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96화 (96/243)

# 96

<샐러맨더(Salamander)>

최치우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 대륙을 좌우로 가로질렀다.

동부의 뉴욕에서 서부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까지 비행기로 6시간이 걸린다.

같은 미국이지만 시차도 2시간이나 난다.

서울에서 인도의 수도 뉴델리까지 날아가는 데 6시간이 걸리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다른 나라로 이동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동부와 서부는 문화가 다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연방 국가 소속이지만, 캘리포니아 사람과 뉴욕 사람들은 사고방식부터 상극에 가깝다.

따뜻한 기후의 영향 때문인지 서부 사람들은 보다 쾌활하고 낙천적이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부터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캘리포니아 북부를 집어삼키고 있는 화재의 영향인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마을이 흔적도 없이 불타 버렸다.

이토록 강한 화재가 연이어 발생하면 대도시 샌프란시스코도 안전하리란 보장이 없다.

밝고 명랑한 서부 사람들도 걱정을 하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이번 화재는 나파 밸리 등 캘리포니아의 주요 와인 생산지를 폐허로 만들었다.

와인 산업의 비중이 높은 지역 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운 것이다.

‘심각하군.’

뉴스에서 보는 것과 피부로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최치우는 화재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체감했다.

실제로 현장에 가면 더욱 놀라울 것이다.

수만 명이 살아가는 작은 도시가 불에 타 재로 변했고, 지금도 수천 명의 소방대원이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일반인은 불길이 번지는 캘리포니아 북부로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이미 인근 지역에는 강제 대피령이 내려진 지 오래다.

물론 굳이 통제를 하지 않아도 제 발로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사람을 찾긴 힘들다.

‘경계망이 삼엄하진 않을 거야. 다들 불길을 잡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을 테니……. 소방관들을 제외하면 보는 눈도 없을 게 분명해. 어쩌면 다행인가.’

최치우는 생각을 정리하며 공항에서 렌트카를 인수받았다.

렌트카 업체에서 알면 기절하겠지만, 이 차를 타고 화재의 중심지로 달려갈 것이다.

그래서 최치우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가장 튼튼한 SUV를 빌렸다.

부우웅-

시동을 건 최치우는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았다.

밤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지만, 시내로 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룻밤 사이 불길이 어디로 어떻게 번질지 모른다.

게다가 어둠이 드리운 심야 시간에는 소방관들도 활동을 멈출 것이다.

화재 중심지로 들어가기 위해선 마법이나 무공을 펼칠 수밖에 없고, 보는 눈이 적어야 된다.

당연히 밤이 제격이다.

조금 피곤해도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현장에 도착해서 간단히 운기조식이라도 해야겠다.’

최치우가 초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내공 덕분이다.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을 일주천시키면 푹 자고 일어난 듯 새 힘이 충만해진다.

불길 근처에 도착해서 짧게라도 운기조식을 하면 피로가 말끔해질 것이다.

부와아앙-

금방 고속도로에 들어선 최치우는 힘차게 엑셀을 밟았다.

그는 정령석, 소울 스톤이라는 비밀스러운 기회를 찾기 위해 위기로 뛰어들고 있었다.

무모해 보이는 도박 끝에 최치우가 무엇을 붙잡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캄캄한 캘리포니아의 밤하늘에는 달도 뜨지 않았다.

그 어둠을 뚫고, 도전을 즐기는 최치우가 달려간다.

***

멀리서도 불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히는 불꽃은 파도처럼 산과 들을 잡아먹었다.

단순한 화재를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역사상 최악의 화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일주일 넘게 꺼지지 않고 남쪽으로 이어진 불길은 이미 서울 여의도 몇 배의 면적을 태워먹었다.

눈으로는 불길의 범위를 다 담아낼 수도 없다.

소방용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야 겨우 화재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최치우는 먼 산 너머 일렁거리는 불꽃이 보일 때쯤, 차를 갓길에 세웠다.

은밀하고 신속한 움직임을 위해서는 맨몸이 편하다.

튼튼한 SUV의 1차 역할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 자리에서 무사히 열기를 버텨주고, 최치우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데 쓸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꽤 거리를 뒀지만, 하룻밤이면 불길이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차를 세워둔 지역도 잿더미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지.”

최치우는 어둠까지 집어삼키고 있는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그가 최악의 화재를 막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날아온 것은 아니다.

최치우의 목적은 자연재해 현장에 있을 확률이 높은 정령이다.

게다가 이만한 규모의 화재라면 불의 정령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치우는 정령의 존재를 확인하면 전력을 다해 소멸시킬 것이다.

강제로 소멸을 시켜야만 정령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령이 개입하여 화재가 커졌다면, 정령의 소멸로 불의 기운도 약해지게 될 터.

캘리포니아의 소방관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 될 게 분명했다.

목적이 달라도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다.

“제발 있어줘라, 정령아. 그래야만 나도 정령석을 얻고, 소방관들도 불길을 잡을 수 있다……. 너만 있으면 일석이조다.”

최치우는 아직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정령을 향해 혼잣말을 읊조렸다.

차에서 나온 그는 괜히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임시방편이지만 똑바로 서서 짧은 운기조식을 마쳤다.

가부좌를 틀고 정식으로 운기조식을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피로가 풀리고 몸에 활기가 돌았다.

준비를 마친 최치우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땅을 박찼다.

파악-!

마른하늘에 번개가 치면 이렇게 빠를까.

전력으로 경공술을 펼치는 최치우의 속도는 눈으로 좇기 힘들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그는 마음껏 한계를 넘어 초인의 능력을 발휘한다.

쉬이이익-

스쳐가는 바람도 최치우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순식간에 작은 산 하나를 넘어버린 최치우는 열기가 점점 강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지금 불꽃이 일렁거리는 화재 현장을 향해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바람을 타고 코끝에서 맡아지는 매캐한 냄새도 진해졌다.

