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아프리카의 패왕>
두두두두두-
군용 지프가 길이 없는 오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최치우는 선두 차량의 조수석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혹시 모를 매복이나 함정을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최치우밖에 없다.
‘아직까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어나니머스가 알려준 레드 엑스의 본진으로 출발한 지 1시간이 넘었다.
워낙 길이 험해서 차가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만약 어나니머스의 좌표가 틀렸다면 허탕을 치고 만다.
하지만 최치우는 세계 최고의 해커 집단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100% 확실한 정보가 아니라면 결코 돈을 받지 않는다.
그만한 원칙이 있기에 오랜 세월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삐빅- 삐비빅-
최치우는 GPS 탐지기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사막인지 광야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지역에서 GPS가 없으면 까막눈이 되고 만다.
삑!
미리 입력해 둔 레드 엑스의 본진 좌표가 빨간불로 빛나고 있었다.
현재 위치에서 직진 주행으로 15㎞ 거리다.
도로 사정을 감안해도 30분이면 레드 엑스의 본진에 다다를 것이다.
최치우는 무전기를 켜고 지시를 내렸다.
“여기는 선두, 1호 차. 상황 보고, 이상.”
무전으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가능한 짧게 핵심 단어만 말해야 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최대한의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야 되기 때문이다.
곧이어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탑승한 2호 차와 3호 차에서 답신이 왔다.
“2호 차, 현재 상황 이상 무.”
“3호 차, 현재 상황 이상 무.”
2호 차 조수석에는 리키가 타고 있다.
3호 차 조수석은 타미르가 차지했다.
몽골에서 온 타미르는 전투 능력은 다른 대원들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그러나 상황 판단력이 좋기 때문에 3호 차 대원들의 지휘를 맡겼다.
원래 포지션도 저격수이기에 지휘를 맡기 안성맞춤이다.
최치우는 둘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28명의 대원과 리키,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 30명을 3조로 나눴다.
각 조의 리더는 10명의 동선을 유기적으로 지휘해야 한다.
동시에 최치우의 최종 명령을 동료들에게 전달하며 차질 없이 전투를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 기회를 통해 리키와 타미르의 지휘 능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실전 경험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15㎞ 전, 적진 발견 후 1호 차 대전차포 무력화 작전 개시. 2호 차, 적진 내부 침투, 3호 차 엄호. 이상.”
“라저.”
“라저.”
기다렸다는 듯 리키와 타미르의 목소리가 울렸다.
작전은 간단했다.
최치우가 이끄는 1호 차 대원들은 대전차포부터 노린다.
원래 아프리카의 게릴라 반군들은 권총과 소총, 잘해봐야 기관총 정도의 무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레드 엑스는 배후 세력으로부터 대전차포를 전달받았다.
에릭 한센이 올림푸스의 광산 개발을 방해하기 위해 레드 엑스에게 신형 무기를 공급했을 확률이 높았다.
바주카포로도 불리는 대전차포는 국지전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한 방으로 탱크를 파괴할 수 있다.
대전차포만 있으면 전투부대의 진형을 무너트리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첫 번째 타깃을 대전차포로 삼았다.
레드 엑스의 대전차포만 무력화시키면 기습의 성공률이 높아진다.
갑작스런 본진 습격에 당황한 레드 엑스는 제대로 저항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만약 레드 엑스가 헤라클래스 대원들을 향해 대전차포를 발사하면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른다.
헤라클래스의 진형이 무너지고 피해를 수습하는 동안 레드 엑스가 대열을 정비할 수도 있다.
‘적진에 도착해서 3분, 그 안에 승부가 갈린다.’
최치우는 속전속결로 전투가 끝날 거라 예상했다.
실제로 100명이 넘는 레드 엑스를 모두 죽이거나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기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대전차포라는 강력한 무기를 어떻게 무용지물로 만드느냐에 모든 게 걸려 있다.
최치우가 도움을 줄 부분도 거기까지다.
그다음부터는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마음껏 활개 치도록 놔둘 작정이다.
