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06화 (106/243)

# 106

<정령 헌터>

임동혁은 뉴욕 최고의 로펌으로 유명한 LCK를 선임했다.

배후 스토리는 사뭇 흥미로웠다.

엘리시움에서도 LCK에게 일을 맡기려 했었다.

원래라면 그들은 이미 LCK와 계약을 하고 일을 추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 해밀턴의 소송 발언은 계획된 게 아니었다.

그는 주총에서 최치우의 담담한 포효를 듣고, 예정보다 일찍 이빨을 드러냈다.

어떻게 보면 빈틈을 찾아낸 것이고, 또 어떻게 보면 최치우에게 말린 셈이다.

그 결과 용의주도한 엘리시움이 1순위 로펌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뉴욕에는 LCK 말고도 훌륭한 로펌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선수를 뺏겼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반면 임동혁은 의기양양했다.

그의 인맥과 배경이 또 한 번 빛을 발한 것이다.

“엘리시움도 뭐 별거 없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한동안 올림푸스 여의도 사무실에는 임동혁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그도 이제는 엘리시움과 소송전을 벌이게 된 현실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게다가 오성그룹이라는 숙명의 라이벌이 임동혁을 자극했다.

재계에서 오성그룹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대기업에 속하는 한영그룹도 오성 앞에서는 몇 번씩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런데 하필 오성을 약탈하는 데 성공한 엘리시움과 싸우게 된 것이다.

만약 올림푸스가 엘리시움의 공격을 막아낸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오성그룹의 사건과 비교 할 게 분명하다.

한영그룹의 후계자인 임동혁이 오성그룹 부회장 이지용에게 간접적으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였다.

“의도가 너무 불순한 것 같은데.”

최치우는 신이 난 임동혁을 보며 혀를 찼다.

한참 형이지만 언제 철들지 도통 답이 안 나왔다.

그래도 LCK와 계약을 맺은 건 칭찬할 일이었다.

가뜩이나 미국 내부의 로비에 취약한 상황이다.

로펌 선임마저 밀렸다면 엘리시움은 더더욱 기세등등해졌을 것이다.

더구나 많은 주주들이 올림푸스와 엘리시움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엘리시움이 유리해지는 것 같으면 다들 말을 갈아탈지 모른다.

“LCK에선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최치우는 임동혁에게 다가가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단계는 뉴욕에서의 재판 진행 여부다.

뉴욕주 법원이 사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엘리시움은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소송을 걸어봐야 남는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선 법원에서 사건을 접수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게 보고 있었습니다.”

“안 좋은 소식이군요. 그래도 예상 범위 안이니까.”

“네. 제가 수시로 연락하며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LCK는 뉴욕에서 소송이 진행될 경우를 감안해 자료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법적 분쟁은 이사님이 디테일하게 챙겨주세요.”

“걱정하실 일 없게 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임동혁이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답했다.

최치우는 그를 믿었다.

동기 부여가 된 임동혁은 누구도 말리기 힘들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버서커 모드로 최고의 성과를 낼 것이다.

‘당분간은 LCK가 실무를 처리할 거 같고……. 나는 두 번째 소울 스톤을 찾아야겠다.’

최치우는 대표실로 들어오며 결심을 굳혔다.

김도현 교수는 첫 번째 소울 스톤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담겨 있음을 밝혀냈다.

앞으로 막대한 예산 투자와 집중 연구를 통해 소울 스톤의 에너지를 뽑아낼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속성의 소울 스톤이 더 필요했다.

다양한 샘플이 갖춰져야 연구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최치우는 불의 속성이 아닌, 물이나 바람 또는 대지의 소울 스톤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아슬란 대륙에서는 불, 물, 바람, 그리고 대지의 정령이 존재했었지. 어쩌면 이곳엔 더 다양한 속성의 정령이 있을 수도.’

아슬란 대륙과 현대의 지구에 존재하는 정령들이 100% 일치하란 법은 없다.

다만 상급 불의 정령인 샐러맨더는 아슬란 대륙에서 들었던 그대로였다.

샐러맨더의 케이스를 보면, 아마 상당히 비슷한 유형으로 정령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만약 뇌전의 정령 같은 게 존재한다면 대박이다.

최치우와 김도현 교수는 소울 스톤으로 전기를 만들어내고자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전력과 가장 비슷한 뇌전 속성의 정령을 소멸시켜 소울 스톤을 얻으면 효율이 엄청나게 높을 것이다.

60억, 아니 70억 인구가 살아가는 드넓은 차원 지구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미스터리 아래 숨어 있는 가능성을 발굴하는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비서 팀에서 보내온 주요 일정을 체크하며 날을 골랐다.

또 다른 소울 스톤을 손에 넣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최치우는 첫 번째 소울 스톤을 찾아 미국으로 떠날 때부터 비서 팀에게 단단히 일러뒀다.

앞으로 정확한 내용을 밝힐 수 없는 해외 출장이 잦아질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비서 팀장은 최치우의 일정을 느슨하게 잡았다.

꼭 필요한 미팅이나 행사 참석이 아니면 스케줄을 픽스하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내외 방송국과 신문사에서는 최치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매일같이 연락을 해온다.

인터뷰를 따기만 하면 특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언론과 거리를 뒀다.

너무 가까울 필요도, 또 너무 멀 필요도 없는 게 바로 언론이다.

