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기회의 땅>
펜타곤에서 얻은 수확은 최치우의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미쓰릴 필드의 제작 단가는 대략 100만 달러, 우리 돈 12억 원 정도라고 한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 한 발에 수천억 원이 드는 걸 생각하면 저렴하지만, 사실 12억도 엄청나게 큰 금액이다.
더구나 자체 살상력이 없고, 불량률도 높은 시험 무기다.
이제 막 테스트 샘플이 나왔기에 많이 생산할 수도 없다.
펜타곤은 미쓰릴의 성분과 초음파 반응을 유도해 획기적인 발명을 했지만, 아쉽게도 미쓰릴 자체를 복제하진 못했다.
사실 최치우는 처음부터 그들이 미쓰릴을 복제할 거라 바라지도 않았다.
마나가 아니면 다스릴 수 없는 절대 금속을 무슨 수로 창조한단 말인가.
마나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현대의 지구인들이 과학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렇게 초음파를 이용해 미쓰릴 필드를 개발한 것만 해도 놀랍기 그지없는 성과였다.
어쨌거나 공식적인 기술 제휴 담당인 최치우는 미쓰릴 필드 두 개를 얻었다.
200만 달러짜리 극비 신무기를 선물받은 셈이다.
뿐만 아니라 펜타곤은 아프리카의 사설 무장 단체인 헤라클래스를 통해 미쓰릴 필드를 실전에서 테스트하기로 했다.
무려 10개의 미쓰릴 필드가 헤라클래스에게 지급될 것이다.
남아공 광산 지대에서 실전이 벌어지면 헤라클래스는 공급받은 미쓰릴 필드를 사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내용을 펜타곤에 보고하기로 했다.
잭 앤더슨은 현재 미쓰릴 필드의 오작동 확률이 50% 정도라고 밝혔다.
최치우가 받은 2개 중 1개, 그리고 헤라클래스에게 주어질 10개 중 5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거래를 성공시켰어.’
펜타곤에서 나온 최치우는 흐뭇함을 느꼈다.
값어치로 따지면 12개의 미쓰릴 필드는 1,200만 달러다.
그러나 중요한 건 테스트용으로 제공받은 미쓰릴 필드의 가격이 아니다.
최치우와 헤라클래스가 펜타곤이 개발한 신무기를 세상에서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로서 올림푸스와 펜타곤은 더욱 깊은 파트너십을 맺게 됐다.
말뿐인 기술 제휴가 아니었다.
최치우는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무력 집단을 보다 확실한 아군으로 만든 셈이다.
물론 펜타곤 내부의 정치도 복잡하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 최치우와의 협력을 싫어하는 무리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미쓰릴과 관련해선 최치우가 주도권을 갖고 있고, 루이스 고어 국방부 장관 역시 그의 손을 들어줬다.
‘미쓰릴 필드만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으면… 난 이 세계에서 무적이다.’
최치우는 품에 넣은 두 개의 초소형 충격파 장치인 미쓰릴 필드를 조심스레 만졌다.
미쓰릴 필드가 발동되면 지속 범위 안에서는 철저하게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
무공과 마법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지닌 최치우를 대적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미군 부대 한복판에 침입해도 미쓰릴 필드를 터트리면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
현대 무기를 쓸 수 없는 군인들은 아무리 많아봐야 최치우의 상대가 못 된다.
펜타곤은 최치우에게 엄청난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정작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미쓰릴 필드의 효과를 가장 톡톡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최치우라는 사실을 말이다.
펜타곤은 최치우와 올림푸스, 그리고 헤라클래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비밀을 감안하면 최치우가 펜타곤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쓰릴 필드를 손에 넣은 최치우는 가벼운 마음으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이제는 에릭 한센의 빈틈을 찌르고, 네오메이슨의 실체를 불러낼 시간이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미국에 온 만큼, 최치우는 그냥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
2008년을 휩쓸고 지나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상위 1%를 불신하고 있다.
물론 모두 부자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은 여전히 엄청난 존경을 받는다.
그들에게 열광하는 팬덤이 락스타 못지않을 정도다.
하지만 차갑고 냉정한 뉴욕의 월스트릿, 월가의 금융인들은 대중의 분노를 사기 쉽다.
실리콘밸리의 CEO처럼 혁신적인 창조물을 만들지 않으면서 숫자놀음으로 막대한 돈을 번다는 오해를 받기 때문이다.
