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09화 (109/243)

# 109

“배리어!”

최치우의 입에서 방어 마법이 캐스팅됐다.

무형의 방어막이 그를 둘러쌌지만, 쏟아진 물줄기의 강도는 어마어마했다.

쩌저저적-

마법으로 만든 방어막이 깨졌다.

아직 남아 있는 물줄기가 최치우를 직격으로 노렸다.

“윈드 스피어-!”

최치우는 다급히 5서클 마법을 펼쳤다.

바람의 창이 생성돼 물줄기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퍼어엉!

물방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수십 발의 물줄기가 최치우 주변을 폭격했기에 바닥은 흥건하게 젖었다.

단 한 번의 공격이지만 최상급 정령인 아도니스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나마 공격력이 약한 물의 정령이라 백번 다행이었다.

파괴적이고 호전적인 불의 정령을 최상급으로 만났다면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최치우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물의 정령이지만, 최상급은 레벨이 다르다.

인격을 지닌, 어쩌면 정령왕이 됐을 수도 있는 존재다.

속성을 떠나 압도적인 권능을 갖고 있었다.

[강하다, 인간. 허나 여기까지다.]

아도니스의 네 다리가 모두 움직였다.

그의 몸체가 최치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도니스는 말의 형상답게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 왔다.

‘위험하다!’

최치우의 직감이 경고를 울렸다.

막을 수 없으니 피해야 한다고.

탓!

최치우는 내공을 가득 담은 다리로 바닥을 박찼다.

금강나한권이 절정에 이르며 몸놀림도 한층 가벼워졌다.

그는 5m 넘게 뛰어오르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끝까지 최치우를 쫓아왔다.

우우우웅-

기묘한 소리와 함께 아도니스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곧이어 막을 틈도 없이 하늘색 준마(駿馬)의 형상이 최치우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도니스는 그대로 최치우를 통과해 뒤에 착지했다.

그러나 최치우는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다.

짙푸른 물방울에 갇혀 강제로 공중부양을 하게 된 것이다.

‘읍-!’

[소멸은 너의 몫이다, 인간.]

아도니스가 사형을 선고하듯 묵직한 의지를 발산했다.

말 모양을 한 그의 몸이 최치우를 통과하며 물방울 감옥을 만들었다.

날이 밝았다면 더욱 기괴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거대한 물방울에 갇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건…….’

최치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물방울 감옥 속에서 호흡이 끊겼고,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숨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압력으로 짓이겨진 몸의 혈관이 터질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전신 혈관과 내장이 다 터져서 비참하게 죽을지 모른다.

이런 식의 공격은 한 번도 당해본 적이 없었다.

7번의 환생을 경험하며 8개의 다른 차원에서 살아본 최치우에게도 낯설고 위험한 순간이었다.

‘벗어나지 못하면… 죽는다!’

그는 죽음이 가까운 곳에서 손짓하고 있음을 느꼈다.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 물방울 감옥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1초, 1초가 아쉬웠다.

마법을 캐스팅하기에도, 금강나한권 초식을 펼치기도 어렵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을 일시적으로 분출시키는 것이다.

순수한 내공을 초식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뿜어내는 것만이 해결책 같았다.

내공 소모는 극심하겠지만, 뭘 해도 이대로 죽는 것보단 낫다.

최치우는 팔다리의 작은 핏줄들이 터지는 걸 느끼며 즉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화아아아악!

어둠을 밝히는 섬광이 최치우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의 전신에서 솟구친 빛이 아도니스가 만든 물방울을 뒤덮었다.

쿠웅-

허공에 떠 있던 최치우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신의 내공으로 물방울 감옥을 부순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적지 않은 대미지를 입었다.

거의 무방비 상태로 땅에 떨어지며 받은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슈슈슈슉!

하지만 휴식을 취할 시간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엔젤 폭포에서 솟구친 물줄기가 최치우를 향해 날아왔다.

