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위대한 발견>
전금녀를 아군으로 만든 최치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김도현 교수의 연락을 받았다.
늘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는 김도현 교수는 들뜬 목소리로 최치우를 불렀다.
절대 화를 안 내는 사람이 한번 눈이 돌아가면 누구도 못 말리는 것처럼, 평소에 차분한 사람이 흥분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최치우는 전화로 자초지종을 묻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깊게 김도현 교수를 신뢰하고 있었다.
올림푸스에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고, 이시환과 백승수도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최치우의 오른팔과 왼팔을 고르라면 당연히 임동혁, 그리고 김도현이다.
특히 김도현 교수는 한때 그의 스승이었다.
지금은 최치우가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 역할을 맡았지만, 현대라는 차원에서 처음 만난 멘토가 바로 김도현이었다.
최치우는 다른 스케줄을 미루고 S대로 운전대를 돌렸다.
공식 일정을 소화하던 중이었다면 올림푸스의 전속 기사가 운전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뵙고, 희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일정을 변경하기 훨씬 수월했다.
“와, 제법 많이 변했네.”
최치우는 S대 공대 건물에 들어서며 탄성을 터트렸다.
원래도 공학관의 시설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몇 달 사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올림푸스에서 공대, 정확히 말하면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 거액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김도현 교수는 미래 에너지 탐사대를 S대 소속의 특수 연구기관으로 승격시켰다.
최치우는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고, 그 혜택은 공대 학생을 전체가 함께 누리게 됐다.
연구실 확충과 연구 장비 구입, 외국 연구진 스카웃만 이뤄진 게 아니라 공학관 시설도 덩달아 업그레이드해 준 것이다.
“어? 애들아, 저기 최치우 대표님이야!”
“야, 야. 대표님이 뭐냐, 선배님께. 근데 바쁘신 것 같으니 아는 척하지 마. 부담스러우시면 앞으로 학교에 자주 안 오실 수도 있으니까.”
당연히 S대 공대 학생들은 최치우를 알아봤다.
이제는 최치우보다 학번이 낮은 후배들도 많이 생겼다.
학생들은 공학관 건물을 새롭게 리모델링해 준 장본인이 최치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최치우가 S대에 해주는 것은 시설 투자가 전부가 아니다.
올림푸스에서 S대 공대에 수여하는 장학금도 적지 않다.
원래도 대한민국 최상위권으로 불렸지만, 최치우 덕분에 S대 공대의 위상은 나날이 치솟고 있었다.
후배들은 물론이고, 동기와 선배들 모두 자랑스러워하는 게 당연했다.
속 깊은 학생들은 일부러 최치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연예인을 본 것 이상으로 달려들어 인증샷을 찍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딱 봐도 오늘은 최치우가 중요한 업무로 학교를 방문한 게 티가 났다.
급하게 걸어가는 그를 방해하지 않는 학생들의 성숙한 태도가 놀라웠다.
학생들이 선배만 잘 둔 게 아니라 선배인 최치우도 후배들을 잘 둔 것 같았다.
똑똑-
“교수님.”
최치우는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김도현 교수는 확장 공사를 마친 미래 에너지 탐사대 연구실을 쓰고 있었다.
“치우 군, 아니 대표님!”
비서 대신 김도현 교수가 직접 문을 열어줬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그래요. 어차피 오늘은 다른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의 말대로 한껏 넓어진 연구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도현 교수를 보좌하는 비서를 포함해서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과 다른 연구 교수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계셨어요?”
“아직은 아무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실험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럼 급하게 연락하신 것은…….”
“그 실험 결과를 세상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이 치우 군이니까요.”
김도현 교수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모름지기 나쁜 일은 빨리 말하고, 좋은 일은 천천히 말해도 된다.
그런데 김도현 교수는 좋은 결과를 얻었음에도 다급히 최치우를 불렀다.
깜짝 놀랄 실험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직접 보여줄게요.”
그는 길게 말을 돌리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눈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하다.
연구실 안에는 3개의 크고 작은 실험실이 따로 있었다.
김도현 교수는 먼저 최치우가 열고 들어온 연구실 출입문을 닫았다.
삑- 철커덩!
보기엔 간단해 보이지만, 최첨단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다.
작정하고 무장 강도가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 좀도둑은 절대 뚫을 수 없는 보안 시설이다.
