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03화 (103/243)

# 103

***

생각보다 판이 커졌다.

세계를 바꾸고,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너무 거창한 목표다.

그런데 어쩌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샐러맨더를 소멸시켜 얻은 소울 스톤으로 최신식 열병합발전소 하나를 대체할 가능성이 보인다.

지속적으로 소울 스톤을 찾아내고, 연구와 개발을 이어가면 엄청난 노하우가 축적될 것이다.

당장은 힘들어도 언젠가 인류는 석유나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고 에너지를 생산할지 모른다.

소울 스톤은 그러한 미래를 여는 유일한 단서였다.

신의 대리인 아바타는 7번째 환생을 하게 된 순간 최치우 앞에 나타나 ‘스스로를 희생해 세상을 구하는 기쁨’을 깨달으라는 황당한 미션을 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황된 미션이지만, 드디어 캄캄한 밤길에서 열쇠 조각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자금줄을 과감하게 풀었다.

당초 예정됐던 것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 배정한 것이다.

김도현 교수와 세계 최고의 연구진들이 해법을 찾지 못하면 소울 스톤은 그림 속 떡이 되고 만다.

아무리 먹음직스러운 떡이라도 그림 속에 머물면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소울 스톤이라는 떡을 그림에서 세상으로 꺼낼 수만 있다면, 올림푸스는 역사와 미래를 바꾼 회사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물론 산적한 문제가 적지 않다.

가장 먼저 더 많은 소울 스톤을 확보해야 한다.

최치우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정령들을 찾고, 또 소멸시켜야 하는 것이다.

졸지에 현대에서 정령술사가 아닌 정령 헌터가 되게 생겼다.

연구진이 소울 스톤에 담긴 에너지를 전력으로 변환시키는 데 성공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에너지 생산은 대부분 국가에서 주관하는 사업이다.

정부 기관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해관계를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영조 대통령은 올림푸스에 협조를 해주겠지만, 그의 임기도 2년밖에 안 남았다.

2년이 지나고, 최치우가 25살이 됐을 때 어떤 성향의 정부가 들어설지 모른다.

대체에너지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하지만, 장애물이 너무 많은 사업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다가 올 어려움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이제껏 세상 누구도 찾지 못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실마리를 풀어냈다.

아직 닥쳐오지 않은 고비를 걱정할 시기는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언제나 그렇듯 미래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대표님, 이 예산안을 발표하게 되면 주주들이 반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외국계 자본이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최치우는 임동혁의 냉정한 보고를 듣는 중이었다.

올림푸스의 유일한 이사이자 재무 파트의 총책임자(CFO)가 된 임동혁은 숨겨 놓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재계의 망나니 재벌 2세 시절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능력이다.

그의 성장은 완고한 한영 그룹 회장까지 놀라게 할 정도였다.

한영 그룹이 아닌 올림푸스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임동혁은 그저 그런 금수저가 아닌, 장차 대기업을 이끌 자격이 있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주주들이 반발해도 내 지분이 50% 이상입니다. 이사님과 우리 직원들의 지분을 더하면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최치우의 말투도 단호했다.

그는 주주들에게 휘둘리기 싫어 50% 이상의 지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오너의 지분율은 10%를 넘기기도 힘들다.

국내 최대 회사인 오성그룹의 경우 오너 일가의 보유 지분이 7% 남짓이다.

그렇기에 혼자 50%가 넘는 지분을 소유한 최치우는 무척 특이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임동혁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CFO로서 CEO이자 오너인 최치우를 반드시 설득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물론 대표님의 우호 지분은 절대적입니다. 오죽하면 올림푸스 주식은 아무나 못 산다는 말이 떠돌겠습니까. 덕분에 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중요한 건 경영권 방어가 아닙니다. 다만 주주들과 부딪치는 모습이 드러나면 시장에 좋지 않은 사인을 주게 됩니다. 주가나 신용도에도 영향이 생길 겁니다.”

“내가 새로 수정한 예산안이 그 정도라는 거죠?”

“사실… 저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만, 대표님을 믿고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영업이익을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 쏟아부으려 했다.

프로메테우스와 남아공 광산으로 버는 돈을 아낌없이 재투자하려는 것이다.