아름다운 자연, 사람들이 가꾼 마을, 그리고 누군가의 몸이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만들어진 냄새다.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간 화재의 냄새는 최치우를 불쾌하게 했다.

그럴수록 최치우의 두 다리는 단전에서 내려온 내공을 힘차게 뿌렸다.

팍! 파파팍!

없는 길을 만들며 산등성이와 들판을 달려가는 최치우는 한 마리 야수 같았다.

빠른 몸놀림으로 먹잇감을 사냥하는 치타나 재규어를 연상시켰다.

바람을 역행하며 질주하는 그의 모습을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거의 다 왔다!’

한참 전 통제구역을 넘어선 최치우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현장에 들어섰다.

현장이란 화재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위험지역을 뜻한다.

피부로 느껴지는 열기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예상은 했지만, 장난이 아니군.”

멈춰 선 최치우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불꽃이 춤추는 걸 바라봤다.

말 그대로 엄청난 규모였다.

반대쪽 불길의 끝이 어디쯤일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남서부 어디까지 불이 타오르고 있을지…….”

화재는 최치우가 도착한 쪽 반대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력과 소방 장비도 남서부로 모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의 불길이 결코 약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불이 번지는 방향의 문제일 뿐, 강도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최치우가 이곳을 택한 건 소방 인력이 적게 배치됐기 때문이다.

남서부에서는 소방관의 눈을 피하는 것도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여기선 비교적 자유롭게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

어차피 화재의 중심에 정령이 있다면 불러낼 방법은 따로 존재한다.

“이 고생을 하는데 정령이 없으면……. 아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자.”

최치우는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동시에 경공술을 펼치고 남은 내공을 전신 혈도로 퍼트렸다.

기경팔맥과 임동양맥을 타고 막강한 기운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채워졌다.

100% 전력을 다해 내공을 끌어 올린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덕분에 최치우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함을 느꼈다.

용기백배해졌지만, 이대로 불구덩이에 빠지긴 이르다.

용기만 가지고 화마와 맨몸으로 맞설 수는 없다.

무공이 몸을 강하게 만들어줬다면, 마법으로 자연의 권능 또한 빌려야 한다.

그래도 안전을 장담하기 힘들 만큼 뜨거운 불길은 거세고 포악했다.

슈우우우우우-

잠시 눈을 감은 최치우는 마나의 흐름을 감지했다.

마나는 대자연이 허락한 축복이다.

화염으로 뒤덮인 캘리포니아 북부에서도 마나의 축복을 받아 대자연의 권능을 빌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주저할 이유는 없다.

마나와 공명을 마친 최치우는 다시 눈을 떴다.

전신을 가득 채운 내공은 여전하고, 다양한 마법을 캐스팅할 준비도 마쳤다.

“간다!”

기합을 넣은 최치우가 몸을 날렸다.

그는 말 그대로 불구덩이를 향해 직진하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특수 장비를 착용하고도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는 불길이다.

보통 사람이 맨몸으로 뛰어들면 불에 타기 전에 가스 중독으로 기절한다.

운 좋게 가스 중독을 피해도 불길에 휩싸이는 순간 뼈까지 까맣게 탈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예외였다.

그는 먼저 매캐한 가스를 밀어내고, 불구덩이 사이에 틈을 만들려 했다.

“윈드 스피어(Wind spear)!”

5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이 위력을 발휘했다.

캐스팅이 끝나자마자 최치우 앞에서 거센 바람이 응축돼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쐐애애액- 퍼엉!

화살처럼 날아간 바람의 창은 유독가스를 날려 버렸다.

뿐만 아니라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불길 사이로 공간이 생겼다.

최치우는 바람의 창이 만들어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불구덩이 안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자살행위나 다름없지만, 그는 순순히 불에 타는 대신 또 다른 마법을 펼쳤다.

“프로즌(Frozen)-!”

6서클의 마법이 이적을 일으켰다.

불길이 날뛰는 한복판에서 대자연의 권능이 발현됐다.

최치우의 사방이 새하얗게 얼어붙은 것이다.

뜨거운 화염에도 녹지 않는 얼음 결계가 최치우를 보호했다.

프로즌은 미니 퀘이크와 더불어 지금의 최치우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이다.

8서클 마법인 블리자드의 하위 주문이지만,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물질 법칙을 뛰어넘는 결빙(結氷) 현상은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나와라, 불의 정령!’

최치우는 일렁이는 불길 안에서 프로즌을 펼친 채 정령을 찾았다.

자연재해나 극한의 환경에서 정령을 불러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령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면 된다.

불의 정령은 당연히 정반대 속성인 얼음의 마나를 싫어한다.

최치우는 화재 현장에서 프로즌으로 얼음 결계를 만들어 잠시나마 자연재해를 극복하고 있다.

불의 정령이 화재에 개입했다면 프로즌이 펼쳐진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정령과 상관없는 화재라면 시간 낭비인 셈이다.

‘앞으로 5분 정도는 버틸 수 있어.’

최치우는 이를 악 물고 마법을 유지했다.

6서클 마법 프로즌도 영원할 수는 없다.

이토록 강력한 불길 속에서는 5분이 한계다.

후우우우욱-!

그때였다.

최치우는 얼음 결계를 두드리는 불꽃이 갑자기 미친 듯 활활 타오르는 걸 느꼈다.

절대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 현상이다.

‘왔다!’

최치우는 고개를 돌려 범인을 찾아냈다.

주홍빛 화염의 정기로 이루어진 커다란 도마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최치우는 도마뱀과 눈을 맞추며 다른 차원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샐러맨더(Salamander).

아슬란 대륙에서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상급 불의 정령을 현대에서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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