물론 총기가 엄격히 금지 된 우리나라 서울 한복판의 명문대 연구실로 강도들이 들이닥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 연구실은 그만큼 안전한 곳이었다.
“이걸 보세요, 치우 군.”
김도현 교수가 최신식 연구 장비 앞에 섰다.
실험대 위에는 불꽃을 닮은 소울 스톤이 놓여 있었다.
최치우는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소울 스톤의 기운을 느꼈다.
여전히 불의 상급 정령 샐러맨더의 폭발적인 파워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산불 속에서 싸웠던 걸 생각하면… 아찔했지. 엄청 재밌었고.’
최치우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샐러맨더와의 전투에서 그는 목숨을 걸었었다.
역대 최악의 화재로 들어가 상급 정령의 폭주를 막아낸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위험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피가 뜨거워질 정도로 재밌는 싸움이었다.
역시 최치우의 영혼에 각인된 전사의 투혼은 어디 가지 않았다.
“시작할게요.”
그때 김도현의 음성이 최치우를 일깨웠다.
최치우는 정신을 집중하고 붉은 소울 스톤을 쳐다봤다.
틱-
김도현 교수가 장비의 버튼을 눌렀다.
그는 버튼 몇 개를 누르고, 터치 디스플레이에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했다.
A 실험실 중앙을 차지한 이 장비를 사오는 데 120억가량을 써야 했다.
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이지만, 그것도 김도현 교수의 네트워크 덕분에 저렴하게 구입한 것이다.
최치우가 미래 에너지 탐사대, 그리고 소울 스톤 연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연구 장비만 봐도 짐작이 가능했다.
“잠시 후… 레이저가 소울 스톤을 통과할 겁니다. 그때 이쪽의 그래프를 확인해 주세요.”
김도현 교수는 연구 장비 왼쪽에 위치한 그래프 화면을 가리켰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했다.
곧이어 충전을 마친 기기에서 레이저가 쏘아졌다.
지이이잉-
파직-! 파지지지직!
최치우도 깜짝 놀랐다.
예상한 것 이상의 에너지 파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120억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온 기계여서일까.
압축된 레이저 광선의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은 당연히 느낄 수 없다.
하지만 힘을 감지하는 데 탁월한 최치우는 얇은 광선에 담긴 에너지를 생생히 파악할 수 있었다.
‘저거 잘못 맞으면… 장갑차고 철판이고 다 뚫리겠는데.’
최치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울 스톤을 주시했다.
양 옆에서 쏘아진 레이저가 소울 스톤을 관통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3초 뒤에 벌어졌다.
빠박! 빠바박!
소울 스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윽고 붉은 빛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진해졌다.
빨간색에서 점점 검은색에 가까운 농도로 색이 변하고 있었다.
마치 태양에서 흑점 폭발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래프를 봐요, 치우 군!”
김도현 교수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최치우는 기계에 달린 그래프 화면을 확인했다.
어떤 수치를 나타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프 선이 최고점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수치인지 궁금합니다, 교수님.”
“열역학 반응 수치라고 해요. 소울 스톤은 특수 레이저에 반응하고 있어요. 그때 장비로 소울 스톤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 에너지를 측정하는 것이지요.”
김도현 교수는 어려운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풀어냈다.
최치우는 다른 차원에서 전투 로봇을 만들 정도로 공학에 조예가 깊지만, 대체에너지와 자원 개발 분야에서는 뛰어난 석사 레벨이다.
그렇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인 김도현 교수가 필요한 것이었다.
“이 수치가 어느 정도를 뜻하는 거죠?”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은 김도현 교수가 탑이지만, 이해력은 최치우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는 곧바로 김도현의 설명을 알아듣고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김도현 교수는 연구 장비를 중지시키고 설명을 계속했다.
“소울 스톤이 까맣게 변하는 게 열역학 반응이 일어난다는 징표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연구 장비의 한계로는 흑화(黑化) 상태를 20초 정도 지속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20초가량 흑화 상태가 일어났을 때의 수치는…….”
최치우는 잠자코 김도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소울 스톤이 검붉은 색으로 물드는 건 그도 똑똑히 지켜봤다.
김도현 교수는 거기에 흑화 현상이라는 용어를 붙였다.
120억이나 하는 장비로도 소울 스톤의 에너지를 다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의외였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커졌다.
“치우 군, 얼마 전 정부에서 춘천 열병합발전소 시공 계획을 발표한 거 알고 있나요?”