그 결과 임동혁도 혀를 내두를 만큼 전폭적인 투자 예산안이 나왔다.

문제는 극소수의 최측근을 제외하면 다들 소울 스톤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직 외부에 소울 스톤을 알릴 때가 아니다.

그렇기에 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될 수밖에 없었다.

주주들 입장에서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그저 S대에서 만든 연구기관일 뿐이다.

무엇을 연구하는지, 그 연구가 올림푸스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정상적인 주주라면 눈을 부릅뜨고 반대하는 게 당연했다.

영업이익을 대폭 투자하고 회수하지 못하면 올림푸스는 자금난에 처하게 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

지금 잘 나갈수록 위기를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최치우의 예산안은 위기를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 행보였다.

“임 이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최치우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마지막 결정은 최치우 스스로 내릴 것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진심어린 조언에 귀를 닫으면 폭군이 될 뿐이다.

“예산안은 바꾸지 않을 겁니다. 소울 스톤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건 이사님도 동의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저도 리포트를 확인하고 놀랐습니다. 그렇게 크지도 않은 원석 하나에 그만한 에너지가 담겨 있다니……. 당장 그 사실만 알려도 우리 주가는 3배, 4배로 폭등할 겁니다. 주주들도 입이 귀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가이드를 드리죠. 예산안은 그대로, 소울 스톤의 존재도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밀어붙일 생각입니다만, 그들과 충돌하지 않을 임 이사님의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채택하겠다는 뜻입니다.”

최치우는 임동혁에게 어려운 과제를 내줬다.

결국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주들과 부딪치지 않을 방안을 가져오라는 지시였다.

만약 임동혁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면 최치우는 불도저처럼 예산안을 밀어붙일 게 뻔했다.

경영진과 주주들의 관계가 나빠지든 말든, 부정적인 뉴스로 주가가 내리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주주총회를 여는 게 어떻습니까?”

“갑자기 주총을 열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소울 스톤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도 주주들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대표님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점도 있습니다.”

“주총 개최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또 있다면,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임동혁에게 최치우를 설득할 기회가 주어졌다.

참모는 자신의 조언을 군주가 받아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어느덧 최치우의 참모 역할을 하게 된 임동혁은 흥분을 억누르고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장기적으로 세계의 투자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올림푸스의 지분을 일정 이상 확보한 사람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은 회사의 미래에 배팅을 했습니다.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적으로 만들 필요는 더더욱 없지 않겠습니까. 주주들과 신뢰를 쌓으면 향후 대표님이 더 큰 걸음을 내딛을 때 힘이 될 겁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최치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을 얻은 임동혁이 두 번째 이유를 말했다.

“두 번째, 누가 하이에나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이에나?”

“주주가 됐지만, 언제든 대표님의 경영권을 흔들고 자신들의 이익만 극대화시키려는 세력을 뜻합니다. 오성그룹도 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시움에게 톡톡히 당하지 않았습니까.”

“하마터면 경영권을 뺏길 뻔했었죠.”

최치우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성그룹 경영권 쟁탈전을 떠올렸다.

외국계 헤지펀드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경영권을 흔들고, 원하는 걸 얻어간다.

우리나라의 외환은행이 론스타에게 털린 것도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다.

은행마저 당하는 판국이기에 기업들은 더더욱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에릭 한센만 봐도 약탈적 M&A로 여러 기업을 농락하고 있다.

올림푸스의 주주들 중에서도 하이에나 무리가 포함돼 있을 것이다.

“예산안 통과를 핑계로 임시 주총을 열면, 하이에나들은 내게 흠집을 내기 위해서라도 모습을 드러내겠군요.”

“역시 바로 이해하실 줄 알았습니다, 대표님.”

“임 이사님이 이렇게까지 제안하는 거라면…….”

최치우가 긍정적인 사인을 줬다.

임동혁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얼른 입을 열었다.

“조금 번거롭겠지만, 주총을 통해 중립적인 주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면서 예산안을 통과시키면 됩니다. 아울러 누가 하이에나 노릇을 할지 파악해 두면 훗날 대비하기도 쉽지 않겠습니까.”

“이사님.”

“네?”

“언제부터 말을 이렇게 잘했어요? 옛날에 내가 알던 이사님이 아닌 것 같은데.”

