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05화 (105/243)

# 105

***

예상했던 대로 온갖 뉴스와 신문이 올림푸스 주주총회 이야기로 도배됐다.

원래 주총은 특별한 이슈가 없는 이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최치우는 폭탄 더미를 투하했다.

경제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흥미진진하게 올림푸스 뉴스를 보게 된 것이다.

“역시 난 놈은 난 놈이여. 뜻이 안 맞으면 주식 팔고 가라니……. 맨날 돈 앞에서 빌빌거리는 놈들 보다가 올림푸스 뉴스 보니까 속이 다 시원하더만.”

“그래도 너무 나간 것 아닌가? 누가 외국 법원에다 고소를 한다던데.”

“그거야 양놈들이 우리나라 회사가 너무 잘 나가니까 콩고물 떨어질 게 없나 시비 거는 것이제.”

“그렇지? 별문제 없겠지?”

“그럼! 거, 뭐시냐, 올림푸스의 최치우 대표만 한 인물이 또 어딨다고. 외국에선 오성그룹보다 더 유명하다던데……. 별일 없을 것이여.”

서울역 대합실에 앉아서 기차를 기다리는 중년 남성들이 구수한 사투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올림푸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이와 같았다.

보통 경영인과는 확연히 다른 최치우의 패기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편 최치우가 선을 넘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올림푸스는 갑자기 나타나 폭발적인 성공을 이뤄낸 회사다.

게다가 대표인 최치우는 아직 23살에 불과한데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섰다.

그 경이적인 급성장을 거품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그들은 최치우와 올림푸스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주총에서 최치우가 주주들을 대상으로, 아니 그를 지켜보는 세계를 대상으로 사자후를 터트린 것도 부정적으로 봤다.

이렇듯 최치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양 극단으로 갈리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식 시장의 평가도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했다.

최치우의 폭탄 발언과 루이스 해밀턴의 반격 소식은 주가에 충격파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푸스 주식은 약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급등하지도, 그렇다고 급락하지도 않은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향한 최치우의 도전을 불안하게 지켜본 투자자들도 있지만, 오히려 이번 주총을 계기로 그를 더 신뢰하게 된 주주들도 적지 않다.

덕분에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주총이 끝나고도 올림푸스의 주가는 조금이나마 오를 수 있었다.

최대 지분을 가진 CEO가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고 밝혔는데 주식이 떨어지지 않고 오른 것이다.

이것도 오직 최치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마법 같은 일이었다.

주식 시장이 세계 경제를 지배한 이후 최초로 벌어진 사건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임시 주총이 끝나고 사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주요 언론은 최치우를 메인 뉴스로 다루고 있었다.

주가를 떠나서 최치우와 올림푸스의 브랜드 이미지는 엄청나게 좋아졌다.

원래도 열광적인 팬들이 있었지만, 주총에서의 사건을 통해 부도덕한 월가의 금융 자본과 맞서 싸우는 상징성을 획득했다.

몇몇 언론에서는 최치우를 아시아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렀다.

사실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와 최치우의 행보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매번 엄청난 이슈를 일으키는 스타성은 비슷했다.

잡스 이후 실리콘밸리에는 전 세계적 팬덤을 거느린 슈퍼스타가 사라졌다.

그런데 뜬금없이 한국에서 잡스보다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CEO가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최치우는 서양인의 관점에서 봐도 매력적인 얼굴과 신체를 가진 건장한 청년이다.

호사가(好事家)들은 주총에서 촉발된 최치우와 엘리시움의 갈등을 눈여겨봤다.

만약 최치우가 이 난관마저 돌파한다면, 진짜 스티브 잡스를 능가하는 슈퍼스타로 떠오를지 모른다.

올림푸스의 임시 주총에서 최치우는 스스로 위기이자 기회를 만든 셈이었다.

결코 넘기 쉬운 장애물은 아니었다.

엘리시움은 독종 중의 독종으로 유명한 펀드다.

특히 주총에서 이빨을 드러낸 루이스 해밀턴은 한국 최고의 대기업 오성그룹을 상대로 약탈에 승리한 전력이 있다.

