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도전하는 인간>
쏴아아아아-
최치우는 엔젤 폭포 가까이 다가갔다.
수면을 내리치는 물줄기 소리 때문에 누가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캄캄한 어둠이 카나이마 국립공원을 덮은 지 한참 됐다.
웬만큼 담력이 좋은 사람도 무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폭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폭포에서 튀어나온 물방울 때문에 이미 옷은 흠뻑 젖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엔젤 폭포의 수량이 늘어나 주위의 생태계가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화재처럼 참상을 자아내는 재해는 아니었다.
더구나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니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졌다.
대형 화재처럼 반드시 막아야 하는 자연재해가 아닌데도 정령을 불러내 소멸시키는 게 옳은 일일까.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군.’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최치우는 단신으로 제국과 맞서 싸웠던 전사의 영혼을 타고났다.
목표가 있다면 없는 길도 만드는 게 그의 법이다.
고민을 끝낸 최치우는 주위의 마나를 몸 안으로 불러들였다.
불구덩이 속에서는 6서클의 빙결 마법 프로즌을 펼쳤었다.
그러나 폭포수를 얼려봤자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는 두 가지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거대한 화염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것, 아니면 지각을 균열시켜 잠시나마 엔젤 폭포 전체를 뒤흔드는 것.
화염 속성의 마법을 펼치는 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긴 했다.
물과 정반대의 속성이기에 정령을 자극하기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자칫 불이 옮겨 붙으면 거대한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세상의 시선이 카나이마 국립공원으로 쏠리면 최치우가 여기까지 온 사실도 알려질지 모른다.
‘화염계의 마법은 너무 위험해. 그렇다면 역시 미니 퀘이크다.’
최치우는 작은 지진을 일으키는 6서클 마법, 미니 퀘이크를 선택했다.
순수 파괴력으로 따지면 최치우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이다.
그럼에도 불이 붙을 염려는 없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미니 퀘이크의 힘이 폭포를 강타하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겠지.’
최치우는 가슴 깊은 곳에서 호승심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
엔젤 폭포에서 샐러맨더 이상의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최상급 정령, 혹은 정령왕 정도면 반신(半神)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으로 따지면 민간 전설에 나오는 산신령이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아슬란 대륙에서도 최상급 이상의 정령과 계약을 맺은 정령술사는 없었다.
샐러맨더 같은 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하면 대륙 최고의 정령술사로 대접받았다.
그렇기에 엔젤 폭포에 깃든 정령이 얼마나 위험할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적을 만났다는 사실이 최치우의 피를 뜨겁게 만든 것이다.
목숨 건 혈투를 즐기는 전사의 영혼은 어디 가지 않았다.
현대의 CEO로 살아가고 있지만, 야성 어린 본능은 언제든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다.
“미니 퀘이크.”
준비를 마친 최치우는 고민하지 않고 캐스팅을 시도했다.
한껏 몰려든 마나가 손바닥에서 방출되며 후련함이 느껴졌다.
마나를 뿜어내는 이 기분은 오직 마법사들만 알 수 있다.
쿠구궁-!
꽈아아앙!
캐스팅 지점은 폭포수가 낙하하는 수면 아래였다.
그곳으로 쏘아져간 마나가 이적을 일으켰다.
굉음과 함께 엔젤 폭포가 아래에서부터 흔들린 것이다.
어둠이 시야를 가렸지만, 최치우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수면 아래 지반이 무너졌고, 급격한 균열로 폭포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겉보기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엔젤 폭포를 강타하고 지나간 셈이었다.
“이래도 안 나오시겠다?”
최치우는 콸콸 쏟아지는 폭포수를 노려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미니 퀘이크 한 방으로는 부족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얼마든지 더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샐러맨더와 싸우며 연달아 6서클 마법을 펼쳤었다.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엄청난 약이 되었다.
그날 이후 한계를 넘어 6서클 마법을 몇 번이고 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래서 실전은 최고의 훈련인 법이다.
만약 또 한 번 사투를 펼쳐 마법의 한계를 깨트린다면 7서클의 벽도 허물지 모른다.
6서클과 7서클은 천지차이다.
최치우는 마법사로서 벽을 뛰어넘을 시기가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한 번 더 해주지.”
마음을 단단히 먹은 최치우가 마나를 불러들였다.
대자연의 기운이 몸 안으로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이제 마나를 복잡하게 배열한 후 캐스팅을 완료하면 된다.
그가 다시금 미니 퀘이크를 캐스팅하려는 찰나, 어디선가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 이미 충분하다.]
최치우는 캐스팅을 멈추고 눈을 날카롭게 떴다.
목소리는 귓가로 들려온 게 아니었다.
음성이 아닌, 의지로 전달되는 메시지였다.
전음과 비슷하지만, 보다 순수한 의지의 전달이기에 언어 장벽도 문제가 안 됐다.
여기서 이런 방식으로 말을 걸 수 있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다.
엔젤 폭포의 정령이 나타난 것이다.
‘의지와 인격을 지닌 정령이다. 예상대로 최상급, 아니면 정령왕이겠군.’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더욱 경계가 됐다.
곧이어 최치우의 눈앞에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일어났다.
촤르르르륵-!
엔젤 폭포의 중간 지점이 좌우로 갈라지고 있었다.
세차게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가 중간에서 커튼처럼 열린 것이다.
물의 장막을 걷어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늘색 반투명한 몸체의 말은 폭포의 중간 지점에서 훌쩍 땅으로 내려왔다.