깊게 따지고 들어가면 금융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지만, 대중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델피 한센의 탈세와 횡령으로 촉발 된 뉴스는 최치우의 생각보다 더 오래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번 불이 붙은 여론은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특히 델피 한센은 평소 화려한 생활을 즐기며 셀렙들과 어울렸다.
패션업계의 대표이자 엄청난 금융 재벌의 여동생이기에 사치가 일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코너에 몰리자 그녀의 사생활도 대중들의 먹잇감이 됐다.
“위기의 한센 가문이라, 그동안 어떤 신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뉴스가 등장하는군.”
뉴욕에 도착한 최치우는 신문을 읽으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릭 한센은 금융인이지만 열광적인 팬덤을 가진 독특한 인물이다.
전기차 기업 등을 인수하며 혁신적인 이미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철저히 주식을 부풀리기 위해 전기차 기업을 인수했을 뿐, 기술 혁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어쨌거나 에릭의 만들어진 이미지 자체는 월가의 탐욕스런 금융인들과 달랐다.
그런데 델피 한센의 사건으로 에릭도 흙탕물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대중에게 한번 비호감으로 낙인이 찍히면 회복하기 힘들다.
그깟 이미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 오너의 이미지는 수백억, 수천억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앞으로 한센 가문이 M&A를 추진할 때마다 부정적 여론이 형성 될 것이다.
당장 잃는 돈은 없어도 장기적으로 엄청난 타격이다.
최치우는 에릭 한센의 아픈 손가락을 확실히 찾아내 끊어낸 것 같았다.
“커피나 한잔해야겠어.”
신문을 접은 최치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뉴욕 맨해튼의 중심부 타임스퀘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머물고 있다.
하룻밤 숙박비가 2천만 원 정도지만, 최치우에게 그런 돈은 크게 의미가 없다.
주식 보유를 합한 그의 개인 자산이 1조 5천억 원가량이다.
올림푸스 주식이 폭락하지 않는 이상, 가만히 숨만 쉬어도 세계적인 부자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원한다면 서울 한복판에 특급 호텔을 직접 지어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치열하게 보내는 것은 최치우의 목표가 겨우 잘 먹고 잘 살기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차원에서건 정점에 서는 것.
특별히 이번 차원에서는 아바타의 미션대로 세상을 구하는 기쁨을 느끼며 최고의 인간으로 역사에 남는 것.
목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최치우의 삶도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창문 너머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아마 에릭은 여동생 델피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뉴욕에 있을 것이다.
<커피 한잔합시다.>
최치우는 사족을 붙이지 않고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이미 UN 기업가 포럼에서 네오메이슨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네오메이슨의 존재를 알고, 그들에게 대항할 의지를 보였다는 것 자체로 에릭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그런 최치우가 아무 이유 없이 커피 타임을 원한다는 건 넌센스다.
그것도 델피 한센이 탈세 스캔들에 휘말려 구속 수사를 받게 된 민감한 시기에 말이다.
에릭은 분명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최치우는 여유롭게 에릭의 답장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 급하고 초조한 쪽은 최치우가 아닌 에릭 한센이다.
“일단 좀 씻을까.”
폰을 탁자 위에 올려둔 최치우는 욕실로 걸어갔다.
에릭의 일이 아니더라도 뉴욕에선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여의도 증권가에 찌라시가 도는 것처럼 세계 최고의 증권가인 월가 금융인들도 그들만의 찌라시를 돌려 본다.
거기서 어떤 정보와 영감을 얻게 될지 모른다.
아무튼 오늘도 최치우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갈 것 같았다.
***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에릭의 답장이 와 있었다.
에릭 역시 무미건조하게 본론만 보냈다.
<맨해튼 S 호텔, 프라이빗 VIP 라운지. 오후 5시.>
공교롭게도 맨해튼 S 호텔은 최치우가 묵고 있는 곳이다.
S 호텔 스위트룸에 투숙하거나 최상위 멤버십 회원이면 프라이빗 VIP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최치우는 굳이 멀리 움직일 필요 없이 호텔 안에서 에릭을 만나게 됐다.
“5시면 시간이 널널하니… 준비를 좀 해야겠어.”
지금이 오전 10시.
에릭을 만나기 전까지 7시간 정도가 남았다.