그는 홀가분하게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올림푸스의 전속 작가로 변신해 웹툰을 그리고 있는 문지유에게도 출장 내용을 비밀로 붙였다.

대자연의 힘이 강성한 곳에서 정령을 찾고, 그로부터 소울 스톤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해줄 순 없었다.

“사람이 진짜 많긴 많다.”

최치우는 인천공항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평일 오후 시간인데 출국장에 모인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었다.

물론 최치우는 체크인을 위해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비즈니스와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별도의 체크인 카운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퍼스트 클래스 전용 카운터에서 여권을 보여주고 티켓을 받았다.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에 항공사 직원도 뒤늦게 최치우를 알아봤다.

“어머!”

최치우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린 항공사 직원을 보며 웃었다.

예전에도 비행기 안에서 만난 승무원과 짧은 로맨스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를 알아보고 환호하며 동경하는 사람들은 이제 일상이다.

최치우는 인기 연예인, 한류 스타의 삶이 궁금하지 않았다.

TV와 영화관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들 못지않게 많은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최치우에게도 악플을 다는 안티가 있고,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겠다고 사람들이 모여들면 거리에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최치우는 불편함을 감사하게 여겼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은 큰 힘이 된다.

“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아니에요. 자주 있는 일이라서.”

항공사 직원은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황급히 사과했다.

최치우는 그녀에게 캐리어를 건넸다.

“보딩 타임은 오후 4시입니다. 퍼스트 클래스 전용 라운지 위치는 알고 계세요?”

“네.”

인천공항의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는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

여자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럼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고객님.”

“덕분에, 고맙습니다.”

체크인 게이트에서 나온 최치우는 다시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안 그래도 공항이 복잡한데 괜한 소란이 나는 걸 원치 않았다.

체크인은 전용 게이트에서 편하게 했어도 입국 수속은 똑같이 줄을 서야 한다.

다행히 여행 분위기에 들뜬 사람들은 최치우를 알아보지 못했다.

최치우는 우여곡절 끝에 입국 수속을 마치고 라운지로 걸어갔다.

그의 목적지는 남미의 베네수엘라다.

한국에서는 베네수엘라로 가는 직항 항공편이 없다.

LA에서 환승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30시간 넘게 날아가야 한다.

최치우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베네수엘라로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곳에서 정령이 존재할 법한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베네수엘라는 미녀의 나라로 유명했다.

그렇지만 최치우는 미녀 때문이 아닌, 엔젤 폭포의 이상 기후 뉴스를 보고 남미행을 결심한 것이다.

엔젤 폭포는 높이가 무려 979m에 달한다.

당당하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1933년 비행기로 광물 자원을 탐사하던 지미 엔젤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폭포였다.

그만큼 베네수엘라에서도 인적이 드문 오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수량이 적으면 물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안개로 증발되기도 하는데… 최근 들어 급격히 수량이 늘어났다는 건 의심스러운 일이지.”

최치우는 라운지의 안마의자에 앉아서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

한국어 뉴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이과수 폭포가 아니면 한국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힘들다.

아마 엔젤 폭포가 무엇인지 아예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최치우도 우연히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이트에서 해당 뉴스를 접하게 됐다.

그는 이상 기후의 배경에 정령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캘리포니아의 산불도 샐러맨더 때문에 증폭된 것이었다.

엔젤 폭포는 평소 유수량이 적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올 가을부터 물의 양이 대폭 늘어났다. 큰비가 쏟아진 것도 아니고, 딱히 비가 많이 온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캘리포니아에서의 산불처럼 심각한 자연재해가 일어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재해 대신, 엔젤 폭포가 위치한 이곳, 카나이마 국립공원의 생태계가 변하고 있었다.

폭포의 수량이 늘어난 여파로 주위의 희귀 식물들이 죽는 것이다.

식물은 물이 부족해도 죽지만, 너무 많은 물을 머금어도 죽는다.

원래라면 안개로 증발했어야 할 폭포수가 끝까지 내리꽂히고, 다량의 수분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식물들이 영향을 받게 됐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사람들이 가기 힘든 오지의 국립공원, 그리고 자연재해 역시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차라리 잘됐어. 훨씬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겠다.”

캘리포니아 산불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재해였다.

샌프란시스코의 소방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최치우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야밤에 움직여야 했다.

그에 비해 엔젤 폭포는 머나먼 남미라는 게 걸릴 뿐, 자유롭고 편하게 움직이기 딱 좋은 환경이다.

“이왕이면 내 흔적을 안 남겨야지.”

최치우가 베네수엘라에 방문한 사실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것까지 완벽히 숨길 수는 없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안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금만 머리를 쓰면, 그리고 돈을 쓰면 충분히 행적을 감출 수 있다.

굳이 엔젤 폭포가 있는 카나이마 국립공원에 찾아가는 걸 알릴 필요가 없다.

최치우는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로드맵을 정리했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작전은 시작된다.

어쩌면 기껏 남미까지 날아가서 소득 없이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예감이 나쁘지 않았다.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기운이 왕성하고, 이상 기후 현상이 발생한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설마 샐러맨더보다 더 강한 정령이 있진 않겠지? 그럼 좀 피곤하겠군.’

최치우는 화재 복판에 뛰어들어 샐러맨더와 싸웠던 걸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보다 위험한 상황이 펼쳐져도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최치우는 소울 스톤 컬렉터가 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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