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93화 (93/243)

# 93

***

최치우는 복수에만 전념하지 않았다.

사실 복수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애매했다.

아직 본격적인 난타전은 시작도 안 했기 때문이다.

네오메이슨의 실체를 완벽히 파악한 다음에야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 에릭 한센과 공격을 주고받는 건 전면전까지 가는 과정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올림푸스를 더욱 강하고 튼튼하게 키워야 한다.

올림푸스는 미쓰릴 발굴과 프로메테우스 개발이라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급부상했다.

순식간에 뉴욕 증시에서 30억 달러, 우리 돈 3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글로벌 기업이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최치우는 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 올렸고, 남아공의 광산 20개를 양도받았다.

첫 번째 광산은 이미 채굴에 들어갔고, 두 번째 광산도 준비를 끝냈다.

머지않아 아프리카 남단, 남아공의 광산 지대에서 막대한 현금이 쏟아질 것이다.

백금, 구리, 아연, 철광 등 남아공에 묻힌 천연자원들은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남아공 정부는 당장 광산을 개발할 여력이 부족해도 아무 회사에게나 권리를 양도하지 않는다.

최치우는 난민수용소 지원과 전 세계 모든 거물들이 원하는 해독제 P-1을 선물로 주고 개발권을 따낸 것이다.

당연히 남아공 정부와 수익을 나눠야 하지만, 이제까지 만져보지 못한 돈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쏟아질 현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해야 한다.

단순히 회사 계좌에 돈을 쌓아두고 배당이나 늘리는 건 최치우 스타일이 아니다.

수익의 절반 정도는 3차, 4차 광산 개발 사업과 헤라클래스 육성에 투자되겠지만, 나머지 돈으로 무엇을 할지 선택은 온전히 최치우의 몫이었다.

“슬슬 또 한 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해줄 타이밍이 됐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최치우는 팀장들이 모인 회의에서 입을 열었다.

회의실 원탁에 앉은 팀장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의 심정을 이사인 임동혁이 대변했다.

“보통 회사는 단 한 번도 세상을 놀라게 못 하는데… 우린 그걸 1년에 1번 아니면 2번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들의 세계, 올림푸스죠. 평범한 회사랑 똑같이 놀 거면 올림푸스가 아닌 오성그룹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최치우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오성그룹은 대한민국, 아니 아시아 최고의 회사다.

시가총액만 무려 350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딱딱하고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편이다.

최치우는 오성을 마치 옆 동네 구멍가게 이야기하듯 언급하고 있었다.

지금은 시총이 100배 넘게 차이나지만, 어차피 곧 따라잡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우선 곧 미국에 다녀올 겁니다. 펜타곤에 방문해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체크하고, 관련해서 함께 진행할 프로젝트가 있을지 알아보겠습니다. 또 몇 개의 신사업 후보가 있는데… 미국에서 검토해 보죠.”

최치우는 자신의 계획을 팀장들에게 알렸다.

그는 일본 도쿄대에서 가져온 세계의 미스테리 데이터를 소중히 보관 중이다.

리스트에서 미쓰릴 이상의 가치를 지닌 프로젝트를 살펴보고, 가능성이 있으면 과감하게 뛰어들 작정이었다.

“일정은 어떻게 픽스할까요, 대표님?”

최치우의 이야기를 들은 비서팀장이 질문을 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최치우와 임동혁, 그리고 핵심 관계자들의 일정을 관리할 비서들이 필요해졌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비서는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이다.

다행히 한영 그룹의 비서실에서 꼭 필요한 인력을 빼올 수 있었다.

올림푸스가 일방적으로 한영 그룹의 인적 자원을 빌려오는 건 아니다.

대기업 그룹이 커지면 승진이 늦어지고 부서가 비대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올림푸스에서 인력을 흡수해 준다.

서로 필요에 의해 윈윈(win-win)하는 셈이다.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문을 연 비서팀장도 한영 그룹의 회장을 5년 넘게 수행한 경력자다.

30대 후반의 나이, 매서운 눈초리를 가진 그녀는 올림푸스의 안살림을 살뜰하게 챙기고 있다.

“이번 주말에 출국할 건데, 말하는 게 너무 늦었죠? 비행기 티켓이 있으려나 모르겠군요.”

“걱정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대표님. 퍼스트 클래스 티켓은 항상 오픈되어 있어요.”

