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91화 (91/243)

# 91

폭음은 방금 전처럼 헤라클래스 대원들 방향에서 들리지 않았다.

대전차포를 사용한 적진 후방에서 흙먼지가 피어났다.

미쓰릴은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절대 금속이다.

오직 마나를 이용해 제련할 수 있지만,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지 단단하기만 한 금속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슬란 대륙의 온 마법사와 기사들이 미쓰릴 한 조각을 위해 목숨을 걸었을 리 없다.

에너지를 흡수해 튕겨내는 속성.

무엇이든 반사하는 반발력이야말로 미쓰릴을 절대 금속으로 불리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펜타곤에서도 바로 그 특성에 주목해 연구가 한창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대전차포 포문으로 들어간 미쓰릴 단검은 포탄의 에너지를 튕겨냈다.

결국 탱크도 부숴 버리는 포탄은 대전차포를 벗어나지 못하고 안에서 터졌다.

미쓰릴의 반발력까지 더해져 그 일대는 처참한 지경이 됐다.

대전차포를 쏘던 레드 엑스의 반군은 물론이고, 본진의 3분의 1 이상이 순식간에 날아간 것이다.

“적진 좌측, 대전차포 발견!”

“슛!”

타탕- 타타탕-!

최치우가 물꼬를 트자 1조 대원들도 남은 대전차포를 찾아내 사격했다.

그사이 2조는 진격을 계속했고, 엄호를 맡았던 3조도 2조와 합류해 평지에 다다랐다.

최치우는 가건물이 늘어선 평지에 도착한 2조와 3조를 향해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2조, 3조. 무기 없이 투항한 생존자 확보, 무장 병력은 즉살. 이상.”

“라저, 사부!”

“라저!”

리키와 타미르가 명령을 받들었다.

최치우는 전투에서 여유를 부리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잘 알고 있다.

자칫하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다치거나 죽으면 돌이킬 수 없다.

상대가 총이나 무기를 들고 있으면 무조건 죽이는 게 가장 확실하다.

무기 없이 투항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만 생포하면 된다.

설령 아무도 생포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레드 엑스는 살인, 강간, 약탈을 일삼는 게릴라 반군이다.

“1조, 대전차포 탐색 및 이탈자 방지. 이상.”

“이상 무!”

최치우의 1조는 혹시 모를 대전차포의 등장을 견제하면서 레드 엑스의 본진 외곽을 지켰다.

누구도 여기서 도망치지 못한다.

도망자는 곧 후환이다.

최치우는 후환을 남겨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헤라클래스는… 강하다.’

명령을 내리고 한 발짝 물러선 최치우는 냉정하게 평가를 내렸다.

자신의 기대보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더 강한 면모를 보였다.

기습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니다.

반격의 싹을 자르고 완벽한 섬멸 작전을 펼치는 건 무척 어렵다.

최정예 특수부대도 소화하기 힘든 고난도 작전이다.

전투에 취해 흥분하게 되면 실수가 발생하고, 실수는 곧 부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철저하게 역할대로 움직였다.

최치우의 확실한 지휘 덕을 봤지만, 그래도 기대 이상의 활약이 분명했다.

‘미쓰릴 단검으로 대전차포 하나를 터트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헤라클래스가 만들어낸 승리다.’

최치우는 마법으로 땅을 뒤집지 않았다.

무공을 펼치며 적진에 파고들어 진형을 붕괴시키지도 않았다.

대전차포 하나를 박살 내며 결정적 승기를 제공했어도, 전투의 70% 이상은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해낸 것이다.

최치우는 폐허가 된 레드 엑스의 본진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우리 대원을 죽이면 그 목숨값은 무조건 몰살로 받겠어. 섬멸, 그 외에 다른 대가는 필요 없다.”

헤라클래스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패왕으로 거듭날 것이다.

동료의 복수로 악명 높은 게릴라 반군 레드 엑스를 초토화시킨 오늘부터 전설은 시작됐다.

30명이든, 300명이든, 혹은 3명이든 헤라클래스의 머릿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누구든 헤라클래스를 건드리면 끝장을 봐야 한다.

그렇게 강렬한 인식을 아프리카 전역에 심어두면 3명으로도 패왕이 될 수 있다.

최치우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왕도(王道)를 걷게 할 생각이었다.

그가 깔아준 왕도 위에서 헤라클래스는 찬란히 빛나는 패왕성이 될 것이다.

