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12화 (112/243)

# 112

<소울 스톤>

해가 지나갔다.

신년이 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새로운 각오를 되새긴다.

헬스클럽은 새해를 맞아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독서 모임과 영어 학원도 호황을 누린다.

담배를 피는 사람들도 웬만하면 1월에는 금연을 결심한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1주, 2주가 지나면 헬스클럽과 영어 학원은 한산해지고, 끊었던 담배를 찾게 된다.

그렇게 어물쩍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여름이 찾아오고, 또 1년이 맥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의 1월은 남들과 달랐다.

그는 무의미한 각오와 다짐으로 신년의 기운을 소모하지 않았다.

세상을 놀라게 만든다는 추상적인 목표도 버렸다.

이미 미쓰릴을 찾아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맺었을 때부터 세상은 여러 번 놀라게 만들었다.

최치우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목표를 세웠다.

1월의 깜짝 발표를 기점으로 올해 안에 올림푸스 주식을 10배 뛰게 만든다.

주식이 1년에 10배나 뛰는 건 기적에 가깝다.

가끔 특정 종목이 버블로 불타오르면 가능은 하지만,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일이다.

다른 회사의 CEO가 신년 목표로 주식을 10배 띄우겠다고 말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푸스 내부에서 최치우는 목표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울 스톤의 존재가 발표되면 세상이 뒤집힐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최신식 열병합발전소에서 1년 내내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진 작은 보석.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추출할지가 관건이지만, 주식 시장의 플레이어들에겐 그리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개발 중인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식이 몇 배 뻥튀기 되는 세상이다.

그에 비하면 소울 스톤은 더 확실하고 뛰어난 미래 가치를 가진 셈이었다.

최치우는 소울 스톤 공개를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거라고 기대했다.

첫째는 올림푸스 주식 가치 상승으로 엄청난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자금이 모이면 미래 에너지 탐사대를 비롯해 투자가 필요한 영역에 아낌없이 돈을 쓸 것이다.

3천 억짜리 전용기를 사는 것쯤은 일도 아니게 될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엘리시움 같은 하이에나들을 한 방에 내쫓을 수 있게 된다.

최치우의 경영 방침에 딴지를 걸고, 뉴욕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엘리시움과 몇몇 주주들은 완전히 할 말을 잃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를 보며 최치우가 흔들리기를 바라는 하이에나들도 적지 않다.

소울 스톤이 공개되고, 올림푸스 주가가 폭등하면 하이에나들은 덤빌 엄두를 못 낼 수밖에 없다.

기업이 탄력을 받아 쭉쭉 성장할 때는 외부의 압력 따위는 가뿐히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셋째 효과는 인재 영입과 관련이 있다.

소울 스톤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발표되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지금은 김도현 교수의 인맥으로 외국 학자들을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 스카웃하고 있다.

하지만 소울 스톤이 공개되면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먼저 안달이 날 확률이 높아진다.

학자의 탐구욕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기라성 같은 해외 명문대 교수들이 직접 소울 스톤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인류 역사에 기록될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으로 넘어올 게 분명하다.

소울 스톤 하나 때문에 에너지 분야 연구의 중심이 미국이 아닌 S대 미래 에너지 탐사대로 바뀌는 것이다.

세계의 중심을 서양에서 한국으로 옮겨놓겠다는 최치우의 야망은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그는 벌써 성큼성큼 단계를 밟고 있었다.

일석삼조의 기염을 토할 소울 스톤 발표일이 점점 다가왔다.

다시 한번 여의도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 같았다.

***

여의도는 한국의 중심지다.

부동산 가격으로 따지면 강남이 버티고 있지만, 정치와 금융이라는 양대 산맥이 여의도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금융가에서는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수많은 선택이 내려진다.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여의도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한국을 벗어나면 여의도라는 지명을 아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강남스타일이라는 히트곡으로 인해 누구나 알게 된 강남보다 지명도에서 철저히 밀린다.

그런데 올림푸스의 활약 이후 세계 언론에 여의도라는 지명이 자주 오르내리게 됐다.

올림푸스의 본사가 여의도에 있고, 국제 기자회견도 항상 여의도 컨퍼런스 홀을 빌려서 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 명의 위인은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최치우는 국내에서만 중심지 역할을 하던 여의도를 세계적인 지역으로 끌어 올렸다.

소울 스톤을 공개하는 기자회견 또한 여의도에서 이뤄진다.

올림푸스가 중요한 발표를 할 때마다 빌리는 대형 컨퍼런스 홀은 기자단에게 익숙한 장소가 됐다.

최치우는 불과 몇 달 전 이곳에서 임시 주총을 개최했었다.

같은 장소에 기자들을 모아놓고 전혀 다른 발표를 하려니 감회가 새로웠다.

“대표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올림푸스 직원이 최치우에게 시간을 알려줬다.

초청을 받은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들이 모두 자리했다.

최치우의 지시를 받은 홍보팀은 기자들에게 기자회견의 내용을 미리 공개하지 않았다.

그저 참석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라는 메시지만 전달했다.

기업에서 절대 취할 수 없는 태도지만, 최치우는 개의치 않았다.

소울 스톤이 공개되는 역사적 현장을 놓치면 누구든 뼈저리게 후회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절 소울 스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음에도 컨벤션 홀은 가득 찼다.

기자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최치우가 직접 등장하는 발표에서는 반드시 엄청난 뉴스가 터진다는 사실을.

“시작하죠.”

최치우는 직원에게 신호를 줬다.

이번 발표는 평소의 올림푸스 프레젠테이션과 많이 다르게 준비했다.

화려한 영상도, 멋들어진 식순도 없다.

