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98화 (98/243)

# 98

<역사의 흐름>

“캘리포니아 북부의 화재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소방청은 소노마 카운티와 나파 밸리 일대를 불태운 화재의 범위가 줄어들었다고 발표했습니다. 화재 발생 이후 범위 축소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에도 드디어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NBC 뉴스의 앵커가 오랜만에 환한 얼굴로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지난 밤 이후 캘리포니아 화재의 기세가 한층 수그러들었다는 것이다.

뉴스 화면에서는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벌써 열흘이 다 되도록 목숨을 걸고 화재와 싸우는 소방관은 진정 이 세계의 영웅들이다.

최치우는 그들에게 남몰래 도움을 줬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더 크게 번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에서 TV를 쳐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틀 전 최치우는 역사상 최악의 화재를 만든 주범인 샐러맨더를 소멸시켰다.

화재의 위력을 증폭시키던 주범이 사라졌으니 이제 불길을 잡을 일만 남았다.

이미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수천억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치우가 아니었으면 화재는 더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렸을 것이다.

정령석을 얻기 위해 나선 길이지만, 결과적으로 무척 뿌듯한 일을 해냈다.

물론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다.

상급 불의 정령과 목숨 건 사투를 펼치고, 결국 소멸시키는 데 성공해서 캘리포니아 화재가 약해졌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S대의 김도현 교수라면 믿어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있는 법이다.

최치우는 TV를 통해 화재가 약해졌다는 소식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신의 대리자 아바타는 환생을 거듭하던 최치우에게 특별한 미션을 부여했다.

세상을 구하는 기쁨을 깨달으라는 것이었다.

무척 애매모호한 미션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조금씩 그 기쁨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었다.

특별히 대단한 사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저 자신의 꿈과 야망,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

다만 그 길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짓밟느냐, 아니면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만드느냐의 차이다.

전자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폭군이 된다.

반면 후자는 자신의 인생에 충실하면서도 세상을 이끈 영웅으로 추앙을 받는다.

최치우는 역사에 기록될 영웅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단순히 아바타의 미션 때문만은 아니다.

7번의 환생을 거쳐 도달한 이번 삶이 그를 자연스레 영웅의 길로 이끌었다.

어렵게 얻은 정령석도 최치우가 영웅의 길을 개척하는 데 쓰일 것이다.

그는 정령석을 바탕으로 차원이 다른 대체에너지 개발을 연구할 작정이었다.

당연히 에릭 한센과 네오메이슨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고, 올림푸스는 세계 최고의 기업 반열에 오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석유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 같았다.

최치우는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 일을 서두르고 싶었다.

정령석, 소울 스톤의 가치는 미쓰릴과도 비교하기 힘들다.

오히려 아슬란 대륙보다 현대에서 더욱 귀하게 쓰일 수 있다.

아슬란 대륙에서는 소울 스톤으로 마법적 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소울 스톤의 엄청난 자연 에너지를 이용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창출해 낼 수 있다.

마법과 무공이 사라진 세계지만, 대신 다양한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투 문명으로 따지면 로봇 대전이 일어났던 차원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 문명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영역을 커버하고 있다.

최치우는 휴학 상태이지만, 에너지자원공학을 전공했다.

게다가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인 김도현 교수와 한배를 탔다.

소울 스톤이라는 재료로 어떤 요리를 만들 수 있을지, 그가 제시하는 비전은 결코 망상이 아니었다.

현실적인 연구 성과에 기반을 둔 목표다.

꿈의 씨앗을 품고 한국으로 가는 길, 최치우는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탔다.

이전과는 아예 다른 레벨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

최치우는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소집 대상자는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 그리고 백승수가 전부였다.

이시환이 남아공에 나가 있지 않았다면 그도 불렀을 것이다.

쉽게 말해 최치우가 100% 믿을 수 있는 최측근만 소집한 비상 회의였다.

백승수는 처음으로 비상 회의에 불려 나왔다.

이제까진 최치우와 김도현 교수, 임동혁이 3인 회의로 중대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일까.

회의에 참여하게 된 백승수의 얼굴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드디어 자신도 올림푸스의 최고 핵심 멤버로 인정받았다는 걸 느낀 것이다.

공식적인 직급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올림푸스에는 팀장인 백승수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고위직도 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스카웃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급과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최치우의 신뢰를 받느냐이다.

단순히 직원으로서 높은 대우를 받는 것과 측근으로서 믿음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백승수는 사적으로 최치우의 대학 선배이자 미래 에너지 탐사대 F.E의 선배였다.

그러나 오히려 선배라는 사실이 걸림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최치우는 전설을 쓰고 있는 올림푸스의 알파와 오메가다.

그의 신뢰를 받을 수만 있다면 대학 선배라는 사적인 관계는 잊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오늘부로 백승수는 큰 걱정을 하나 덜었다.

비상 회의에 소집됐다는 건 최측근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백승수는 무슨 일이 주어지든 목숨 걸고 해내겠다는 각오를 불태우고 있었다.

“교수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가장 먼저 비상 회의 장소에 도착해 있던 백승수는 김도현 교수가 들어오자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백승수가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김도현이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 때문이 아니다.

석사 과정 지도교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백승수는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올림푸스를 선택한 사람이다. 그러니, 미안함을 느끼는 것도 충분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큼 대학원생과 지도교수는 독특하게 엮인 특수 관계다.