“그럼 부탁해요. 귀국 일정은 유동적으로. 현지에서 연락할게요.”

“네. 다음 주 대표님의 국내 일정은 전부 양해를 구하고 캔슬하겠습니다.”

“나 때문에 우리 팀장님이 여기저기서 아쉬운 소리 많이 들을 텐데, 잘 부탁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이게 제 일인데요.”

그녀는 비서팀 직원들에게 까랑까랑한 마녀로 불리지만, 최치우 앞에서는 한없이 친절했다.

단순히 회사 대표에게 잘 보이려는 게 아니다.

다들 최치우라는 살아 있는 전설을 존경하기에 나오는 반응이다.

최치우는 올림푸스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자, 그럼 다음은 홍보팀. 내가 펜타곤에 공식 방문하는 거 보도 자료로 만들어서 뿌리면 우리 주식이 좀 오르겠죠?”

“내일까지 국문과 영문 버전 준비해서 대표님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백승수 팀장이 남아공의 이시환 본부장과 매일 커뮤니케이션 책임지는 걸로 하고.”

“넵!”

최치우의 지목을 받은 백승수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이후로도 최치우는 팀장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렸다.

올림푸스는 미지의 신비를 발견하는 회사다.

따라서 최치우가 자리를 비우고 해외나 오지를 돌아다닐 때가 많다.

앞으로도 점점 사무실을 비우는 시간은 늘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팀장들이 직원들을 이끌고 알아서 일을 잘 해줘야 한다.

전쟁으로 치면 최치우는 군주인 동시에 선봉장이다.

그가 내정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앞만 보고 진격해야 올림푸스의 영토가 넓어질 수 있다.

최치우는 마지막으로 임동혁을 불렀다.

“임 이사님, 잘 부탁합니다.”

굳이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매번 구박을 일삼지만, 임동혁은 최치우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됐다.

최치우가 없을 때는 임동혁이 올림푸스의 리더다.

아드레날린 중독자인 그는 종종 미친 짓을 하지만, 올림푸스 일이라면 끔찍하게 챙겼다.

“뭘 또 쑥스럽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임동혁은 팀장들 앞에서 특별히 지목을 받은 게 부끄러운 듯 손을 내저었다.

최치우는 원탁에 둘러앉은 임동혁과 백승수, 다른 팀장들을 바라보며 가슴을 활짝 폈다.

자리를 비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는 미국에서 마음껏 활개 치며 올림푸스의 새로운 비전을 찾아낼 것이다.

더불어 아끼는 여동생을 감옥에 보내게 된 에릭의 동향도 파악할 계획이었다.

최치우의 마음은 이미 뉴욕의 콘크리트 정글을 헤집고 있었다.

***

마음 같아선 뉴욕행 비행기를 먼저 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의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최치우는 워싱턴 D.C로 날아가 펜타곤이 자리 잡고 있는 엘링턴으로 이동했다.

미국의 국방력은 세계 1위다.

더구나 2위부터 10위까지 모든 국가의 국방력을 합쳐도 미국을 능가한다고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

전 세계와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그 압도적 무력의 정점이 바로 펜타곤이다.

최치우는 펜타곤 소속이 아니면서 5각형의 성채 안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극비 구역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한국에서 미쓰릴을 테스트했던 천재 요원, 잭 앤더슨이 최치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잭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최치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확인하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바라던 바.”

마치 테니스를 치는 것처럼 짧은 대화가 훅훅 오갔다.

둘은 사적인 감정을 배제한 채 필요한 이야기만 나누려 작정한 사람들 같았다.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펜타곤에서 드디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연락했기 때문이다.

잭을 필두로 펜타곤의 기라성 같은 천재 요원들은 최치우가 브라질에서 찾아낸 미쓰릴을 이용해 온갖 연구를 시도했다.

그러나 미쓰릴은 이전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신금속이다.

때문에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펜타곤에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았다.

최치우는 미쓰릴의 특성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펜타곤의 성과는 올림푸스와 함께 나눠야 한다.

그것이 미쓰릴을 제공하며 맺은 기술 제휴의 핵심 내용이었다.

저벅저벅-

조용한 복도 위로 발자국 소리만이 울렸다.

벌써 몇 번을 와봤지만 펜타곤 극비 구역의 지리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올 때마다 매번 구조가 미로처럼 바뀌는 것 같았다.

삐릭! 삐리리릭!

