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89화 (89/243)

# 89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아프리카 게릴라 반군들의 무장 상태는 상당히 열악하다.

워낙 점 조직으로 퍼져 있고, 정부의 병력이 약해서 통제하기 힘든 것이지 반군이 강력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리키는 최신식 무기를 봤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남부의 반군들이 어떤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지 리키가 모를 리 없었다.

헤라클래스에는 아프리카에서 피땀을 흘린 베테랑 대원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 눈에 낯선 무기가 등장했다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의심스러운 걸 압축해 봅시다.”

최치우는 상황을 정리하려고 나섰다.

어느새 그의 눈빛에서 칼날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첫째, 우리 광산에서 얻을 게 별로 없는데 사진을 찍는 등 지속적으로 습격할 의도를 보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둘째, 게릴라 반군들이 소유하기 힘든 최신식 무기를 가지고 있다.”

“확실히 이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전투에는 문외한인 이시환도 심각성을 인지했다.

단순히 광산 경비를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가설을 하나 세워보죠. 위험한 가설을.”

최치우는 판단을 내렸다.

증거는 없지만 정황은 넘치도록 충분하다.

생각을 정리한 최치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이시환과 리키를 놀라게 만들었다.

“외부 세력이 반군에게 무기를 지원한 겁니다. 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것도 지원했겠죠. 그 대가로 올림푸스의 광산을 공격해서 개발이 이뤄지지 못하게 사주한 거라면……. 아귀가 딱딱 들어맞지 않습니까?”

“사부, 대체 누가…….”

리키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제3의 배후 세력 때문에 헤라클래스 대원 두 명이 죽게 됐다면, 그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최치우는 섣불리 배후를 지목하는 대신 냉정하게 조치를 취했다.

“이시환 본부장, 우리의 광산 개발로 피해를 보는 업체가 있는지 알아보세요.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 첫 번째 용의자입니다. 2시간 줄 테니 리스트를 추려줘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최치우가 도착하니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의기소침해 있던 이시환은 기운을 내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리키도 큰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최치우의 지시를 기다렸다.

“남아공 국방부에 정식으로 협조 요청을 해서 우리를 공격한 게릴라 반군이 누구인지, 근거지는 어느 지역인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받아내요.”

“옙, 사부.”

“남아공 군대는 직접 나서지 않을 겁니다. 여력도 없을 테고. 정보만 제공하면 올림푸스와 헤라클래스가 알아서 해결한다고 말하세요. 그럼 순순히 협조할 겁니다.”

최치우는 남아공 정규군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다.

그들은 반군과의 전투를 무척 피곤해한다.

일일이 군대를 동원할 여력도 마땅치 않은 사정이다.

그렇기에 광산 개발도 글로벌 기업에 위탁하고, 사설 무장 단체의 설립도 허용하는 것이다.

올림푸스가 나서서 골치 아픈 반군 하나를 맡아준다고 하면 남아공 정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게 뻔했다.

최치우는 목소리를 낮추고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기회라고 생각합시다. 이제부터 그 누구도 감히 헤라클래스에 대적할 수 없도록, 우리를 각인시키는 기회.”

“사부, 우리 대원 두 명의 목숨이 얼마나 비싼지 알려주겠습니다.”

리키는 각오를 단단히 한 듯 힘주어 대답했다.

최치우의 눈에서도 여전히 서릿발 같은 살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참에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프리카의 반군들은 지속적으로 올림푸스를 괴롭힐 것이다.

아예 뿌리까지 박살을 내야 한다.

그래야만 배후에서 아무리 큰돈을 줘도 반군들이 겁을 먹고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으드득-

으스러지듯 주먹을 강하게 쥔 최치우는 무엇이든 부숴 버릴 것 같았다.

뜨거운 사막에 징벌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

최치우는 이번에도 어나니머스의 힘을 빌렸다.

어나니머스에게 해킹을 의뢰하면 말도 안 되는 비싼 가격을 부른다.

하지만 그 어떤 곳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수많은 해커들이 어나니머스를 사칭하지만, 진짜는 클래스가 다르다.

에릭 한센의 정보를 얻으며 어나니머스와 거래를 튼 최치우는 이번에도 거액을 지불했다.

그러나 돈을 쓴 보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시급한 기밀 정보 두 가지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먼저 이시환은 올림푸스의 광산 개발로 피해를 입은 경쟁 업체 리스트를 만들었다.

최치우는 그 리스트를 어나니머스에 전달했고, 불확실한 자금 흐름이 있었는지 확인했다.

결과는 최치우의 예상대로였다.

경쟁 업체에서 게릴라 반군으로 불법 자금이 흘러들어 가지 않았다.

또 다른 배후 세력이 무기와 자금을 공급한 것이다.

그럴 만한 동기와 실행력을 갖춘 사람은 에릭 한센밖에 없다.

아쉽게도 에릭 한센의 자금줄을 파악하긴 힘들었다.

어나니머스도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다.

대신 그들은 광산을 공격한 게릴라 반군의 정체와 근거지를 알려줬다.

‘레드 엑스(Red Axe), 붉은 도끼란 말이지.’

자못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남아공 내부의 게릴라 반군 집단 중에서는 손꼽히는 세력이다.

레드 엑스의 병력은 1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게릴라 부대가 100명 넘게 있다는 건 상당한 규모다.

