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04화 (104/243)

# 104

<맹수, 포효하다>

“나 어때요, 누나?”

최치우가 넥타이 매듭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의 질문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문지유였다.

웹툰 리얼 헌터의 그림 작가로 엄청난 명성을 얻은 그녀가 볼을 붉히며 대답했다.

“어? 어, 엄청 멋있어…….”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진짜야!”

문지유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화들짝 놀랐다.

최치우는 여전히 소녀 같은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어요. 엄청 멋있는 걸로 생각할게.”

“떨리지는 않아?”

“이 정도로 떨리면 최치우가 아니죠.”

“하긴… 넌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됐으니까.”

문지유가 진심을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그녀는 최치우가 고3일 때 처음 만나 웹툰 작업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고, 최치우는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기업 올림푸스의 CEO로 성장했다.

문지유 역시 가난한 지망생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인기 웹툰 작가로 거듭났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본 최치우의 성장 속도는 비현실적이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오늘 잘 부탁해요, 누나.”

“응, 최선을 다할게. 치우 너도 파이팅!”

문지유가 하얗고 작은 주먹을 쥐며 응원을 했다.

최치우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등을 돌렸다.

그는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했고, 전 세계에서 방문한 주주들을 위해 대형 컨벤션 홀을 빌렸다.

이제 강단에 나가 올림푸스의 최대주주이자 CEO로서 주총을 이끌어야 한다.

그토록 중요한 자리에 문지유를 부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문지유는 오늘 주총을 시작으로 올림푸스의 행보를 그리게 될 것이다.

마침 리얼 헌터 연재도 인기리에 끝난 상태이기에, 그녀는 새로운 작품을 준비해야 했다.

원래는 다른 차원에서 경험한 최치우의 전생을 스토리로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울 스톤을 발견하며 마음을 달리 먹었다.

이제부터 올림푸스의 행보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역사가 될 것이다.

생생하게, 그리고 누구나 보기 쉽게 웹툰으로 기록을 남기면 훗날 영원불멸의 신화가 될지 모른다.

다른 차원의 전생을 남기느니 현재의 도전을 기록하는 게 훨씬 가치 있을 것 같았다.

쉽게 말해 문지유는 올림푸스의 전속 작가로 계약을 맺었다.

수많은 독자들이 기다리는 그녀의 차기작 제목도 ‘올림푸스’로 정해졌다.

실화에 기반을 두고 전개될 문지유의 웹툰은 최치우와 올림푸스의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도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저벅저벅-

최치우는 대기실 문을 열고 힘차게 걸었다.

강단 위로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은 태산처럼 굳건해 보였다.

문지유는 미리 준비해 놓은 도구로 최치우의 뒤태를 스케치했다.

평범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부담과 책임을 짊어진 어깨.

무엇이든 다 받아낼 것처럼 넓은 등.

“널 그릴 수 있어서… 참 좋아, 치우야.”

문지유는 작은 소리로 진심을 고백했다.

최치우를 처음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늘 하고 싶었던 고백이다.

하지만 그녀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저 최치우를 그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다.

문지유는 최치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최치우는 세계 각 국의 주주들을 바라보기 위해 강단으로 올라갔다.

서로 다른 곳을 보는 두 사람은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

‘약간 놀랐지만, 집중하자.’

최치우는 강단 중앙에 우뚝 섰다.

사실 그는 문지유가 작게 속삭인 혼잣말을 들었다.

날고 기는 주주들 앞에서 사자후를 터트리기 위해 기운을 끌어 올린 탓에 자연히 감각도 날카로워져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문지유의 진심을 알아챘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사적인 감정으로 큰일을 그르칠 순 없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 문지유는 누나지만 어딘지 여동생 같은 이미지였다.

괜한 감정으로 지금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다.

문지유도 비슷한 마음이기에 섣불리 진짜 고백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는 숨을 들이마시며 관중석을 쳐다봤다.

올림푸스의 주식은 1주의 가격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따라서 시가총액이 비슷한 다른 회사들에 비해 주식을 구하기 훨씬 어렵다.