물론 예상 못 한 위기가 닥치면 최치우가 전면에 나서서 적진을 휩쓸게 될 지도 모른다.
최치우는 최후의 상황까지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헤라클래스가 실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누구보다 최치우의 기대가 가장 컸다.
두두두두-!
결전의 장소로 달려가는 지프가 거친 소리를 토해냈다.
최치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미쓰릴로 만든 단검을 만졌다.
그는 펜타곤에 제공하고 남은 미쓰릴로 작은 단검과 반지를 만들었다.
미국 국방부만 진가를 알고 있는 절대 금속 미쓰릴이 아프리카에서 위력을 뿜어내게 될까.
손가락 크기의 단검을 만지작거리는 최치우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레드 엑스는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상대를 공격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 같았다.
***
모두 숨을 죽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정신을 바짝 집중하고 있었다.
최치우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척을 감지했다.
드디어 남아공과 나미비아를 오가며 약탈과 강간을 일삼는 골칫덩이 레드 엑스의 본거지에 도착한 것이다.
아직 본진이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메마른 언덕 지형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몇 개의 언덕만 넘어서면 레드 엑스의 본진이 보일 것 같았다.
“적진 발견 시 곧바로 작전 개시, 이상.”
“라저.”
“라저 댓.”
최치우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지시를 내렸다.
교전이 발발해도 계속 지시를 내리겠지만, 미리 짜둔 합대로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덜커덩-!
그때 마침 1호 차가 제법 높은 능선 하나를 넘었다.
동시에 최치우는 유리창 너머로 레드 엑스의 본진을 발견했다.
언덕으로 사방이 막힌 아래쪽 평지에 임시 가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지역에 악명 높은 게릴라 반군 레드 엑스의 본거지가 위치한 것이다.
어나니머스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레드 엑스의 좌표를 찾아내기 힘들었을 터.
최치우는 자신에게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파이어!”
무전기에 입을 댄 최치우가 강렬한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1호 차에 탑승한 10명이 순식간에 하차해 총기를 들었다.
운전을 한 대원도 마찬가지였다.
레드 엑스가 저항하기 전에 언덕 아래로 내려가 기습을 성공시켜야 한다.
각자의 무기를 챙긴 10명이 언덕 아래로 질주했다.
최치우는 일부러 뒤쪽에서 속도를 맞추며 사방을 살펴봤다.
언제 어디서 대전차포가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류탄 투하!”
언덕을 반쯤 내려와서 최치우가 함께 1호 차를 타고 온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두의 세 명이 수류탄을 던졌다.
피유웅-
퍼퍼퍼퍼펑!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수류탄이 레드 엑스의 본진을 뒤흔들었다.
강도 높은 폭발음에 고막이 얼얼해졌지만 한 시도 멈출 수 없다.
속전속결로 전투를 끝내지 않으면 수적 열세인 헤라클래스가 언제 위험해질지 모른다.
“연막탄 투하!”
최치우는 쉬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정확한 타이밍에 지시를 내리는 결단력이 놀라웠다.
그는 다른 차원에서 무수히 실전을 치러본 경험으로 헤라클래스의 베테랑 대원들을 수족처럼 부렸다.
피슈우우웅!
쏴아아아아아-
수류탄에 이어 연막탄이 터지며 레드 엑스의 본진이 안개에 휩싸였다.
갑작스런 기습과 폭탄 투척으로 이미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뒤이어 도착한 2호 차와 3호 차에서 나머지 대원들이 내렸다.
최치우는 20명의 대원들이 돌진해 오는 걸 보고 1조의 역할을 상기시켰다.
“1조 전원 산개! 대전차포 무력화, 이상!”
“예썰-!”
“라저, 캡틴!”
기습의 성공으로 아드레날린이 돌기 시작한 대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곧이어 최치우를 제외한 9명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1조의 역할은 대전차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수류탄과 연막탄으로 적진을 휩쓸었으니 레드 엑스는 곧장 비장의 무기를 꺼낼 게 분명하다.