위험한 상대를 만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최치우의 호승심은 더욱 강하게 불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정글에서 살아가는 맹수와 맹수가 만났다.

어느 한 쪽은 반드시 치명상을 입고 피를 철철 흘리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세계가 올림푸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지만, 올림푸스 내부 분위기는 차분했다.

정확히 말하면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뜨거운 감정에 취해서는 일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

최치우가 주총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기백을 토해냈으니 이제는 얼음처럼 차갑게 수습을 할 차례다.

“엘리시움의 계산은 뻔합니다.”

임동혁이 입을 열었다.

그는 며칠 동안 발로 뛰며 루이스 해밀턴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심지어 사이가 나쁜 오성그룹의 이지용 부회장에게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엘리시움이 어떻게 오성그룹을 공격했는지 내막을 자세히 들으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여기서 언급된 모든 내용은 대외비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본론을 꺼내기에 앞서 단단히 주의를 줬다.

최치우와 임동혁, 그리고 고위급에 해당하는 팀장들만 참석한 회의다.

그럼에도 따로 주의를 줄 만큼 임동혁의 신경은 바짝 곤두서 있었다.

“엘리시움은 미리 포섭한 주주들을 모아 뉴욕주 관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본사가 서울에 있지만, 뉴욕 증시에 상장한 것을 빌미로 재판을 미국에서 열려는 겁니다. 만약 뉴욕 법원에서 소송을 받아들이면 문제가 커집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국제 언론의 관심도 집중될 게 뻔합니다. 게다가 미국 법원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동혁의 전망은 어두웠다.

그가 괜히 앓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온갖 인맥을 동원해 비슷한 사건의 판례까지 알아보고 내린 결론이다.

그때 말없이 상석에 앉아 있던 최치우가 설명을 덧붙였다.

“미국은 로비의 천국으로 유명하죠. 엘리시움이 미국, 특히 뉴욕주에 갖고 있는 네트워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그걸 잘 아시는 분이 주총에서 그렇게 막 내지르셨습니까?”

임동혁이 최치우를 쳐다보며 툴툴거렸다.

이번 주총에서 가장 크게 뒤통수를 맞은 사람은 다름 아닌 임동혁이다.

그가 최치우에게 주총을 제안한 의도와 정반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우리의 예상 시나리오 안에 있었잖아요. 하이에나 무리를 찾겠다는.”

“엘리시움은 하이에나라고 하기엔 덩치가 너무 큽니다.”

“그래 봐야 사자나 호랑이는 아닙니다. 자신들 힘으로 가치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 누군가의 시체를 뜯어 먹으며 몸집을 키운 회사일 뿐입니다.”

최치우가 단호한 태도로 엘리시움을 평가했다.

세계 최고이자 최악의 헤지펀드인 엘리시움도 최치우에겐 한낱 하이에나일 뿐이다.

성가시고 위험한 존재지만, 그게 전부다.

최치우는 무거운 안색을 하고 있는 팀장들을 돌아보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최 팀장님, 유 팀장님, 백승수 팀장님. 내가 이 싸움에서 질 것 같습니까?”

“아, 아닙니다.”

다들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시작과 끝이다.

그가 승부수를 던지고 패배하는 그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엘리시움이 아무리 거대한 적이라도 올림푸스 직원들이 생각하는 최치우의 위상과는 비교가 안 된다.

최치우는 간단한 방법으로 팀장들의 멘탈을 잡았다.

“엘리시움도 법정 다툼으로 끝을 볼 계획은 아닐 겁니다. 적당한 시기에 딜을 하겠죠. 원래부터 우리를 흔들려고 지분을 샀을 텐데, 마침 주총에서 루이스 해밀턴이 패를 깐 게 확실합니다. 그들도 즉흥적으로 판단을 내렸으니 치밀하게 준비하진 못했을 거라는 뜻입니다.”

설득력이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임동혁도 동의하는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사님, 오성그룹의 경우에는 어떻게 합의를 봤습니까?”

한 발짝 물러났던 최치우가 회의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임동혁은 자세를 고치며 힘들게 알아온 고급 정보를 풀어냈다.

이제까지 불만스러운 티를 팍팍 냈지만, 최치우가 나서면 무조건 따른다.