“상황 종료. 3조, 우리 부상자를 먼저 수습한다. 2조는 생포자와 함께 여기 남아 차량 지원을 기다린다. 이상.”

최치우는 오늘의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어딘가에 박혀 있을 미쓰릴 단검을 찾고, 사후 수습만 하면 된다.

압도적 승리.

그러나 최치우는 여전히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고작 이게 네오메이슨의 시험이라면… 이제부터 각오해야 될 거다, 에릭. 날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레드 엑스의 난동이 에릭 한센과 연관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불투명한 경로를 통해 레드 엑스가 대전차포 같은 최신 무기를 입수한 것도 의심스러웠다.

어쨌거나 진실은 곧 드러날 터.

최치우는 받은 만큼, 아니 반드시 그 이상으로 돌려준다.

천하의 에릭 한센도 바짝 긴장해야 될 것 같았다.

***

헤라클래스는 레드 엑스 섬멸 작전에서 4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중 3명은 타박상 및 경미한 화상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중상을 입은 1명은 케이프타운의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됐다.

폭발의 여파에 휩쓸려 뇌진탕을 입고, 갈비뼈가 몇 대 부러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 위중한 정도는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두 달 정도 치료를 받으면 완쾌될 거라고 말했다.

결국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레드 엑스라는 막강한 반군을 섬멸한 것이다.

아프리카에 게릴라 반군들이 창궐한 이후 손에 꼽을 정도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헤라클래스의 전공을 치하할 순 없다.

아무리 살인, 약탈, 강간을 일삼는 반군이라도 100명이 넘는 인원을 사살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만 터지면 난리를 치는 국제 인권 단체들이 들고 일어날 게 뻔하다.

안 그래도 인권 단체들은 아프리카의 사설 무장 단체 허용 법안을 바꾸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기에 헤라클래스는 전장의 영광을 남아공 정부에 넘겼다.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남아공 정부는 악명 높은 반군을 소탕했다며 한껏 생색을 냈다.

대신 헤라클래스는 남아공 정부로부터 막대한 전투 보상금을 받았다.

광산 하나를 통째로 개발하고도 남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올림푸스의 광산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헤라클래스가 반군을 소탕해 자체적인 수익을 올린 것이다.

또 남아공 정부는 헤라클래스에게 커다란 빚을 진 셈이었다.

앞으로 최치우와 올림푸스가 남아공에서 사업을 전개할 때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빚이다.

어차피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남아공 정부가 아닌 올림푸스 산하의 사설 무장 단체 헤라클래스가 레드 엑스를 박살 냈다는 사실을.

이미 헤라클래스의 이름은 발 없는 소문을 타고 아프리카 전역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전까지 헤라클래스는 철저한 무명이었다.

날고 기는 베테랑 대원들을 스카웃했지만, 용병 개개인의 이름이 알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어떤 무장 단체나 특공대 소속인지가 클래스를 증명한다.

그런데 신생 단체의 첫 번째 승전보가 레드 엑스 섬멸이다.

생각보다 레드 엑스의 악명은 더 포악했고, 그만큼 헤라클래스의 명성은 높아졌다.

기습을 해서 쉽게 이겼다는 반론은 무의미하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정보다.

레드 엑스의 본진 위치를 알아내고 움직였다는 건 헤라클래스의 정보력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설령 최치우가 어나니머스에 거금을 주고 정보를 산 게 알려져도 아무 문제없다.

그만한 자금력을 동원해 정보를 구하는 것도 능력이다.

최치우가 원했던 대로 헤라클래스는 섣불리 건드리기 힘든 존재로 우뚝 섰다.

그만큼 올림푸스에서 개발하는 광산들도 반군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헤라클래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를 건드리면 적당히 싸우는 게 아니라 몰살을 시켜 버린다.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하고 덤벼라.

그 메시지 앞에서 함부로 움직일 게릴라 반군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뒤에서 무기와 돈을 지급해도 마찬가지다.

원래 반군들의 수장은 호의호식하며 자기 목숨을 무엇보다 아낀다.

그들에게 있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헤라클래스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사설 무장 단체도 헤라클래스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에는 헤라클래스 같은 사설 무장 단체가 난립하고 있다.

서로 같은 사건에 엮이면 무장 단체끼리 비공식적으로 총격전을 벌이는 경우도 생긴다.

게릴라 반군이나 테러리스트를 상대한다는 목적은 같지만, 잠재적 경쟁자인 것이다.