퍼퍼펑-

방금 전까지 최치우가 누워 있던 자리 위로 물줄기 화살 세례가 퍼부어졌다.

피하지 못했다면 흙바닥 대신 최치우의 몸이 만신창이가 됐을 것이다.

“최상급 아니랄까 봐… 지독하게 강하군.”

최치우는 몸을 추스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물방울 감옥에 갇힌 건 두고두고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아도니스 역시 이채어린 눈빛으로 최치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의 권능을 극복하다니……. 강한 인간이여,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라.]

최치우가 수세에 몰려 있는 반면, 아도니스는 아직 여유로워 보였다.

어쩌면 아도니스가 아량을 베풀 때 피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왜? 인간에게 소멸당할까 봐 두렵나?”

조금 전까지 물방울 감옥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사람 같지 않았다.

싸우면 싸울수록 최치우의 영혼에 각인된 전사의 본능이 깨어나고 있었다.

단신으로 제국을 멸망시킨 호전적인 영혼.

오죽하면 신이 징벌을 내려 끝없는 환생을 하게 만들었을까.

아도니스는 최치우의 전투력을 각성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강하지만 무모하군. 하긴, 그것이 인간들의 특성이다.]

“무모하기 때문에… 인간이 언제나 세계의 주인이 되는 거지.”

[이제 자비는 없다.]

“나야말로!”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도니스가 다시 달려들었다.

공간을 뛰어넘는 질주.

아도니스가 최치우를 통과하면 또 다시 물방울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똑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할 수는 없다.

최치우는 먼저 마법을 캐스팅했다.

“윈드 스피어-!”

바람의 창이 아도니스를 향해 쏘아졌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윈드 스피어를 무시할 순 없다.

아무리 최상급 정령이라도 5서클 마법을 정통으로 맞으면 무사하기 힘들다.

휘익!

아도니스가 진로를 틀었다.

덕분에 윈드 스피어는 피했지만, 방향이 꺾이며 속도가 늦어졌다.

차이점이 생긴 것이다.

최치우는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파바박!

그가 땅을 박찼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공중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높이 뛰어봤자 아도니스는 끝까지 따라붙을 것이다.

대신 남은 내공을 폭발시켜 이형환위(移形換位)를 펼쳤다.

휘리릭-

순간 최치우의 몸이 두 개로 늘어났다.

경공법이 절정에 다르면 인간의 속도를 초월하게 된다.

아주 잠깐이지만 잔상이 남아 마치 분신술을 펼친 효과를 낼 수 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는 두 개의 그림자.

아도니스는 한쪽을 선택해야만 했다.

우우우웅!

고민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도니스의 몸체가 오른쪽에 아른거리는 최치우를 덮쳤다.

그쪽 그림자가 조금 더 짙게 일렁였기 때문이다.

피슉-

하지만 아도니스와 부딪친 최치우의 그림자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틀렸어!”

대신 왼쪽에서 최치우의 음성이 울렸다.

이형환위로 아도니스의 뒤에 서게 된 최치우는 준비한 마법을 캐스팅했다.

“인페르노(Inferno)-!”

거대한 화염이 아도니스의 뒷덜미를 덮쳤다.

그냥 불덩어리가 아니다.

6서클 마법 인페르노는 지옥에서 뽑아낸 불꽃의 정수다.

8서클에 해당하는 헬파이어의 마이너 마법이지만, 그 위력은 최신형 폭탄 몇 개를 합친 것보다 파괴적이었다.

화르르르륵!

이형환위에 속은 아도니스는 인페르노를 피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몸체를 틀었지만, 유려하게 뻗은 엉덩이와 뒷다리가 활활 불타고 말았다.

[인간이 감히-!]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아도니스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마법, 무공, 그리고 다시 마법으로 이어진 최치우의 공격은 전우주 모든 차원을 통틀어 오직 한 사람만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다.

차원을 넘나들며 무공과 마법을 각각 익힌 사람은 최치우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판사판이다.’