“뉴스를 봤습니다.”
“7천억 원을 투입해서 220만 가구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고, 2만 5천 가구가 쓸 수 있는 지역 냉난방열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지요.”
김도현이 뜬금없이 말을 돌리는데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
최치우는 수치의 뜻이 궁금했지만, 참을성을 가지고 대답했다.
“기존 복합 화력발전보다 효율은 높고, 환경오염도 낮췄다고 하지만……. 그래도 열병합발전소 역시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할 것 같습니다. 7천억 원은 초기 공사 비용이고, 유지 보수와 인건비, 환경오염 분담금 등 춘천시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 같군요.”
“정확해요. 역시 계속 공부를 했으면 날 위협하는 교수가 됐을 텐데.”
김도현 교수가 농담을 던졌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드디어 결론을 꺼냈다.
“춘천에 짓는다는 열병합발전소는 연간 4,117GWh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해요.”
기가와트아워(GWh)는 전력을 측정하는 단위다.
현재 춘천시의 연간 전력 소모량이 1,615GWh다.
결국 신축 발전소에서 춘천시 연간 소모 전력의 3배 이상을 생산한다는 뜻이다.
최치우도 4,117GWh가 얼마나 큰 수치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진 김도현 교수의 말은 쉽게 믿기 힘들었다.
“여기 이 소울 스톤에는…… 3,000GWh와 맞먹는 에너지가 내재돼 있어요. 그마저도 우리 연구 장비의 한계로 100% 측정을 못 한 것이지요. 어쩌면 4,117GWh를 넘을지도 몰라요.”
“교수님, 방금 3,000기가와트아워라고 하신 것 맞습니까?”
“맞아요. 농담이 아니에요. 나도 도무지 믿기 힘들었는데 실험을 계속해도 그래프가 증명하고 있지 않겠어요.”
김도현이 손가락으로 연구 장비의 그래프 화면을 가리켰다.
120억 짜리 기계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약간의 오차는 있겠지만, 대략적인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최치우는 팔뚝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는 정령, 특히 샐러맨더 같은 불의 상급 정령이 얼마나 대단하고 파괴적인 존재인지 체험해 본 유일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현대의 에너지 수치와 비교해 보니 사뭇 충격적이었다.
아슬란 대륙이나 다른 차원에서 정령, 마법, 몬스터, 무공 등 초현실적 존재와 힘은 거의 사람을 죽이기 위해 쓰여 졌다.
따라서 정량적인 수치보다는 살상력(殺傷力)이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능력치를 판단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다르다.
어떤 차원보다 복잡하면서 체계적이고, 정량적인 수치를 좋아하는 곳이 바로 현대의 지구였다.
전력 단위로 소울 스톤의 힘을 비교하니 느낌이 남다르게 팍 꽂혔다.
“치우 군, 3,000GWh면 춘천시 연간 전력 소모량의 두 배 가까운 수치예요.”
“정령석, 그러니까 이 소울 스톤 하나로 그만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니…….”
“우선 그 정도의 에너지가 소울 스톤 내부에 응축돼 있는 걸 확인했지만, 어떻게 활용할지 계속 연구와 실험이 필요해요.”
김도현이 말한 문제가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핵심 미션이었다.
소울 스톤이 상상하기 힘든 에너지를 품고 있는 원석임은 확인했다.
그 자체로도 소울 스톤의 가치는 돈으로 따지기 힘들다.
문제는 소울 스톤의 에너지를 뽑아내 전력 같은 실제 에너지로 개발하는 과정이다.
최치우는 바로 그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 천문학적 투자를 결심한 것이었다.
“또 하나, 이것이 소모성 에너지인지 유지가 되는 에너지인지 확인해야겠지요.”
“소모성이라면 3,000GWh를 발산한 다음 평범한 돌이 될 것이고, 유지가 된다면 지속적으로 연간 3,000GWh를 생산할 수 있겠군요.”
“맞아요. 후자의 경우 소울 스톤의 가치는 정부가 춘천에 건설할 열병합발전소 이상이 되겠지요. 이 붉은 보석 하나로 발전소를 짓지 않고 대도시의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이에요.”
김도현 교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의 실험을 했지만, 세계를 바꿀지 모르는 희대의 발견 앞에서 계속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건 뭐든 지원하겠습니다, 교수님. 이 프로젝트에 올림푸스의 미래가, 아니 인류의 미래가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