또 하나의 감식 기계가 잭 앤더슨의 홍채를 인식했다.

곧이어 굳건히 닫혀 있던 철문이 좌우로 열리며 밀실이 드러났다.

최치우와 잭 앤더슨, 그리고 안내를 맡은 요원까지 모두 3명이 밀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즉시 철문이 다시 잠겼다.

치이익- 철커덩!

여기서는 어떤 자료를 빼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싶었다.

사실 최치우는 괜한 도전 의식을 느꼈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호승심을 잠재웠다.

“홀로그램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잭 앤더슨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는 밀실 구석의 관제 장치에서 복잡한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반대편에 3D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는 기분이군요.”

“영화보다 더한 걸 보게 될 겁니다.”

잭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실제로 홀로그램이 헐리웃 영화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퍼어엉!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미군이 초소형 폭탄을 터트렸다.

하지만 실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게 흐릿하게 보였다.

이후 미군이 총을 꺼내 발사했다.

이윽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타앙- 퍼펑!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총이 터지며 폭발한 것이다.

총을 쏜 홀로그램 속 미군은 순식간에 팔을 잃었다.

“이거… 펜타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정말 대단하군.”

최치우는 어떤 상황인지 바로 이해했다.

잭은 그런 최치우가 놀라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알아보겠습니까?”

“미쓰릴의 특성을 이용해 소형 폭탄을 만든 거 같습니다만. 폭발 대신 EMP 같은 충격파가 일정 범위, 일정 시간 동안 형성되고…… 그 안에서는 총기나 폭탄류를 사용하면 즉각 반발력으로 폭발이 일어나는 걸로 보이는군요.”

“한 번에 특성을 알아보다니……. 역시 미쓰릴을 찾아낸 사람은 다르네요.”

잭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최치우의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최대 시전 범위는 100m2, 최대 시전 시간은 3분입니다. 미쓰릴의 성분을 분석해 초음파와 감응시켰고, 특정 주파수에서 예측 불가능한 자기장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바로 이것, 미쓰릴 필드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미쓰릴 필드.

나쁘지 않은 이름이었다.

100m2면 30평이다.

엄청나게 넓지는 않아도 충분한 공간이다.

30평의 공간에서 3분 동안은 총이나 폭탄 등 현대 과학이 발명한 무기를 쓸 수 없다.

만약 사용하게 되면 즉시 반발력으로 폭발해 시전자가 죽거나 다친다.

펜타곤은 미쓰릴을 바탕으로 엄청난 신무기를 개발해 냈다.

물론 미쓰릴 필드는 자체 살상력을 갖고 있지 않다.

고작 30평의 범위와 3분의 지속 시간으로 실전에서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발명에 성공한 것이다.

최치우는 먼 미래를 상상해 봤다.

하늘에서 폭격기가 폭탄 대신 미쓰릴 필드를 떨어트린다.

그럼 폭격을 맞은 지역은 일시적으로 현대 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적들의 미사일이나 대전차포 등 온갖 무기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당장은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일단 미쓰릴 필드가 개발된 이상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그림이다.

민간인들도 미쓰릴 필드를 사용하면 총을 든 테러리스트나 반군의 위협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저항할 수 있다.

그때 잭의 목소리가 최치우의 상념을 깨웠다.

“아시겠지만, 상용화까지는 어떤 변수들이 작용할지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제작에도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지속 범위와 시간 역시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게다가 불량이 나올 확률 또한 상당히 높습니다. 원활한 개발을 위해서는 실전에서 사용하며 체크를 해야 하는데……. 사담 후세인 사살 작전 이후 미군 특수부대도 실전 투입율이 극히 떨어진 상황이라 마땅한 테스트 샘플을 찾기 힘듭니다.”

잭은 펜타곤의 기술력을 보여준 동시에 한계점을 솔직히 터놓았다.

그는 최치우가 미쓰릴이라는 마법 같은 신금속을 발견해 가져왔듯 참신한 해결책을 알려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과연 최치우에게 마땅한 대안이 있을까.

씨익-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최치우는 비밀스레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활동한다.

헤라클래스.

그보다 더 적합한 테스트 샘플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펜타곤과 내 인연은 더욱 깊어질 것 같군요.”

“네?”

잭이 눈을 빛냈다.

최치우는 확신에 찬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쓰릴 필드, 우리가 실전에서 테스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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