7시간이면 무수히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최치우는 최근 어나니머스와 연속적으로 거래를 하며 재미를 봤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에게 정보를 의존할 수는 없었다.
뉴욕에는 또 다른 정보상들이 암약하고 있다.
어나니머스 같은 천재 해커들은 디지털에 저장된 정보를 빼내는 데 귀신이다.
그러나 저장되지 않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정보만 파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보다 고전적 의미의 산업 스파이들이 월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최치우는 그들과 접촉해 월가의 찌라시부터 고급 정보까지 모조리 사들일 계획이었다.
당연히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
아주 작은 단서라도 최치우에게 영감을 준다면 올림푸스의 신사업 분야가 뒤바뀔 수 있다.
어쩌면 에릭 한센을 곤경에 빠트려 네오메이슨의 실체를 드러내게 만들 결정적 정보가 월가 구석에 처박혀 있을지 모른다.
최치우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닥치는 대로 정보를 빨아들일 것이다.
옷을 챙겨 입는 최치우의 눈이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
뉴욕의 시간은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서울이 아무리 바쁜 도시로 유명하지만, 콘크리트 정글의 원조인 뉴욕과 비교할 수는 없다.
최치우는 맨해튼의 산업 스파이들을 만나 거래를 하고, 요즘 월가에서 주목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트렌드를 파악했다.
또한 한센 가문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던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소스를 얻을 수 있었다.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금방 약속 시간이 됐다.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호텔로 돌아온 최치우는 곧장 프라이빗 VIP 라운지로 향했다.
아무에게나 개방된 공간이 아니기에 신분 확인 절차가 필요했지만, 최치우에겐 무의미한 일이었다.
S 호텔의 스위트룸에 머물고 있기도 했고, 뉴욕에서도 최치우의 얼굴이 곧 명함으로 통용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세계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치우의 얼굴과 이름을 알 수밖에 없다.
“모실 수 있어 영광입니다.”
수준 높은 집사 교육을 받은 S 호텔의 VIP 전담 직원이 최치우를 안내했다.
에릭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넓고 안락한, 그러나 개별 공간이 외부와 차단된 라운지 소파에서 에릭과 마주 앉으니 기분이 묘했다.
“뉴욕에 자주 오는 모양입니다, 치우 최.”
“여동생 때문에 바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와줘서 고맙군.”
최치우는 UN의 기업가 포럼에서 선전포고를 한 뒤 에릭에게 편한 말투를 사용했다.
그가 델피 이야기를 꺼내자 에릭이 눈을 부라렸다.
“고작 남의 가정사를 놀리려고 연락한 겁니까? 그렇다면 매우 실망인데요.”
“아니,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최치우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에릭은 분명 그답지 않게 흥분하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구속 수사를 받게 되어 신경이 곤두선 게 분명하다.
이렇게 빈틈을 보일 때가 기회다.
“얼마 전 올림푸스가 개발하고 있는 남아공 광산이 습격을 받았어. 그런데 반군들이 구하기 힘든 최신 무기를 사용하더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뭐가 어떻다는 말인지 모르겠군요. 그런 사소한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못 느낍니다.”
“레드 엑스에 무기와 자금을 공급하는 대신 우리를 공격하라 지시한 배후 세력. 너와 네오메이슨이 아니라고?”
“함부로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네오메이슨은 대전차포 같은 장난감 따위로 시험을 하지 않습니다.”
에릭이 대답을 마친 순간, 최치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먹이를 앞둔 맹수처럼 눈동자를 날카롭게 치떴다.
“잠깐. 레드 엑스가 대전차포를 쓴 건 어떻게 알았지?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그, 그건…….”
에릭이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더 이상의 확실한 증거는 필요 없다.
평소의 냉철한 에릭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다.
하지만 그는 여동생의 스캔들로 흥분해 있었고, 최치우는 약간의 빈틈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설명 안 해도 괜찮아. 네오메이슨이 나선 건 아니고, 에릭 당신이 개인적으로 우리를 시험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보답을 해야겠지? 델피 한센의 탈세 스캔들, 내가 만든 작품이야.”
쿵!
“치우 최!”
에릭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의 새하얀 얼굴 위로 푸른 핏줄이 드러나고 있었다.
최치우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시작이니까 기대해도 좋아. 뒤에 숨어 있는 네오메이슨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