그게 최치우와 임동혁 사이에 맺어진 무언의 약속이었다.

“엘리시움이 경영권 분쟁에서 손을 떼는 대가로 지분과 오성그룹 계열사의 동남아 사업권 및 미개발 부지 등 총 1조 원가량을 넘겨받았습니다.”

“1조……. 우리 시가총액의 3분의 1이군요.”

“만약 분쟁이 끝까지 갔다면 확률은 7 대 3으로 오성이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단 1조를 주고 엘리시움을 쫓아내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죠. 오성의 시가총액은 360조니까.”

오성그룹은 그야말로 괴물 같은 대기업이다.

오너 가문의 경영권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1조는 충분히 지출 가능한 액수다.

하지만 올림푸스는 상황이 다르다.

오성보다 규모는 작지만, 더 유리한 점도 있다.

“올림푸스는 오성과 달리 지배 구조가 튼튼합니다. 내 지분이 50%를 넘으니 경영권 분쟁으로 끌고 갈 수는 없고……. 법적 다툼으로 부정적인 이슈를 일으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려는 것 같군요.”

“맞습니다, 대표님. 일을 크게 벌이는 것 치고는 엘리시움이 얻을 게 많지 않습니다.”

“당장의 돈보다는 올림푸스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려는 건지도 모릅니다. 소송 과정에서 다른 주주들을 모으고, 법정 다툼으로 우리 주가를 떨어트린 다음 매수할 수도 있습니다.”

최치우의 예상은 무척 날카로웠다.

태어날 때부터 대기업 후계자로 살아온 임동혁도 미처 생각 못 한 의표를 찔렀다.

“어쨌거나 엘리시움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법정 다툼을 최대한 지저분하게 끌고 갈 겁니다. 홍보팀에서는 언론 관리 확실하게 하고, 이사님은 뉴욕 쪽 로펌을 알아봐 주세요.”

“네, 대표님!”

최치우는 당장 필요한 순서대로 지시를 내렸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제 분쟁에 휘말렸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를 경험한 베테랑 같은 느낌을 줬다.

사실 그에게 있어 이런 전쟁은 낯설지 않았다.

무기 대신 돈으로 싸우는 것일 뿐, 다른 차원에서 지겹도록 겪은 각종 전투와 다를 게 없었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나의 전력과 적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다음 침착함을 유지하며 냉정하게 싸움을 준비하면 된다.

말로 설명하기엔 무척 쉬운 수칙이다.

하지만 대부분 전력 판단에서 실수를 하고, 냉정한 준비 대신 허겁지겁 달려들다 망한다.

전쟁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평소와 다른 이상한 판단을 내리기 쉽다.

그래서 백전노장이 무서운 것이다.

비록 전투력은 예전만 못해도 무수한 경험으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노장의 경험치와 신예의 패기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의 실체를 안다면, 누구도 감히 덤빌 엄두를 못 낼 수밖에 없다.

“상시 모니터링 체제로 들어가되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늘 하던 대로, 우리의 일을 하면 됩니다.”

최치우는 엘리시움을 견제하느라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소모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차피 아쉬운 건 엘리시움이다.

올림푸스는 그들의 행보를 주시하며 적절한 방어와 반격을 가하면 된다.

괜히 노이로제에 걸려 업무를 망치면 엘리시움의 뜻대로 움직이는 꼴이다.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는 동시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결국 애가 탄 엘리시움이 먼저 딜을 제안해 올 것이다.

최치우는 악명 높은 헤지펀드의 하이에나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눈에 선했다.

‘어차피 너희는 내 손바닥 안에 있어. 그리고 곧 내가 심어놓은 칼을 발견하게 될 거야.’

전금녀의 현금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장의 무기다.

전기차 회사인 T 모터스와 드림 모터스를 마음대로 못 주무르게 되면 에릭 한센과 엘리시움 등 네오메이슨 진영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주총에서 최치우가 포효했다면, 이번에는 강철 같은 이빨로 적의 급소를 물어뜯을 시간이다.

더불어 다른 소울 스톤을 찾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다.

겨울을 앞둔 최치우의 시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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