주총에 참여한 사람들 중 어중이떠중이가 섞여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여의도에 모이다니, 재밌는 광경이군.’

해외 금융 자본의 수장과 펀드 매니저들도 대거 참석했다.

좌석 곳곳에 백인은 물론이고 흑인과 아랍계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최치우가 어떤 말을 꺼낼지 기대하고 있었다.

좋은 의도를 가진 주주도 있고, 빈틈을 보이면 물고 뜯으려는 주주도 있을 것이다.

최치우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향해 일성을 터트렸다.

“주총에 참여해 주신 주주 여러분께 올림푸스를 대표해 인사를 드립니다.”

짝짝짝짝짝-!

인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치우가 작성한 예산안에 대해서는 이미 임동혁이 보고를 마쳤다.

그렇기에 구구절절 예산안의 당위성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주주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은 따로 마련돼 있다.

지금은 올림푸스의 대표로서 다시 한번 명확한 비전을 제시할 타이밍이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회사의 성장 가능성에 투자를 한 것이겠죠. 그러나 동시에 주주로서 회사와 같은 꿈을 꾸겠다는 뜻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치우는 입을 열자마자 파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정중한 말투지만 주주들에게 주인 의식을 요구한 것이다.

해외에서 날아온 펀드 매니저들은 특히 더 깜짝 놀랐다.

어떤 오너도 주주에게 이런 식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주총이 될 것 같았다.

동시통역기를 착용한 외국인 주주들의 안색이 창백해진 가운데 임동혁도 강단 뒤편에서 이마를 감쌌다.

그는 주주 친화적 제스처를 보여주기 위해 임시 주총을 소집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최치우가 가장 중요한 CEO 프레젠테이션의 시작부터 사고를 친 것이다.

“올림푸스는 창립 이래 놀라운 성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설립된 전 세계의 모든 기업 중 성장 속도로는 10위 권, 자본금과 직원 수 대비 성장률로는 압도적 1위라는 언론의 발표입니다. 어떻게 이런 성장이 가능했을까요? 뉴욕도, 런던도, 도쿄나 홍콩도 아닌… 서울에서 시작한 회사가.”

넓은 컨벤션 홀이 잠잠해졌다.

올림푸스의 성장 비결을 다룬 칼럼이나 기사는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창립자인 최치우가 직접 이유를 설명한 적은 없었다.

그는 주주들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친 후 어르고 달래듯 자기 페이스로 발표를 이어갔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올림푸스는 돈 벌려고 만든 회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 강력한 쇼크가 주총을 휩쓸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최치우처럼 파격적인 프레젠테이션은 못 할 것 같았다.

그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짓는 주주들의 얼굴을 돌아보며 말했다.

“올림푸스는 세상을 바꾸는 회사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업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뤄집니다. 그리스 신화에 존재하는 신들의 세계, 그 미지의 신비를 찾아내기 위한 회사라고 강조한 것은 제 진심이었습니다.”

최치우는 똑같은 이야기를 올림푸스 창립 기자회견에서 했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회사를 수식하는 화려한 표현법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

“올림푸스가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번 것은,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가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금속을 발굴하고, 차원이 다른 해독제를 만들며, 난민들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방치 된 광산을 개발해 아프리카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는 돈을 쫓았다면 결코 완성되지 못 했을 것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올림푸스가 대체 뭐하는 회사냐고 물었을 때 똑 부러지게 대답하기 힘들다.

그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색다른 사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주주 여러분의 고민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엄청난 금액을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연구 개발 비용으로 투자하기 때문이겠죠.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년 예산안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겁니다.”

최치우는 결정타를 날렸다.

주총 소집을 제안한 임동혁은 두통을 느끼는지 뒷목을 잡고 있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주총을 열지 않는 게 낫다.

조용히 예산안을 처리하면 반발은 있어도 큰 이슈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주총에서 마이 웨이를 천명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내일 신문 1면과 9시 뉴스를 장식할 게 뻔했다.