그렇기에 헤라클래스의 등장은 여러 사람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혼돈의 대륙 아프리카에 새롭고 강력한 태풍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잔금까지 입금 완료. 이만하면 일 처리가 아주 빠르군.”

직접 남아공에 와 헤라클래스를 지휘한 최치우는 만족스런 얼굴로 보고를 받았다.

남아공 정부에서 약속한 전투 보상금을 100% 입금시켰기 때문이다.

보통 정부는 최대한 늦게, 그리고 적은 돈을 주려 애쓴다.

어느 나라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남아공 정부는 엄밀히 말해 헤라클래스의 전공으로 잔뜩 생색을 냈다.

물론 흔히 있는 일이지만, 어떻게든 거래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막대한 금액과 빠른 입금으로 성의를 보인 것이다.

최치우는 아프리카 법인의 계좌에 찍힌 금액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게릴라 반군 하나를 섬멸하면 광산 하나와 맞먹는 돈을 벌 수 있다.

이만하면 헤라클래스를 단순히 호위 부대로 쓰긴 아까웠다.

당장은 힘들어도 점차 규모가 커지면 아프리카의 반군들을 쓸어 담는 유격대가 될 지도 모른다.

최치우는 세계평화유지군을 비롯해 그 어떤 나라의 군대도 해내지 못한 일을 꿈꾸고 있었다.

“우선 먼저 해야 할 게 남았지.”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테스트를 당했으니 똑같이 돌려줘야 한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최치우가 아니다.

최치우는 레드 엑스를 공격하기 전, 어나니머스 인도 지부장에게 받은 극비 파일을 열었다.

올림푸스의 남아공 법인 사무실에서 세상을 지배한다고 자부하는 네오메이슨을 향한 반격이 준비되고 있었다.

***

“200만 달러, 그러니까 24억을 주고 얻어낸 정보가 이게 전부입니까?”

임동혁은 24억이라는 큰돈이 아까운 듯 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최치우는 눈썹도 까딱이지 않았다.

에릭과 관련된 정보를 캐내는 데 200만 달러를 썼지만, 앞으로도 그 이상의 돈을 지출할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200만 달러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이걸 바탕으로 2,000만 달러가 넘는 타격을 입혀야죠.”

“에릭 한센의 성장 배경, 가족 관계, 그리고 몇몇 가족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자금 운용 내역과 투자 상황. 이걸로 대체 뭘 할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딱 보면 답이 나올 텐데요. 가장 약한 부위가 어디인지.”

“음…….”

임동혁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데이터를 다시 검토했다.

매번 최치우에게 구박을 받지만, 저래 보여도 어려서부터 경영 수업을 받은 재벌 2세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최치우가 말한 부분을 캐치했다.

“찾았습니다. 에릭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의류회사. 공장이 베트남에 있는데… 자금 회전이 수상합니다.”

“역시 중요할 땐 해내는 임 이사님.”

“칭찬은 고맙습니다만, 이 회사를 건드리려는 겁니까?”

“한번 두고 봅시다. 여동생의 회사가 날아가면 에릭이 어떻게 나오는지. 그가 흥분하고 화를 낼수록 숨겨둔 패를 많이 꺼내게 되겠죠.”

“에릭 한센은 뉴욕, 런던, 홍콩, 어디서든 인정받는 최고의 투자자입니다. 그와 척을 져서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무엇입니까? 에릭이 본격적으로 자금을 움직이고, 기관을 동원해 M&A 압박을 시작하면 후폭풍이 엄청날 겁니다.”

“올림푸스의 지분은 내가 51%를 갖고 있으니 에릭의 전매특허인 적대적 M&A 공격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에릭은, 또 그를 괴물로 키워낸 세력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이 될 겁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최치우는 이미 네오메이슨에 선전포고를 했다.

유영조 대통령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네오메이슨과 부딪칠 운명이었다.

최치우가 바로 서양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네오메이슨이 지배하는 세계의 룰을 거스르는 혁신가이기 때문이다.

아직 임동혁에게까지 너무 원대한 이야기를 해줄 필요는 없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지금은 시기상조다.

임동혁은 최치우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기에 툴툴거려도 할 일은 다 한다.

이로서 반격의 서막이 열렸다.

최치우는 에릭의 손가락을 쳐내고 그의 반응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헤라클래스 대원 두 명의 목숨값을 레드 엑스의 섬멸로 받아냈지만, 진짜 배후는 에릭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에릭에게서도 응분의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

진짜 반격을 앞둔 최치우의 심장이 기분 좋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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