그동안 남아공 정부군 역시 레드 엑스 때문에 꽤나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어나니머스는 광야 지대에 숨어 있는 레드 엑스의 근거지를 알려줬다.

사실 남아공 정부의 군대가 레드 엑스의 근거지를 소탕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곳은 아프리카다.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검은 대륙에서 그런 걸 기대할 순 없었다.

최치우는 직접 레드 엑스를 처단할 작정이었다.

문제는 전력 차이다.

2명이 사망한 헤라클래스 대원은 28명.

리키와 최치우를 포함해도 딱 30명인데 레드 엑스는 최소 100명이 넘는다.

게다가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최신식 무기를 보유했다고 한다.

원래 헤라클래스 같은 정식 사설 무장 단체는 무기의 질에서 게릴라 반군을 압도하는 편이다.

그런데 배후 세력의 지원으로 레드 엑스도 비슷한 레벨의 무기를 갖게 됐다.

이런 상황이면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머릿수까지 앞서는 레드 엑스를 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최치우는 걱정하지 않았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절대적인 변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수란 다름 아닌 최치우 자신이었다.

현대에서 유일하게 마법과 무공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존재.

서로 다른 차원에서 얻은 경험과 능력을 모두 발휘하면 무슨 일을 해낼지 모른다.

특히 최치우의 경험은 전투에 특화돼 있다.

그는 게릴라 반군이 아닌 정규 군대와 싸우게 되더라도 박살을 낼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라면 도가 텄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당장 어나니머스가 알려준 레드 엑스의 본진으로 혼자 쳐들어가서 초토화를 시키고 싶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최치우가 나설 수는 없다.

‘내가 아닌 헤라클래스가 아프리카의 맹주로 우뚝 서야 된다. 그러기 위해선…….’

최치우는 계획을 세웠다.

주도면밀하고 빈틈없는 전략은 아니다.

매우 거칠고 단순한 계획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일단 계획이 섰다는 게 중요하다.

어떤 변수가 발생해도, 레드 엑스가 예상보다 더 강해도 상관없다.

최치우는 한번 세운 계획을 굽히지 않고 현실로 만들어낼 것이다.

“리키!”

그가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밖에 있는 리키를 불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리키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옙, 사부!”

“헤라클래스 대원들 전원 소집입니다. 완전무장 상태로.”

“나우? 지금?”

“바로 지금, 출정합니다.”

출정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최치우는 오늘 헤라클래스를 이끌고 레드 엑스를 지워 버릴 것이다.

동시에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헤라클래스의 이름을 만방에 알려야 한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최치우는 출정을 선포했다.

리키는 군말하지 않고 대원들을 소집하기 위해 나갔다.

사막에 때아닌 피바람이 휘몰아칠 것 같았다.

***

완전무장을 마친 헤라클래스 대원들의 얼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최치우는 나란히 도열한 28명의 대원과 리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드 엑스의 본진은 여기서 북서 방향으로 60㎞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곳은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질 겁니다.”

담담한 말투와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내용은 달랐다.

최치우는 아프리카 남부의 유력한 게릴라 반군을 전멸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온갖 전투를 경험해 본 헤라클래스 대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레드 엑스의 습격을 막아내며 그들의 무서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치우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아공 정규군은 함께 가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힘으로, 헤라클래스가 레드 엑스를 전멸시켰다는 이야기가 아프리카 전역에 퍼지게 될 겁니다.”

“함께… 가시는 것입니까?”

몽골 출신의 타미르가 최치우에게 질문을 했다.

대원들은 방탄조끼와 헬멧, 각자의 총기로 완전무장을 마쳤다.

대장인 리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최치우만 맨몸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최치우의 비정상적인 전투 능력을 몸소 체험해 봤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할 수 없지만 최치우는 30 대 1의 싸움에서 가뿐히 승리했다.

그렇기에 최치우가 함께 출정한다면 헤라클래스 대원들의 사기도 살아날 것이다.

최치우는 질문을 한 타미르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함께 갑니다. 당연히.”

그의 대답을 들은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일제히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최치우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함께 출정해 싸우겠지만, 전면에 나서진 않을 겁니다. 이건 나의 싸움이 아닌 헤라클래스의 싸움입니다. 내 승리가 아닌 헤라클래스의 승리가 되어 아프리카 반군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소 어려운 말이었다.

함께 출정해 싸우지만 백업만 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래도 최치우가 함께하는 게 어디인가.

미스터리한 능력을 지닌 최치우의 동행 자체가 헤라클래스에게는 천군만마와 같다.

100명이 넘는 거친 게릴라 레드 엑스의 본진으로 쳐들어가는 것은 분명 무리수다.

그렇기에 몇몇 대원들은 여전히 안색이 안 좋았다.

어쩌면 이번 전부에서 또 다른 사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정은 결정됐다.

싸움을 피하는 용병, 적에게 복수하지 못하는 무장 단체는 존재 이유가 없다.

“출정.”

최치우의 입에서 ‘Go to war’라는 말이 나왔다.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리키와 대원들은 재빨리 움직이며 오지를 돌파할 수 있는 트럭에 나눠 탔다.

최치우는 선두에서 이동할 트럭 조수석에 올라타 지휘용 무전기를 들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 사막의 전설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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