자질구레한 효과를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최치우는 철저하게 소울 스톤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 세상의 판도를 바꿀 물질 그 자체를 순수하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저벅저벅-

최치우가 대기실 문을 열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아나운서의 안내 멘트도, 웅장한 음악도 깔리지 않았다.

수백 명의 주요 기자들이 앉아있는 컨벤션 홀은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다들 최치우의 등장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단상 위는 여전히 어두웠고, 가느다란 핀 조명만 최치우를 따라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올림푸스의 CEO 최치우입니다.”

짝짝짝짝짝-!

그가 인사를 건네자 기자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언제나 그렇듯 외신 기자들의 귀에는 올림푸스에서 제공한 동시통역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최치우는 잠시 숨을 고르며 서 있었다.

모든 순서를 생략하고 혼자 단상에 올라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베테랑 기자들은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24살이 된 최치우는 이미 전 세계가 주시하는 거물이 됐다.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그의 기세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언론인들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올림푸스는 한 가지 물질을 공개하려 합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오직 올림푸스만이 찾아낼 수 있는 신비로운 물질입니다.”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올림푸스는 미쓰릴을 찾아내며 이름을 알린 회사다.

펜타곤과의 비밀 유지 조약으로 인해 미쓰릴의 특성은 극비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올림푸스가 신금속을 발견해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맺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그에 맞먹는 신금속을 다시 발견했다면 대특종이다.

기자들은 바쁘게 타이핑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이어진 최치우의 말은 기자들의 넋을 나가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 물질에 소울 스톤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독특한 색을 지닌 소울 스톤은…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초석이 될 겁니다.”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선언이었다.

기업 발표에서 으레 나오는 과장법이 아니다.

최치우는 진지해 보였고, 그가 허풍을 떠는 사람이 아니란 건 모두 알고 있다.

촤악-!

핀 조명이 최치우의 옆자리를 비췄다.

동시에 소울 스톤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벗겨졌다.

키 높이의 전시대 위에 붉은빛을 내는 소울 스톤이 놓여 있었다.

투명한 방탄유리 안에 자리한 소울 스톤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영롱한 빛깔을 냈다.

최치우가 샐러맨더의 소울 스톤을 공개한 것이다.

아도니스를 소멸시키고 얻은 푸른빛 소울 스톤은 아직 공개할 때가 아니었다.

김도현 교수가 미래 에너지 탐사대와 함께 그 안에 담긴 에너지를 측정하느라 힘을 쏟고 있었다.

“여기 보이는 붉은 소울 스톤에는 최소 3,000GWh의 에너지가 저장돼 있습니다. 3,000GWh는 대도시에서 1년 동안 소모되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입니다. 올림푸스는 S대 미래 에너지 탐사대와 함께 소울 스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여기 담긴 에너지가 영구적인 것인지, 또 이 에너지를 어떻게 추출할지 연구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던 것입니다.”

“와-!”

“하아…….”

“오 마이……. 언빌리버블!”

기자단 곳곳에서 탄성과 한숨, 감탄사가 흘러넘쳤다.

곧이어 최치우의 등 뒤로 소울 스톤의 에너지 수치를 증명하는 자료가 나타났다.

프로젝션 빔으로 구체적인 증빙 자료를 띄운 것이다.

발표가 끝나면 김도현 교수를 비롯해 세계적인 학자들이 검증한 페이퍼를 각 언론사에 배포할 예정이었다.

“그냥 보석 같은데……. 저 작은 원석에 그만한 에너지가 들어있다고?”

“뷰티풀…….”

어떤 기자들은 소울 스톤의 원초적 아름다움에 빠졌고, 또 누구는 에너지 수치를 연신 쳐다보며 거듭 놀랐다.

최치우는 기자들이 놀라움을 표하고 침착함을 되찾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줬다.

이윽고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가 조금 진정됐다.

“소울 스톤을 통해 우리는 훨씬 효율적인 에너지 개발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 어떤 대체에너지보다 친환경적이며 동시에 강력한, 인류의 미래를 바꿀 실험이 올림푸스에서 시작됐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공개한 소울 스톤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른 소울 스톤 또한 확보했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많겠지만, 원활한 연구를 위해 소울 스톤에 대해서 100% 알려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확신하건데 지구상의 어떤 회사도 소울 스톤을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올림푸스만 소울 스톤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최치우의 주장에 또 한 번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그는 소울 스톤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독점한 듯 자신감이 넘쳤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누가 정령의 존재를 알고, 또 정령을 소멸시킬 수 있겠는가.

설령 정령을 찾아내도 총이나 미사일 같은 물리력으로는 절대 소멸시킬 수 없다.

이제부터 많은 사람과 기업들, 어쩌면 CIA 같은 정보 조직까지 소울 스톤의 실체를 알아내려 덤빌 것이다.

최치우에게 미행이 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울 스톤을 얻는 것은 최치우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오직 올림푸스만 소울 스톤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최치우의 말은 진실이다.

오늘 이후 올림푸스는 주목받는 신생기업 레벨을 뛰어넘을 것 같았다.

일약 세계의 미래를 책임질 혁신적인 기업으로 각인될 게 확실하다.

최치우가 원하는 대로 일석삼조의 효과는 충분히 거두고 남을 것이다.

다만 최치우에게도 숙제가 생겼다.

소울 스톤을 노리는 손길들로부터 비밀을 지켜내야 한다.

그는 전무후무한 성과와 숙제를 동시에 만든 발표로 세상을 뒤집었다.

과연 최치우와 올림푸스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이제는 전 세계가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24살의 최치우는 세계의 중심으로 맹렬히 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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