“잘 지내고 있었지요? 치우 군을 통해 이야기 종종 들었어요.”

하지만 백승수의 염려는 기우였다.

김도현 교수는 자상하게 웃으며 백승수의 등을 두드려 줬다.

원래 최치우는 백승수와 이시환을 스카웃하기 전부터 김도현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백승수가 생각 이상으로 최치우와 김도현 교수의 유대 관계는 끈끈하고 각별하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래요. 올림푸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우리 학교와 과를 빛내는 길이란 걸 잊지 말아요.”

김도현 교수의 격려를 받은 백승수는 감격스러운 듯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뭡니까, 이 분위기는. 무슨 신파 드라마라도 찍고 있는 겁니까?”

그때 마침 임동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시니컬한 얼굴로 김도현 교수와 백승수를 쳐다봤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임동혁이 고분고분해지는 건 오직 최치우가 있을 때뿐이다.

그 외의 경우 임동혁은 여전히 재계 최악의 망나니로 악명이 높았다.

물론 예전과 달리 유능한 망나니로 재평가를 받았지만 말이다.

“먼저들 와 있었군요.”

곧바로 최치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덕분에 임동혁은 조용해졌다.

최치우는 모여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이사님, 그리고 백 팀장님. 오늘 급히 회의를 소집한 건 미국 출장의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눈치였다.

최치우는 이미 공식적인 출장 보고를 마쳤다.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 과정을 체크한 게 이번 미국 출장의 주요 업무였다.

공식적으로 밝힐 수 있는 부분은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최치우가 단순한 기술 제휴 체크를 위해 미국까지 날아갔을 리 없다.

그는 열흘 가까이 미국에서 머물렀다.

꽤 오랜 시간이었다.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 백승수는 최치우가 발표할 비공식적 성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먼저 펜타곤, 그들이 엄청난 물건을 개발했더군요.”

최치우는 담담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쉽게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군사 기밀이었다.

“이처럼 우리 헤라클래스가 남아공에서 실전 테스트하게 될 미쓰릴 필드는…… 현대 전쟁의 역사를 바꿀 겁니다.”

최치우는 미쓰릴 필드의 성능에 대해 설명을 마쳤다.

펜타곤과 어떤 식으로 협상을 했는지도 알려줬다.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임동혁과 백승수는 물론이고, 어지간해선 평정을 유지하는 김도현 교수도 동공이 커졌다.

“펜타곤의 기술력은 정말…….”

“무시무시하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최치우는 김도현 교수의 말을 이어받았다.

과장을 보태지 않은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역시 펜타곤이 미쓰릴로 이런 연구 성과를 낼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었다.

괜히 미국의 군사력을 세계 최강이라 하는 게 아니었다.

펜타곤은 압도적인 국방비 예산을 바탕으로 언제나 최신 무기를 개발해 낸다.

최치우와 올림푸스는 그러한 펜타곤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최신 프로젝트의 파트너다.

미쓰릴 필드를 선뜻 건네받을 정도이니 동맹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세 사람도 그 점에 있어서 더욱 놀란 것이다.

미쓰릴 필드라는 신무기의 개발도 놀랍지만, 펜타곤이 헤라클래스를 통해 실전 테스트를 시도하는 게 더 놀라웠다.

그만큼 펜타곤은 최치우라는 인물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극비 기밀을 최치우와 공유하며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리 없다.

스윽-

그때 최치우가 정령석을 꺼냈다.

오묘한 붉은 빛을 머금은 구슬을 세 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건… 무엇입니까?”

임동혁은 눈길을 정령석에 고정시킨 채 질문을 던졌다.

그는 방금 전까지 펜타곤의 미쓰릴 필드 개발 소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령석을 보자마자 정신을 빼앗긴 것이다.

상급 정령의 기운이 고스란히 담긴 정령석은 예사 물건이 아니다.

임동혁처럼 홀리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소울 스톤, 또는 정령석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소울 스톤…….”

임동혁이 정령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최치우가 그를 제지했다.

“만지면 위험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표님은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있는데.”

“제가 장담합니다. 만지면 위험해집니다.”

최치우가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그 위세에 임동혁도 정신을 차렸다.

그가 아는 최치우는 절대로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령석은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담고 있다.

최치우는 기진맥진 했을 때 정령석에서 기운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정령석을 함부로 만지면 넘치는 에너지에 휩쓸리기 쉽다.

불의 정령석을 잘못 만지면 화상을 입거나 열병에 걸릴 수 있다.

잘못하면 목숨까지 잃게 된다.

임동혁과 김도현, 백승수는 눈으로만 붉은 구슬을 감상했다.

최치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본론을 꺼냈다.

“미국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 바로 이것, 소울 스톤입니다.”

“펜타곤의 신무기, 미쓰릴 필드보다 더 귀한 것이라는 말이지요?”

“네, 교수님. 소울 스톤을 이용한 대체에너지 개발에 올림푸스의 미래를 걸어보려 합니다.”

최치우는 오늘 연달아 세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역사를 바꿀 진짜 게임이 시작됐다.

“아무래도 오늘 모임이 길어지겠네요.”

김도현 교수가 무테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최치우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입을 열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훗날 역사의 전환점이라 평가받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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