을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하지만 최치우는 단칼에 거절했다.
섣불리 조직이 비대해지면 다시 되돌리기 힘들다.
21세기 기업의 생명은 스피드와 창의력이다.
머릿수로 회사의 규모를 평가하는 시대는 지나갔기에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80명을 새로 뽑는 것도 큰마음 먹고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최치우는 유영조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회사 경영에선 정부 눈치를 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원서를 넣은 지원자들도 엄청난 경쟁에 내몰렸지만, 올림푸스 인사팀은 마비 상태가 됐다.
8만 명의 서류를 검토하는 작업만 1주일이 넘게 걸릴 것 같았다.
올림푸스는 뭐만 했다 하면 온 세상의 관심을 받는 기업이 됐기에 허투루 심사를 할 수 없었다.
CEO 최치우의 깐깐한 눈높이를 생각하면 더더욱 아무나 스펙에 맞춰 대충 뽑기 힘들다.
채용 과정을 전담하게 된 임동혁과 백승수, 그리고 인사팀장은 당분간 죽어나게 생긴 것이다.
반면 최치우는 비교적 여유로웠다.
그는 공채를 비롯한 올림푸스의 현안을 실무진에게 맡겨놓았다.
당장 눈을 부릅뜨고 직접 신경 써야 할 프로젝트도 없다.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는 실전에서 미쓰릴 필드를 테스트해 봐야 진척시킬 수 있다.
산신령 허철후를 고문으로 모신 제약팀은 프로메테우스 생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중이다.
남아공 비즈니스도 순조로웠다.
레드 엑스를 멸망시킨 이후 헤라클래스가 지키는 광산을 넘보는 게릴라 반군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다른 광산들을 추가 개발하게 됐다.
남아공본부는 관리직 직원이 모자라다는 게 유일한 문제점이었다.
그마저도 공채를 통해 곧 해결될 부분이라 크게 염려는 안 됐다.
신규 프로젝트이자 올림푸스를 급부상시킨 소울 스톤 연구도 순항하고 있다.
최치우가 투자한 막대한 자금으로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엄청난 진용을 갖췄다.
연구 장비부터 시설, 연구원들의 면면이 모두 탈아시아 레벨이었다.
특히 소울 스톤을 공개한 다음부터 세계적인 석학들이 앞 다퉈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 이력서를 보내왔다.
MIT나 하버드 교수 자리보다 인류의 미래를 바꿀지 모르는 프로젝트에 끼고 싶은 욕망이 더 큰 것이다.
얼마 전 김도현 교수는 아도니스의 소울 스톤에 담긴 에너지를 측정했다.
역시 장비의 한계로 100% 측정에는 실패했지만,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보다 더 강한 에너지파가 감지되었다.
최치우는 망설이지 않고 초정밀 레이저 측정기를 주문했다.
날씨가 풀려 봄이 찾아오면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연구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것이다.
이렇듯 올림푸스의 모든 영역은 안정적이었다.
지금의 평온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시 전력 질주를 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시기를 거쳐야 한다.
“다들 바쁜데 나만 한가한 것 같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최치우는 밤 늦도록 불이 켜진 올림푸스 여의도 사무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야근하는 직원들을 놔두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당분간 짬을 내서 마법과 무공 수련에 집중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7서클 마법을 자주 펼치며 몸에 익히는 게 급선무였다.
“미안한 마음은 특별 보너스로 갚아줄게요. 다들 잘 부탁합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 안에 있는 직원들에게 속마음을 전했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해달라는 건 오너의 욕심일 뿐이다.
그 욕심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비전, 꿈, 미래, 다 좋지만 결국 돈이 없으면 뜬구름 잡는 소리다.
두둑한 월급과 깜짝 놀랄 만큼의 보너스가 직장인들에겐 최고의 동기부여 비타민이다.
올림푸스의 월급은 오성그룹 평균보다 높고, 스톡옵션을 비롯한 보너스도 만만치 않다.
대신 업무 강도가 살벌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최치우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확실한 보상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졌기에 80명을 뽑는 데 8만 명 이상이 몰린 건지도 모른다.
부우웅-
한동안 사무실 건물을 바라보던 최치우는 차에 올라타 액셀을 밟았다.
서울에도 몇 대 없는 롤스로이스가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 위로 미끄러졌다.
7서클 마법을 아무데서나 막무가내로 펼칠 수는 없다.
최치우는 도시에서 마법을 수련하기 위해 여러 시나리오를 세워놓았다.
무슨 일을 기대하는 것인지 핸들을 잡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한강 둔치 주차장에 차를 세운 최치우는 마포대교로 향했다.
마포대교는 한강의 여러 다리 중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마포대교 난간에 위로의 멘트를 적고, 상담 전화기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내놓았다.
자살 다리를 생명의 다리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났다.
마포대교가 생명의 다리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더 많은 자살자들이 몰리게 됐다.
이제는 지방에서도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이 굳이 마포대교까지 찾아오는 지경이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19 소방대의 통계에 의하면 적어도 사흘에 한 번은 누군가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시도한다고 한다.
많은 경우 소동만 일으키고 구조 조치를 받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치우는 마포대교를 수련 장소로 선택한 것이다.