“물론 투자에 실패할 수도 있고, 회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푸스는 돈을 버는 일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일에 집중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돈은 자연히 따라오게 되겠죠. 우리의 비전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은… 주식을 팔아주십시오. 저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운명 공동체이고 싶습니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투자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최치우의 프레젠테이션은 대략 3분 만에 끝났다.

3분은 무척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역사상 가장 도발적이고 강렬한 프레젠테이션의 주인공이 됐다.

CEO가 주주들에게 주식을 팔라고 말한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더구나 그는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한 투자를 계속할 것이며, 돈을 벌어 이익을 내는 게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모든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올림푸스는 이윤보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

말이야 멋있지만, 주주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금융기관과 신용평가기관에서 보기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회사가 된 것이다.

“네, 네. 최치우 대표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도 놀랐는지 말을 더듬으며 순서를 진행했다.

최치우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사자후를 터트렸다.

원래 맹수는 함부로 짖지 않는다.

무겁고 낮게 으르렁거리기만 해도 모든 동물들이 얼어붙는 법이다.

최치우는 맹수의 왕처럼 주주총회를 지배했다.

그의 발표는 마치 선전포고를 연상시켰다.

그래서인지 누구 하나 선뜻 질문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주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최치우의 기세에 위축된 것이다.

처억!

그때였다.

왼편 뒷줄에 앉은 누군가 손을 들었다.

200명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오직 한 사람만 손을 들어 시선이 집중됐다.

진행 요원이 얼른 움직여 마이크를 넘겼다.

최치우도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을 유심히 쳐다봤다.

‘한국인이 아니다.’

새하얀 피부에 푸른 눈, 그리고 많은 백인들처럼 대머리인 중년 남성이 입을 열었다.

“엘리시움의 동아시아 지부장. 루이스 해밀턴입니다. 존경하는 최치우 대표님께 질문을 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는 품격이 느껴지는 상류층 영어로 물 흐르듯 자연스레 말했다.

‘엘리시움……. 오성그룹의 경영권을 뺏으려고 날뛰었던 장본인이군.’

다른 주주들이 웅성거렸다.

세계 최악의 헤지펀드, 엘리시움의 동아시아 지부장이 직접 나타나 마이크를 잡을 줄은 몰랐다.

특히 루이스 해밀턴은 오성그룹 쟁탈전을 진두지휘했던 금융계의 독사다.

최치우의 잠잠한 포효가 주총을 초토화시켰는데 루이스는 여유로워 보였다.

확실히 잔챙이들과는 격이 다른 인물 같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지부장님. 어떤 질문이 있으십니까?”

최치우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루이스를 바라봤다.

루이스는 기다렸다는 듯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주주들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모든 주식회사의 의무입니다. 방금 대표님은 그 의무를 팽개치겠다는 발표를 하셨습니다. 국제경제법상 미필적 배임 등에 해당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올림푸스의 지분 1.5% 가량을 확보한 엘리시움은 뜻이 맞는 주주들을 모아 대표님을 제소하려 합니다. 끝까지 주주의 이익보다 본인의 경영 철학이 우선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으시겠습니까?”

루이스는 젠틀한 미소를 지으며 최치우의 선전포고를 맞받아쳤다.

엘리시움이 총대를 메고 최치우를 고소하겠다는 것이다.

지분은 1.5%에 불과하지만, 경영권 다툼이 아닌 법적 다툼으로 전쟁터를 옮기면 승산이 있을지 모른다.

불안한 수군거림이 커지는 가운데, 최치우는 가만히 서서 루이스를 노려봤다.

루이스는 최치우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폭탄발언이 연달아 쏟아진 올림푸스의 주총에서 거대한 전쟁의 서막이 올라갔다.

‘루이스 해밀턴, 엘리시움. 그리고 뒤에는… 네오메이슨이 있겠지.’

최치우는 본능적으로 냄새를 맡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글로벌 비즈니스 전쟁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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