그때가 바로 1조의 승부처다.
쑥대밭이 된 레드 엑스의 본진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건 2조와 3조의 몫이다.
“파이어어어어어-!”
2조를 이끄는 리키가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일렬로 늘어선 2조 대원들이 연막탄 너머 움직이는 그림자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투투투투투투!
펑- 퍼퍼펑!
3조 대원들은 뒤에서 수류탄을 더 던졌다.
150명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레드 엑스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반격할 여지를 주지 않는 기습과 섬멸 작전.
이제껏 지도에도 없는 오지에 꽁꽁 숨어 게릴라 작전으로 재미를 보던 레드 엑스가 똑같이 당하고 있었다.
투투투투-!
피융- 피유웅!
“반격이다, 산개!”
“3조, 엄호!”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헤라클래스의 초토화 작전이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었지만, 레드 엑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살아남은 레드 엑스의 반군들이 기관총을 잡아들고 총알을 갈겼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던 헤라클래스에게는 큰 위협이 못 됐다.
이미 수류탄과 연막탄으로 적진을 파괴했고, 시야의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난사라도 레드 엑스의 반격은 조준점 없이 막무가내로 총을 갈기는 것이다.
반면 헤라클래스는 약속 된 진형대로 철저히 레드 엑스의 본진을 노리고 사격을 가했다.
게다가 3조를 이끄는 타미르는 예리한 저격수다.
타미르는 연막탄 안개 너머에서 총알이 집중적으로 불을 뿜는 지점을 향해 스나이퍼샷을 쐈다.
피슈웅!
타미르의 총알은 귀신같았다.
레드 엑스의 반격 의지를 꺾을 뿐 아니라 헤라클래스 대원들을 엄호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이대로 가면 헤라클래스의 초토화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레드 엑스에겐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다.
최치우와 1조 대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수상한 동향을 찾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무전기를 통해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적진 후방, 대전차포!”
기습이 시작되고 1분 남짓한 시간이 흐를 동안 레드 엑스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 누군가 혼란 속에서 대전차포를 꺼낸 것이다.
“2조, 전원 산개!”
최치우는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가장 뭉쳐 있는 것은 사격을 퍼붓고 있는 2조 대원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전차포는 2조를 향해 발사됐다.
콰아앙-!
차원이 다른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연막탄으로 만든 인위적인 안개보다 더 짙은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최치우가 속한 1조와 후방의 3조는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2조의 상태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리키, 리키! 2조 상황 보고 바람, 이상!”
최치우는 무전기로 리키를 불렀다.
대전차포가 불을 뿜기 직전 산개 명령을 내렸지만, 폭발의 여파가 강력해 걱정이 됐다.
“2조 포격 직전 산개 완료, 경상 3명, 중상 1명, 이상!”
걱정과 달리 리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2조는 다시 레드 엑스의 본진으로 진격하며 사격을 이어갔다.
1명이 중상을 입고 전투 불능이 됐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이제 최치우와 1조가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다.
최치우는 눈을 부릅뜨고 대전차포가 쏘아진 방향을 쳐다봤다.
“1조, 저긴 내가 맡는다. 다른 대전차포 탐색 및 2조 엄호 실시, 이상!”
레드 엑스는 또 다시 장전을 하고 대전차포를 쏠 것이다.
몇 대의 대전차포가 더 있을 가능성도 있다.
최치우는 정신을 집중한 채 방금 전 포탄이 쏘아진 지점을 노려봤다.
그곳에서 위험한 기운이 응축되는 게 느껴졌다.
‘가라!’
쐐애애액-
최치우는 품에 넣어둔 미쓰릴 단검을 던졌다.
내공을 가득 담아 포격 지점을 향해 비도술(飛刀術)을 펼친 것이다.
미쓰릴 단검은 총알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동시에 2조를 공격했던 대전차포에서 다시 불이 뿜어지려 했다.
슉!
대전차포에서 포탄이 발사되기 직전, 미쓰릴 단검이 넓은 포문 안으로 정확히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금 온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콰콰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