최치우는 원래 화재를 우려해 화염 속성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인정사정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행히 인페르노는 아도니스의 몸체에만 작렬해 불타오르고 있었다.

쿠우웅-

그때였다.

몸을 돌린 아도니스가 두 발로 땅을 내리찍었다.

말 형상을 한 아도니스의 뒷다리는 여전히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앞발로 최대의 권능을 이끌어낸 것이다.

촤아아악!

엔젤 폭포에서 쏟아지던 물줄기가 두껍게 응어리졌다.

이제까지 팔뚝만 한 굵기의 물줄기 화살이 쏟아졌다면, 이번엔 비교도 안 되게 큰 한 방이 날아올 것 같았다.

최치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엔젤 폭포를 주시했다.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이것이 마지막 승부임을 직감했다.

아도니스의 전력을 어설프게 피하려다간 더 큰 화를 입을 것이다.

최치우도 모든 것을 쏟아낸 일격으로 응답해야 한다.

만약 여기서 쓰러지지 않는다면 이미 뒷다리가 불타고 있는 아도니스를 손쉽게 소멸시킬 수 있다.

고오오오오-

그러나 엔젤 폭포에서 뿜어지는 기파는 심상치 않았다.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가 전력을 다해 만들어낸 한 방이다.

폭포 하단에 생성된 물줄기, 아니 물기둥은 사람 몸통 몇 개를 합쳐놓은 것처럼 크고 굵었다.

[받아라, 인간!]

아도니스의 의지가 전파됐다.

최치우는 눈앞으로 날아오는 거대한 물기둥을 똑똑히 쳐다봤다.

그 역시 단전에 남은 내공을 쥐어짜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천보일권(千步一拳).

금강나한권 최종 비기이자 천년소림을 지켜온 무림 최강의 권법.

최치우는 광채로 휩싸인 주먹을 정직하게 뻗었다.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는 정권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물기둥과 충돌했다.

마치 다윗이 조약돌로 거인 골리앗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콰아아앙-!

고막을 찢는 파공성이 엔젤 폭포 인근을 울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친 것 같았다.

촤르륵!

아도니스의 물기둥은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방울이 주위를 휩쓸었고, 최치우도 온몸이 흠뻑 젖었다.

하지만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굳건히 서 있었다.

힘과 힘의 정면 승부에서 이긴 것이다.

모든 것을 쏟아낸 아도니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말의 형상을 한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 게 확연히 보였다.

“쿨럭!”

최치우는 선 채로 검붉은 피를 토했다.

연달아 마법과 무공을 펼쳤고, 아도니스의 공격에 타격을 입어 기혈이 뒤집혔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다.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아도니스를 쓰러트릴 수 있다.

“인… 페르노…….”

그는 가까스로 6서클의 화염 마법을 한 번 더 캐스팅했다.

무방비 상태로 넋이 나간 듯 서있는 아도니스에게 지옥의 불꽃이 꽂혔다.

화아악-

하늘색 물방울로 이뤄진 아도니스의 몸 전체가 불길에 잡아먹혔다.

아도니스는 서서히 소멸하며 지독한 사념을 남겼다.

[인… 간……! 정령왕이… 너를 찾을 것이다……!]

슈우우욱!

아도니스의 몸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영롱한 푸른빛 보석이 남았다.

세상을 바꾸는데 쓰일 정령석, 소울 스톤이다.

최상급 정령의 소울 스톤이니 그 가치는 계산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아도니스가 남긴 소울 스톤을 찾으러 걸어가지 못했다.

털썩-

그 자리에 쓰러진 최치우는 눈을 감고 미약한 숨을 내쉬었다.

사나운 전투가 끝나고, 카나이마 국립공원에 적막함이 감돌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엔젤 폭포의 소리만이 깊은 밤을 지켰다.

한 움큼 피를 쏟아낸 최치우는 미동도 없이 흙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동트는 새벽이 찾아오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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