무려 500m 가까운 높이에서 단번에 지상으로 착지한 것이다.
최치우는 물방울로 만들어진 것 같은 말, 엔젤 폭포의 수마(水馬)를 쳐다봤다.
[인간, 어찌하여 나를 침범하는가.]
다시금 정령의 의지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최치우는 영어를 쓰든 한국어를 쓰든 정령이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다.
정령은 언어가 아닌 의지를 바탕으로 소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면 정령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엔젤 폭포의 수량이 급증한 것… 너 때문이겠지?”
[정령을 알고, 찾을 수 있는 인간. 이 세계에서 본 적이 없다. 너는 누구인가.]
최치우가 인격을 지닌 정령을 신기해하는 것처럼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의 지구에서 정령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전무하다.
오직 최치우만이 정령에 대해 알고, 찾아내며 또 소멸까지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인격을 가진 정령 입장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인간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놀라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통성명을 하자는 건가? 나는 최치우라고 한다. 넌 최상급 물의 정령인지, 아니면 정령왕인지 궁금하군.”
[우리에 대해 이토록 잘 알고 있는 인간이라……. 나는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엔젤 폭포에는 최상급 정령이 머물고 있었다.
정령왕은 인격을 지닌 최상급 정령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특별한 존재다.
또한 유일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이름을 가지게 된다.
아직 다른 차원에서의 무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최치우에게 정령왕은 버거운 상대일 것이다.
상급 정령인 샐러맨더와도 혈전을 벌였었다.
그렇기에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를 만난 것도 위기지만, 준비 없이 정령왕을 마주치는 것보단 나았다.
[다시 묻겠다, 인간. 어찌하여 나의 영역을 침범했는가. 너로 인해 폭포의 균형이 무너졌음을.]
아도니스는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며 앞발을 내딛었다.
육중한 몸체의 하늘색 말이 최치우 쪽으로 성큼 다가선 것이다.
언제든 권능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 분명했다.
인격 없이 마냥 파괴적이던 샐러맨더보다 온순해 보이지만, 아도니스는 최상급 정령이다.
직접적인 전투력은 불의 정령보다 떨어져도 타고난 레벨 자체가 다른 존재였다.
스으으으-
최치우도 단전의 내공을 전신으로 돌렸다.
아도니스가 먼저 움직이면 즉각 반응하기 위해서였다.
내공이 들끓자 최치우 주변의 기류가 달라졌다.
현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최치우의 힘이 공기를 타고 아도니스에게 전해졌다.
“미안하지만… 너를 소멸시키고 정령석을 얻기 위해서 찾아왔다.”
[어찌하여-!]
쿵!
최치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도니스가 앞발로 땅을 내리찍었다.
짧게 지축이 흔들렸고, 엔젤 폭포에서 한 줄기 물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배리어!”
미리 대비를 하고 있던 최치우는 방어 마법으로 물줄기를 막았다.
하지만 최상급 정령의 권능을 실감했다.
수면으로 떨어지던 폭포 줄기를 화살처럼 만들어 던질 줄이야.
그대로 맞았다면 엄청난 수압에 내장이 다 터졌을 것이다.
[인간은 대자연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단 말인가! 어찌 자연을 수호하는 정령을 소멸시키겠다는 것인가!]
“그건 또 무슨 말이지? 1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군.”
최치우는 아도니스의 분노에 냉소했다.
물방울로 만들어진 하늘색 말은 최치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언제라도 방금 전처럼 권능을 발휘해 공격을 퍼부을 기세였다.
최치우는 아도니스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자연이 무조건 선하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해. 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 수많은 인간들이 자연의 변덕에 휩쓸려 죽어갔지.”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 따위 섭리, 거부하면 그만이다.”
[인간이란… 자연을 훼손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존재인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인간은 훨씬 안락하고 오래 살 수 있게 됐다. 자연을 훼손하고, 부작용을 감당해야 하지만… 무방비 상태로 내몰렸던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어.”
[끝없이 이기적인 발언이구나.]
“인간은 자연을 다스리는 존재다. 그게 부러우면 너도 인간 해.”
아도니스와 설전을 벌이며 최치우의 목표 의식도 뚜렷해졌다.
그는 소울 스톤으로 에너지를 개발해 인류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 그게 세상을 구하는 길이다.
자연을 위해서도 대체에너지 개발은 속히 이뤄져야 했다.
화력 발전이나 원자력 발전보다 소울 스톤을 이용한 발전이 훨씬 친환경에 가깝기 때문이다.
설령 정령들이 희생을 당해도, 자연을 보존하기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
최치우는 환생을 거듭하며 모든 차원에서 인간으로 살아왔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역사를 써내려 가는 것이 그의 숙명이다.
“악감정은 없다. 정령들이 자연의 균형을 수호하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나 균형을 위해 너희들이 일으키는 자연재해는 인간에게 너무 큰 위협이 된다.”
[그 또한 인간들이 자초한 일!]
“대화는 즐거웠다. 덕분에 나도 작은 깨달음을 얻었고. 너의 소울 스톤은 반드시 좋은 일에 쓰도록 하지.”
[건방진 인간-!]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아도니스는 다시 앞발을 높이 들고 땅을 내리찍었다.
쿠웅-!
이전과는 다른 기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엔젤 폭포에서 수십 갈래의 물줄기가 최치우를 노리고 쏘아졌다.
화살, 아니 미사일 같은 물줄기가 어두운 하늘을 가득 채웠다.
피할 구석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최치우는 최상급 물의 정령의 분노를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그의 신념과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