최치우가 씨익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임동혁은 그의 농담이 최고의 칭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하하, 원래 미친놈이 마음만 먹으면 무섭지 않습니까. 대표님도 그런 케이스고…….”

“그래서 우리가 CEO와 CFO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림푸스는 미친놈 둘이 이끄는 회사군요.”

“그럼 임시 주총 소집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럽시다. 이사님이 날 설득해서 판을 깔았으니, 어떻게 주주들을 구워삶을지 고민해 보죠.”

최치우는 임동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필요하다면 어린 아이의 조언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늘 성장하는 사람은 흐르는 물을 닮는 법이다.

자기 주관이 강한 것과 조언을 잘 듣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어차피 선택과 책임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기에, 설령 결과가 나빠도 조언해 준 사람을 탓해선 안 된다.

이로서 올림푸스는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하게 됐다.

해외의 금융자본을 소유한 하이에나들도 최치우의 진면목을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내밀 것 같았다.

최치우는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는 맹수로 성장했다.

올림푸스라는 신흥 강국을 이끄는 사자인 셈이다.

필연적으로 그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들과의 싸움을 두려워하면 제국을 이끌 자격이 없다.

최치우는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싸움을 즐기며 한계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편이다.

소울 스톤으로 인류의 미래를 바꾸려고 하면 기득권을 가진 세상 전체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렵지 않았다.

다행히 파트너인 임동혁 역시 싸움을 즐기는 미친놈이라 든든했다.

올림푸스는 외줄을 타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여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올림푸스의 주주총회 소집 뉴스가 세계 각 국으로 퍼져 나갔다.

주총은 일반적인 대중들의 이목을 끄는 행사는 아니다.

그렇지만 경제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소집 된 주총은 논란거리이기 때문이다.

내년도 올림푸스 예산 규모가 엄청나다는 건 이미 소문이 났다.

남아공에서 벌어들인 현금을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 투자하는 예산안으로 인해 오르기만 하던 올림푸스 주가도 살짝 하락했다.

그러나 주총을 여는 건 다른 문제다.

괜히 주주들을 모아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모른다.

최치우와 올림푸스 경영진은 정면 돌파를 택한 셈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물론, 국내외 주요 기업의 총수들도 올림푸스의 주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임동혁의 말대로 올림푸스 주식을 보유한 해외 펀드의 수장들도 서울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번 기회에 최치우를 직접 만나서 간을 보려는 것이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선봉장이고, 수문장이며 동시에 절대군주다.

해외 자본이 올림푸스를 어떻게 쥐고 흔들지, 과연 약탈을 할 수 있을지 계산하려면 먼저 최치우의 그릇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따라서 갑자기 열린 주주총회는 흔치 않은 기회인 셈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최치우는 여유로웠다.

그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임시 주총은 최치우와 임동혁이 펼친 함정이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가려내기 위해 차려진 무대다.

섣불리 이빨을 드러내는 주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한편, 최치우는 그저 주주총회를 준비하고만 있지 않았다.

주총이 함정을 파고 방패를 드는 일이라면, 다른 손으로는 칼을 휘둘렀다.

전금녀의 자금을 이용해 전기차 회사인 T 모터스와 드림 모터스 주식을 대량 매입한 것이다.

명동의 큰손 전금녀는 순식간에 무시할 수 없는 투자자가 됐다.

물론 3천억으로 두 회사의 대주주가 될 수는 없다.

지분율로 따지면 2% 미만이다.

그러나 개인이 2% 가까운 지분을 확보하면 무시 못 할 영향력을 갖게 된다.

경영권을 방어하고, 주가 하락을 막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머지않아 에릭 한센은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을 것이다.

여동생의 스캔들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리면 최치우가 양대 전기차 회사에 심어놓은 지뢰를 발견할 수밖에 없다.

뒤늦게 알아차려도 손을 쓰기엔 너무 늦은 타이밍이다.

소울 스톤을 통해 위대한 발견을 해낸 최치우는 비즈니스 정글에서 능수능란하게 칼과 방패를 사용하고 있었다.

세상은 이미 최치우 때문에 여러 번 놀랐지만, 진정한 질주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