7서클의 벽을 넘게 된 그는 가장 먼저 그래비티(Gravity)라는 마법을 숙달하길 원했다.
그래비티는 일정 지역의 중력을 조절하는 마법이다.
어떤 상황에서 펼치느냐에 따라 엄청난 변수를 창출해 낼 수 있다.
계속해서 정령들과 싸울 최치우에게 그래비티는 비장의 무기가 될 것이다.
언젠가 정령왕과 부딪쳐도 그래비티를 비롯한 7서클 마법으로 승부해야 한다.
지금까지 주력으로 펼쳤던 6서클 마법은 정령왕에겐 큰 위협이 못 될 가능성이 높다.
최치우는 캄캄한 마포대교 초입에 서서 혼잣말을 읊조렸다.
“비즈니스만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소울 스톤 찾겠다고 정령들이랑 혼자 전쟁을 치르는 팔자라니……. 아무래도 이번 환생이 제일 빡센 거 같다.”
엄살이 아니었다.
죽어라 싸우기만 하던 전생들보다 염두에 둬야 할 게 훨씬 많았다.
그래도 불만스럽진 않았다.
7번의 환생을 통틀어 현대에서의 삶이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사흘에 한 명 꼴이면 언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아.’
상념을 정리한 최치우는 자살자 통계를 떠올렸다.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밤 9시에서 자정 사이에 나타난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아예 피하려면 새벽이 제격이다.
그럼에도 자살 시도자들이 9시와 12시 사이를 택하는 건 누군가 말려주길 바라는 무의식적 본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스으윽-
늦은 시간이지만 마포대교를 걸어서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아예 없진 않았다.
최치우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감지했다.
죽음을 결심한 사람은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외모가 아닌 기운으로 판단하면 자살 시도자를 알아내는 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실전 같은 훈련, 훈련 같은 실전. 이게 포인트지.’
여의도 쪽 마포대교 초입에서 마스크를 끼고 서성거리는 최치우는 무척 수상하게 보였다.
그가 이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실전 상황에서 그래비티를 펼치기 위해서다.
고층 건물에서 물건을 떨어트려 그래비티를 시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상황의 수련일 뿐이다.
몸이 만신창이가 됐을 때,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들 때처럼 온갖 상황에서 자유롭게 7서클 마법을 펼치려면 평범한 수련은 금물이다.
그렇기에 마포대교는 최적의 장소였다.
자살하려고 몸을 던진 사람을 눈앞에서 구하지 못하면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무수한 죽음을 만들어낸 최치우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붉은 피가 흐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그때였다.
두꺼운 파카를 입은 남학생이 최치우를 스치고 지나갔다.
최치우의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뭔가 이상해!’
최치우는 벌써 저만치 걸어가는 남학생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파카 밖으로 삐죽 나온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스쳐가며 확인한 얼굴 표정도 남달랐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눈빛도 공허하고 텅 비어 보였던 것 같다.
최치우는 조심스레 남학생의 뒤를 따라갔다.
미행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거리를 두고 천천히 걷는 게 전부였다.
‘미안하지만, 죽으려고 결심했다면… 난 반드시 널 살릴 거다. 적어도 오늘 마포대교에선 죽을 수 없어.’
사실 최치우는 의사들처럼 사람을 살리겠다는 대단한 사명감이 있지는 않았다.
마법 수련을 위해서 자살을 막으려는 것이니 의도가 불순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결론은 똑같다.
남학생이든 누구든 최치우의 눈에 발견된 이상 마음대로 자살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래비티를 펼치는 데 실패하면 자살을 막지 못한다.
‘진짜 뛰어내릴 작정인가?’
막상 마포대교에 와서 발걸음을 돌리는 자살 시도자들이 많다.
다리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면 무섭기 때문이다.
죽음을 각오했어도 공포 앞에서 무력해지는 게 보통 인간이다.
그런데 남학생은 달랐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다리 난간 위로 올라섰다.
애매한 시간이라 한참 떨어진 최치우를 제외하고는 근방에 사람이 없었다.
마포대교를 오가는 자동차들은 어둠 속 행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경찰이 매번 다리를 지킬 수도 없다.
작정하고 뛰어내리는 사람을 누가 말리겠는가.
지이이잉-
최치우는 남학생을 주시하며 마나를 배열했다.
예전보다 한층 충만해진 마나가 재빨리 모였다.
확실히 7서클은 다르긴 다르다.
고작 1서클 차이지만, 마법에서 벽 하나를 넘는 건 천지차이다.
바로 그 순간, 난간 위에 올라섰던 남학생이 몸을 던졌다.
차갑고 어두운 한강 아래로 뛰어내린 것이다.
슈우우우욱!
강물이 남학생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렸다.
최치우도 다른 사람이 높은 데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놀랍지 않았다.
“그래비티-!”
그는 기다렸다는 듯 현대에서 처음으로 7서클 마법을 캐스팅했다.
마나의 힘이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남학생에게 쏘아졌다.
타인의 생명이 걸린 시험이다.
최치우는 정신을 집중하고 마표대교와 한강 사이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